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왕안이의 <푸핑> (1)

ycsj 2015. 3. 12. 07:48

장한가를 통해 상하이를 살펴본 김에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푸핑(富萍)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에서 잠시 <소설로 읽는 상하이>로 코드 전환하는 셈이다. 작가 왕안이(王安憶)상하이 읽기에서 건너뛸 수 없는 작가다.

왕안이는 푸젠(福建)성 퉁안(同安)현 출신으로, 작가 루즈쥐안(茹志鵑)의 딸이다. 1954년 난징(南京)에서 태어나 1955년 어머니를 따라 상하이로 이주했다. 1969년 중학교 졸업 후 1970년 안후이(安徽)성 우허(五河)현에 하방(下放)되었고, 1972년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지구 문예공작단에 배속되었다가 1978년 상하이로 돌아와 아동시대(兒童時代)편집을 담당했다. 1987년 상하이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중국작가협회 이사, 상하이 작가협회 부주석과 주석을 거쳐, 2004년부터 푸단대학(復旦大學) 중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40년대 상하이 작가 장아이링과 비교되곤 하는 왕안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지식청년 관련 작품을 쓰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대표작으로 , 솨 솨 솨(, 沙沙沙)(1981), 유수처럼 사라지다(流逝)(1983), 미성(尾聲)(1983), 소포장(小鮑庄)(1986), 황산의 사랑(荒山之戀)(1993), 상하이의 번화한 꿈(海上繁華夢)(1989), 유토피아 시편(烏托邦詩篇)(1994) 등의 중단편소설집이 있고, 장편소설로 69학번 중학생(69屆初中生)(1986), 황허의 옛 도인(黃河故道人)(1986), 기실과 허구(紀實與虛構)(1994), 장한가(長恨歌)(1995) 등이 있다. 21세기 들어 푸핑(富萍)(2000), 계몽시대(啓蒙時代)(2007), 천향(天香)(2011) 등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왕안이는 상하이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 많아 그 작품들을 상하이 민족지라 할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고 해외 각국에서 초청받아 강연을 했다. 최근 한국에도 두 차례 다녀갔으며 2009장한가로 이병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 많은 중국 작품이 번역·출간되고 있는데 당대 최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왕안이의 작품이 유독 출간되지 않는 것은 그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옌(莫言), 위화(余華), 쑤퉁(蘇童)의 소설이 거의 모두 번역된 것에 반해 왕안이의 작품은 장한가푸핑2종만 번역되었다.

21세기 벽두에 출간된 푸핑1964년 상하이로 진입한 시골 처녀를 초점인물로 삼아 그녀가 상하이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바꿔 말해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시기 농민의 도시 진입 상황과 농민이 관찰한 도시 상황을 고찰할 수 있다. 푸핑은 전작인 장한가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장한가1940년대 후반 미스 상하이로 뽑힌 왕치야오의 운명과 삶의 부침을 묘사했는데, 왕치야오의 1940년대의 젊음과 사회주의 30년의 중년 그리고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말년을 통해, 상하이의 부침과 운명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푸핑에서는 시골 처녀 푸핑을 초점인물로 삼아 문화대혁명 직전 상하이의 세 공간과 그곳 거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푸핑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1964년과 1965년의 상하이의 공간과 사람이다. 작가는 이주에 초점을 맞춰 상하이인이 어떻게 이 도시에 모이게 되었는지를 묘사했다. 소설 속 푸핑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아버지 집에서 자라다가 할머니의 손자와 혼약하게 되어 상하이에 온다. 우리는 시골 처녀 푸핑이 상하이에 진입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통해 1960년대 상하이 민족지를 재구성해볼 수 있다.

푸핑은 양저우(扬州) 시골 처녀가 상하이로 이주해 생계를 도모하는 이야기로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인공 푸핑은 건강하고 부지런하지만 우둔하지 않다. 그녀는 처음에는 번화가 화이하이루에 살다가 쑤저우허 쓰레기 운반조 사공을 하고 있는 외숙 집으로 옮겼다. 지금까지 왕안이 소설에서 이 두 곳은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작가는 이들 거리의 생활에 늘 친밀함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이 끝나갈 무렵 18장에서 왕안이와 그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메이자차오이다. 이곳은 쓰레기장 위에 지어진 낡고 허름한 빈민굴이다. 왕안이의 소설 세계에서는 거의 처음 출현하는 곳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의 서술 태도의 변화로, 그녀는 푸핑을 통해 이곳 사람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를 취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비하가 아니라 일종의 자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해설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고물을 줍고 막일을 하여, “사람들에게 불결한 인상을 주지만, “그들은 성실하게 일해서 의식주를 해결하였고, 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은 한 푼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구질구질한 생계 이면에는 착실하고도 건강하며, 자존적이고 자족적인 힘이 감추어져 있었다.” 푸핑은 외숙집이 답답할 때면 메이자차오를 자주 쏘다니면서 점점 마음이 끌리고 마침내 모자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상하이 생활을 풀어내는 소설인데도 그 불빛은 거의 모두 삶의 변두리, 즉 시골에서 온 아가씨, 쑤저우 강의 뱃사공, 관리사무소의 목수 등을 비추고 있으며, 중심인물인 할머니와 뤼펑셴 등도 모두 가정부이고 뒤쪽 곁채에 살면서 뒷문으로 드나든다. 그리고 아파트와 서양식 건물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텍스트는 서유럽적이지도 않고 사회주의적 규범에 부합하지도 않는 삶을 소설세계의 중앙에 위치시켰다. 소설에서 대부분의 서술이 메이자차오의 바깥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음미해보면 그것들은 최종적으로는 거의 모두가 메이자차오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개막을 알리는 기나긴 징과 북이 마지막에 진정한 주역을 끌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메이자차오 빈민굴이 상하이 이야기의 주역을 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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