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반환 이후의 홍콩인 정체성

ycsj 2023. 10. 6. 09:24

반환 이후 홍콩인 정체성을 내셔널 정체성과 에스닉 정체성 또는 지역적 정체성의 길항(拮抗)으로 파악하는 훙호펑(Hung, 2018)은 홍콩인 정체성의 주체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등장한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신중간계급’의 등장에 주목한다. 이들은 1930년대에 형성된 영국의 식민지 행정부, 영국 부르주아계급, 중국 부르주아계급으로 구성된 ‘지배 엘리트 연합체’에 반감을 품고 홍콩적 삶의 방식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계층으로 성장했다. 여기에서 반환 전과 후에도 ‘관료 엘리트’와 함께 여전히 ‘지배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중국 부르주아계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앨리스 푼(Poon, Alice)에 따르면, 홍콩의 중국 부르주아계급은 주로 홍콩 부동산 개발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홍콩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서 부의 과도한 집중과 빈부 격차가 발생했고, 그 결과 토지 및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 임대료 상승, 생필품 가격 상승, 공익사업과 공공서비스 요금 상승, 중소기업 퇴출, 시장 진입장벽으로 인한 창업 기회 박탈, 실업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해 홍콩의 경제력이 저하되었다(푼, 2021). 홍콩의 부동산 문제는 다른 사회구조적 요인과 결합해 홍콩 시민들, 특히 청년층의 불만을 촉발하게 된다. 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을 외부 세계로 향하는 창문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인해 홍콩의 중국 부르주아계급과 제휴했고, 그에 따라 홍콩의 경제적 상황은 반환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은 홍콩을 떠날 것에 대비해 식민지의 탈식민화 과정으로서 지역 민주주의와 자치라는 정치개혁을 시행했다. 이는 한편으로 식민지에서의 민주개혁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시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환 이후 중국의 권위적 전체주의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불씨를 만들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개혁은 ‘지배 엘리트’ 그룹의 이익을 반영하는 직능선거구를 채택했는데, 이는 영국과 중국이 합의한 산물로, 반환 전과 후 당국이 입법회를 장악하는 장치가 되었다. 결국 민주개혁을 지지하는 민주파가 홍콩의 지방 자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보수적인 재계 엘리트와 중국 관료에게 저항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앞에 소개한 2016년 홍콩대학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홍콩인이라 응답한 것을 두고 훙호펑(Hung 2018)은 홍콩인이 내셔널 정체성보다는 에스닉 정체성을 더 우선시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홍콩의 지역적 정체성(local identity)을 위험한 분리주의 주장이라 공격하면서 ‘애국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려 했다. 중국 당국의 이런 강압은 홍콩인의 저항을 야기하고 홍콩 정체성의 강화로 이어졌다. 이른바 ‘중국 내셔널리즘과 홍콩 로컬리즘의 길항(拮抗)’이다.

