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민초'와 '요원의 불' 그리고 '물에 빠진 개'

ycsj 2022. 7. 12. 10:09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적폐를 옹호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 우리는 한 가지 편견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흔히 민중의 끈질긴 혁명적 정서를 풀과 불에 비유하지만, 지배계급의 생명력은 민중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점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표현으로 민초(民草)’요원의 불(爎原之火)’이 있다. 논어』 「안연(顏淵)편에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라는 대구가 있다. “바람 속에서도 풀이 다시 일어서는 걸 누가 알리요?” 신영복은 김수영이 위의 대구에 착상해 에서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노래했다(신영복, 2015: 33)고 해설했다. 여기에서 바람은 지배계급이고 풀은 백성이다. 지배계급의 억압이 강력하더라도 민중은 그에 굴하지 않고 장기지속적으로 그에 저항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지속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혁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때 적폐 세력도 백성의 지혜를 배워 고개를 수그리지만, 그 바람이 잠잠해지면 다시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은 한점의 불꽃이 들판을 태울 수 있다(1930.1.5)에서 현재 혁명 세력에게 미미한 역량밖에 없을지라도 급속하게 발전할 것(毛澤東, 1971: 96)이라는 낙관적 의미로 요원의 불을 사용했다. 마오쩌둥의 표제는 상서(尙書)』 「반경(盤庚)약화지요어원, 불가향일, 기유가복멸(若火之燎于原, 不可向迩, 其犹可扑灭)”(屈萬里, 1980: 74)이라는 문구의 의미를 전복한 것이다. 반경은 상()나라 왕 반경이 엄(, 훗날 )에서 은(, 지금 河南 安陽殷墟)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훗날 기록한 글이다(屈萬里, 1980: 70). “요원의 불길은 접근할 수 없지만 그래도 끌 수 있다라는 의미는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맥락이다. 마오쩌둥은 이 의미를 전복해 미미한 역량의 혁명 세력이 발전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많은 적폐 세력은 요원의 불길을 당장 해결할 수는 없지만 결국 박멸(撲滅)할 수 있을 거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버텨내어 역사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 백성처럼 경거망동하지 않고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린다. 역사는 백성의 기다림보다 이들의 기다림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중국의 3천 년 역사에서 민초요원의 불은 왕조를 타도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민초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 대부분 전 왕조 지배계급의 비주류에 속하는 집단이 새로운 왕조 건립의 주축이 되곤 했다. 한국의 경우 그들은 중국에, 일본에 그리고 미국에 기대어 자신의 기득권을 효율적으로 수호하고 확대해왔음을 지난 역사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루쉰은 신해혁명 이후 개혁 세력에게 용서를 받은 적폐 세력의 속성을 물에 빠진 개(落水狗)’로 비유했다. “중국에서 가장 흔한 것은 오히려 왕도枉道[왜곡하는 도]여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아 도리어 개에게 물리고 만다.”(루쉰, 398). 그는 「『무덤뒤에 쓰다에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비록 내 피로써 쓴 것은 아니지만 내 동년배와 나보다 나이 어린 청년들의 피를 보고 쓴 것”(루쉰, 2010a: 412)이라 하여 이 글이 신해혁명 이후 개혁 세력이 적폐 세력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도하고 쓴, “여러 가지 고통과 바꾼 참말”(루쉰, 417)임을 고백했다. “우리는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 그놈들이 자유롭게 기어 올라오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놈들은 기어 올라왔고, 민국 2년 하반기까지 엎드려 있다가 2차혁명이 일어났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위안스카이를 돕고 수많은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루쉰, 397). 이는 개혁 세력이 개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일단 루쉰은 개가 도의(道義)’ 같은 것을 전혀 모르고 그런 성격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무는 개라면” “다 때릴 수 있는 예에 속한다”(루쉰, 395)라고 했다. 루쉰의 결론은 이러하다. “개혁자에 대한 반개혁자의 해독害毒은 지금까지 결코 느슨해진 적이 없었으며, 수단의 지독함도 이미 더 보탤 것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다만 개혁자만이 여전히 꿈속에 있으면서 늘 손해를 보고 있으며, 그리하여 중국에는 도무지 개혁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앞으로는 반드시 태도와 방법을 고쳐야 한다.”(루쉰, 404) 충서(忠恕)의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인간의 탈을 쓴 물에 빠진 개를 보면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발휘하여 너그럽게 용서하곤 한다. 대중이 애호하는 무협소설에서도 주인공은 대개 협의지사(俠義之士)로 출현해 상대방의 비열한 행위를 끝없이 용서한다. 다행히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대단원을 장식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손해를 본다. 그리고 그 손해는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른다. 루쉰은 바로 그런 해독(害毒)을 방지하기 위해 물에 빠진 개인 적폐 세력을 두들겨 패야 한다고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