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ycsj 2023. 1. 25. 09:57

『미의 역정』은 중국 미학사인 동시에 중국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

할 만하다. 3000년이 넘는 중국 미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유가

전통으로 설정하고, 그것의 시대별·장르별 흐름의 특색을 잡아내고

있다. 벤야민은 1930년대 파리를 관찰하기 위해 ‘산책자’(the Flâneur)

의 시점을 선택했지만, 3000년이 넘는 중국이라는 시공간을 관찰하기

에 산책자의 어슬렁거림은 안이해 보인다. 리쩌허우는 부득불 거시적

조망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부분적으로 산책자의 여유를 보이

기도 하지만, 주요하게는 조감자(aeroviewer)의 시선을 취하고 있다. 조

감자의 시선은 우선 예술사회학의 관점에서 3000년이 넘는 대하(大河)

물줄기의 본체에 초점을 맞춘다. 리쩌허우는 선진(先秦) 시대에 형성된

‘이성주의 정신’을 중국 미학사의 특징으로 꼽는다. 이어서 시대별 특

색에 눈길을 주는데, 이는 왕조 변천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

지만 리쩌허우는 단순하게 왕조의 변천을 따라 시기를 구분하지는 않

는다. 진(秦)의 제도를 계승했다는 한(漢)을 초(楚)와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고, 똑같은 당(唐)임에도 불구하고 성당(盛唐)과 중당(中唐)을 미학적

으로 다른 시기로 분류하며, 나아가 한족의 송(宋)과 몽골족의 원(元)을,

그리고 한족의 명(明)과 만주족의 청(淸)을 하나로 묶는 등의 시기 구분

은 리쩌허우의 독창적 안목을 드러내고 있다.

리쩌허우는 중국 미학사를 10시기 — 상고(上古), 청동, 선진, 초한,

위진, 불교 예술, 성당, 중당, 송원, 명청 — 로 나누고, 그 가운데 비교

적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네 시기를 꼽는다. 첫째는 백가쟁명(百家爭

鳴)·백화제방(百花齊放)의 선진 시대다. 둘째는 위진(魏晉) 시대로, 철리

적(哲理的) 사변의 색채를 많이 띠었고 이론 창조와 사상 해방이 두드러

졌다. 셋째는 중당에서 북송까지로, 문화와 사상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

하고도 전면적인 개척과 성숙이 이루어지면서 사대부(士大夫)라는 세

속 지주가 후기 봉건사회의 기초를 공고히 다졌다. 넷째는 명대 중엽

으로, 시민 문학과 낭만주의 사조가 자본주의라는 근대 의식의 출현을

상징한다.(리쩌허우 2014, 343)

이렇게 10시기로 나눈 리쩌허우는 다시 시대를 주도한 장르에 주목

한다. 이는 각각 그 시대 예술 정신의 응결 지점이었다.(리쩌허우, 307)

이를테면 한대의 공예와 부(賦), 육조(六朝)의 조소(彫塑)와 변문(騈文),

당대(唐代)의 시가와 서예, 송원의 회화와 사곡(詞曲), 명청의 희곡과 소

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리쩌허우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예술 정

신을 응집시켜 각 장의 표제로 삼고 있다. 상고 시대의 토템과 원시 가

무, 청동 시대의 도철(饕餮)과 종정문(鐘鼎文), 선진 시대의 시가와 건축,

초한의 이소(離騷), 위진의 풍도(風度), 불교 예술, 성당의 시가·산문·서

예, 중당의 운외지치(韻外之致), 송원 산수의 의경(意境), 명청의 시민 문

예 등등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거시적으로 조감할 때 예술사회

학의 방법을 동원했다면, 시대를 주도한 장르를 분석할 때 리쩌허우는

심미심리학의 방법을 가지고 온다. 전자가 예술과 경제・정치 발전의

불균형, 그리고 예술 각 부류 간의 불균형 등에 초점을 맞추어 문예의

존재 및 발전에 내재적인 논리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고전 작

품 속에 응결된 중국인의 심미적 취향과 예술 스타일이 왜 오늘날 중

국인의 느낌과 애호에 여전히 부합하고 친밀감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

춤으로써 예술작품의 영원성의 비밀을 풀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미의 역정』의 백미는 성당(盛唐)에 대한 분석이다. 리쩌허우는 이 시

기를 ‘낡은 것을 타파’[破舊]하고 ‘새로운 것을 수립’[立新]한 전환점으

로 파악했다. 이백(李白)과 장욱(張旭) 등에 초점을 맞추면, ‘성당’은 옛

사회 규범과 미학 기준에 대한 파괴와 돌파가 일어난 시기로서, 그 예

술적 특징은 내용이 형식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쳐나 형식의 어떠한

속박과 제한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미처 형식이 확정되지 않은 모방

할 수 없는 천재성의 발로다. 한편 두보(杜甫)와 안진경(顏眞卿) 등에 초

점을 맞추면, ‘성당’은 새로운 예술 규범과 미학 기준을 확정·수립한

시기로, 그 특징은 형식을 중시하며 형식과 내용의 엄격한 결합과 통

일을 요구함으로써 학습하고 모방할 수 있는 격식과 본보기를 세운 것

이다. 전자가 낡은 형식을 돌파했다면 후자는 새로운 형식을 수립한

것이다.(李澤厚 1994a, 135) 그러기에 리쩌허우에게 성당은 이백과 장욱

의 성당과 두보와 안진경의 성당 두 종류다. 그것은 두 종류의 서로 다

른 ‘의미 있는 형식’으로, 서로 다른 사회적·시대적 내용이 각각에 간

직되어 있고 적전되어 있다. 이로써 각자의 풍격상의 특징, 심미적 가

치,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리쩌허우 2014,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