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한류(K-pop) 열풍이 불면서 한국 사회에도 동아시아 대중문화 교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초기의 한류 평가는 애국주의적·저널리즘적·선정적인 수사가 많았지만, 동아시아 내에서 일류(日流: J-pop)와 칸토 팝(Canto-pop)의 존재를 인지하고 ‘지구적 문화(global culture)’의 시좌를 획득하면서 한류에 대한 관심은 주로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 문화 흐름들’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트랜스 내셔널 문화 흐름들’이란 현대 세계의 세계주의(cosmopolitanism)적인 문화 형태들이 그 속에서 번성하고 경쟁하며, 오늘날 인문과학들의 그 많은 진리를 좌절시키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먹이로 삼는 그 흐름들(아파두라이, 1996: 90)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의 문화적 역학이 존재한다. ‘탈영역화’로 번역되기도 하는 ‘탈영토화’라는 용어는 “초국가적 기업들, 자본 시장들뿐만 아니라 민족 집단들, 당파적인 운동들, 정치적 형성물들에도 적용된다. 이들은 점차 특정한 영토적 경계들과 정체성들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아파두라이, 91). 아파두라이(Appadurai, Arjun)는 ‘트랜스 내셔널’이라는 개념을 세계의 구석구석을 뒤덮는 것을 의미하는 ‘지구적(global)’ 및 국민국가라는 단위를 전제로 하는 ‘국제적(international)’과 변별한다. 그것은 국가의 규제나 구속력을 쉽사리 뛰어넘은 자본이나 기업의 거시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이민이나 여행에 의한 인간 이동의 가속화라든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상품·정보·이미지의 미시적인 연계까지 염두에 두고, 국가의 틀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국경을 넘는 문화의 새로운 흐름·관계·상상력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트랜스 내셔널’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한류’를 보게 되면 초기의 단방향적 영향이라는 평가를 넘어서게 된다. 조한혜정(2005)은 한류를 1990년대 아시아 지역에서 일고 있는 ‘탈경계적’·‘트랜스 내셔널’ 문화 생산과 유통 상황의 하나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중심이 되는 지구화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대상으로 고찰했고, 강내희(2007)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맥락과 연결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의 모순적 관계 속에서 한류를 재해석했다. 이들의 연구는 저급한 내셔널리즘 또는 문화패권주의적 관점에서 한류를 과장 해석한 초기 단계의 평가보다 진척된 것이다. ‘포스트한류’(최원식, 2009)의 문제의식도 이러한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한류’ 현상을 참조체계로 삼아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교류’라는 큰 틀 속에서 진융 무협소설의 한국 수용과 번역을 고찰했다. 이는 문화의 속성이 쌍방향이라는 점을 참작한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한류 속에는 전통적으로 중국문화의 요소와 일제강점기 일본문화의 요소 그리고 해방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 요소 등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한류’ 콘텐츠 가운데에는 우리가 수용해 ‘토착화’한 중국적 요소와 일본적 요소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더 치밀한 분석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중국인이 좋아하는 한류 콘텐츠 분석을 통해 양국의 ‘근현대’ 토착화 경험의 비교·대조가 가능하다. 이에 대한 효과적 설명을 위해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횡단’이라는 시좌가 요구되고 나아가 ‘문화 간 번역’의 문제가 대두된다. 트랜스 내셔널 문화횡단과 소통의 시대에 문화 간 번역은 필수적인 과제다.
근현대 우리의 중국관은 전통 중국에 대한 관습적 존중과 근현대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특히 후자의 인식은 홍콩·타이완의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과 대륙에 대한 매카시즘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생활 속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 대중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은 홍콩과 타이완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중국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 대륙은 대중문화의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대륙의 사회주의 정권은 대중문화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중국의 대중문화는 주로 홍콩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요컨대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은 개혁개방 이후이고, 그 이전 한국 사회에 수용된 중국 대중문화는 홍콩과 타이완의 그것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전 홍콩문화(Canto-pop)에 속하는 홍콩영화와 진융의 무협소설은 한국에 중국 문화(C-pop)로 수용되었다.
진융의 작품은 1980년대 중국의 캠퍼스를 점령하고 1990년대부터 중화권에서 교학과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이른바 ‘경전화(經典化)’ 작업이 진행되었고(吳曉黎, 2000) 전문 연구서만 해도 백 권을 넘게 헤아리면서 ‘진쉐(金學)’란 신조어까지 출현했다. 2천 년이 넘는 중국문학사에서 작가 또는 작품에 ‘학’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홍루몽(紅樓夢)』 연구를 ‘홍학(紅學)’으로, 루쉰(魯迅) 연구를 ‘루쉰학’이라 명명한 정도였다. 1994년 베이징대학에서 진융에게 명예교수직을 수여하고 같은 해 ‘싼롄서점(三聯書店)’에서 『진융작품집』36권을 출간한 것은 진융을 『홍루몽』과 루쉰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한 징표라 할 수 있다. 베이징대학과 싼롄서점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의 대학이고 출판사이므로 그 문화적 수준이 증명된 셈이다. 다른 한편, 그 정치적 의미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최고 학부인 베이징대학에서 명예교수직을 수여하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산하의 싼롄서점에서 그의 ‘작품집’을 출판했다는 것은 그 ‘선전’ 가치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화권에서 진융의 작품은 무협소설에서부터 애정소설, 역사소설, 문화적 텍스트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영웅문 현상’은 그 스펙트럼에서 무협적 요소를 가져와 조악하게 재구성된 텍스트에 의존한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한국의 ‘영웅문 현상’은 진융 텍스트의 두터움을 충분히 번역하지 못하고 그 표층인 무협 층위만을 번역했다. 출판사가 주도했을 표층 번역은 당시 독서 시장의 요구에 부응했을지라도, 그로 인해 우리는 진융 소설을 통한 중국문화 심화 학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21세기의 새로운 완역은 독자에게 외면당했다. 대중문화에 각인된 문화를 번역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상업적 번역은 표층에 머물고 심층 번역은 독자 대중에게 외면받기에 십상이다. 그리고 일단 표층 번역된 것은 심화 학습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영웅문 키드’가 완역된 ‘사조삼부곡’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그 증좌다. ‘문화 간 번역’은 심층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중문화 텍스트에 각인된 타국 문화를 자국 문화 맥락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타국 문화를 제대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타국 문화의 맥락에 들어가 그것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텍스트 번역에서 컨텍스트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혐중과 협한의 시대에 한국과 중국의 문화횡단과 소통은 쌍방향의 들고나는 행위가 반복되고 그 반복의 차이가 축적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1990년대 동아시아에서 환영을 받았던 한류가 이제 포스트한류를 고민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동아시아에서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는 문화횡단의 시대에, 진융의 작품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진융 텍스트가 지닌 중국 전통문화의 두터움은 동아시아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자칫 중화주의를 강조하는 ‘내셔널 서사(national narrative)’와 ‘중국 상상’(유경철, 2005) 또는 ‘전통의 부활’(林春城, 2005)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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