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홍콩영화에 재현된 동남아인과 동남아 화인

ycsj 2023. 10. 6. 09:38

동남아와 동남아인은 홍콩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1970년대 홍콩의 경제가 발전하기 전 필리핀은 한동안 홍콩인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적도 있었고, 1970년대 중반 사이공 함락은 홍콩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1997년 회귀를 앞두고 수많은 홍콩인에게 20년 전 사이공의 최후를 연상시켰다. 1970년대 들어 오히려 경제난을 겪게 된 필리핀의 노동력 송출정책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홍콩의 노동력 부족 현상과 맞아떨어져 필리핀 여성의 가정부(domestic helper) 취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菲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가 되었고 이 대열에 인도네시아 여성이 합류한 것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19세기 동남아 인력 송출의 중개지였던 홍콩으로 이제 동남아인들이 취업 이주한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홍콩에 이주한 동남아인은 영화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영화에서 ‘슬쩍슬쩍’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본 영화들 속에서 상당히 많은 영화에 동남아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스티펀 초우(Stephen Chow: 周星馳)와 재키 청(Jacky Cheung: 張學友)이 파트너로 등장하는 경찰 코미디 영화 <커리와 고추(咖喱辣椒)>에서는 필리핀 여성이 매춘부로 등장한다. 또한 한국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던 <무간도(無間道)> 시리즈 제2편에서 잠시 등장하는 태국은 마치 홍콩이라는 중원(中原)에서 실패한 영웅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해 일시 도피하는 변방으로 설정되고 있다. 화인들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는 홍콩인들에게 속국 또는 변방으로 인식될 수 있고, 홍콩에 이주한 동남아인들은 중심지에 온 변방인으로 치부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홍콩영화에서 동남아와 동남아인들을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지만, 그들을 슬쩍슬쩍 비추는 것은 ‘의도적 축소’일 수 있다. 실제로 그들에게 많은 일을 의존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그 밑바탕에 있는 것은 아닐까?

홍콩으로 이주한 동남아인의 반대편에 동남아로 이주한 화인이 놓여있다. 중국인의 동남아 이주는 11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현재의 동남아 화인은 19세기 홍콩을 경유해 이주한 자가 대부분이고 현지에서 홍콩을 통해 고향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았다(하마시타, 1997: 18). 홍콩을 거쳐 동남아 현지로 이주했고 또 홍콩을 거쳐 고향과 연결되는 끈을 가지고 있다면, 동남아 화인에게 홍콩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구 6백만의 홍콩에서 영화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근거는 3천만에 이르는 동남아 화인이었던 셈이다. 수많은 동남아의 화인은 실제로 홍콩영화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동시에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품격 오락영화’ 감독으로 평가받는 추이 학은 <영웅본색 Ⅲ>에서 전편의 오락성에 홍콩 사회와 연관된 주제를 결합했다. 영화는 장즈창(張之强, 일명 마크, Chow Yun Fat, 周潤發분), 장즈민(張之民, Leung Ka-fai, Tony, 梁家輝분), 저우잉제(周英傑, Mui Yim-fong, Anita, 梅艶芳분)의 우정과 사랑이 주조를 이루지만, 동남아 화인이라는 각도에서 주목할 캐릭터는 바로 장즈민의 아버지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감옥에 갇힌 사촌을 구하려고 홍콩에서 돈을 가지고 사이공에 온 마크가 사이공 공항에서 세관원들의 검사에 걸리지만 저우잉제의 도움으로 간신히 벗어나면서 베트남 당국의 부정·부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출옥한 즈민과 함께 전동삼륜차를 타고 가다 만난 여학생들은 시위를 가로막는 군부대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사살된다. “시위학생들이 잔인하게 진압당하는 장면은 같은 해(1989년-인용자)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동시에 1997년 중국으로 반환 뒤에 있을지도 모를 홍콩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크라머, 2000: 330) 그리고 경찰과 군대의 전투로 점철되는 함락 직전의 사이공은 부정·부패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당연한 귀결인 혁명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선 지적할 것은, 이 영화에서 베트남은 철저히 타자화(othernization)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관원들의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조차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베트남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구로 비춰질 뿐이다. 국가장치인 군대와 경찰은 이익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때로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도 한다. 구체적 인물로 등장하는 추바(Chu ba: 初八)조차도 중국어를 할 줄 몰라 말귀를 못 알아먹는 얼간이처럼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 말을 할 줄 몰라 당황스러운 경험은 동아시아 각국에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 영화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홍콩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즈민의 아버지만 약간 예외인 셈이다.

