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왕안이의 푸핑 (2) (3)

ycsj 2015. 3. 27. 09:33

 

왕안이의 <푸핑> (2): 푸핑의 결혼 원정기

 

 

상하이대학 문화연구학과 왕샤오밍 교수는 화이하이루에서 메이자차오까지왕안이 소설 창작의 전변에서, 왕안이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1990년대 상하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푸핑에서 메이자차오 빈민굴에게 주역을 맡긴 것은 바로 1990년대 유행했던 상하이 노스탤지어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왕안이는 노스탤지어에 가려진 상하이의 진면목을 이야기하기 위해 1960년대 상하이로 갔다. 그리고 양저우 아가씨의 상하이 진입을 통해 상하이 노스탤지어 이야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왕샤오밍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즉 신자유주의가 권장하고 있는 올드 상하이 노스탤지어 풍조와 거리를 두고 있는 왕안이의 글쓰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 차이점을 열거하고 있다. 왕안이는 양저우 출신의 푸핑을 사회주의 신중국의 1960년대 상하이로 진입시키는데, 그녀는 화이하이루의 문간방에 거주하다가 수상노동자의 거주구역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메이자차오의 빈민굴로 가 보금자리를 튼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왕샤오밍의 푸핑해석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고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 모자(母子)의 메이자차오가 주역이라는 점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푸핑을 푸핑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푸핑의 동선(動線)을 따라 1960년대 상하이의 공간과 거주민에 대한 민족지 답사를 시작해보자. 이 글에서는 푸핑의 동선을 가족 찾기 여정, 바꿔 말하면 결혼 원정기로 설정해보려 한다.

푸핑은 무척 독특한 캐릭터다. 그녀는 텍스트 내에서 거의 말이 없고 대부분 타인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그녀는 겉으로는 어눌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총명하고, 유순해 보이지만 매우 굳세어서, 매사 모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다. 푸핑이 상하이로 들어와 이동한 주거공간은 왕샤오밍의 관찰처럼 화이하이루에서 쑤저우허 그리고 메이자차오로 귀결되지만, 그녀의 공간 이동을 꼼꼼하게 관찰해보면 그녀 나름의 의식적/무의식적 목표가 있었다. 앞당겨 말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 찾기다. 그녀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 맡겨졌기에 가족애에 목말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이기에 예비 신랑의 수양할머니에게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외숙 가족에게서 희망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우연히 만난 모자에게서 자신이 찾던 가족의 분위기를 찾아내고 거기에 안착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푸핑은 바로 주인공 푸핑이 상하이에 와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족을 찾는 여정을 그린 텍스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푸핑은 자신의 주거공간과 가족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 왕샤오밍의 푸핑론이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주거공간을 고찰한 것이라면, 이 글에서는 결혼 원정기로 보고자 한다. 푸핑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혼을 하고 약혼자의 수양 할머니가 일하고 있는 상하이 화이하이루 룽탕(弄堂)의 문간방으로 이주하면서 상하이 생활을 시작한다. 명목은 약혼자 리톈화의 수양할머니 거처에 머물면서 대처 구경도 하고 결혼 준비도 하는 것이었지만, 푸핑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속한 공간과 환경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게 상하이행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그녀는 조실부모하고 작은아버지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어봤기에 자신만의 가정을 꿈꾸고 있었고 그녀의 상하이행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가정 찾기 여정, 바꿔 말하면 결혼 프로젝트가 되었던 것이다.

앞당겨 말하면, 푸핑은 애초부터 리톈화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푸핑에게 남자를 고르는 기준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리톈화의 조건은 그동안 자신이 겪어왔던 환경보다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조그만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조건이었다. 푸핑은 그걸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하이행을 결행한 것이었다. 푸핑은 설 이후 상하이에 온 리톈화에게 요구한다. “우리 분가해서 살아요.” 그러나 그에게 분가란 불가능하다. 그는 평생 업보처럼 가족과 친척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젊은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순종적이었다.” “일종의 책임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그것은 때로 상당히 강인하고 심지어는 반항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결국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외숙을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외숙 부부에 대해 푸핑은 서운함이 있다. 고아가 되었을 때 외숙이 자신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상하이에 거처가 없어 찾아가긴 했지만 어렸을 때의 서운함은 몸에 새겨져 있었고, 더구나 외숙모가 자신의 조카 광밍의 짝으로 맺어주기 위해 자신을 받아들였음을 인지하고는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모자와 가까워진다.

사실 푸핑의 상하이행은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삶과 가정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리톈화와 정혼했을 때부터 그녀는 리톈화 본인보다 그가 떠안고 가야 할 환경에 넌더리를 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아버지 댁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삶과 가정을 가지고 싶었던 것인데, 리톈화와 결혼해서는 자신의 바람이 무망함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셈이다. 여하튼 리톈화를 통해 상하이로 오게 된 푸핑은 화이하이루, 쑤저우허를 거쳐 메이자차오에 정착하게 된다. 푸핑은 결코 민족지학자에 걸맞은 인물은 아니다. 고집이 센 만큼 주관이 강하기에 관찰에 능한 편이 아니다. 다행히 작가는 푸핑에 의존한 일인칭시점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세부묘사에 능하면서도 대국적인 안목을 가진, 장한가의 화자와 비슷한 그런 성찰적인 화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럼 푸핑의 동선을 따라 1963년과 1964년의 상하이의 대표적인 세 공간과 그 공간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고찰해보자.

