김용 11

한중 문화번역의 정치학

동아시아에서 한류(K-pop) 열풍이 불면서 한국 사회에도 동아시아 대중문화 교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초기의 한류 평가는 애국주의적·저널리즘적·선정적인 수사가 많았지만, 동아시아 내에서 일류(日流: J-pop)와 칸토 팝(Canto-pop)의 존재를 인지하고 ‘지구적 문화(global culture)’의 시좌를 획득하면서 한류에 대한 관심은 주로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 문화 흐름들’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트랜스 내셔널 문화 흐름들’이란 현대 세계의 세계주의(cosmopolitanism)적인 문화 형태들이 그 속에서 번성하고 경쟁하며, 오늘날 인문과학들의 그 많은 진리를 좌절시키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먹이로 삼는 그 흐름들(아파두라이, 1996: ..

에스닉과 네이션 그리고 국가주의

진융 텍스트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주의적 맥락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중국 근현대 무협소설이 태동하던 시점에 ‘민족’은 네이션(nation)과 에스닉(ethnic) 두 층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전자는 외적의 침입에 대한 중국 네이션(Chinese nation)을, 후자는 만주족에 대한 한족(Han ethnic)을 가리킨다. 사실 중국 문화라는 것이 한족 중심의 56개 에스닉의 혼성문화라는 것은 오늘날 상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현대 무협소설의 태동기인 1910년대에는 반제(反帝)와 반만(反滿)이 착종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 두 가지는 쑨중산(孫中山)에 의해 삼민주의(三民主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민족주의’로 개괄..

한국의 ‘영웅문’ 현상

중문학자 이치수(2001)는 한국의 중국 무협소설 번역·소개의 역사를 ‘김광주 시대’, ‘와룡생/워룽성 시대’, ‘김용/진융 및 기타 시대’의 세 시기로 나눈다. 무협소설 번역가이자 작가인 박영창도 ‘한국의 중국 번역 무협’을 ‘김광주시대’, ‘와룡생/워룽성 시대’, ‘김용/진융 시대’로 구분했다. 진융은 워룽성에 이어 중국 무협소설 유행의 또 하나의 고조를 대표한다. 1986년에 『영웅문』시리즈가 출판되면서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외국 번역소설로 꼽혔고 1986년부터 1989년에 이르는 3년간 ‘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鴦’의 14부와 「월녀검」이 모두 번역되었다. 몇 년 되지 않은 기간에 외국 작가의 작품이 모두 번역 소개된 것은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로, 우리나라의 번역문학사상 특기할만한 사..

『의천도룡기』 두텁게 읽기

『의천도룡기』 8권이 완역 출간됨으로써 ‘사조삼부곡’ 24권이 완간되었다. 이전의 ‘영웅문’ 시리즈 18권이 원문의 약 70% 정도로 번역된 반면, ‘사조삼부곡’은 완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는 『사조영웅전』의 유가(儒家)적 협객인 곽정, 『신조협려』의 도가(道家)적 협객인 양과와는 다른 불가(佛家)적 협객이라 할 수 있다. 곽정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대협’을 지향하는 인물이고 양과가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형상이라면, 장무기는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기억하며 심지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융은 다른 소설에서 협객의 의미에서 벗어난 비협(非俠)의 경지(『연성결』의 적운, 『협객행』의 석파천)를 보여주기도 하고..

『사조영웅전』 꼼꼼하게 읽기

첫째, ‘역사의 허구화’와 ‘허구의 역사화’.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진융 무협소설의 커다란 특징이고, 왕조 교체기라는 과도기를 선택한 것은 작가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조영웅전』을 통해 송과 금의 남북 대치, 사막에서 성장해가는 몽골 부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융은 역사를 형해화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와 결합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몽골 사막의 역사 영웅 칭기즈 칸의 인간적인 삶의 면모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역사를 허구(fiction)와 결합한 것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화산논검 등의 허구적 이야기는 소설 전체를 규정하는 배경이 됨으로써 독자들이 ‘사실’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둘째, ‘화산..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과 홍콩문학

우리가 ‘중국 근현대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1950년대 중엽, 그리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하고 있을 무렵, 홍콩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 문학혁명은 통속문학에 대해 편견이 있던 학자와 교수들을 강박(强迫)하여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융의 무협소설이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을 휩쓴 진융의 무협소설은 1980년대에는 역으로 대륙에 상륙했다. 중국 대륙에 불어 닥친 ‘진융 열풍’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제 진융의 무협..

두터운 문화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과 쓰는 괴로움

진융(金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진융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고통의 첫 번째 이유는 강호에 와호장룡(臥虎藏龍)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 가운데 진융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나아가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진융을 화제에 올리면 최소한 한두 시간은 열띤 대화를 하기 마련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진융 사이트인 을 보면 그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곳을 서핑하다 보면 상당한 공력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고수가 운집해있는 강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진융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내가 여러 차례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과 틈틈이 떠올랐던 생각을 밝히..

한국무협소설 vs 중국무협소설 -『소설 영웅문』과 『진용작품집』

한국무협소설 vs 중국무협소설 - 『소설 영웅문』과 『진용작품집』 Korean vs. Chinese Martial Arts Fiction - The Lord of Heros and Jin Yong Literature Collection 플랫폼 2008년 5·6월호(통권 9호), 2008. 4 http://www.dbpia.co.kr/view/ar_view.asp?start_page=11&end_page=20&view_flag=1&code1=&code2=&code2name=&code3=&code3name=&code4=&code4name=&code5=&code5name=&co..

진융-김용 201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