베트남 화인인 즈민의 아버지는 20여 년간 사이공(西貢)에서 인애당(仁愛堂)이라는 한약방을 경영해왔다. 그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인애당을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과 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사이공을 떠나게 된다. “아민의 아버지가 사이공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1997년을 의식한 때문”(김지석·강인형, 1995: 74)으로 보인다. 즈민 아버지의 변은 이렇다. “1997년에 대륙이 홍콩을 회수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 베트남에서 수십 년간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별일 없잖니?” 자그마치 24년 후의 일을 현재와 중복시키고 있다. 그는 마치 아무리 큰 난리가 일어나도 고향을 등질 수 없는 사람처럼 연연해한다. 그렇다고 이를 ‘현지국민적 정체성’과 연계시키는 것은 섣부른 일일 것이다. 결국 그는 “모든 게 명이로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조금도 없어.”라고 체념하고 아들과 조카를 따라나선다.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떠나면서도 다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설사 자신이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인애당의 소멸을 견딜 수 없기에 베트남 전쟁고아 추바에게 문단속, 청소, 맑은 날 약재 말리기 등 가지가지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러고도 대청에 걸어둔 <사이공 인애당>이라는 현판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를 알아차린 추바가 그것을 떼어 다른 짐과 함께 꾸려준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추바에게 비상금을 주면서 하는 말, “시국이 안정되면 곧 돌아오마”였다. 그리고 추바와 눈물의 포옹을 하고 독촉하는 아들과 기어코 말싸움하고.

즈민 아버지의 경우에도 베트남과의 연계는 생업으로서의 약국과 조금 친근한 점원 추바뿐이다. 추바가 꾸려준 현판은 20여 년이 넘은 베트남 생활의 집약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세관원들이 현판을 쪼갤 때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고 쪼개진 현판을 기어코 가지고 가 홍콩의 집에 걸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로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아들 및 조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베트남은 그에게 더는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다. 여기까지 보면 그는 중국 네이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한 화인으로 귀결된다.

앤 후이의 베트남 삼부작의 하나인 <우비엣 이야기>는 1975년 베트남 패망 후 탈출한 화교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우비엣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사이공 함락 후 홍콩으로 피난 온 베트남 화인이다. 그는 옛 펜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본 위조여권으로 미국에 가려 한다. 그는 어렵사리 일본어를 배우고 거금을 들여 위조여권을 발급받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중간 기착지인 필리핀 마닐라에서 같은 처지의 베트남 화교 선칭(沈靑)이 인신매매단에 팔려 가는 것을 구하려고 미국행을 포기하고 살인청부업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필리핀 화인 종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폭력조직이었다. 우비엣은 돈을 벌기 위해, 선칭은 외로운 홍콩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하지만, 그들은 미국 대신 필리핀으로 가게 되고, 선칭은 끝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웡카와이 영화에도 동남아가 몇 차례 등장한다. <충칭의 삼림>의 ‘Midnight Express’의 주방에서 일하는 필리핀인들이 몇 장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는 가수가 꿈이다. <아페이 정전>에는 필리핀이 상당한 편폭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생모는 필리핀 화인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그래서 필리핀을 동경하고 결국 홍콩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열망하던 생모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필리핀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에게 필리핀은 동경이자 죽음이었다. 이 영화 역시 필리핀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다만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두 번인가 등장하는 열대 수림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현실 공간과 대립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닐라의 현실 공간은 매춘과 절도 그리고 폭력 등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영화의 주요 인물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 필리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과거와 미래는 생모에게서 중첩되어 있다. 영화 속의 1960년대의 홍콩에게 과거(생모)는 모국이다. 모국인 중국은 홍콩을 전쟁의 배상으로 떼어주고는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의 홍콩인은 그 일을 그다지 서운해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그들은 1997년 이후 자신을 돌보던 영국이 과거로 변해 자신들을 버려둘 것을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