푸핑은 서두에서 양저우 농촌에서 상하이로 진입한 후 지속적으로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곳은 화이하이루 룽탕의 스쿠먼(石庫門) 주택이었지만 뒤이어 쑤저우허 판자촌으로 이동한 후 두 곳을 넘나든다. 하지만 스쿠먼도 판자촌도 그녀의 안식처는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정착한 곳은 메이자차오의 빈민굴이었다. 이제부터 그 과정을 따라가 보자.

 

 

왕안이의 <푸핑> (3): 할머니와 화이하이루

 

푸핑첫 장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스스로 상하이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화이하이루(淮海路)로 대표되는 상하이 중심에 정체성(identity, 認同)을 두고 있다. 그녀는 열여섯 살 때부터 상하이로 와서 남의 더부살이를 한 지 30년이나 되었으니, 상하이 토박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성찰적 화자가 보기에 그녀는 도시 여자도 시골아낙도 아닌, 양자가 반반씩 섞인 혼종적(hybrid)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할머니는 상하이에서 30년을 살아왔지만, 결코 도시 여자가 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더 이상 시골아낙 같지도 않았다. 결국 반반씩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반반씩의 아낙이 합쳐져 하나의 별난 사람이 된 셈이다. 한길을 걸어가는 그녀들을 바라보면 한눈에도 가정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피부와 말투가 섞인 그런 혼종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이것이 바로 상하이인의 정체성이다. 상하이인의 정체성은 라오()상하이인()상하이인이라는 역사적 개념을 전제하되, 양자를 불변하는 고정된 개념으로 설정하지 않고, 양자가 끊임없이 섞이고 호동(互動)함으로써 상하이인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생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할머니는 상하이에서 거주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외지에서 상하이로 이주한 주인집들을 지도하여 상하이인으로 교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의 지도를 통해 거친 산둥(山東) 군인들도 약간 점잖은 저장(浙江)인들도 세련된 상하이인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화자는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들의 고향인 시골 양저우(揚州)에는 여자들이 예로부터 밖에 나가 가정부가 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상하이 중심에 산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 역시 도시 한복판의 주민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화이하이루만이 상하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자베이(閘北)나 푸퉈(普陀) 지역을 황량한 시골로 간주하고 쑤저우허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왕래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생활하였으며, 가정부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일할 집은 그녀가 선택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를 선택해서는 안 되었다. 또한 그녀는 서쪽 지구의 화이하이루에서만 일하기로, 그리고 상하이 사람의 집에서만 일하기로 정했다.” “그녀는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이 도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기이한 소문이나 해괴한 이야기부터 유괴범 이야기, 귀신 이야기, 연극 이야기, 헐리웃 영화, 자기 고향 이야기 등등. 그러나 그녀는 은행과 같은 서양 제도에 대해서는 익숙해지려 하지 않고 믿음직한 돈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영화와 같은 새로운 문화는 쉽게 받아들였지만 제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큰아버지의 손자인 리톈화(李天華)를 양자로 들이는 것이었다.

화이하이루는 할머니의 판단대로 상하이의 중심이었다. 우선 신식 문물의 상징인 영화관과 병원 그리고 신식 학교가 가까웠다. 그러면 상하이에 갓 진입한 푸핑의 눈을 통해 화이하이루 룽탕을 관찰해보자.

할머니가 거처하는 화이하이루 룽탕(弄堂)에 대해 푸핑은 처음에는 전설 속의 수정궁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정궁은 푸핑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수정궁 같은 룽탕에 대해 서먹서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푸핑은 영화보다 이 거리의 삶에 훨씬 흥미가 있었다.” 영화보다 실재 삶에 훨씬 흥미를 느끼는 시골 처녀 푸핑은 작가의 또 다른 주인공인 왕치야오의 영화적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화의 도시 상하이에서 푸핑은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영화가 아닌 생활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가 정말로 흥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 다른 것, 이를테면 문 두 짝 크기의 포목점이고 조그마한 잡화점이고 재봉 가게였다. 이 가게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푸핑은 수정궁처럼 화려한 거리의 이면에 노동과 밥벌이를 위한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것이 그녀에게 이토록 번화한 거리에 다가서도록 해주었으며, 서먹서먹한 거리감도 말끔히 씻어주었다.” 이처럼 상하이 노스탤지어에서 서사하는 화려함 이면에 자신의 노동력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푸핑도 그들로 인해 상하이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을 통해 푸핑의 시야는 넓어져 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모두들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집집마다 두터운 장부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치 영화나 연극 속에서 연기하는 배우 같았다.” 그래서 푸핑은 깨달음을 얻는다. “푸핑은 처음에 상하이 사람들이 복을 타고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무엇이 사람을 살아가기 팍팍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상하이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이제 푸핑은 상하이의 중심인 화이하이루에 사는 사람들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곳은 더 이상 푸핑이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상하이 말도 대충 이해하게 되었고, 속어와 입에 발린 실속 없는 말들도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었을 무렵, 푸핑은 자베이 지구 동역 부근의 쑤저우허 판자촌으로 이동하게 된다.

쑤저우허는 창장(長江)의 지류인 황푸장(黃浦江)의 지류인 우쑹장(吳淞江)의 상하이 관통 부분을 가리키는 속칭으로, 그 연안은 상하이가 처음 형성되고 발전한 중심이다. 6세대 감독 러우예(婁燁)는 동명 영화의 서두에서 쑤저우허의 전설과 이야기, 기억과 쓰레기 등을 카메라에 담아왔다고 묘사한 바 있다. 쑤저우허는 상하이인, 특히 서민들 삶의 애환이 깃든 상하이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쑤저우허 연안의 자베이 지구는 해방 전부터 판잣집 밀집 지역이었다. 판자촌(棚戶區)은 상하이시가 형성되면서부터 외부에서 진입한 하층민의 거주지로 주로 부둣가에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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