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 (9)

ycsj 2015. 1. 29. 09:52

허우샤오셴의 <해상화> (3): 19세기 말 상하이 민족지

 

한방칭의 해상화열전1회는 특이하게 시작한다. 화자는 첫 문장에서 해상화열전이야기의 작가인 화예롄눙(花也憐儂)을 소개한다. ‘꽃도 당신을 연민한다는 의미를 가진 작가가 꽃 바다(花海)’ 즉 기루에 오랫동안 꿈처럼 살던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화예롄눙은 한방칭의 화신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한방칭은 당시 기생들 세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화자는 해상화열전을 화예롄눙이 날마다 꿈속에 살면서도 꿈이라 여기지 않고 쓴 책이라 소개하고 있다. 작가에게는 꿈속의 책이지만 독자에게는 책속의 꿈이 될 이야기는 바로 기루(妓樓)에 관한 것이다.

화자의 해설을 보면, 저자는 꽃 바다에서 헤매다가 상하이 화계와 조계의 경계지점인 루자스차오(陸家石橋)에 떨어져 뜻밖에 꿈을 꾸었구나!”라고 탄식하며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 주인공의 하나인 자오푸자이(趙朴齋)와 부딪치면서 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날로 치면 서문 또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본 이야기가 시작하는 제1회 앞에 배치해 이야기의 연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후 화예롄눙은 다시 등장하지 않고 화자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화예롄눙은 관조의 태도로 기생과 고객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관조는 일상적이고 세속적 생존으로부터 나온, 인생에 대한 연민과 융통성 있는 관조다.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는 윤리 도덕 판단의 층위를 뛰어넘어 은폐된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관조는 고요한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니 성찰에 가깝다. 기루에서 기생과 고객의 관계를 묘사하는 협사(狹邪)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해서 인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을 진행함으로써 기루의 표층 이야기에 가려져있는 심층의 인간관계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상하이 조계지역 기루에서 생활하면서 관찰한 것은 단순히 기생과 손님이 아니라, 상하이 사회 속의 어지럽게 섞여 사는사람들의 즐거움과 상심의 역사였다. 바꿔 말하면, 기루를 제재로 삼은 해상화열전은 협사소설에 그치지 않고, 도시 사회의 삶과 애환을 그렸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연민과 융통성 있는 관조의 자세로 즐거움과 상심의 역사를 관찰하고 성찰한 결과물인 해상화열전은 민족지학자가 참여 관찰의 결과로 기록한 민족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상화열전은 현대 도시 발전과 조계 기루문화 사이의 상호 추동 관계를 묘사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장삼서우(長三書寓) 기녀들이 조계라는 새로운 사회 문화 콘텍스트에서 어떻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여성 공간의 범위를 정했는지를 고찰했다. 만청 상하이 조계는 파리 못지않은 현대 도시문화와 물적 설비가 갖춰져 있었고, 이는 전통 문화를 바꿔 새로운 시간과 공간 관념을 형성했다 할 수 있다.

19세기 상하이 조계의 기루는 유흥공간이자 사교공간의 공공성과 의사가정 공간의 사인성이 혼합된 장소이기도 했다. 장삼서우식 기루는 오늘날로 치면 가정식 고급 식당/술집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통 가정 모델을 대체한 의사 가정 역할을 했다. 이는 기존의 가정에서 따듯함장아이링의 표현대로라면 연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이 바깥에서 그에 대한 대리만족을 구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장삼서우는 가정 구조에 대한 형태적 모방으로 기존의 가정 관념을 전복하고 있는 셈이다. 기루는 본질적으로 개방된 공간이지만 장삼서우식 기루는 의사 가정의 성격을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 그러므로 남성에게는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현장이자 유흥공간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의 편안함을 맛볼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상업문화가 주류였던 상하이에서 새로운 주체는 단연 상인이었다. 해상화열전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비교적 중요한 손님이 27명인데, 그 가운데 상인이 16명으로 압도적이다. 그 외에 문인 3, 관리 2, 한량공자 4, 건달 2명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상인이 문인을 대신해 기루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는 상인이 조만간 상하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루를 상무(商務)공간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흥공간이자 자유연애 공간으로 삼아 새로운 도시문화를 추동했다. 개항 후 몇 십 년 만에 상무가 발달하고 상업이 흥성한 상업 도시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공간이나 시간 또는 행위 등에서 농업 중심의 전통 도시 거주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상하이는 이제 상업문화의 왕국이자 소비의 천당이 되었고 상인들은 바로 상하이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기루와 관련된 상인들의 가장 큰 변화는 야간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기루에서 모임을 열어 서로 초대해 식사한다. 이때 단골기생도 배석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마치 서양인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것처럼 저녁 모임을 열었다. 그 자리는 우선적으로 유흥공간이다. 식사하고 술 마시고 시권(猜拳) 놀이를 통해 벌주 마시기 내기를 하는 등 유흥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유흥의 주역인 남성들에게는 반드시 파트너로 단골기생이 배석해서 술을 따라주고 음식을 집어주며 심지어는 술을 대신 마셔주기도 한다. 이들은 임시 파트너가 아니라 거의 고정되어 있다. 왕롄성에게는 선샤오훙이, 뤄쯔푸에게는 황추이펑이, 그리고 주수런에게는 저우솽위가 따라다닌다.

작가는 제1회에서 지금은 서시보다 아름답지만 등 뒤에서는 야차보다 악랄하고, 오늘은 조강지처보다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사갈보다 독랄함을 알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 작품의 주제를 요약한 것이다. 이는 표층적으로는 기생이 고객을 대하는 기제를 지적한 것이지만, 상업도시 상하이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관계를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루는 당시 상하이의 금전만능 풍조를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인 것이다. 작가는 기루를 통해 욕망과 타락이 충만한 십리양장(十里洋場)의 조계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전변을 겪고 있는 상하이라는 근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찰과 개탄을 다성적(polyphonic)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