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8권이 완역 출간됨으로써 ‘사조삼부곡’ 24권이 완간되었다. 이전의 ‘영웅문’ 시리즈 18권이 원문의 약 70% 정도로 번역된 반면, ‘사조삼부곡’은 완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는 『사조영웅전』의 유가(儒家)적 협객인 곽정, 『신조협려』의 도가(道家)적 협객인 양과와는 다른 불가(佛家)적 협객이라 할 수 있다. 곽정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대협’을 지향하는 인물이고 양과가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형상이라면, 장무기는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기억하며 심지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융은 다른 소설에서 협객의 의미에서 벗어난 비협(非俠)의 경지(『연성결』의 적운, 『협객행』의 석파천)를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무술도 할 줄 모르고 협의와는 거리가 먼 반협(反俠)의 인물 형상(『녹정기』의 위소보)도 창조했다. 그는 ‘삼류’라고 폄하되는 무협 장르에서 이처럼 개성이 강한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무협소설의 품격을 향상했다.
대부분의 진융 소설이 그러하듯이 『의천도룡기』도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는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다. ‘두텁게 읽기’는 진융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첫째, 진융의 소설을 ‘역사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사조삼부곡’을 통해 송(宋)과 금(金), 원(元)의 역사를 익힐 수 있다. 『사조영웅전』은 칭기즈 칸의 흥기 과정과 금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고, 『신조협려』는 양양(襄陽)성 전투를 통해 원이 송을 멸망시키는 과정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의천도룡기』는 원 쇠퇴기에서 시작해서 명 건국까지의 과정을 파란만장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의천도룡기』에서도 주인공 장무기는 역사 인물들과 조우한다. 훗날 명 태조가 되는 주원장과 항원 투쟁의 선봉장인 서달․상우춘 등이 그들이다. 진융이 역사를 가져오는 방식은 단순하게 시간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 속 인물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허구의 주인공들을 실제 역사 사건에 편입시키고 역사 인물들을 허구와 연계시킨다. 진융은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함으로써 역사소설의 품위와 무협소설의 재미를 겸비하게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소설에서는 원나라를 극복 대상으로 그렸지만, 13세기 ‘세계체계(world system)’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였다. 따라서 항원(抗元) 투쟁은 오늘날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입장에서 보면 소탐대실이었다. 중국 내 한족의 패권을 확립하기 위해 ‘팍스 몽골리카’의 일부인 원나라에 저항함으로써 세계체계 내 대중화(大中華)의 패권 가능성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사조삼부곡’ 시기의 진융은 훗날 『천룡팔부』나 『녹정기』에서 보여주는 ‘오족공화(五族共和)’, 즉 ‘중화 네이션 대가정’의 인식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몽골족과 거란족을 이민족으로 간주해 극복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팍스 몽골리카’ 세계체계를 붕괴하는 데 일조했다.
다음으로 이 소설은 ‘욕망과 집념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수많은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내 모든 사단의 주모자인 성곤과 장무기의 의부인 사손은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곤은 사랑하던 여인을 빼앗긴 복수를 위해, 사손은 가족을 잃은 복수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 또한 명교에 대한 멸절사태의 복수심, 장무기에 대한 조민의 적극적인 일편단심, 주지약에 대한 송청서의 집착과 기효부를 잊지 못하는 은리정의 집착 등은 인간의 속성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특히 어려서 장무기에게 물린 기억을 평생 잊지 않고 그를 찾아다니는 아리는 장무기 본인을 확인한 후에도 기억 속의 장무기를 찾아 떠난다.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필요한 인물이다. 아울러 명나라를 세워 황제 자리에 오른 주원장의 정치적 욕망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는 민간에서 명교에 들어가 세력을 쌓고 자신의 상관들을 권모술수로 처리해서 최고 지위에 오른다. 우리는 그를 통해 저급하고 추악한 정치 드라마의 속성을 볼 수 있다. 주원장의 형상은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될 수 없다(無毒不丈夫)’는 속담의 진수를 보여준다.
