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왕안이의 <푸핑> (5)

ycsj 2015. 4. 8. 23:04

 

 

왕안이의 <푸핑> (5): 상하이 민족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척된 것이 근현대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농민의 도시 진입은 근현대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쑨즈강(孫志剛) 사건으로 인해 2003년 중국에서는 농민공 조류삼농(三農)’문제가 논쟁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농민공 조류는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랄 수 있는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1980년대 중후기부터 출현했다. 그런데 이는 개혁개방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의 농민공 조류는 대략 1,500만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도시에 진입한 농민이라는 주제의식으로 중국근현대문학사를 조감해보면 중국 근현대화의 다양한 양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30년간의 빗장도시(gated city)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알려진 상하이에 진입한 시골처녀의 상하이 정착이라는 점에서 왕안이의 푸핑은 주목을 요한다. “당시 상하이의 호적은 들고 나기가 쉬워, 이후처럼 나가기는 쉬워도 들어가기는 어려운 때와는 달랐다.” 푸핑1964년 상하이로 진입한 시골 처녀를 초점인물로 삼아 그녀가 상하이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시기 농민의 도시 진입 상황과 농민이 관찰한 도시 상황을 고찰할 수 있다. 푸핑은 전작인 장한가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장한가1940년대 후반 미스 상하이로 뽑힌 왕치야오의 운명과 삶의 부침을 묘사했는데, 왕치야오의 1940년대의 젊음과 사회주의 30년의 중년 그리고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말년을 통해, 상하이의 부침과 운명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푸핑에서는 시골 처녀 푸핑을 초점인물로 삼아 문화대혁명 직전 상하이의 세 공간과 그곳 거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푸핑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1964년과 1965년의 상하이의 공간과 사람이다. 작가는 이주에 초점을 맞춰 상하이인이 어떻게 이 도시에 모이게 되었는지를 묘사했다. 소설 속 푸핑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아버지 집에서 자라다가 할머니의 손자와 혼약하게 되어 상하이에 온다. 우리는 왕안이의 푸핑을 상하이 민족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푸핑이 상하이에 진입해 화이하이루에서 쑤저우허로 그리고 다시 메이자차오로 이동하는 과정을 민족지학자의 참여관찰(participant observation)로 간주할 수 있다. 주관이 강한 푸핑은 그다지 훌륭한 관찰자는 아니지만, 그녀는 작가가 안배한 성찰적 화자의 도움을 받아 1960년대 상하이 민족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정궁 같고 영화 같은 상하이에는 서먹한 거리감을 느끼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존해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느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푸핑의 다스제(大世界) 나들이는 상징적이다. 푸핑은 두 차례 나들이를 나가는데 한 번은 샤오쥔과 또 한 번은 할머니, 뤼펑셴, 치사부 등과 함께 간다. 두 차례 모두 그녀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지만 처음에는 발에 물집이 생기고 두 번째는 아예 길을 잃는다. 조금 단순화하면 푸핑은 상하이 상징인 다스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푸핑의 발길은 계속 주변부를 향한다. 화이하이루에서 쑤저우허로, 그리고 다시 메이자차오로.

결혼이라는 화두와 연계시켜보면, 푸핑에게 화이하이루는 리톈화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사실 푸핑은 리톈화의 운명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하이로 왔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화이하이루를 떠나 자베이 판자촌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거기도 안식처가 아니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외숙모는 사람의 도리와 팔대 조상을 들먹이며 푸핑에게 돌아가라고 윽박지르지만, 푸핑은 외친다.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있어도 길러준 어머니는 없어요. 팔대 조상님이 절 위해 해준 게 뭐가 있어요?” 한동안 외숙네 살림을 도와주던 푸핑은 우연찮게 메이자차오를 방문하게 되고 거기에서 종이상자에 풀칠하며 생계를 꾸리는 모자를 만나면서 그녀의 결혼 원정기는 마무리된다.

푸핑을 상하이 민족지로 본 이 글의 목표는 푸핑의 결혼 원정기를 통해 반이 완성되었다. 상하이 민족지로서의 푸핑의 두터움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해야 드러날 것이다. 텍스트에는 푸핑의 약혼자 리톈화, 쑤저우 출신의 뤼펑셴, 사기꾼으로 매도되어 신장으로 도망친 타오쉐핑, 푸둥(浦東)에서 온 치 사부, 외숙 이웃인 샤오쥔, 닝보(寧波) 출신의 노부인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1963년과 1964년의 상하이 민족지는 이들에 대한 참여관찰과 인터뷰 기록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