장정아(2017)는 홍콩 이야기와 관련해 기존의 ‘국제대도시’ 담론을 비판하면서 이 땅을 지킬 가치가 있기에 여기서 살아가겠다는 스토리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어 반환 이후 ‘홍콩인 정체성의 새로운 변모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녀는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기원을 ‘도시 공간을 둘러싼 항쟁’에서 찾고 있다. 항쟁의 주체들은 우선 2006~2007년 ‘인민상륙행동’을 고안해내고 ‘인민규획대회’를 열어 도시 규획의 폭력성과 관상(官商) 결탁을 비판함과 동시에 재개발계획의 주인은 인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부두철거 반대 운동’에서 시작했다. 이 항쟁은 도시 거주민 모두에게로 확대된 도시권을 체현했는데 인민상륙행동 때 ‘본토호(本土號 The Local)’라 이름 붙인 배에 함께 타고 황후부두에 상륙하는 퍼포먼스에는, 홍콩에서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이들―외국인 노동자, 대륙에서 온 신이민(新移民), 거류권 싸움을 하는 대륙 자녀, 그리고 철거․재개발 지역의 주민 등―을 참여시켰다. 한편 2011년 조슈아 웡(Joshua Wong)과 이반 람(Ivan Lam)이 주축이 된 ‘학민사조(學民思潮)’ 그룹은 중국의 국민교육 과목 시행이 ‘중국인 되기’를 강요해 홍콩의 사상 자유를 훼손할 것으로 보고 국민교육 도입 철폐에 앞장섰고, 2012년에는 국민교육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입법회가 있는 타마르(添馬) 점거 등을 통해 행정장관 렁춘잉의 항복을 받아냈다. 부두철거 반대 운동과 국민교육 반대 운동은 2014년 행정 수반의 직선제를 요구하면서 79일 동안 도심을 점령한 우산혁명으로 이어지는 도시 공간 항쟁의 씨앗이었다. 우산혁명은 도심의 평화적 점령과 ‘유동(流動) 민주 교실’이라는 방식을 고안해냈지만, 지식인 중심의 온건파와 학생 중심의 강경파의 의견 대립으로 운동의 동력이 상실되어 79일간의 장정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우산혁명’을 교훈 삼아 혁명 주체들은 각자 지역공동체로 돌아가 지역에서 자주적 권리를 실현하고 정치에 참여하며 도시를 바꿔나가는 움직임을 곳곳에서 전개함으로써 더 큰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커뮤니티 시민헌장(社區公民約章)’을 만들고 지역사회 주민들의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민주적 결정의 경험을 축적하여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힘입어 독립영화 <십년>을 50여 개 단체가 34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무료 상영을 해 하룻밤에 6,000명의 시민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이들에게 홍콩은 내가 바꿔야 하고 바꿔낼 수 있는 일이 많기에, 함께 민주를 배우고 실천해나갈 사람들이 있기에 사랑할 땅이 되고 있다. 장정아는 이어서 삼수이포(深水埗) 지역의 도시권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 도시 재개발은 흔히 젠트리피케이션의 방향으로 가기 마련인데, 이 지역의 재개발은 단지 보상 차원을 넘어서 현존하는 ‘공동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는데, 이는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도시권 논의에도 부합하는 움직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삼수이포는 이제 문화유산의 거리로서 진정 ‘홍콩적인 특색’이 남아있고 공동체 경제가 살아 있는 활기찬 지역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후에도 2016년 ‘노점 행상 단속에 항의’ 등을 통해, 홍콩의 대안적 생활 방식과 생존 경로의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홍콩 정부의 도시 규획에 반대하며, 중국화에 저항하며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비장한 모색이 확산하면서, 홍콩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가게와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는 움직임을 보였다(장정아, 2017).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와 2020년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는 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창 불타오르던 저항 열기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국가보안법 공포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제 민주파가 원하는 민주개혁은 긴 동면기에 접어들었다.

