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장한가(4): 상하이 민족지

ycsj 2015. 3. 6. 14:23

왕안이의 장한가1940년대 후반 미스 상하이로 뽑힌 왕치야오의 운명과 삶의 부침을 묘사하고 있지만, 작가는 그녀를 통해 한 도시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으며, 왕치야오의 찬란한 젊음과 중년의 쓸쓸함, 다시 찾아온 말년의 행복은 상하이라는 도시가 경험한 20세기 흥망성쇠와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상하이 도시 운명에 대한 은유로 전달된다. 아울러 그것은 소비주의 도시 역사를 부인하는 자세로 근현대성의 도시문화 체험을 총체적으로 상상함으로써 소비주의에 동의하는 노스탤지어 풍조와 거리를 두려 시도했다. 장한가는 왕치야오의 1940년대의 젊음과 사회주의 30년의 중년 그리고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말년을 통해, 상하이의 부침과 운명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판(南帆)은 작가가 한 도시의 이야기’(도시의 거리와 분위기, 도시의 사상과 정신)를 쓰려 했고 작가의 마음속에서 여성이 이 도시의 대변인이라 평했다. 난판이 보기에 왕안이는 도시 이미지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 배후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묘사하려 했다. 이를 위해 산문식의 서정과 분석의 글쓰기를 시도했고, 남성 중심의 거시 역사 서사와 무관한 여성 중심의 미시 생활 서사를 선택했다.

포스트혁명 시대의 우울(postrevolutionary melancholy)’이라는 키워드로 왕안이의 상하이를 개괄한 장쉬둥(張旭東)장한가도시의 연대기(chronicle)’, ‘상하이 사시(epic)’, ‘도시의 자연사(natural history)’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도시의 욕망과 사치에 관한 상세한 연대기인 장한가에서 왕안이는 초기 소설에서 보여준 끝없는 한담과 중산계급 생활의 복잡한 의식에 대한 프루스트 식의 묘사(Prustian depiction)에서 진일보 발전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현대 시인에게 도전했던 것처럼 왕안이는 상하이 사시(史詩)를 쓰려는 자제력 있는 충동(subdued impulse)을 가지고 순간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왕안이를 해파문학의 계승자, 장한가의 주제를 허무로 설정하는 데이비드 왕(王德威) 왕치야오가 상하이를 무대로 애욕의 추구를 통해 허무를 연기했다고 본다. 아울러 왕안이가, 왕치야오가 유행에 열중하는 것을 빌어 30년 세월의 갈마듦정치의 흥망도 패션의 들고남에 불과할 뿐을 지적했다고 분석했다. 미스 상하이 선발대회가 열린 지 40년이 지난 1985년에 왕치야오는 57세가 되었다. “‘미스 상하이의 사망은 40년 전 연기했던 숙명, 상하이의 모든 찬란함이 흑백필름의 미끄러짐 속으로 떨어지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죽음 속으로 떨어진다.”

장한가를 상하이에 대한 문화적 우언으로 읽는 쩡쥔(曾軍)은 작품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이 도시 경관에 대한 작가의 문화 입장, 예술 기호, 정감 태도 등과 관련 있다고 본다. ‘비둘기 시점은 바로 작가가 상하이를 바라보는 자각적인 시점이며 작품에서 비둘기는 상하이를 바라보는 가장 높은 곳(制高點)이자 도시의 정령인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에서의 비둘기 시점이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상하이 연대기, 상하이 사시, 상하이 자연사, 상하이의 문화적 우언 등 수많은 수사가 따라다니는 장한가는 작가의 두터운 기술을 통해 다층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두터운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기어츠(Geertz, Clifford)는 인류학의 민족지 작업의 방법론으로 중층 기술 또는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제시했다. 이것은 기어츠가 라일(Ryle, Gibert)에게서 빌려 온 개념이다. 라일은 눈의 경련과 윙크에 대한 현상적관찰은 동일한 해석(현상 기술 thin description)에 이를 수 있지만, 그 현상의 이면에 위계적으로 연결된 여러 층위의 의미구조가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파악하려 할 때 두터운 기술을 한다고 했다. 기어츠는 이 개념을 민족지 작업에 적용시켰다. 인류학자가 현지조사에서 당면하게 되는 상황이란 여러 겹의 복합적인 의미구조이며, 이 개개의 의미구조들은 서로 중복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므로 인류학자는 현지조사 당시의 상황을 사후에 다양하게 설명하기 위해 조사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조사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구조를 가진 텍스트를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로 상정하고, 그런 텍스트가 가지는 문화적 함의를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으로 명명할 수 있다.

장한가의 문화적 두터움은 반어와 성찰로 특징지어진다. 문학인류학적 민족지로서의 장한가는 상하이에 대한, 도시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풍자와 냉소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자기 근거도 없고 영혼도 없으며 역사도 없다. 이들이 지혜롭다 생각한 처세술은 허망하다. 이들이 고상하다 아름답다 생각한 는 세속성과 상품성으로 가득하다. 이는 타율에 의해 이식된 유럽문화의 뿌리 없음을 반증하고 있고, 그들의 허위적 삶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스튜디오에서 목격한 죽음을 40년 간 열연하는 왕치야오의 일생은 허망 그 자체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그러나 텍스트 곳곳에 관찰자의 성찰이 눈에 띈다. 때로는 우리를 일상성의 단조로움에서 사색으로 나아가게 하고 때로는 표면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심층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상하이와 상하이인에 대해, 그리고 도시와 도시인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장한가는 반어와 성찰이 풍부한 두터운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장한가는 유병례 교수의 번역으로 한국(은행나무)에서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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