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당국 자본주의와 당치국가

ycsj 2023. 11. 28. 08:12

202210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20) 이후 당국(黨國) 체제의 중국과 중국공산당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치국 상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부터 시진핑(習近平) 일인 지배체제 구축을 특징으로 하는 ‘20을 계기로 중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의 전면 건설과 중화 네이션의 위대한 부흥을 구호로 내걸고 동아시아 지역 구도뿐만 아니라 미국 중심의 세계체계(world system)를 흔들고 있다.

기존의 미국 중심의 세계체계에 익숙하고 안존(安存)하는 이들에게는 중국의 변화가 불안한 형국의 주요 원인으로 다가오겠지만, 세계체계론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 헤게모니의 동요는 이미 50년 전에 시작되었다. 1971년 달러의 금본위제 폐지가 그 표지라 할 수 있다. 조반니 아리기(Arrighi, Giovanni)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옮겨간 세계체계의 헤게모니는 이미 지적도덕적 우위를 잃은 상황이다. 이른바 체계의 카오스(systemic chaos)’.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은 거대한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존 헤게모니 강국이 부상하는 신흥 강국을 억압하고 나머지 국가를 지배하는 세계 제국(global empire)’의 출현이다(아리기, 2008).

우리는 지적도덕적 헤게모니가 약화한 미국 중심의 세계체계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내셔널리즘으로 중무장한 중국이 신흥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한국의 비판적 중국연구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 중심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해야 할 뿐 아니라 중국중심주의 또한 비판해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계는 유럽중심주의에 길들었다. 반봉건 계몽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학습해야 할 선진 문물의 본산이 유럽이었다. 개화기에 모색되었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은 뒷전으로 미루고 너도나도 서양 문물 습득에 열을 올렸고 그것이 지나쳐 서양 지식 수입상이라는 자조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유럽 선진 문물의 비판적 수용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며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운위되는 학술 담론 가운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유럽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운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3세계 혁명을 성공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등장은 새로운 출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참신했다. 지도자 마오쩌둥은 유례없는 당국(黨國)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그 지도이념인 마오쩌둥 사상은 자신의 이론적 연원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창의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창조적이거나 일탈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것이 창의적이고 창조적이었다면 중국은 전환적 창조의 길로 나아갔을 것이지만, 자의적이고 일탈의 길이이었다면 마오쩌둥 사상은 제3세계주의로 귀결된다.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마오쩌둥 사상은 변질했고, 중국공산당은 창당 이념과 정신을 망각한 채 국가 경영에 매몰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러 학자가 진행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당국 자본주의당치(黨治)국가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왕샤오밍(王曉明)은 개혁개방 이래 중국 사회의 기본 성격을 당국 자본주의(party-state capitalism)’라고 규정한다. 그가 보기에 당국 자본주의당국체제(party-state system)’자본주의로 구성되는데, 첫 단계인 덩샤오핑 시기에는 양자가 합작, 심지어 융합 관계를 이루었지만, 두 번째 단계인 시진핑 시기에는 신노선을 추진하면서 당국체제의 핵심인 집권당 관료 집단은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 특히 민영기업가를 일대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서 당국체제자본주의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죄기 시작한다.” 그는 덩샤오핑 시기의 기본 노선이 서유럽과의 합작을 통한 당국 자본주의의 순항이었다면 시진핑 시기의 신노선은 정치적인 상호 대립과 경제적으로 수동적인 디커플링’, 심지어 군사적으로 잠재적인 충돌이 미중 또는 당국-서구관계의 주요 부분을 구성했다라고 진단했다(왕샤오밍, 2023: 189). 당국 자본주의의 토대는 당국 체제(party-state system)’이다. 마리아 자나디(Csanadi, Maria)는 이를 이행/전환 중인 복잡한 당-국 체계(complex and transforming party-state system)’(Csanadi, 2016)라고 명명했다. 당국 체제당조직(黨組)을 국가기관의 각 기구 안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집정(執政)을 관철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당이 국가기관을 영도한다는 이른바 당의 일원화 영도원칙’”의 기반이다(장윤미, 2023: 8). 그러나 개혁개방 시기에 국가 목표가 기존의 계급투쟁에서 경제건설로 전환되면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나 기업, 사회 각 영역으로 적절하게 이양하는 중국식 분권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 통치구조 전체와 정치 논리의 총체적 재편이 진행되면서, 국가의 행정 및 통치 영역은 법 규범에 따라 제도화하고 정치와 사상의 영역은 일원적 영도권을 가진 당이 독점하는 구조로 재편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을 주체로 하는, ‘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당과 국가 간의 긴장이 내재되었던 기존의 당정체제는 당이 직접 국가를 통치하는 실질적인 당치국가로 빠르게 재조정되고 있다(장윤미, 11).

시진핑 신시대의 성격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의 보고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2012년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길이라는 중국이 나아갈 확고한 방향을 정한 대회였다면, 2017년 제19차 전국대표대회는 백년변국이라는 시대인식과 신시대라는 새로운 시대 구분으로 전면적 소강사회 완성중화 네이션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천명하며, 중국의 목표를 새롭게 제시한 대회였다. 그리고 2022년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꿈을 향해 당의 전면적 영도아래 전 인민이 한 몸처럼 일치단결하여 매진해나가자는 중국식 현대화방법을 제시하고 있다(장윤미, 340341). 그러나 당국 자본주의당치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시진핑 신시대는 많은 식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시진핑 신시대를 또 하나의 전환으로 바라보는 장윤미는 이런 우려를 다음과 같이 간추린다. 첫째,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근현대화(modernization) 이론을 서유럽의 것으로 타자화하고 중국의 방식으로 근현대화를 이루겠다는 중국식 근현대화의 방법은 강국지향의 근현대화이자 중화 네이션중심의 일국적 근현대화의 성격이 짙다. “중국식 ()현대화의 논의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것보다는 중국이 가진 시장 파워와 서구에 대항하는 담론 전략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의 표준과 규범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내장되어 있다“(장윤미 349) 둘째, 혁명시기와 사회주의 건설기, 그리고 개혁개방의 시간을 거치며 찾아낸 당의 전면적 영도라는 결론은 중국공산당이 안정적인 집권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최적의 답안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정당 고유의 정치적 기능이 경직되고 형식화되었다. ”사회조직과 민간의 활동공간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당과 인민 간의 정치적 긴장도 사라져버렸다. 당이 완전히 국가를 대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치국가의 논리로 통치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정치적 정체성과 역량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장윤미, 351352).

당국 체제에 기반한 당국 자본주의, 당의 일원화 영도원칙에 토대를 둔 당치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시진핑 신시대가 인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키며 나아갈지 예의주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