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쑹웨이제의 진융(金庸) 무협소설 연구

ycsj 2022. 9. 1. 07:04

쑹웨이제는 진융과 그 소설의 특징을 거론하면서 ‘예외’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진융의 무협소설은 대중문화 범주에 속하면서도 단순한 통속문학이 아니므로 유행소설의 예외다. 그의 소설은 홍콩에서 창작되었지만 홍콩문학의 스타일에서 벗어났고 대륙을 풍미했지만 대륙 당대문학의 틀과도 달라서 대륙 문단과 홍콩 문단의 예외다. 그의 무협소설은 고대 전통이 소홀히 취급되는 근현대 시기에 고전의 우아함과 몽경(夢境)을 보존하고 있으니 또한 당대 주류문학과 선봉(先鋒)문학의 예외다. 게다가 신문업계의 거장이자 무협소설의 명가인 그가 뜻밖에도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홍콩중문대학과 베이징대학의 명예교수 등의 직함을 받은 것 또한 예외다(宋偉杰, 1999: 1). 일련의 예외는 진융의 소설을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로 만든다. ‘두터운 텍스트’는 ‘두텁게 기술’된 텍스트로, “다원적인 독자의 기대시야를 다양하게 융합함으로써”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구조를 가진 텍스트”(임춘성, 2013: 224, 253)다. 두터운 텍스트는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을 가지기 마련이다. 진융 독자들은 개인의 기호(嗜好)적 차원에서, 연구자는 학술적 목적에서, 진융과 그의 소설을 자리매김하려 하지만, 나름 진융 소설의 핵심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더 넓고 깊은 텍스트의 세계를 깨닫기 마련이기 때문에 진융의 텍스트는 단순하고 단일한 해석에 머무르지 않는 두터운 텍스트다. 

그러므로 쑹웨이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융의 텍스트를 각기 다른 장절에서 각기 다른 장르로 다루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진융 소설의 ‘문화적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각기 다른 논술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진융 소설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복잡성과 자리매김하기 어려운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진융 소설의 ‘자리매김’의 어려움에 직면해 쑹웨이제는 ‘문화연구’의 방법론을 대륙의 ‘진융 현상’ 및 ‘진융 텍스트’와 결합하려 한다. 그에게 ‘문화연구’는 서양 기존의 ‘문화비평’ 이론을 단순하게 가져와 중국의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와 현상에서 출발해 중국의 당면한 대중문화에 존재하는 겹겹의 곤궁과 도전을 해결하는 것이다. 쑹웨이제는 새로운 시야로 진융 소설의 풍부한 내포를 다시 독해하는 동시에 착종(錯綜)되어 복잡한 진융 현상을 당대 중국어 세계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결합하고자 한다. 이런 연구 의도는 당대 중국의 ‘아속(雅俗) 문화’의 관계, ‘문학사 새로 쓰기’, 대중문화연구의 흥기, 구체적 명제와 ‘패러다임’ 전환 등의 주제를 진융 연구에 접합하려는 것이다. 그는 ‘진융 소설’, ‘진융 현상’과 서양 문화비평의 교차점을 찾아 발견하고 그에 따라 비교문학의 연구 방법을 동원해 서양 이론과 중국 문제를 융합시키고자 한다. 

쑹웨이제가 진융을 연구하는 핵심 주제는 ‘오락행위에 내재한 유토피아 충동’이다. 그가 볼 때 진융 소설 읽기는 ‘오락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오락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쑹웨이제는 오락에 ‘도피’와 ‘만족’의 기능이 있고 유토피아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쑹웨이제가 보기에, 대중문화의 오락행위는 유토피아주의를 요지로 삼고 있는데, 이때의 유토피아는 소비자의 감각과 심리에 호소를 통해 감각 층위에서의 ‘속죄’와 ‘직접적이지 않은 보상’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락행위가 만드는 유토피아주의에는 적극적 기능과 소극적 기능이 공생 공존하고 있다. ‘도피’와 ‘만족’ 외에 유토피아에는 현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유토피아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한다. 

쑹웨이제는 진융 소설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통해 진융 무협 유토피아의 ‘공간’과 ‘사람(협객)’의 구조, ‘젠더 정치’, ‘개인 표술’과 ‘네이션-스테이트’ 명제, 소수자의 역사 기억과 문화 전승, 진융 소설의 장르 초월 유행 및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의 진융 소설의 부각 등의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거시적 각도에서 진융 현상의 당대적 문화 효과를 파악하는 동시에 미시적 시각에서 진융 소설 텍스트에 내장된 구체적인 징후를 해독하려는 것은 그 나름의 문화연구 방법이다. 그 가운데 네이션과 에스닉 그리고 젠더 문제는 다른 무협소설 연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여기에서는 정파와 사파, 문제적 세계의 문제적 개인, 젠더, 에스닉 등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기로 하자.

