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새로운 인류학과 문화 간 번역

ycsj 2022. 7. 23. 15:50

에스니시티(ethnicity) 문제를 재조정했다(restructure)라는 평가(Jameson, Fredric)를 받는 레이 초우(Chow, Rey. 周蕾)는 그동안 인류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횡행했던 불평등과 불균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로 원시적 열정의 제3부를 시작한다. 그녀는 인류학적 파악 없이는 비서양을 쓰고/생각하고/말할 수 없는 상황(Chakrabarty, Dipesh), 인류학은 모던 서양의 타자의 문화에 대한 독백(McGrans, Bernard), 일방통행하는 민족지(Clifford, James) 등의 비판을 인용한 후, ‘새로운 인류학은 서양의 타자의 눈에 비친, 서양의 타자의 수공품에 반영된 서양 그 자체에 관한 인류학이라는 타우시그(Taussig, Michel)의 말로 자기 생각을 대신 표현한다(Chow, 1995: 175). 초우는 타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현지에 가서 현지인과 라뽀(rapport)를 맺고 최소한 1년 이상 머물며 참여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의 질적 연구 방법을 수행하는, 인문사회과학의 꽃이라 자화자찬한 인류학이 근본적으로 서양 중심이었고, 서양인의 관점에서 현지인을 타자화한 것이었음을 설파하고 있다. 그녀의 대안은 명료하다. 서양이 타자로 설정했던 현지인의 관점에서 서양을 바라보고 현지인 자신의 문화를 바라보는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y)’가 그것이다. 물론 서양 인류학자들이 범했던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와 그에 대한 반발인 토착주의(indigenousism)를 경계하면서 말이다.

초우는 새로운 인류학을 정립하기 전 인류학이 처한 상황을 과거 수 세기에 걸친 서양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생겨난 인류학적 상황의 교착(膠着)”(초우, 2004: 265)이라 명명한다. 제국주의 시기 인류학과 민족지의 방법과 실천은 실제로 식민지배 강화와 타자문화의 조직적 파괴에 봉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작용한 기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라는 이항 대립구조에 내재하는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서양 모델의 특권화와 비서양의 주변화로 표현되었다. 이에 대해 초우는 문화번역 과정의 불균형에 대한 탈랄 아사드(Asad, Talal)의 글을 인용한다.

문화번역의 과정은 불가피하게 권력의 상황전문지식이라는 권력, 국가권력, 국제적인 권력에 휘말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해보아야 할 흥미로운 의문은 담론에 의한 실천 및 비담론적 실천 양자를 상상하는 문화번역의 과정에 권력이 어떻게 파고드는가 하는 것이다.

서양과 제3세계 사이 문화번역 과정의 불균형 원인은 권력 상황이다. 전문지식의 권력, 국가권력, 국제적 권력 등은 민족지학자의 문화번역과정에 끊임없이 개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식의 편성과 분배가 근본적으로 불균형하고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포스트식민주의의 전제이다. 초우는 이 교착상태에 개입하기 위해 문화횡단적(transcultural) 교류라는 문제의식으로 중국영화를 대상으로 민족지이론을 문화번역이론과 연관 짓는. 그녀는 민족지 및 번역이라는 학술용어와 관련된 여러 갈등을 확실히 분절하고 다양한 번역이론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통하여 이른바 기원적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편견과 문화번역에서 그런 편견이 지니는 함의를 조명”(초우, 2004: 11)하고자 한다. 그녀가 보기에 중국영화는 민족지이자 여러 문화 사이의 번역으로 고찰할 수 있는 텍스트다. 이런 진단은 영화는 일종의 포스트모던적인 자기-서술(self-writing) 혹은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y)이면서 또한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의 문화간 번역의 한 형태”(초우, 1112. 강조-원문)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민족지는 불평등한 문화번역이었다. 서유럽 관찰자가 비서유럽 관찰대상을 주관적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보는 것은 권력의 한 형식이며 보여지는 것은 권력 없음의 한 형식이라고 하는”(초우, 32) 그런 시각성(visuality)을 매개로, 그녀가 제기하는 대안은 그동안 보여지는(to-be-looked-at)’ 대상이었던 토착민이 보는 주체로 새로 탄생하는 것이다.

