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이주와 디아스포라

ycsj 2022. 5. 31. 11:15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역사가 노마드적인 것이 되기 훨씬 전에, 아메바에서 꽃으로, 생선에서 새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한 역사 자체가 이미 노마드적이었다.(아탈리, 2007: 19.)

 

이렇게 시작하는 아탈리(Jacques Attali)?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은 아메바에서부터 원숭이까지의 생물 진화과정,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서 동남아프리카의 풍경들을 유심히 바라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최초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의 인류 진화과정, 그리고 이후의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진행과정의 원동력을 노마드로 꼽고 있다. 그에 따르면 수렵과 채취의 시대를 거쳐 농경시대로 접어들어 정주(定住)했다는 견해는 정착민들의 주요한 발명품인 국민국가를 합리화시키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정주성은 아주 잠깐 인류 역사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인간은 중대한 모험들 속에서 노마디즘으로 역사를 이루어왔고, 다시 여행자로 되돌아가고 있다.”(아탈리, 2007: 18) 여기서 아주 잠깐6백만 년 인류사에서 0.1퍼센트에 해당하는데, 아주 잠깐의 시기에도 몽골 노마드, 인도유럽 노마드, 투르크 노마드가 존재해 세계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헬드(David Held) 등은 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s)’을 다루는 동명의 대작(헬드 외, 2003)에서 정치적 지구화’, ‘군사적 지구화’, ‘무역 지구화’, ‘금융 지구화’, ‘기업 활동 지구화’, ‘문화적 지구화’, ‘환경 지구화등과 함께 이주의 지구화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이동과 한시적영구적인 지리적 재배치를 뜻하는 이주를 두드러져 보이는 지구화의 형태(헬드 외: 445)로 파악한다. 윌리엄 맥닐(William McNell)은 지리적사회적 특징에 따라 중심부 이주와 주변부 이주, 엘리뜨 이주와 대중적 이주로 구분했다. 헬드 등은 맥닐의 분류를 수용하면서 이주의 동기와 범위, 강도와 속도 그리고 영향력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의 강점은 인간의 이동에는 새로운 사상새로운 종교새로운 신앙 등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착 후 성립되는 이주공동체는 송출공동체와 유입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주공동체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토착문화와의 비교점과 대조점을 발생시킨다.(448) 이주공동체 사이의 관계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와 연관해서 지역적 이주와 지구적 이주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적 이주지역과 대륙 간의 인간의 이동’, ‘초대양적초대륙적 이동’(446)을 의미하고, ‘지역적 이주는 지역 내 대륙 내 이동을 의미한다. 사실 지역(region)은 국가보다 넓은 개념이지만 중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중국 국내 이주를 지역적 이주로 간주하고 동남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의 해외 이주를 지구적 이주로 본다.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최근글로벌 세계의 주요한 특징을 과거와의 전면적인 단절로 파악하면서 매체(media)와 이주(migration)를 두 가지 중요한 분석 개념으로 삼아 이 양자의 결합이 현대적 주체성을 구성하는 자질의 하나인 상상력의 작업(work of the imagination)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탐구하고 있다.(아파두라이, 2004: 10-강조는 원문) 두 개념 가운데 전자매체는 기존의 대중매체 전반은 물론 여타의 전통적인 매체의 영역을 변화시켰고 상상된 자아와 세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자원들과 원칙들을 제공함으로써 대중매체의 장을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일차적이다. 근현대의 대량 이주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이미지와 가상적인 대본들 혹은 대중적 감각 등의 급속한 흐름과 연합될 때, 세계는 현대적 주체성의 생산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불안정을 갖게 된다.” “우리는 재빨리 옮겨 다니는 이미지들과 탈영토화된 관객들이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파두라이는 이런 상황이 이산된 공공 영역들(diasporic public spheres)’ (아파두라이: 12)을 창출한다고 한다. 아파두라이는 전 지구적 문화 흐름의 다섯 가지 차원들 가운데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변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뜻하는 에스노스케이프가 안정성이라는 날줄들이 어디에서나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씨줄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준다. 여행자와 이주민, 피난민, 탈출자, 임시 노동자, 그리고 여타의 이동 중인 집단들과 개인들은 세계의 본질적인 모습을 구성하며, 국가 정치(혹은 국가 간 정치)에 유례없던 영향을 미치고 있다.(62)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주와 쌍개념이라 할 수 있다.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이주가 송출지를 떠나 유입지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라면, 디아스포라는 이주민의 이주, 차별, 적응, 문화변용, 동화, 공동체, 민족문화와 민족정체성 등의 다양한 경험들을 포괄하면서 그들간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윤인진, 2003: 102)이라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 동사 ‘speiro’(to sow: [씨를] 뿌리다)와 전치사 ‘dia’(over: 를 넘어서)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유태인, 아프리카인,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인들에게 그것은 집합적 상흔을 지닌 불행하고 잔인한 의미를 뜻한다. 디아스포라는 민족분산(民族分散) 또는 민족이산(民族離散)으로 번역되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유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102)

