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이하 드라마) 연구는 상하이대학 ‘센터’의 1단계 연구과제의 주요 항목 가운데 하나였다. 구성원 각자가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상호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2012년 7월 ‘드라마와 당대 문화’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술대회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당대 사회의 큰 특징은 ‘통속’과 ‘오락화’의 문화형식이 나날이 ‘우아’하고 ‘경전적’인 문화형식을 대체해 지배적 문화 또는 총체적 사회구조 재생산의 결정적인 고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드라마는 이미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문예 형식이 되었다. 그 제작과 시청, 평론 및 각종 후속 반응(각종 파생 산물의 제작과 판매)은 사회와 인심을 표상하고 문화지향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드라마는 문화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경제 활동이자 정치 활동이 되었다.
이들은 이런 취지 아래 드라마 제작자와 작가, 드라마 평론가와 연구자, 문화연구 및 문학 전공자 등을 초청해 가능한 여러 방면에서 심층적으로 오늘날 ‘드라마 붐’의 전후 맥락과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자 했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고찰해보자.
상하이 문화연구의 핵심 구성원들은 ‘중국 TV 드라마의 중국적 숨결’과 ‘중국 TV 드라마의 시대 아픔’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의 좌담회를 진행했다. 첫 번째 좌담회에서는 21세기 초 ‘사회적 효과와 경제적 이익이라는 이중의 수확’을 이루어내는 중국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중국적 풍경에 대해 토론한다. <양검(亮剑)>, <암산>(暗算), <사병돌격(士兵突擊)>, <우리 부대장, 우리 부대(我的團長我的團)>, <잠복>(潛伏), <관둥에 뛰어들다(闖關東)>, <세상 바른길은 굴곡이 많다(人間正道是滄桑)>, <달팽이 집(蝸居)>, <생사선(生死綫)>, <이멍(沂蒙)> 등의 드라마들은 당대 중국의 기본 문제를 다루고 있거나 시청자들의 민감한 신경을 건드렸고 보편적인 역사 기억을 일깨웠다. 그것들은 또한 적지 않은 집단 무의식을 형상화했고, 그것들이 제작하고 생산한 것들은 이미 유행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심미 심리와 문화적 공감각, 사회적 공감대 나아가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서양 드라마의 욕망 논리로 중국의 역사와 혁명 제재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중국적인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초의 중국 드라마들은 중국의 숨결, 중국의 생활, 중국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이는 현실이든 역사든 모두 중국인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이런 시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레이 초우가 말하는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y)’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내셔널리즘 또는 국가주의에 포섭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두 번째 좌담회는 중국 드라마에 담겨 있는 사회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드라마들이 과거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억압되고 부정된 에너지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역사 제재 드라마가 환영을 받는 이유는 생활에서 보기 힘든 생활 태도와 인격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상하이 문화연구 학자들은 21세기 중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을 고찰할 수 있는 장르로 혁명 제재 드라마와 첩보 드라마에 주목했다. 마오젠(毛尖)은 「혁명역사 정극(正劇)의 재건: ‘총알받이(炮灰)’를 화두로 삼아」(2014)에서 최근 몇 년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혁명을 주제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공통된 제재인 ‘총알받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21세기 이후 제작된 주선율 드라마를 통해 그간 관방(官方)에 의해 조명받지 못했던 ‘민간’, 영웅에 묻혀 스러져갔던 수많은 ‘개인들’의 이야기가 중국인다움과 혁명의 기본 바탕을 구성함으로써 영상 기억과 ‘혁명역사 정극’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21세기 이후 중국의 주선율 드라마의 ‘세속화’는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정책들과 함께 맞물려 있으며, 새로운 소비 세대의 등장과 첨예한 현실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드라마의 영상적 표현들 가운데 드러나는 ‘중국성’은 마오젠이 말한 ‘중국의 육신(肉身)’이며, 혁명의 기저에 깔린 인민들의 풀뿌리성 그 자체이다. 마오젠은 이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의 틀을 뛰어넘어 중국인과 중국 전통 그리고 중국 혁명을 다시 집결시킬 가능성을 만들어내며 진정한 ‘혁명역사 정극’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물론 중국인다움의 강조는 내셔널리즘 또는 국가주의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니웨이(倪偉)는 「당대 첩보 드라마에 드러난 신앙과 문화적 징후」(2014)에서 2009년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끈 첩보 드라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전파(永不消失的電波)>, <암산>, <잠복>, <낭떠러지(懸崖)> 등을 통해 드라마에서 운위되고 있는 신앙의 문제와 그 심층에 놓인 문화적 징후들을 짚어냈다. 중국에서 첩보 드라마는 수사드라마와 홍색(紅色) 제재의 역사드라마가 접목해 탄생한 것인데, 첩보 드라마가 종종 신앙을 그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홍색 경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니웨이는 ‘신앙’이라는 주제어를 통해 홍색 경전에서 당대 첩보 드라마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맥락을 짚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동체 본위에서 개인 본위로 편중되는 사회적 변화, 가치의 상대화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첩보 드라마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고찰했다. 이를 통해 첩보 드라마에 내재한 위험성과 함께 그것이 당대 중국인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의의도 짚었다.