초우의 문화번역(cultural translation)’ 또는 문화 간 번역(translation between cultures)’에 관한 성찰은 우선 메리 루이스 프랫(Pratt, Mary Louise)제국의 시선여행기와 문화횡단에 빚지고 있다. 프랫에 따르면, 문화횡단(transculturation)변경의 종속된 집단이 지배적인 문화나 식민지 본국의 문화에 의해 자신들에게 전해진 것들로부터 무언가를 창안하거나 선택하는 방식”(프랫, 2015: 323)을 가리킨다. 이는 프랫이 쿠바의 사회학자인 페르난도 오르티스(Ortiz, Fernando)가 아프리카계-쿠바인의 문화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면서 1940년대에 만든 표현을 가져와 접촉지대의 문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접촉지대(contact zone)’, “지배와 복종, 식민주의와 노예제도 등과 같이 극도로 비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또는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전 세계를 가로질러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과 같이 극도로 비대칭적인 관계가 초래한 결과 속에서 이종 문화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서로 맞붙어 싸우는 사회적 공간이다”(프랫, 32). 서유럽 제국들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 비서유럽 지역의 거주민들은 서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상상되고(imagined), 발명되고(invented), 구성되고(consisted), 조직되었다(organized). 그러므로 프랫은 식민지 거주민의 입장을 강조하게 된다.

접촉지대는 무게중심과 관점의 기준을 이동시킨다. 접촉지대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사람들이 함께 등장하는 시공간을 생각하게 하고 더불어 그들의 궤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환기시킨다. ‘접촉이라는 표현은 침략자의 시각에서 정복과 지배를 설명하려 할 때 손쉽게 무시되거나 억압되는 상호적이고 즉흥적인 만남의 차원을 특히 강조한다. ‘접촉의 관점은 주체들이 상호적인 관계에 의해서, 그리고 상호적인 관계 안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강조한다. 그것은 식민자와 피식민자, 여행하는 사람과 여행되는 사람(travelees)’ 사이의 관계를 서로 무관하고 분리된 상태로 다루는 대신,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인 권력의 관계 안에서 함께 등장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해(利害)와 행위가 함께 맞물린 상태로 다룬다(프랫, 35).

접촉(contact)’이란 개념은 의도(intention)’와 무관하다. 물론 의도적 접촉도 없지 않지만, ‘접촉은 의도와 무관한 주체들의 상호 관계로 이루어진다. 식민자/여행하는 사람과 피식민자/여행되는 사람은 접촉지대에서 우연히접촉한다. 접촉지대에서는 접촉언어(contact language)가 필요하다. 여행하는 사람이 여행지의 언어를 학습하든, 여행되는 사람이 여행자의 언어를 학습하든, 그것은 장기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고, 당장 소통을 위해서는 접촉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므로 피진, 크레올 등의 이중언어 또는 중간언어가 탄생하게 된다. 접촉언어는 제3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접촉지대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접촉문화(contact culture)’라 할 수 있다. ‘접촉문화는 접촉지대에서 식민자/여행하는 사람의 문화와 피식민자/여행되는 사람의 문화가 접촉해 문화적으로 번역된 3의 문화라 할 수 있다. 프랫은 접촉지대에서 식민화된 주체가 식민자의 표현과 맞물린 방식으로 스스로를 재현하는 것을 자가 기술 민족지(autoethnography)’ 또는 자가 기술 민족지적인 표현(autoethnographic expression)’이라고 명명했다. ‘자가 기술 민족지자기 민족지라고도 한다. “자가 기술 민족지는 대화체와 이중언어를 빈번히 활용한다. 그래서 수용자들에게도 자가 기술 민족지 텍스트들은 혼종적으로 보이게 된다”(프랫, 37).

프랫의 주된 문제의식은 어떻게 비유럽 지역을 여행한 유럽인들이 남긴 여행 책자들이 본국의(at home)’ 유럽인들을 위한 제국의 질서를 만들었고, 또 제국의 질서 속에 본국의 유럽인들을 위한 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프랫, 23)이었다. 그러나 프랫은 제국의 시선여행기와 문화횡단에서 피식민자의 자기 민족지보다 식민자의 여행기를 주요 텍스트로 설정함으로써, 식민자의 접촉 의도를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프랫이 강조하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관계이종 문화들이 만나는 사회적 공간은 훨씬 광범위할 수 있다. 특히 접촉지대의 언어들’, 예를 들어 접촉언어인 피진, 크레올 등의 이중언어들은 문화번역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13장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중 간 문화번역, ‘극도로 비대칭적인 관계라는 부분을 잠시 괄호 치면, ‘이종 문화들이 만나는 사회적 공간의 문화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최근 번역연구 분야에서는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 번역과 달리 번역의 문화적 맥락에 주목하는 문화번역이 주목을 받고 있다. ‘포스트식민 번역연구의 가장 중요한 항목인 문화번역(cultural translation)’ 또는 문화 간 번역(translation between cultures)’문화연구’, 인류학/민족지학, ‘포스트식민연구’, ‘번역연구를 매개하는 접촉지대(contact zone)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