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 불안하며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 젊은이들의 심리상태를 특유의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홍콩의 영화감독 웡카와이(1958년생)는 그의 특이한 무협영화 <동사와 서독>(1994)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의 홍콩의 상황을 특이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웡카와이의 작품은 그 구성이 튼실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도시 주변부 인간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으며, 홍콩의 일상을 특유의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집요하게 추적한다”(크라머, 2000: 326). 특히 그는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홍콩인다움(HongKong-ness)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충칭의 삼림(重慶森林)>(1994)에서는 두 쌍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매개로 하여, 영국 황실의 제복을 벗어 던짐으로써 식민통치의 종결을 선언하였고, 시한이 된 통조림을 통해 잉글랜드에 의해 가공된 홍콩의 조차기간이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타락한 천사(墮落天使)>(1995)에서는 파트너 교환의 문제를 통해 잉글랜드의 식민 지배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의 어려움을 예견하기도 하였다.
<동사와 서독>은 근현대 최고 작가의 하나인 진융(金庸)의 작중인물들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신세대 감독답게 그들을 해체하여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동사(東邪. 黃藥師)와 서독(西毒, 歐陽峯)은 남제(南帝, 段皇爺), 북개(北丐, 洪七公), 중신통(中神通, 王重陽)과 함께 진융 작품 특유의 오각형 구조를 형성하며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영웅문 1부)과 신조협려(神雕俠侶)(영웅문 2부)의 주요한 강호(江湖) 배경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틀을 구성하고 있다. 웡카와이는 진융의 작품에서 결코 주인공이 아니었던 악랄한 서독과 괴팍한 성격의 동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Ashes of Time’이라는 영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간도 해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전히 홍콩인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다른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영화는 대부분 주요 화자인 구양봉(張國榮분)의 독백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는 훗날 서쪽 지방의 패자가 되어 서독이라 불리고 영화에서 자신의 피고용인이었던 북개 홍칠공(張學友분)과 결투를 벌이다 함께 죽게 된다. 그는 젊었을 때 ‘천하를 제패(打天下)’하려고 바쁘게 돌아다니다 실연의 상처를 입는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애인(張曼玉분)이 자신의 형과 결혼한 것이다. 결혼 전날 뒤늦게 함께 떠나자고 권유하지만 여인은 끝내 거부한다. 구양봉은 이 아픔을 망각하려 자신을 사막에 유배시키고 해결사 일을 하면서 냉철하게 돈벌이에 몰두한다. 우리가 실연의 상처를 망각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구양봉의 형상을 홍콩과 연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조국으로부터 격리된 채 중국의 전통문화는 메말라가고 새로운 서양 문화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문화의 ‘사막’에 유배된 홍콩, 죽의 장막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홍콩은 중개무역을 통해, 식민지이면서도 종주국을 능가할 정도로 경제가 발달했다.
영화에서 구양봉의 첫 번째 고객은 모용연(林靑霞분)이다. 그(녀)는 대연국(大燕國)의 공주로, 망국(亡國)의 수복이라는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고 그 때문에 남장을 하고 다닌다. 먼저 모용연(慕容燕, 남)은 구양봉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저버린 황약사(梁家輝분)를 죽여 달라고 하고, 다음에 모용언(慕容嫣, 여)은 오빠가 자신을 황약사와 떼어놓았다고 하면서 오빠를 죽여 달라고 한다. 구양봉은 두 남매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가 되면서도 그들이 ‘상처받은 사람’임을 알아챈다. 굳이 ‘정신분석학’의 잣대를 들이대 보자면, 조국 연(燕)나라를 수복하려는 모용연(남)이라는 초자아(superego)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모용언(여)의 이드(id)를 억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홍콩인의 양면성, 다시 말해 오랫동안 기다렸으면서도 망각하고 싶은 중화제국으로 회귀해야 하는 당위와, 대(大)브리튼 제국을 따라가고 싶은 바람이 빚은 갈등의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모용연/모용언(중국어 발음은 같다)이 훗날 최고의 검법인 독고구검(獨孤九劍)을 익혀 강호에 우뚝 서게 된 것은 홍콩의 독립에 대한 환상으로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주인공 동사 황약사는 분방한 애정 행각을 벌인다. 그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는 현재 다른 남자의 부인이면서 남편의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알고 보니 황약사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리워하는 남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절친한 친구 구양봉이었다. 그는 구양봉을 질투하는 한편, 여인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기분을 맛보기 위해 다른 친구(장님무사, 梁朝偉분)의 부인인 도화(桃花, 劉嘉玲분)와 사랑을 나누었고, 또 다른 친구 모용연(남)의 여동생 모용언(여)을 희롱하여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리만족은 진정한 욕망의 충족이 아니다. 결국 사랑하는 여인이 죽자 그는 그녀가 구양봉에게 보낸 취생몽사(醉生夢死)주를 마시고 모든 것을 망각하고 동쪽으로 떠난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좋아했던 복숭아꽃(桃花)만 기억에 간직한 채.
