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대문학 생산 기제의 시장화 전환(transformation)’이라는 주제 의식으로 문학장을 연구한 사오옌쥔(邵燕君, 2003)은 ‘기울어진 문학장(傾斜的文學場)’이란 표제를 내걸었다. 사회주의 30년 시기 정치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중국 문학장은 개혁개방 이후 잠시 문학의 자주성을 획득한 것 같았으나, 1990년대 개혁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시장화의 특징을 가진 경제장의 영향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오옌쥔의 표현대로 심각하게 기울어졌다. 문학 생산 가운데 온존하는 권력관계와 그 작동 기제를 드러내는 문화연구의 방법을 운용하는 사오옌쥔은 ‘시장화 전환’을 고찰하기 위해 피에르 부르디외(Bourdieu, Pierre)의 문화생산 ‘장’(field) 이론을 가져온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이른바 ‘장’은 서로 다른 권력(또는 자본)을 가진 단체나 개체가 그들이 점거하고 있는 서로 다른 위치 사이의 객관 관계에 따라 구성하는 ‘네트워크’ 또는 ‘구조’다. 이들 권력(또는 자본)에 대한 점유는 “이 장의 특수한 이윤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장’은 문학 자신의 운행과 변화 법칙을 준수하는 공간이고 그 내부 구조를 구성하는 단체 또는 개인은 문학잡지, 출판사, 협찬자 등으로 구성되는 문학 생산기구를 포함한다. 이를테면 비평가, 문학사 저자, 문학상 심사위원, 대학, 살롱 등으로 구성된 문학 가치 인정기구 및 문학의 직접 생산자인 작가 등이다. 이들 단체와 개인은 자신의 합법성을 얻고 이 ‘장’의 ‘특수한 이윤’을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의 와중에 놓여있다. 사오옌쥔은 부르디외의 이론 가운데 ‘문학 자주 원칙’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볼 때 ‘문학장’의 ‘자주 원칙’은 ‘전도된’ 경제 원칙, 즉 ‘패배한 자가 이기는 원칙’ 위에 건립되었다. 예술가는 경제적으로 실패해야만 상징적으로 이길 수 있다. 순예술 생산자는 자기 생산의 요구 외에 다른 요구를 승인하지 않고 ‘상징자본’ 축적 방향으로만 발전한다. 이 논리는 형식 실험과 창신(創新)에 십분 유리하고 많은 전위 운동의 발생은 바로 이에 기대고 있다. ‘문학장’의 내부 등급은 서로 다른 형식의 ‘상징 수익’ 위에 건립된다. 예컨대, 명망(prestige), 신성화/정화/축성(consecration), 지명도(celebrity) 등. 이런 의미에서 ‘문화장’은 ‘신앙의 우주’다. 샤오옌쥔은 관계와 투쟁을 강조하는 부르디외 문학장 이론을 수용해, 중국 당대문학 생산 기제의 시장화 전환 과정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는 한편, 정기간행물, 출판 분야, 문학상 그리고 20세기 말 유행했던 ‘미녀 문학’ 등의 구체적 사례 분석을 결합해 당대 문학장 가운데 중국적 특색을 가진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문학장은 사회주의 시기 내내 정치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76년 마오쩌둥 사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사상해방운동의 결과 문학장은 정치장으로부터 독립한 듯 보였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자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정치 권력 또한 자본주의에 영합해 “부단한 조정을 통해 ‘시장 원칙’과의 새로운 결합점을 찾아냈다”(邵燕君, 2003: 302). 이를테면 ‘광범한 주선율(主線律)’을 바탕으로 삼아 주류 이데올로기의 심미 원칙과 대중의 취미를 상호 결합하고, 리얼리즘의 ‘미적 지도권’을 새롭게 회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오옌쥔이 희망하는 문학장의 자주 원칙은 견지 가능한 것일까? 이제 중국에서 문학장은 정치장의 압력뿐만 아니라 경제장의 통합력에도 직면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 이후 프로문학운동을 통해 기층 민중이 문학창작과 감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문학의 선전선동 효과에 관심을 기울였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는 문학이 ‘신민주주의 혁명’의 선전선동 도구가 되기를 요구했고, 건국 이후에는 문학을 정책으로 지도했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는 검열로 통제하고 있다. 선전선동론은 1927년의 ‘혁명문학논쟁’을 거쳐 1930년대의 ‘좌익작가연맹’과 1940년대의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에 관철되었고 「옌안 문예 연설」에서 ‘인민문학’ 이념형으로 정형화되었다. ‘인민문학’은 건국 이후 ‘중국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대회’를 통해 정책으로 관철되었고, 중국공산당은 작가들에게 사회주의적 개조를 강요했다. 개혁개방 초기 일시적으로 사상해방 국면을 맞이했으나 1989년 ‘톈안먼 사건’ 진압 이후 다시 억압 국면으로 전환되어 검열이 강화되고 있다(임춘성, 2021a: 1∼2).
검열은 문학장 나아가 문화장에 대한 정치장의 압력을 잘 드러내 준다. 한국도 5공화국까지 검열이 노골적으로 존재했었고, 김대중․노무현의 민주 정부를 거치며 명시적 검열 규정이 없어졌지만, 이명박․박근혜 시절 이른바 ‘블랙 리스트’라는 암묵적 검열 규정이 횡행했었다. 중국은 1949년 이전에도 국민당 정부의 검열이 존재했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도 이데올로기 통제를 위해 검열은 필수적인 장치였다. 개혁개방 이후 일시적으로 완화되었지만, 시진핑 정부 들어 검열은 강화되고 있는데 직접 통제 방식에서 간접 관리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인적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TV 드라마의 ‘제편인(制片人)’ 제도, 출판 시 책임저자의 ‘이데올로기 보증서’ 제출 등은 검열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제편인’은 우리의 프로듀서 비슷한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시장과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해 TV 드라마 제작부터 배급까지 전체 유통과정을 통제한다”(임춘성, 2017: 56).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대 국가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시장경제의 영향력 증대 그리고 대중의 오락 요구가 상호 충돌하고 상호 융합되어 ‘제편인’이 초기에는 자발적으로 출현했다가 점차 정부와 시장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제편인의 신분은 경영시장의 중개인, 감독인, 제작자를 겸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시장 관리와 투자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중개인의 신분이 가장 중요하다. “제편인은 심사와 각종 규정을 관리하는 ‘관방 주체’이자, 시장 이윤을 추구하고 관리하는 ‘경영 주체’인 동시에, 제작과 생산 과정을 지휘하고 참여하는 ‘생산 주체’이기도 하다(고윤실, 2020: 47). 한마디로, 제편인은 자본과 관방의 입장을 대표하면서 TV 드라마의 생산과 시장 유통을 통제하고 있다. 제편인으로 대표되는 검열의 존재는 중국 TV 드라마 제작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기보다는 역사드라마, 판타지(懸幻)드라마, 무협드라마 등의 장르에 집중하게 했다. 특히 역사드라마는 역사 속 영웅을 소환해 그 업적을 환기함으로써 내셔널리즘 또는 국가주의를 선양하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이데올로기 통제와 불모이합(不謀而合)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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