쑹웨이제는 진융의 수사 전략 가운데 ‘사(邪)가 정(正)을 이기지 못함(邪不勝正)’에 주목한다. 무협소설은 ‘무(武)’와 ‘협(俠)’으로 구성된 만큼, 당연히 궁극적으로 사파(邪派)가 정파(正派)를 이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융의 소설에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은 다른 소설에서처럼 도식적이지 않다. 이른바 ‘정파’ 속에 사악한 인간이 있고 이른바 ‘사파’ 속에도 인간다운 사람이 있다. 심지어 정파에도 속하지 않고 사파에도 속하지 않는 문파와 사람도 있다. 진융은 단순한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밝음이 어두운 그림자를 밝힘에도 어두움은 소실되지 않고, 기쁨이 고통을 극복해도 고통을 해소하지는 못하며, ‘시(是)’가 ‘비(非)’를 넘어서지만 ‘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무협소설의 장르적 속성이자 한계인 ‘도식화’를 극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서사 세계인 강호는 ‘전형인물이 재현되는 전형환경’이 아니라, “‘문제적 개인’이 문제적 세계와 만나는 곳”(宋偉杰, 27)이다. ‘전형인물과 전형환경의 상호 통일이론’은 엥겔스가 「마가렛 하크네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전개한 이론이다. 엥겔스는 편지에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세부 묘사의 진실성 외에도 전형환경 중의 전형인물을 진실하게 재현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하크네스(Harkness, M.)에게 노동운동이 고양된 시대 상황에서 계급적 역량을 인식한 노동자들을 묘사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시대의 보편성을 담지한 전형인물을 묘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전형이론은 엥겔스의 의도와는 달리 전형적인 환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유형화, 도식화의 함정에 빠트리기 쉽다. 그에 반해 진융의 ‘문제적 세계’ 속의 ‘문제적 개인’의 형상화는 유형화와 도식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전술이다. ‘문제적 개인’은 고대 문화 전통과 강호를 넘나들면서 ‘문제적 상황’에 도달한다. ‘문제적 상황’이란 “무학 경계와 인생의 귀착점 사이의 미묘한 분해”(宋偉杰, 27)를 가리킨다. 대부분 주인공은 무공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강호에서 은퇴한다. 그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근현대인처럼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은둔한다. 

진융의 ‘문제적 세계’는 주요하게 북송(北宋)부터 청초(淸初)까지 ‘이족(異族)이 주인이고 한족이 노예’였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문제적 세계’는 한족과 이족의 구분, 강세 문화와 약세 문화의 충돌, 중토(中土) 문화와 이역 문화의 부딪힘, 고전 전통과 근현대성의 교접 그리고 수시로 곤경에 빠지는 근현대인의 고단함과 곤혹 등으로 전환되어 보다 광범한 의미 범주로 보편화하고 추상화되었다. ‘문제적 세계’라는 현실을 정복하는 협객의 역량은 소설 인물의 각종 무공 절기의 ‘마술적’ 색채에 표현되고 아울러 인물의 일상생활에 융합된다. 그리고 이런 유토피아 충동의 가장 중요한 체현은 ‘강호의 구원’이다. 진융은 ‘역사’와 ‘소설’이 교착된 우언(寓言) 구조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했다. “강호를 함께 다니는 ‘진실’과 ‘허구’의 무림 인물의 계보 가운데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소설 세계를 구축했고, 아울러 황당한 상황에 대한 남녀 협객의 깬 의식과 실제 행동을 빌어 현실에 대한 상상적인 비판을 달성했다”(宋偉杰, 91). 이른바 ‘역사의 강호화’, ‘강호의 역사화’는 독자를 역사와 강호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만들어 낸 ‘가상 세계(virtual world)’로 이끈다. 

문제적 세계의 문제적 개인은 남성 주인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융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가운데 특히 ‘문제적 여성’이 많다. 이 여성들은 ‘궤도이탈자’로, 강호 가부장 사회의 정상 질서에서 벗어난 ‘위험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진융 소설에서 편견을 가진 정파 인사들에 의해 ‘요녀’로 명명된다. 그녀들이 ‘요녀’라는 고깔을 쓰게 된 공통 원인은 그녀들이 남성 정파의 강호 세계와 상호 대립하는 사파 또는 조정(朝庭)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천도룡기』의 은소소와 조민이 대표적이다. 일반 강호인은 그녀들을 마치 서양 중세의 ‘마녀’와 같이 취급한다. 사파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 협객의 사회 공간과 개인 공간에 개입하게 되고 그에 따라 부득불 또 다른 질서와 규범을 대면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사파 여성에게 ‘미혹’된 정파 남성 협객은 스승의 질책을 받게 되고 심지어 사문에도 용납되지 못한다. 그가 사랑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그도 원래의 신분과 생활에서 유리되어 남녀 두 사람은 모두 각자 집단의 궤도이탈자가 된다. 『벽혈검』의 원승지와 온청청, 『사조영웅전』의 곽정과 황용,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와 조민, 『소오강호』의 영호충과 임영영 등은 모두 정파 남성 협객과 사파 여성이 결합한 사례이다. 이런 수사 전략에서 여성의 ‘혁명성’은 남성에게 전환의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남성이 낡은 편견을 깨트리고 탁 트인 흉금을 가지게 만드는 점에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도전과 도움은 결정적이다. 물론 정파 인물들이 ‘요녀’로 간주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가부장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당연히 작가 진융의 한계다. 사랑하는 한 남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여성, 이는 예나 지금이나 남성 독자들의 판타지이다. 진융은 무협소설의 주요 독자인 남성들에게 ‘무협 판타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이면서도 일편단심의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켜 또 다른 ‘젠더 판타지’를 맛보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당시 가부장제에서 허용되었다는 명목으로 일부다처 구조를 수시로 등장시키는 것도 그 연장이다.

