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포스트식민 문화에 대한 서술은 여러 논자에게서 보인다. 추유와이(Chu Yiu-wai, 朱耀偉)는 홍콩의 포스트식민 담론이 주변성(marginality), 혼성성(hybridity), 틈새성(in-between-ness), 제3공간(third space) 등의 중점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張美君·朱耀偉, 2002: 4). 렁핑콴(梁秉鈞)은 홍콩 사회가 “몇 가지 다른 식민주의가 중첩”(也斯, 1995: 19)되었음을 지적한다. 명확하게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은 영국-일본-영국-중국의 홍콩 지배와 연결된 것일 터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홍콩인들도 이런 타자로서의 의식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문화를 멸시하고 깔보고 입에 올리지 않으며 심지어 그 존재를 소외시키고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홍콩이 명목적으로 식민지가 아닌 시각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식민지 의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也斯, 20).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이다.
‘식민지 홍콩 출신의 외국인’임을 자처하는 레이 초우는 홍콩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최근의 포스트식민 논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변론하는데, 그 관건은 “홍콩이 영국의 식민주의 종식 후에도 영토 주권상의 독립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이다”(Chow, 1992: 153).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식민지로서의 홍콩의 곤경이 다른 전(前) 식민지와 비슷하다 하더라도 홍콩은 독립적 지위의 전망이 없다. 영국과 중국 사이에 놓여 홍콩의 포스트식민 상황은 이중적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홍콩은 중국 내셔널리즘/본토주의의 재차 군림에 굴복할 수 없다. 이는 바로 과거에 영국 식민주의에 굴복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Chow, 153).
1997년 홍콩 양도 이전에 쓰인 글인 만큼 “독립적 지위의 전망이 없다”라는 진단은 날카롭다. 레이 초우에게 홍콩 문제는 특수하다.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은 조국으로 반환’되었지만, 초우는 그 반환 방식과 조국의 성격을 문제로 삼는다. 즉 홍콩은 자발적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반환되었고, 그 조국은 이미 제국주의를 내면화하여 티베트에서 스스로 제국주의 정책을 펴고 있고 타이완에 대해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하려는 조국이다. 그리고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자국 인민을 학살한 조국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 드러난 동북공정에서 주변국의 역사에 대한 제국주의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홍콩의 포스트식민 문화 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그녀는 근현대 홍콩 역사를 다중규정(overdetermination)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탐구와 뿌리의 모티브를 따른다면, 홍콩만큼 실존주의적 불안이 큰 중국 도시는 없을 것이다. 홍콩은 (중앙에서 먼-인용자) 남쪽에 있고, 영국에 의해 식민지화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고, 서화되고 상업화되었다. 이제 중국으로 ‘반환된’ 근현대 홍콩의 역사는 항상 처음부터 선점되고 불가능해진 중국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어떤 형태로 기록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지울 수 없는 식민지 오염에 의해 기록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홍콩의 중국 추구는, 홍콩이 노력할수록 ‘중국적임(Chineseness)’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민중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허무함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과거는 홍콩을 흔들리지 않는 열등의 저주처럼 따라다닐 것이다(Chow, 1992: 163).
