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판(南帆, 2001)은 대중 전파 매체의 산파인 전자기술이 가져온 충격파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자문화를 바라보는 이중 시야를 분석한다. 난판은 ‘매체는 메시지’라는 마샬 매클루언(McLuhan, Herbert Marshall)의 언급과 “TV로 대변되는 전자문화가 가져온 정보가 단순한 화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조성한 새로운 관계와 감지 모델이고 가정과 집단의 전통 구조의 개변”이라는 장 보드리야르(Baudrillard, Jean)의 논단 그리고 ‘매체는 이데올로기’라는 힐리스 밀러(Miller, J. Hillis) 등을 참조체계로 삼아 전파 매체와 문화 유형 사이의 역사적 호응에 관심을 기울인다.
난판은 「노래방과 MTV」에서 노래방을 전파 매체에 호응한 대표적인 문화 유형으로 설정하고, 오늘날 노래방 기계와 뮤직비디오 기술이 조작하고 제조하는 대중의 서정 형식에 주목했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중국인의 서정 형식은 유행가로 구현되면서 새로운 문화전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중국 시가(詩歌)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20세기 말 “중국 신시는 이미 대중의 서정 형식을 담보할 능력이 없다”라고 단언하면서 “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서정 형식은 이제 공석이 된 셈”(난판, 2009: 125)이라 평가한다. 이 공석을 파고든 것이 덩리쥔(鄧麗君)으로 대변되는 유행 음악이었는데, 이 유행 음악은 개혁개방과 함께 들어온 카세트테이프와 녹음기의 도움을 받아 대륙을 석권했다. 이후 대륙에서도 ‘음악산업’이 발전해 “유행가 가수들이 근현대적 생산방식을 보유하고 설비가 뛰어난 녹음실에서 한 구절 한 구절 녹음한 노래들은 기계 복제와 외부 포장, 엄청난 광고를 통해 테이프와 CD로 만들어져 크고 작은 상점으로 팔려나갔고 무수한 팬들을 확보했다”(난판, 126). 이제 시인들은 유행가 가수와 경쟁하고 인문학자들은 할리우드 영화와 다퉈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물론 이 경쟁에서 승자는 가수와 영화였다. 난판은 이런 현상을 문화전환(cultural turnover)으로 읽고 “문화전환 배후에는 생활방식의 전환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난판, 126)라고 진단한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게 서정시와 인문학은 이제 몰입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유행가의 향유는 한 세대를 읽어내는 문화기호였다. 이들은 시장과 기계에 의해 조직된 서정 대중이다. 이 대중은 전자기술과 기계 그리고 시장의 사회동원 능력에 힘입어 네이션과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난판은 서정시가 유행가요에 먹힌 사실을 직시하면서 이를 서정시의 죽음으로 읽어내지 않고 유행가요에서 서정시의 흔적을 찾아내고자 한다.
중국에서 시(詩)는 항상 가(歌)와 결합해 시가(詩歌)라고 불렸다.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악부시(樂府詩),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으로 이어지는 중국 운문(韻文) 전통은 대부분 민간에서 백성이 즐겨 부르던 민가에서 유래했다. 이 민가를 문인이 손을 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시경의 채시(采詩)가 대표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백성들이 즐겨 찾는 노래방에서 불리는 노래들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시가(詩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때 아파트 문화(옆방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와 사우나 문화(들어갔다 나오면 시원하다)의 혼합이라는 평가를 받던 노래방 문화가 21세기 서민의 새로운 서정 형식을 대변하게 되었다고, 난판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난판은 먼저 노래방의 반주 기계인 가라오케에 주목하면서 가라오케로 인해 사람들이 노래 욕망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가라오케는 서정 형식을 ‘듣는’ 것에서 ‘부르는’ 것으로 바꾸면서 중요한 전환을 이루어냈다. 이는 ‘자아 표현’의 실현인 셈이다. 아울러 가라오케는 “모든 방해를 자동으로 제거하고 노래 부르는 행위를 기계가 노래 부르는 사람을 모시는 행위로 바꿔 주었다”(난판, 133~4). 이는 ‘문화 민주’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라오케는 주체의 환상을 완성했고 소비의 그물을 촘촘하게 짜는 역할을 했다. “물론 사람들은 이것이 전자기술과 기계 성능이 규정하는 서정이고, 기술과 기계야말로 노래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난판, 134). 지금은 열풍 단계가 지나갔지만, 많은 사람이 회식 후 필수 코스로 갔던 곳이 노래연습장이었던 한국의 상황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노래방 문화를 “‘특수한 방식으로 조직화된 음향 매체를 통해 일어나는 ‘지금, 여기’의 ‘음악 문화’”(문지현, 2016: 124)로 해석하는 문지현은, 가라오케 노래반주기는 일본에서 들어왔지만, “노래반주기의 탄생은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연주의 장(場)을 재생산하며, 청중의 위치에서 일방적인 음악 수용자의 역할에 머물러있던 대중들에게 ‘비(非)전문적’ 가창의 즐거움을 제공하며 음악의 연행 방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문지현, 121)라고 한국 노래방 문화를 개괄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MIDI 작곡 방법의 도입과 컴퓨터 메모리칩의 응용은 일본의 기술에 의존하던 한국의 노래방이 하나의 독립된 음악 시장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문지현, 122)한 후 “국민의 90.5% 이상이 경험하는 대중적 오락거리로 번성하고 있으며, 음악산업분야에서 절반 이상의 매출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비중 또한 높아졌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07).”(문지현, 123)라고 하면서, 노래방이 한국 대중의 광범한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노래방의 지구화는 노래반주기라는 전자 매체가 창출해 낸 음악 문화의 ‘이산(離散)된 공공 영역’(아파두라이, 2004)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문지현, 124)라고 평가하고 있다.
노래방의 또 하나 기능은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는 우리를 시와 노래와 춤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지는 종합축제의 마당으로 데려간다. 난판은 뮤직비디오의 특징을 신체 영상의 의미, 포스트모던의 맥락, 영상 표의체계의 의미라는 세 가지 시야에서 고찰한다. 한국 노래방 문화에서도 뮤직비디오는 빼놓을 수 없는 무대 장치다. 풍경 또는 인물을 배경으로 하던 뮤직비디오가 해당 노래를 부른 가수의 실황을 재연함으로써 노래 부르는 사람이 가수와 함께 부르는 착각 나아가 그 가수가 된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착각과 환각은 원래 대중을 마비시키곤 하지만, 노래방에서의 착각과 환각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에 그칠 뿐이다. 자발성과 창의성이 부재한 단순 오락적 성격이라는 비판은 일반 대중문화의 속성을 지적한 것이고, 그것은 역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라오케’와 ‘노래방’은 단순한 ‘언어의 번역’을 넘어 ‘문화의 번역’이라 볼 수 있을 것”(문지현, 162)이라는 지적처럼, 일본 ‘가라오케’에서 중국과 한국의 ‘노래방’으로의 전환은 ‘언어번역’과 ‘기술 번역’을 토대로 삼은 ‘문화번역’의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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