사프란(Safran, 1991)은 디아스포라를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 공동체(expatriate minority communities)”라고 정의했고, 퇴뢰리안(Tölölyan, 1991: 3) 한때 유대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의 분산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이주민, 국외로 추방된 난민, 초빙 노동자, 망명자 공동체, 소수민족 공동체와 같은 용어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어원을 가진 의미라고 확대 해석했다. 특히 사프란은 디아스포라의 특성으로 (1) 특정한 기원지로부터 외국의 주변적인 장소로의 이동, (2) 모국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 (3) 거주국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다는 희망의 포기와 그로 인한 거주국 사회에서의 소외와 격리, (4) 조상의 모국을 후손들이 결국 회귀할 진정하고 이상적인 땅으로 보는 견해, (5) 모국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헌신, (6) 모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의 여섯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는 협의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모국으로 귀환하려는 희망을 포기했거나 또는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은 이주민 집단도 디아스포라로 간주하고 있다.(Clifford, 1994) 무딤베와 엥글(Mudimbe & Engle, 1996: 6)의 표현에 따르면 디아스포라는 정치적 이유로 거주국 사회에 동화될 수도 없고 동화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들 자신이 고안해낸 이상화된 기원지로 귀환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디아스포라는 동화할 수도 없고 동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망명 상황과 같다. 또한 그레월(Grewal, 1995)과 량(Ryang, 2002)은 디아스포라가 이동성보다는 부동성의 측면을 갖는다고 본다. 즉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또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해서 갇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최인범(Choi, 2003: 11)은 기존의 디아스포라 개념의 공통적인 속성을 1) 한 기원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두 개 이상의 외국으로 분산한 것, 2) 정치적, 경제적, 기타 압박 요인에 의하여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으로 모국을 떠난 것, 3) 고유한 민족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것, 4)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족에 대해 애착과 연대감을 갖고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기 위한 초국적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5) 모국과의 유대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 쉽지 않은 내포를 가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국내에서도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는데 대략 문학 분야와 비문학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사회학 분야에서 재외한인의 디아스포라에 관한 무게 있는 연구로 윤인진(2003; 2005)을 들 수 있고, 이주여성의 디아스포라를 분석한 이수자(2004)가 있다. 한국문학 분야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과 연계시킨 연구들(변화영, 2006; 오윤호, 2007; 공종구, 2006; 박수연, 2007 )이 다수 있고, 해외 동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최원식, 2003; 정은경, 2006 )도 눈에 띈다. 일문학 쪽에서도 해외이주 일본인들이 발행한 일본어 신문에 대한 연구(허석, 2006)가 있다. 중문학계에서도 가오싱젠(高行健)의 소설을 통해 디아스포라 정체성(diasporic identity)’을 규명하기도 하고(이욱연, 2003; 李旭淵, 2007), 그의 망명 이후의 희곡 작품에 초점(이정인, 2007)을 맞추기도 했다. 바이셴융(白先勇)?타이베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타이베이 상하이인의 디아스포라를 분석(이보경, 2007)하기도 했으며, 홍콩에서 활동하는 둥차오(董橋)의 산문을 통해 디아스포라 홍콩인의 정체성을 고찰(유영하, 2008)하기도 했고 영화 텍스트를 통해 재미 화교의 디아스포라를 점검(김영미, 2006)하기도 했다.

중국인의 지구적 이주는 주로 동남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 진행되었는데, 전자는 근현대 이전 시기에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근현대 들어서 활발하다. 동남아시아 이주는 거주지에서 직접 이동한 반면 북아메리카와 유럽은 지역적 이주의 도시인 상하이와 홍콩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뉴욕으로 갔다. 때로 타이베이를 경유하기도 했다. 즉 근현대 중국인의 지구적 이주의 경로로 원적지-상하이-홍콩-타이베이-샌프란시스코-뉴욕의 동선을 그릴 수 있다. 이 동선에서 원적지부터 타이베이까지는 지역적 이주에 속하고 중국에서 아메리카는 지구적 이주에 속한다. 그리고 뉴욕의 중국인들이 대부분 상하이와 홍콩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하이와 홍콩도 중국 내에서는 이민도시였는데, 국제적으로는 이민을 송출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뉴욕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국내 기타 지역에서 상하이 또는 홍콩으로,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의 두 차례 정도의 이주경험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