중심에서 소외된 남방의 조그만 향나무 섬은 그 네트워크의 가치를 인지한 영국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고, 오랜 기간 식민통치를 받아 오다가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종전 후 다시 영국 식민지로 환원된 홍콩은 식민통치 덕분(?)에 충분히 서유럽화되고 상품화되어 ‘동방의 진주’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영국 특색의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홍콩이 1997년 반환 후 ‘일국양제’라는 명목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편입됨으로써 ‘실존주의적 불안’이 현실화되었다. 이른바 ‘조국’의 남방에 있을 때는 주목받지 못한 변방이었고 근현대 시기 대부분을 식민지로 보냈으며 정작 조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중국적이지 않다고 타박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레이 초우는 근현대 홍콩의 역사를 감안할 때, 일방적으로 ‘중국 정체성’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중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 서양적임과 중국적임, 식민지의 열등의식과 근현대 글로벌 도시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우월 의식 등을 ‘다각도의(multiangulated)’ 관점에서 고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에서 포스트식민 담론의 주요 이슈의 하나인 주변성(marginality)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주요 맥락은 피식민자로서의 홍콩이 1997년 이후에도 독립할 리 없으므로 홍콩은 정치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 방면에서도 ‘주변의 주변’(李歐梵, 2002: 170~171)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리어우판이 명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근현대 중국은 서유럽의 주변이고, 홍콩은 주변인 중국의 주변이므로 ‘주변의 주변’이라는 것이다. 레이 초우는 주변성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홍콩인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이 주변화된 지위는 특별한 관찰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압박의 경험을 미화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周蕾, 1995: 30). 주변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주변은 중심에 의해 타자화되지만, 중심에 항거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성의 선포는 중심을 새롭게 긍정하는 확인에 불과하다. 주변성은 이중적 의미로 쓰이게 된다. “주변성은 처음에 또는 진정으로 중심에 저항하고 충돌하려는 잠재력을 가지고 주도적 스타일 이외의 시점(視點)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또한 빠르게 중심에 편입되어 애초의 활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張美君·朱耀偉, 2002: 4). 이처럼 주변성은 중심에 저항하고 충돌하려는 잠재력과 중심에 편입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레이 초우는 주변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3의 공간’을 제안한다. 그는 포스트식민 도시인 홍콩이 스스로 잡종이자 고아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면서, 홍콩에서의 독특한 문화 생산방식을 ‘특수한 협상’이라고 지칭했다. 이 특수한 협상은 중국과 영국이라는 두 침략자 사이를 드나들고 응대하면서 자아의 공간을 찾으려 노력해야지, 영국 식민주의 또는 중국 권위주의의 구차한 노리개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전략 아래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Chow, 1992:158). 그리고 그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 일컬으며 그것은 식민자 영국과 중국의 주류 내셔널 문화 사이에 존재한다고 했다. 이 ‘제3의 공간’을 이해하는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 식민지로서 홍콩은 중국의 미래 도시의 삶의 모범 사례”라는 사실이다. 홍콩은 과거 150년 동안 ‘중국’ 근현대화의 최전선을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렁핑콴도 “대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홍콩이 50년대에 직면했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둘째, 대륙의 도시문화가 발전하면서 각 주요 도시에 대한 국가 정부의 간섭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러할 때 홍콩은 반대로 같은 정부의 침략과 압박에 직면해있다. 이는, 홍콩은 반드시 자주성과 독립된 사회라는 관념을 세워서 자신의 번영과 발전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Chow, 158). 영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확보해야 할 ‘제3의 공간’이 가능할지, 레이 초우의 이론적 진단이 현실에서 얼마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환 직후 홍콩 <기본법> 및 행정장관을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집단 시위와 질서정연한 해산은 그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지만, 2019년부터 윌리엄 웡의 후인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홍콩 시위는 레이 초우의 이론적 진단이 현실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주변의 주변’ 또는 ‘몇 가지 다른 식민주의의 중첩’ 사이에 놓인 홍콩인들이 자신의 주변성과 식민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다원적 문화의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런 주변성과 식민성을 내면화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홍콩인들은 대륙 신이민, 베트남 보트피플, 필리핀 가정부들에게 폭군으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周蕾, 1995: 146). 홍콩의 현실에서 이들 소수자를 수용하는 것은 정부 등의 공적 영역도 아니고 가정의 사적 영역도 아니다. 프룻 챈(Fruit Chan. 陳果)의 <리틀 청(細路祥)>(1999)에서는 두 가지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소수자 자신들의 커뮤니티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전자가 정서적 유대와 위안을 준다면 후자는 오락과 정신적 위무를 제공한다. 고든 매츄(Mathews, 2001)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그들은 거꾸로 종교 활동에서 오락과 정신적 위안을 구매(소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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