이상으로 상하이 문화연구 학자들의 드라마 연구를 통해 21세기 초 10년 동안의 중국 드라마 연구 현황의 윤곽을 살펴보았다. 왕샤오밍은 중국 드라마 연구를 통해 드라마의 각도에서 사회를 이해하고, 양성(良性)문화의 생기를 탐구하려는 목적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오늘날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와 이들 구조의 재생산 과정은 모두 1990년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문화 각도에서 보면 오늘 중국의 지배적 문화와 그 생산 기제, 그것과 사회적으로 배합되지 않고 그것에 복종하지 않는 문화 역량의 충돌 방식 또한 20~3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엉망인 것은 우리가 매일 이 거대하고 대개는 격렬한 변화에 말려 들어가 점점 심각하게 그것들에 의해 개조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변화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들의 성인이 어떠한지, 그것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엉망을 의식해 초조함이 날로 심해지는 때 국산 드라마가 크게 유행해 자본 동향과 시장 규모, 정부의 대응, 사회심리, 업계 체제, 매체의 작동 등 각 방면의 신속한 변동을 유발해 거대한 덩어리의 스크린을 합성해 오늘 중국의 지배적 문화 및 그 생산 기제의 복잡한 작동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나는 당연히 목을 빼고 뚫어지게 볼 것이다(王曉明, 2013: 395~396).
드라마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그 가운데에서 양성문화의 생기를 찾아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는 왕샤오밍의 목적에 잘 들어맞는 연구대상인 셈이다. 그 속에는 위의 인용문에서 이미 지적했듯 자본의 동향, 시장의 규모, 정부의 대응, 사회심리, 업계 체제, 매체의 작동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므로 지배문화와 그 생산 기제를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왕샤오밍은 1989년의 톈안먼 학생운동과 2008년의 대지진 자원봉사활동처럼, 잠류하던 ‘땅속의 불’이 적당한 조건에서 폭발할 것으로 기대한다. 왕샤오밍이 보기에 <달팽이 집>, <잠복>, <우리 부대장, 우리 부대>의 높은 시청률은 그런 표현의 하나다. <격정 불타는 세월> 등에 출현한 혁명군과 굳센 노동자들이 매일 저녁 많은 시청자의 주목 대상이 되고, <우리 부대장, 우리 부대>에 등장하는 남루한 차림의 쓰촨(四川) ‘총알받이’들이 지속해서 수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현상은 왕샤오밍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상하이 문화연구 학자들의 드라마 연구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내셔널리즘 또는 국가주의에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왕샤오밍의 ‘중토성’은 ‘중국의 진보적 혁명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한편 외래의 문화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양자를 접합시키려는 기획’이지만, 중국 혁명 전통의 계승은 내셔널리즘 또는 국가주의의 선전선동과 중첩되어 있다. 주선율 드라마에서 작은 인물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마오젠의 ‘중국인다움’ 또한 중국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음식 등을 언급함으로써 중국중심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니웨이의 ‘신앙’도 구체적인 내용은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신앙이다.
이들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연구대상이 협소하다는 점이다. 상하이 문화연구 학자들의 드라마 연구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문화를 촉진하려는 그들의 목표에 제한받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혁명역사 드라마와 첩보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그들의 드라마 연구는 이데올로기 지형의 표층이나 중층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중국 인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중국 인민의 심층 이데올로기 형성에 영향이 큰 장르는 역사(제재)드라마다. 특히 <한무대제>, <삼국>, <미월전>, <견환전>, <랑야방>, <대군사 사마의>, <대진제국의 굴기>(1~4부) 등은 수천을 헤아리는 중국 TV 채널뿐만 아니라 한국 케이블TV에서도 끊임없이 재방영되는 단골 메뉴로 꼽히고 있다. 대중문화를 “피지배계층의 저항력과 지배계층의 통합력 사이의 투쟁의 장”으로 보는 그람시의 견해에 동의한다면, 대중문화 연구의 지향점은 피지배계층의 저항력을 강화하고 지배계층의 통합력을 비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상하이 문화연구 학자들의 드라마 연구는 전자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역대 지배계층의 지도력을 합리화하는 역사드라마를 전복적으로 독해함으로써 지배계층의 통합력의 약점을 파헤치고 그것에 개입하는 전술의 창안 또한 문화연구의 진정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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