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장한가> (1)

ycsj 2015. 2. 8. 10:08

지난호에서 예고한 것처럼 장한가(長恨歌)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왕안이(王安憶)의 원작 소설(1995), 2005년 스탠리 콴(關錦鵬)이 각색해 정슈원(鄭秀文)을 주연으로 영화화했고, 같은 해 딩헤이(丁黑)가 황이(黃奕)와 장커이(張可頤)를 발탁해 35부작 드라마로 제작했다. 현대판 오랜 한의 노래194617세의 나이로 미스 상하이로 선발된 왕치야오(王琦瑤)40년에 걸친 이야기다.

스탠리 콴은 정슈원에게 17세의 왕치야오부터 57세의 왕치야오를 맡김으로써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여고생부터 환갑에 가까운 여성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흔연치 않다. 그리고 원작이 문화 상하이에 초점을 맞춰 묘사한 것에 비해 스탠리 콴의 장한가는 왕치야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감이 있다. 이른바 왕치야오와 네 명의 남자.

그에 비해 딩헤이는 35부작 드라마에서 소녀 왕치야오와 숙녀 왕치야오를 각각 황이와 장커이에게 맡김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딩헤이의 드라마는 올드 상하이의 여러 가지 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룽탕(弄堂)과 스쿠먼(石庫門)으로 대표되는 올드 상하이 공간을 드라마 곳곳에 재현함으로써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왕안이(王安憶)장한가의 문화적 두터움을 한편의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다. 소설의 1장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마치 카메라의 원경 식 묘사처럼, 마을 전체를 조감하면서 주인공 왕치야오(王琦瑤)가 사는 스쿠먼이 위치한 룽탕에 렌즈를 맞추고 다시 왕치야오의 스쿠먼으로 줌업하면서 그녀의 방으로 이동한다. 이를 비둘기 시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세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상하이의 룽탕과 주택 그리고 거리의 변천과정을 재구성하고 있다.

주인공 왕치야오와 청() 선생은 상하이 여성과 상하이 남성의 전형적인 삶과 취향 그리고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하이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상하이인은 유독 특이한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특히 샤오쯔(小資)라 불리는 중산층은 일정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보유한 채 더 이상 부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추구하면서 질적인 삶을 향유한다. 주인공 왕치야오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그녀 곁에 맴도는 청 선생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통해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해볼 수 있다.

먼저 왕안이의 장한가를 살펴보자. 소설은 31244절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로, 미스 상하이 선발을 중심으로 삼아 해방 전야 올드 상하이 최후의 번화함과 사치를 묘사했고, 2부는 상하이 해방부터 문혁 종결까지로, 올드 상하이의 유민인 왕치야오 등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망망대해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토굴의 삶을 묘사했으며, 3부는 1976년 문혁 종결에서 왕치야오의 피살까지로, 상하이 노스탤지어 드림이 현실 생활에서 철저하게 파멸된 것을 묘사했다. 세 부분은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인공 왕치야오의 몽환 같은 일생을 망라했고 상하이 노스탤지어 드림의 한 차례 역사순환을 완성했다. 장한가3부는 각각 사회주의 이전, 사회주의 30,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에 해당하고 각 부는 비슷한 편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단대학 천쓰허(陳思和) 교수는 장한가가 심미적 방식으로 도시민간의 잠재적(virtual)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평한다. 그녀의 몸에는 민간세계 사람들의 파편적인 역사 기억이 응축되어 있다. 재난이 많았던 연대에 도시 시민계층은 왕치야오를 이야기 핵심으로 삼아 은밀한 기억 속에서 자신에게 속하는 역사와 문화형태를 보존했다. 왕치야오는 상하이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왕치야오 몸에는 상하이의 40년간 도시 일상생활에 대한 여러 세대 시민의 추억과 말로 다하기 어려운 꿈이 들어 있다. 이렇게 왕치야오를 상징으로 하는 올드 상하이 이야기는 도시 민간서사를 통해 드러났다.

주인공 왕치야오는 교우 관계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17새 소녀의 순수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노련한 처세술이 몸에 배어있다. 우페이전(吳佩珍)과의 짧은 사귐도 그러했고 장리리(蔣麗莉)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장한가는 한 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작가도 작품에서 “40년간의 이야기는 영화 스튜디오에 간 그날 시작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17세의 왕치야오가 처음 스튜디오에 가서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만난 그럴듯한 장소는 반투명의 잠옷을 입은 여인이 침대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촬영하는 세트장이었다. 왕치야오는 이곳에서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낀다. 작가의 복선을 따라가자면 왕치야오가 본 장면은 자신의 최후이고 소설의 이야기는 그 전의 과정을 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왕치야오는 자신이 스튜디오에서 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일생을 분주하게 산 것이다.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삶과 도시 공간의 분위기는 마치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볼 때 장한가에서 영화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것은 영화도시 상하이를 대표하는 동시에 상하이 소녀 왕치야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영화 속의 왕치야오인 동시에 왕치야오가 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왕치야오는 상하이 무대에서 40년 간 열연한다. 그러나 그녀가 연기한 배역은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처세술이다. 마치 잘 훈련된 배우처럼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왕치야오는 또한 나이를 먹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는 쉰이 넘어서도 장융훙(張永紅) 등과 나이를 넘어선 패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라오커라(老克腊)와 나이를 잊은 사랑을 할 수 있었다. 사실 10대에도 40대의 리 주임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했고 청 선생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청 선생은 마지막에 그녀가 자고 가라는 말을 거절함으로써 일장춘몽에서 깨어났고 라오커라는 베개머리의 흰 머리칼을 발견하고는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