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1980∼90년대의 문화지형도: 숨겨진 글쓰기

ycsj 2022. 11. 25. 10:06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운동’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198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은 정치체제 개혁 문제를 제기해 중국공산당 제13차 대회에서 체제개혁의 임무를 제시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민간 사회운동을 진압함으로써 정치체제 개혁을 방치하고 경제체제 개혁에 집중해 반쪽의 성공을 거두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은 “일종의 행정 개혁이었고, 구체적인 공작 제도, 조직 제도, 공작 방법, 공작 작풍에 속하는 개혁”이며, “공산당의 일당전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고, “공산당의 일당전제에 영향을 주거나 이를 약화시키는 어떤 개혁도 덩이 단호하게 거부했다”(전리군, 2012: 313). 첸리췬은 당시 정치 상황이,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강경파, 자오쯔양(趙紫陽)을 대표로 하는 공산당 개혁파, 그리고 사회민주 역량의 세 가지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사회민주 역량과 당내 민주 역량의 결합으로 중국 정치체제 개혁을 추동”해야 했지만, 그 역할을 추동할 수 있었던 자오쯔양이 “원로정치의 간섭과 급진적 지식인과 청년 학생의 불만”(전리군, 318)이라는 양난(兩難)에 처해 정치체제 개혁의 호기를 놓치고 말았음을 아쉬워한다. 첸리췬이 볼 때, ‘1957년의 민주운동’과 ‘1978∼1980년 민주운동’의 연장선에 놓인 ‘1989년 톈안먼 민주운동’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사회민주 역량이 공산당 개혁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또는 공산당이 자신들의 바람을 수용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회민주 역량의 바람은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6·4 톈안먼 민주운동 진압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리하여 “1980년대에 우렁차게 전개된 사상문화 운동 역시 중상을 입었고, 민간 사회 저항운동 역시 십여 년간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다”(전리군, 321).

다이진화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중국 사회 현실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는 비단 다이진화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개혁개방 중국의 운명과 전도에 관심을 두던 많은 지식인은 새로운 듯하면서도 새롭지 않으며 그럴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많은 ‘풍부한’ 현상들에 대하여 사고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이진화는 ‘원화(原畫)의 복원’이라는 비유를 내세운다. 그녀가 보기에 1990년대 중국의 문화 현실은 마치 유화의 물감이 떨어져 나감으로 인해 화가가 사용했던 물감에 가려져 있던 원래 화면이 드러나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가가 부정했던 낡은 그림이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은 그것을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다이진화, 2009: 356). 여기에서 ‘원화’는 사회주의 이전의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1949년 이후 인민공화국이 부정했던 그림이다. 그러나 30년의 사회주의 실천을 경험한 중국은 개혁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중국’이 부정했던 그림을 복원하고 있다.

다이진화는 1980년대 ‘역사문화 성찰 운동’의 연장선에서, 1990년대를 전환기로 설정하고 그에 대한 문화지형도 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이진화가 볼 때 1990년대 중국의 사회 전환은 인문학자에게 다음의 세 가지 도전을 던지고 있다. 연구 및 관심 대상의 전이와 확전, 기존 지식구조 및 담론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 발언자의 현실적 입장 및 이론적 입장에 대한 추궁(戴錦華, 1999: 2)이 그것이다. 그리고 도전과 전환의 근원에는 대중문화의 흥기가 자리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일상생활화한 이데올로기의 건설자이자 주요한 담지자일 뿐만 아니라 점차 분열하고 다원화하는 사회의 주류문화 내부에서 당당하게 지분을 요구하게 되었다. 대중문화의 주요 장르인 TV 드라마만 보더라도 다원적인 문화 지위와 복잡한 사회 기능의 측면에서 오늘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중요하고도 복잡한 역할을 드러내고 있다(戴錦華, 3∼4).

영화연구(film studies)와 젠더연구(gender studies)를 중심으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수행해온 다이진화는 ‘탈주하다 그물에 걸림(逃脫中的落網)’이란 표현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의 문화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 시시포스(Sisyphus)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이 말은 ‘곤경으로부터 탈출했지만 더 큰 그물에 걸린 격’인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비유하고 있다. 1980년대의 ‘큰 그물’이, 문화대혁명으로부터 탈출했지만 그 ‘문화심리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권력이었다면, 1990년대의 ‘큰 그물’은 지구적 자본에 포섭된 시장이다. 한 마디 덧붙이면, 21세기 중국은 ‘중화 네이션의 부흥’이라는 내셔널리즘의 환몽(幻夢)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