진융의 소설 세계에서 한족은 소수자 그룹으로 묘사되고 이족(異族)은 다수자가 되어 한족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중국 고대사에서 수시로 출현하는 상황이다. 처녀작 『서검은구록』부터 『벽혈검』을 거쳐 마지막 작품 『녹정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만주족과 한족 간의 복잡한 모순을 건드렸고 ‘사조삼부곡’은 한족과 몽골족 등 간의 에스닉 충돌이 두드러졌으며 『천룡팔부』는 송과 요 양국의 한족과 거란족의 이야기를 묘사했다. 한마디로 말해,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 티베트족, 거란족 등 여러 에스닉 공존의 틀, 심지어 러시아 등 서양적 ‘타자’가 호시탐탐(虎視眈眈) 중국을 노리는 상황은 진융 소설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정경이다. 쑹웨이제가 보기에 진융 소설의 ‘네이션-스테이트’ 문제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문화 상상의 이상적 경관 가운데 전개된다. 첫째, 초기 텍스트는 개인적 의미의 협객(소협)이 ‘네이션-스테이트’라는 실체의 도움을 받아 ‘위국위민(爲國爲民)’하는 대협으로 승화하는 것을 묘사했다. 둘째, 중후기 텍스트는 ‘내셔널 영웅’ 식의 대협이 개인화 협객이라는 국면으로 나아갔고, 복잡하게 엉클어진 ‘혼종성’의 사례를 들어 순수한 ‘네이션-스테이트’ 관념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의하고 한족 또는 특정 에스닉 중심주의 경향을 비판했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진융 소설은 중토 무공문화(특히 소림 무공)의 이역 내원과 본토화 노력의 도움을 받아 무공이 한족 것인지 이족(異族) 것인지의 이원대립 사유에 문제제기하고 무공(문화)의 본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양화억이(揚華抑夷)’의 콤플렉스를 미묘하게 드러냈다(宋偉杰, 142). 사실 진융 소설의 ‘국가주의’적 맥락에 대해서는 비판이 필요하다. 비판의 핵심은 근현대적 개념인 네이션이 아직 중국에서 형성되지 않은 소설 내적 역사 시기에 네이션과 에스닉 개념을 무단으로 접합시킨 점이다. 특히 『천룡팔부』에서 교봉/소봉의 에스닉/내셔널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녹정기』에서 위소보를 오족공화(五族共和)의 합작품으로 처리한 것은 작가의 의식을 작중 인물에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용을 가진 진융 소설은 무협소설, 언정(言情)소설, 탐정소설, 탐험소설, 정치소설 및 광의의 환상소설, 성장소설을 한 몸에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여러 가지 장르의 조화와 탈구 과정에서,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가 동반된 사회적 상상, 젠더 정치의 미묘한 단어 배치, ‘에스닉-네이션-스테이트’와 개인 명제의 부딪힘과 화해, 그리고 인성의 선악 및 미추의 투쟁 등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탐토(探討)했다. 진융의 작품에서 선한 사람은 절대적으로 선하지 않고 악한 사람도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다. 바꿔 말하면, 진융 소설은 선과 악, 미와 추의 명제에 대해 복잡하고 깊이 있게 처리했다. 진융 소설은 사회의 이단자와 낙백자(落魄者) 그리고 실패자를 난세의 협객으로 통합시키고, 그들의 생활공간을 이상화된 유토피아 세계로 묘사했다. 진융의 소설은 현대사회에서 출생한 세대를 위해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또 다른 생활을 동경하는 환상 방식을 제공했고 아울러 그들이 한 번 또 한 번 읽는 과정에서 ‘체계적 세계’와 ‘일상생활’이 그들에게 가져온 좌절과 불평을 구원하고 비판하게 했다(宋偉杰, 235~6).

그러나 진융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한족 중심의 중화 네이션 서사를 거리낌 없이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다소간의 혁명성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 남성에게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가부장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진융은 이족(異族)이 한족보다 강한 역사 시기를 선택해 줄거리를 짰다. 소설의 정치 수사는 ‘화이(華夷)의 구분’을 약화하거나 와해시키는 경향이 있었지만, 문화 수사는 오히려 ‘오랑캐가 중화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내재적 의미를 암묵적으로 드러냈다. 이족이 한족보다 강한 역사 시기를 선택해 궁극적으로 한족이 이족을 이겨내는 이야기는 한족 중심의 중화 네이션 서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진융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