인민공화국이 홍콩 반환 시 내걸었던 일국양제(一國兩制)는 이제 중국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일국’과 홍콩 로컬리즘을 주장하는 양제로 분열되었고 양자 간의 대립은 강경한 억압과 격렬한 저항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전자는 국가보안법 시행이라는 강수를 둠으로써 표층적으로 진정 국면을 조성했고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국에 체포되거나 해외로 망명함으로써 훗날을 기약하는 상황이 되었다. 로컬리즘은 분파가 다양한데, 그중 급진적인 주장의 하나인 홍콩 독립 주장은 친완(Chin, Wan. 陳雲. 본명은 陳雲根)의 『홍콩 도시국가론(香港城邦論)』(2011)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대다수 홍콩인은 중국 내셔널리즘과 홍콩 로컬리즘 사이에서 유동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양자 사이에서 유동하는 것 자체가 홍콩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중국’의 전망에서 “지난 20년 동안 홍콩에서 벌어진 일은 중국의 세계를 향한 개입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전환이자 체제의 정치경제적 절대명령(imperative)이 추동한 전환”이라고 보는 리칭관(Lee, Ching Kwan. 李靜君)은 홍콩이 저항의 도시로 부상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글로벌 부상과 외부를 향한 파워의 사용”과 “20년 동안 지속돼 온 아래로부터의 탈식민화(decolonization from below)”라는 서로 모순적인 두 궤도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Lee, 2022)하면서, 우리에게 홍콩을 바라보는 거시적 시야를 요구한다. 전자와 관련해 리칭관은 중국의 홍콩 정책이 반환 이전에는 글로벌 경계 지역으로서의 홍콩의 독특한 지위를 용인하고 활용하고자 하던 것에서 반환 이후에는 개입주의로 전환한 점에 초점을 맞춘다. 개입주의적 전환의 주요 원인으로 동유럽에서 벌어진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과 2008년의 경제위기를 들면서, 두 사건(event)으로 중국은 대륙뿐 아니라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黨國)의 정책 전환은 반환 이전 ‘탈정치화의 문화’(culture of depoliticization) 상황에서 반환 이후 정치가 홍콩 연구의 중심 초점으로 부각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2020년 7월 1일 공표된 국가보안법은 홍콩 <기본법> 제23조에 국가보안법을 삽입한 것이다. 사실 홍콩 특별행정구의 지도자들이 경제 문제와 사스 등의 공공보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2003년 시위가 촉발된 점 때문에 홍콩을 직접 통제하려는 중국 당국은 <기본법>에서 중국의 개입을 열어놓은 것에 근거해 일국양제를 무위로 돌리고 일국의 제약을 강화하려 했다. 앞에서 살펴본 홍콩인 정제성의 변모 과정 또는 민주개혁 운동은 중국 당국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 홍콩 부동산 재벌은 애초 부동산 부문에서 첫 번째 금 항아리를 발견한 부동산 개발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공익사업․공공서비스 회사나 돈벌이가 될 만한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러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수의 가장 두드러진 예는 다음의 다섯 가지다. ① 청쿵홀딩스Cheung Kong Holdings, 長江實業는 1979년 파크앤숍 슈퍼마켓 체인을 비롯해 광범위한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 재벌 허치슨 왐포아Hutchison Whampoa를 인수했다. ② 1980년부터 선훙카이 부동산은 공공버스 사업자인 주룽버스(현재는 트랜스포트 인터내셔널 홀딩스 산하)에 대한 지배권을 점차 확대해갔다. ③ 헨더슨 랜드Henderson Land Development, 恒基兆業地産의 리자오지 회장은 1981년 상장하기 전에 도시가스 사업을 독점한 홍콩차이나가스의 지분을 매입했다. ④ 1985년 허치슨 왐포아는 전력 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두 업체 중 하나인 홍콩전력을 인수했다. ⑤ 신스제발전은 1998년 홍콩 공공버스 독점 운영권(이전에는 차이나 모터 버스가 운영) 입찰에 참여하여 낙찰받고 2000년 헨더슨이 운영한 홍콩페리로부터 페리 서비스 면허를 취득했다. 이상 푼, 2021: 45~46쪽 참조. “부동산과 공익사업, 공공서비스 사업을 병행하는 대기업은 모두 홍콩의 유력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 청쿵/허치슨 그룹의 리(리자청) 가문, 선훙카이 부동산 그룹의 궈 가문, 헨더슨 그룹의 리(리자오지) 가문, 신스제발전 그룹의 정(鄭) 가문, 워프/휠록 그룹의 바오와 우 가문, 그리고 CLP홀딩스 그룹의 카두리Kadoorie 가문이다”(푼, 48).

 

** 리칭관(Lee, 2022)은 ‘반(反)자본주의 로컬리즘’, ‘반(反)중국 로컬리즘’, 그리고 ‘홍콩의 정치적 자율성과 자결권을 주장’하는 로컬리즘으로 구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