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 중국에서 가부장제의 억압 아래 있었던 여성은 사회주의 중국에서 ‘하늘의 절반’이라는 수사와 함께 해방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여성해방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무성화(無性化)’의 방향으로 진행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신중국 건국 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로부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하늘의 절반’으로 격상된 사회주의 사회로 변모했다. 그러나 서유럽 페미니즘 학자들이 참관하러 올 정도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사회주의 중국의 여성해방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성해방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토대가 취약했다. 아울러 기초 간부에는 여성이 많이 배치되어 있지만, 고위 간부, 이를테면 대학의 서기와 총장급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중국공산당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의 명단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이진화는 중국의 여성해방 현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중국 여성은 공산당 정권이 세워진 후에 해방되었기 때문에, 공산당 정권이 대륙에서 합법성을 가지게 된 근거의 하나가 되었다. 나아가 국가는 여성의 노동력을 동원하고 조직하여 전후 재건에 힘썼고 여성들은 전면적인 공업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이바지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계급 담론은, 여성을 효과적으로 지배, 통합하는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해방이라는 전제하에 ‘성별과 에스닉의 의제(agenda)’는 1949년 이후 중국문화 속에서 점차 모습을 감추었고, 계급론의 기초 위에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확립되었다(戴錦華, 2006b: 19~20; 다이진화, 2009b: 25). 이렇게 보면 중국 여성은 봉건 가부장제 및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사이도 없이 다시 계급론으로 무장된 ‘사회주의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게 된 셈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하고 종군한 <화목란(花木蘭)>의 영화화 현상을 검토한 다이진화는 ‘화목란식 상황’을 남성 규범(여성에 대한 남성 규범이 아니라 남성 규범 자체)이 유일한 절대적 규범이 된 상황으로 해석한다. 그 상황은 여성이 사회의 주체적 지위를 얻게 되는 동시에 성별의 주체적 지위를 향유하거나 표현할 전제와 가능성도 상실한 상황이다. “남성의 각도에서 마오쩌둥 시대가 무성화(無性化) 시대였다면, 여성의 각도에서 보면 오히려 남성화 과정”(戴錦華, 78; 다이진화, 87)이라는 표현처럼, 여성은 이제는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상에 부합할 필요가 없었지만 남성과 똑같이 사회 노동에 참여해야 했다. 여성은 계급과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했다. # 이는 마치 ‘군대 가산점 제도’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여성도 군대에 가면 된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신중국 여성이 직면한 ‘화목란식 상황’은 원래 신여성이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숙명이며 해방된 여성이 짊어져야 했던 자유의 족쇄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이런 현실을 만든 국가 행위와 국가 의지를 의심하고 반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여성이 처한 분열된 생존 공간, 역할 규범과 생명 체험이 거의 이름 붙여질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개방을 맞은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마치 ‘원화가 복원’된 것처럼 사회주의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 같았다. “여성으로서 사회 젠더 이론을 가진 비판적 지식인이 1978년 전후로 시작된 ‘현대화로 완곡하게 불렸던’ 과정에서, 남성 권력 질서의 전면적인 재건 및 자본주의 문화 특히 지구적 자본주의화 과정과 초국적 자본 운행 내부의 가부장제 구조와 논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戴錦華, 2006b: 18; 다이진화, 2009b: 23). 요컨대, 가부장제 전통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극복되거나 최소한 완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개혁개방 시기에 지구적 자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면모로 부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이진화는 당다이 중국 여성의 ‘역사적 조우의 역설’을 지적한다. 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여성은 해방됨으로 인해 역사 시야에서 사라졌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제한된 표현 공간을 새롭게 얻은 동시에 역사적 퇴보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戴錦華, 2006a: 111). ‘해방됨으로 인해 사라졌다’라는 지적은 예리하다. 이전의 여성은 노예와 다름없었지만 해방되어 인간다움을 회복했다면 인간다운 여성성이 보장되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여성성은 탈각시키고 인간다움만 남았으며, 그 ‘인간다움’은 ‘남성성’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이진화가 사회주의 30년의 여성해방 과정을 ‘무성화(無性化)’로, 나아가 ‘남성화’로 요약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여성해방은 무의식중에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여성을 남성화하기 마련이다. 이는 마치 노동해방 운동에서 노동자를 자본가로 만드는 것과 같고, 소수 에스닉을 한족으로 바꾸려는 것과 같다. 결국 노동자와 소수 에스닉이 내부 식민지가 되었듯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여성도 내부 식민지가 되었다.
위로부터 주어진 해방에 안주하던 여성은 신시기 상흔문학과 성찰(反思)문학 작품에서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차별받는 약자의 형상으로 출현했다. “마오쩌둥 시대에 혁명/계급해방의 이름으로 여성을 사회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시켰다면, 신시기가 시작되면서 ‘역사’는 다시 한번 인성/해방의 이름으로 여성을 사회역사의 무대 앞/은막의 전경으로부터 후경으로 후퇴시켰다”(戴錦華, 113). 결국 사회주의 30년의 세월을 우회해서 도달한 지점은 역사 무대의 뒤꼍이었다. 이를 잘 구현한 영화가 셰진(謝晉)의 <톈윈산 전기>였다. 영화에 1남 3녀가 출연하는데, 세 여성의 “의미와 가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상대 남성/사회정치적 기능을 참조해 정의되었다”(戴錦華, 114). 바꿔 말해, 조강지처 펑칭란, 옛 약혼녀 쑹웨이, 신세대 여성 저우위전(周瑜貞)은 모두 남주인공 뤄췬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저우위전이 “개성이 선명하고 독립적인 ‘새로운’ 신여성의 색채를 씻어내고 … 순교자가 되어 새로운 무덤에 묻힌 아내의 지위를 대신해 엄연하게 현명하고 사리에 밝은 구식 신부가 되었다”(戴錦華, 114)는 것은 사회주의 30년의 여성해방 운동이 무위로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주의 중국은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여덟 차례의 위기(원톄쥔, 2016)를 넘겼듯이, 그리고 농민공의 희생 위에 포스트사회주의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듯이, 여성의 희생을 대가로 새로운 역사의 진보를 주도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도시의 문제를 농촌으로 전가(轉嫁)했듯이, 중국 사회의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이진화는 1949년 이후 중국 여성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녀들은 해방된 여성으로 역사 과정에 들어간 동시에 성별 집단으로서는 오히려 조용히 역사 시야의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현실적 해방의 도래는 여성이 담론과 역사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다시금 무망(无妄)하게 만들었다”(戴錦華, 80).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이루어진 여성해방은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문화 혁명이 결여됨으로 인해 “중국 여성은 사회 권력과 담론 권력을 나눠 누리도록 허가받은 동시에 자신들의 성별 전체성과 그 담론의 성별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그녀들은 진실로 역사에 참여한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 정체성은 비성별화한(정확히 말해 남성적인) 가면의 배후로 소실되었다”(戴錦華, 88~89). 결국 사회주의 30년 시기에 중국 여성은 주체적 지위를 얻기 위해 ‘여성’을 초월하거나 버려야 했다. 이로 인해 ‘여성’은 ‘텅 빈 기표’가 되어버렸다. 성별 정체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계급 정체성이 차지했다. 공식 담론에서 성별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개인의 욕망과 개인주의가 제거되고 억압되었다는 의미다. 사회주의 30년 동안 부정되었던 개인의 욕망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에 자본의 욕망과 결합해 중국 사회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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