셋째, 『의천도룡기』는 앞의 두 편과 마찬가지로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착하지만 병약했던 아이가 험난한 시련을 거쳐 명교의 교주이자 무림지존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장무기의 개성을 파악하는 핵심어는 ‘부드러움(柔)’이다. 그는 순리를 따르며 자비를 베풀며 살지만, 그의 부드러움은 유약(柔弱)하지 않고 외유내강(外柔內剛)하다. 그러기에 기효부의 딸 양불회를 아버지 양소에게 데려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 편이다. 그는 마지막에 조민과 결합하면서도 주지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소와 아리를 잊지 못한다. 장무기의 성장 과정에서도 기연은 등장한다. 다른 무협소설과 달리, 진융은 인물의 성격에서 오는 필연적 요소와 정밀한 세부 묘사를 절묘하게 결합해 우연성을 극복하고 있다. 영화 촬영 기법을 활용한 세부 묘사는 독자들에게 생동한 명장면들을 선사한다. 21장의 광명정 전투, 24장의 무당산 삼청전의 전투, 그리고 36장의 소림사 세 고승과의 대결은 그 대표적인 예다.
넷째, ‘강호라는 가상 세계에 관한 이야기’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이는 무협소설의 요체다. 텍스트에서 강호인들은 도룡도와 의천검을 얻으려고 혈안이다. 나중에 밝혀지는 비밀에 의하면, 곽정이 만들었다는 한 쌍의 도검 속에는 각각 악비(岳飛)의 병서와 『구음진경』이 들어있었다. 사손은 도룡도를 손에 넣기 위해 수십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빙화도로 떠나고, 장무기의 부모는 사손과의 의리와 도룡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강호인치고 도룡도와 의천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보인다. 진융이 그려낸 강호는 소림․무당․아미․화산․곤륜․공동의 육대문파와 명교로 대변되는 ‘정(正)과 사(邪)의 대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진융은 이들을 변화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정파에도 악인이 있을 수 있고 사파에도 선인이 있을 수 있으며, ‘정이 사가 될 수 있고 사 또한 정이 될 수 있다’라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
이상이 텍스트 전체에 걸친 이야기라면, 아래에서는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보자.
장무기가 익힌 무공은 ‘무공의 개성화와 문화화’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그가 구양진경, 건곤대나이, 태극권․태극검 등 최고의 무공을 연마하는 과정은 가히 ‘전기적(傳奇的: romantic)’이라 할 수 있지만, 진융은 그 과정을 개성화하고 문화화한다. 그는 남들이 평생 걸려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건곤대나이를 구양진경의 내공에 힘입어 몇 시간 만에 숙달하는 과정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는 개성을 드러낸다. 또한 태극검은 장무기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리는 무공인 동시에 ‘마음으로 검을 부리는’ ‘이의어검(以意馭劍)’의 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초식보다 검의(劍意)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공은 문화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진융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중국문화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중국인의 어떤 특성’(some Chineseness)을 체득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의천도룡기』에서는 배화교라 일컬어지는 조로아스터교의 중국 전래와 발전 상황에 관한 종교 문화와 의술에 관한 정보가 두드러진다. 이런 면에서 진융의 소설은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두 날개의 문학사’를 체현하고 있는, ‘아속공상(雅俗共賞)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는 ‘문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진융은 세 번째 개정판을 완간했는데, 이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조건이 되면 끊임없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작가의 본분’(2007년 11월 2일, 진융 인터뷰)이라는 작가 자신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손을 떠나며 시작되는 텍스트의 여행’이라는 수용미학의 입장에서 보면, 3판 개정본의 시도는 화사첨족(畫蛇添足)의 우를 범한 듯 보인다. 그동안 진행된 비평과 연구를 무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이해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닉과 네이션 그리고 국가주의 (0) | 2022.08.29 |
---|---|
한국의 ‘영웅문’ 현상 (0) | 2022.08.29 |
『사조영웅전』 꼼꼼하게 읽기 (0) | 2022.08.29 |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과 홍콩문학 (0) | 2022.08.29 |
두터운 문화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과 쓰는 괴로움 (0) | 2022.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