다시 한번 모용연/모용언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황약사를 욕망하면서도 그 욕망을 거세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구양봉을 황약사로 오인하고(아마도 고의로) 그와 정사를 벌인다. 그런데 황약사의 신분으로 오인된 구양봉은 문득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신의 연인이 그렇게 원하던 말(‘사랑해’)도 쉽게 튀어나오고, 모용연/모용언을 자신의 연인으로 환상하면서 욕망을 추구한다. 2인이 벌이는 4인의 정사! 구양봉의 몸을 빌려 황약사와 사랑을 나누는 모용연/모용언, 그 모용연/모용언의 손을 형수의 애무로 받아들이는 구양봉. 여기에서 현실과 가상은 착종되면서 해체된다.
시간의 선후는 있지만 똑같이 취생몽사주를 마셨으면서도 동사와 서독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모두 망각한 채 동쪽의 도화도(桃花島)로 은거하는 황약사, 그리고 기억 속에서 줄곧 기다려왔던 환상을 간직한 채 고향인 서쪽의 백타산(白陀山)으로 돌아가 패자가 되는 구양봉. 여기에서 동과 서의 공간은 교체되고 그럼으로써 해체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독의 귀향과 패업의 완성을 통해,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가 다른 지역을 압도하며 홍콩식 발전 모델의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읽어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행위는 망각하고 자신의 상처만을 기억하고 있는 황약사를, 150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훌훌 떠나면서 홍콩섬과 커우룬(九龍)반도의 소유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상처만을 기억하고 있는 대영제국으로 보는 것은 결코 지나친 상상이 아닐 것이다.
* 진융의 또 다른 작품인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오악(五嶽)―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과 천룡팔부(天龍八部)의 오족(五族)―송(宋, 漢族), 요(遼, 契丹族), 서하(西夏), 대리(大理), 연(燕)―등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천룡팔부의 가장 주요한 인물인 샤오펑(蕭峰)의 자결 장면(50회)은 그 자체로 대단한 감염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가 ‘오족공화(五族共和)’의 대중화(大中華) 관념(중화 네이션 대가정)을 선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 연(燕)은 전국(戰國)시대 말 진시황(秦始皇)에게 멸망된 나라이다. 형가(荊苛)가 진시황을 암살하려 한 사건은 바로 연의 태자 단(丹)이 계획한 것이었다. 진시황이 6국(魏, 韓, 趙, 燕, 齊, 楚)을 멸망시키고 대륙을 통일한 후 6국의 후예들은 수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진한(秦漢) 사이에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진(秦) 타도를 대의명분으로 삼아 이들 6국의 후예들의 수복 노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넓혀갔던 인물들이다. 한(漢)나라가 건국된 후 6국의 후예들은 대부분 복국(復國)의 의지를 꺾었지만 모용(慕容)씨의 연(燕)만큼은 대대로 수복의 유명(遺命)을 이어갔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진융의 천룡팔부(天龍八部)의 모용복(慕容復) 부자에 관한 서술에서 잘 나타난다.
'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웡카와이 영화와 홍콩인의 정체성 (0) | 2023.10.06 |
---|---|
<차이니즈 박스>: 변화 없기를 바람과 희망 없는 변화 (1) | 2023.10.06 |
홍콩영화와 1997년 (1) | 2023.10.06 |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홍콩문화 (14) | 2023.10.06 |
반환 이후의 홍콩인 정체성 (2) | 2023.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