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중국중심주의’와 ‘대한족주의’ 비판

ycsj 2023. 1. 6. 10:46

4. 비판적 중국연구의 과제의 2)

 

중국 소수 에스닉의 정체성은 한족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현재 94%에 달하는 한족(漢族, Han ethnic)과 그것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중화 네이션(Chinese nation) 그리고 그 정치 형태인 중국
이라는 국가(China state)는 소수 에스닉을 명명하고 소환해서 구
성하는 대타자인 셈이다. 사실 55개 소수 에스닉은 바로 ‘한족–
중화 네이션–중국’에 의해 역사적으로 ‘식별’되었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 소수 에스닉의 정체성은 한족 정체성과는 대립하
지만 중화 네이션 정체성에는 포함된다. (…) 그러나 중화 네이션
정체성은 한족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중화 네이
션 정체성 내에서 소수 에스닉은 주변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32

 

‘중국’과 ‘중화 네이션’ 층위의 모든 담론과 실천의 기저에는 한족
이 자리한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고, 남성이 여
성의 처지를 인지하기 어렵듯이, 다수자인 한족은 소수 에스닉의 상
황에 무지하다. 비판적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족 지식인 가운
데 소수 에스닉의 입장을 대변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비판적 지식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첸리췬(錢理群)의 ‘민
간 이단 사상’ 연구33는 중국 사회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볼 만한 업
적이지만, 그가 거론한 ‘민간 이단 사상’은 ‘한족’(漢族)의 ‘민간 이단
사상’에 국한되는 한계를 가진다.”34
거의 유일한 비판적 한족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왕리슝(王力雄)이
‘삼위일체 정체성’에 비판적일 수 있는 것은 그의 경력—창춘(長春)
출생, 황하 표류 중 티베트 문명 조우, 주자파 부친, 하방, 티베트 거
주, 부인 체링 외저(Tsering Woeser, 중국명 唯色)와 만남 등—과 밀접
한 관련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대 중국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다. 왕리슝은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를 수용하되 서양 진
영에 편입되지 않고 오히려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강대함을 추구
하면서 국민 통제력을 강화했으며, 중국 민중도 민주세력으로 성장
한 것이 아니라 독재정부를 지지하며 소수 에스닉을 억압하고 민주
사회를 적대시하고 있다면서, 이런 중국이 새로운 파시스트 제국이
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게 될 것을 걱정한다.35 ‘세계 평화를 위협하
는 새로운 파시스트 제국’의 출현에 대한 우려가 시진핑 시기 들어 가
시화되고 있음을 볼 때 신권위주의 정권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대중
의 출현은 중국을 더는 사회주의 국가로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
아가 그는 “중화민족(네이션)의 본질은 한족을 중심으로 한 대일통
(大一統)이며, 다른 민족(에스닉)의 이질성을 부정하는 것”36임을 간
파했고, 당국자들이 경계심을 가지고 다른 에스닉의 자립 가능성을

방해하며 정치적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문화적으로 한족에 동화시켜
소수 에스닉의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관계도 소원해졌다고 인식함으
로써 변질된 종족주의인 대한족주의가 중국 내셔널리즘의 근간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리슝은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중국의 민족주의(내셔널리즘)가 국내에서는 약소민족(에스닉)
을 억압하는 종족주의로, 국제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적 민족주의(내셔널리즘)로 바뀌었을 때, 국제사회는 중국
이 파시스트 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겠죠. 저 역
시 같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37
대한족주의는 중국 내 소수 에스닉 거주지를 내부 식민지로 경
영하는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재현은 ‘중국
특색의’라는 기표와 기의를 문제 삼는다. 모두 알다시피, ‘중국 특색
의 사회주의’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표현이 나온 이래, 중국은 중국만
의 독특한 경로와 방법이 있음을 누누이 강조해왔고 그 강조는 지금
도 ‘중국몽(中國夢)’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의 정책으로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이재현은 ‘중국 특색의’라는 수식어를 중국에 되돌려 준다.
“중국 특색의 국가물신주의 효과”38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에 내재한
소위 대한족주의의 본성” “중국 특색의 구망” “중국 특색의 근현대성
문제” “중국 특색의 내셔널리즘” 등이 그것이고, 이 개념들은 “중국
특색의 허위의식 및 자기기만”39에 기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
특색의’라는 수식어는 ‘한족 중심의’라는 진실을 은폐한다. 사실 내셔
널리즘이 대부분 ‘허위의식 및 자기기만’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재현의 비판에서 의미있게 다가오

는 부분은 ‘중국 특색의’라는 수식어가 ‘한족 중심의’라는 진실을 은
폐한다는 지적에 있다. 그가 주장하는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는 ‘한
족 중심의 식민지 확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이것을 현재 중국 강
역에서는 ‘내부 식민지’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다.
이재현은 스수메이의 ‘사이노폰의 개념’40에서 거론된 사이노폰
공동체를 만들어낸 세 가지 역사적 과정들—(1) 대륙 식민주의, (2)

정착자 식민주의, (3) 이민/이주를,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를 형성하
는 역사적 과정들로서 전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대청 제국의 ‘세계
=제국’적 성격을 부각하면서, 동북 삼성(만주), 내몽골(남몽골), 신장
(동투르키스탄), 시짱(티베트) 등이 “각기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
른 방식과 양상으로 청나라에 의해 병합, 포섭되었고, 그리하여 만주
족이 통치하던 대청(大淸)이라는 다민족·다언어 제국의 최대 판도는
중화민국을 거쳐서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계승되어 오늘날 소위 ‘중
국’의 정치적·군사적 통치 영역”41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추
적했다. 스수메이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청 제국 시기의 ‘대륙형 식
민주의’이고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내부 식민지’이며, 이재현은 이
를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는
그 이면에 ‘대한족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중국 내셔널리즘으로 스스
로를 포장해 서유럽과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에 반대하는 동시에 만
주족, 몽골족, 위구르인, 티베트인과 그들의 거주 지역에 대해 제국주
의적 침탈과 병합을 내내 자행해왔다. 이에 이재현은 “반식민지-‘피
해자’로서의 중국만을, 혹은 ‘상처 입은 자’로서의 중국인만을 내세우
는 것은 명백한 오류”42라고 확신한다.
한편으로는 곳곳에 조차지(租借地)와 할양지(割讓地)가 즐비했

던 차(次)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 중국이 존재했고, 다른 한편으로
는 만주, 몽골, 동투르키스탄, 티베트를 식민 경영하는 제국주의 중국
이 건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중국연구자 대부분은 중화인민공
화국의 교과서를 따라 후자를 인지하지 못한 채 ‘반제반봉건 혁명론’
에 함닉되었다. 우리는 중국의 이중성—대외적으로는 반식민지 사
회였지만 대내적으로는 제국주의 정권을 제대로 인식해, 일면적인
중국연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