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발제

초우, 레이, 2005, 『디아스포라의 지식인―현대 문화연구에서 개입의 전술』--요약 발제 (4)

ycsj 2022. 6. 8. 22:13

Chow, Rey, 1993,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Indiana University Press, Bloomington.

 

5. 디아스포라의 유혹에 맞서서: 마이너리티 담론, 중국 여성, 지적 헤게모니

(Against the Lures of Diaspora: Minority Discourse, Chinese Women, and Intellectual Hegemony)

 

1) 마이너리티 담론으로서의 근대중국문학/중국 근현대문학 (Modern Chinese Literature as “Minority Discourse”) # 中國現代文學 or 中國現當代文學

146: 중국연구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화제를 다루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중국여성이 받고 있는 비판적 조명은 현재 작동 중인 담론 정치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포스트식민 담론 공간의 문제설정(the problematic of the postcolonial discursive space)과 관련된 것으로, 다수의 3세계지식인은 그 속에서 1세계적기능을 수행하며 살기로 선택했다. 그 공간에서 이들은 3세계토착민일 뿐 아니라 3세계토착민의 대변자이다.

# 디아스포라 상태의 포스트식민 담론 공간의 문제설정

# 디아스포라 상황의 제3세계 지식인

북미 대학에서는 많은 유색지식인이 자신의 네이션과 문화에 관한 지식의 제공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지식인의 기능을 디아스포라 상태의 문화적 노동자/중개인이라는 지위와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아스포라의 원인은 대학원 학업, 연구생활, 객원교수나 전임교수의 직책, 이민,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망명이나 정치적 피난 등으로 상당히 다양하다.

이 장에서 나는 중국연구 분야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관심디아스포라 상황에 처한 3세계지식인(the “third world” intellectual in diaspora)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방편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3세계 여성에 대한 연구는 흔히 여성연구지역연구와 같은 협의의 분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에 주목하면 이런 영역적 관심을 훌쩍 뛰어넘는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p.99)

147: (여성연구에서) : 여성은 여전히 정당한 학문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보는 태도를 지칭. 이 적은 상이하지만 서로 연관된 몇 가지 전술을 사용한다. 첫 번째 전술은 상습적/습관적 근시(habitual myopia)라고 기술될 수 있는 것으로, “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태도이다. 두 번째는 양심에 어긋나는 성기제일주의(genitalism), “여성? 그래, 물론이지! 그렇지만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계속 침묵하겠다는 전술이다. 세 번째는 학문적 배척(scholarly dismissal)이다. 네 번째는 전략적인 게토화(ghettoization)이다. (p.100)

# 여성을 제3세계로 치환/전치!

이러한 적의 전술여기서 적을 개인이 아니라 지배적인 상징, 즉 태도표현담론을 비롯하여 언어적 표현에 의해 표출되는 가치의 총체(the value)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은 중국연구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열등한 처지에 놓인 주체를 연구하는 학문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147-8)

148: (각설하고) /중국 근현대문학: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은연중에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의 마이너리티 담론이라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마이너리티 담론은 무엇보다도 피해의 산물로서, 지배문화에 의해 마이너리티로 만들어진 문화에 어느 정도 조직적으로 가해진 폭력의 결과이다.”(p.100) # 포스트식민 시대의 소수자 담론

이 점에서 중국 근현대문학은 여타의 포스트콜로니얼 국민문학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는 서양 제국주의의 후유증 속에서 국민적문화적 자율성을 쟁취하려는 비서양문화의 역사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은 이처럼 서양의 헤게모니적 담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토착적 전통과의 일관성을 주장하는 토착주의를 특색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희생자의 처지에서 그 접합이 억압된 일종의 마이너리티 담론으로 간주되어왔다.)포스트식민 문학은 이처럼 서양의 헤게모니 담론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토착적 전통과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전형적 토착주의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존재가 희생자화되고 그 접합(articulation)이 억압된 일종의 소수자 담론(minority discourse)으로 간주되어왔다.”(p.101)

중국 근현대문학의 세계적중요성은 마이너리티 담론으로서의 지위에서 나오지만, 바로 이 마이너리티의 지위 때문에 중국 근현대문학은 세계문학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워진다. 이에 반해 영국프랑스러시아의 국민문학은 그 역사적지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모더니티(modernities)로 훨씬 광범위하게 통용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p.101)

정반대의 관점: 정전문학 강화

149: 걸프전 교훈: 보편적인 것조지 부시의 신세계 질서와 사담 후세인의 범아랍주의에서 공히 주장되고 있는 사랑지식정의전통문명 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수사(rhetoric)에 의존하여, 정치 권력이 대중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표현을 바꾸자면, 보편에 호소하는 수사는 문화종교인종성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게토에 유폐시킨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보편성의 수사에 착상된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전투는 중국연구 분야에서 여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 여성 지식인이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 도전적인 역할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중국연구에서 발견되는 마이너리티 담론여성간의 불안정한 관계를 논의하고자 한다.

20세기 중국 지식인이 직면한 최대의 책무는 제국주의의 멍에 아래에서 국민문학을 확립하는 일이다.

과거 문학과 구별: 고난을 부각시키고 사회적 불의를 폭로. cathexis

고난을 강조하는 것은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문화적 생산을 관류하는 현상이다. 1910년대 원앙호접파54운동 시대, 과학과 민주를 지지1930년대와 1940년대에 계급투쟁을 강조하던 문학, 1950년대와 1960년대 訴告 관행문혁 이후의 상흔문학(149-150)

150: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에 국민문학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화려한 과거에 대한 믿음 외에 비판적 칼날을 필요로 한다. 20세기 중국 지식인에게 이 비판적 칼날은 계급의식이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표현에서 계급은 자본의 잉여와 노동 간의 모순이다. 계급이라는 범주는 사회적 불의를 경제적 용어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한 부의 분배 같은로 분석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소외된 노동이라는 개념은 경제적 함의와 함께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을 담고 있다.

아리프 딜릭은 국가건설을 위해 계급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 人民

“[새로운 중국은] 혁명적 지식인리다자오, 쑨원, 마오쩌둥 등이 바로 떠오른다프롤레타리아국가이다. 프롤레타리아트(또는 피억압계급)를 역사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프롤레타리아트를 국민적 투쟁의 중심요소로 삼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상과 가치의 운명을 판단하는 관계항이다.”(p.103)

151: 중국 근현대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담론에서 국가개념과 계급이 뒤엉키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민문화를 건설하는 방책으로 계급의식을 이용하는 것은 중국문학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근현대성은 54운동과 그 이후의 작품이 보여주듯이 자각적으로 혁명적이다. 중국 근현대문학이 어떤 타자, 마이너문학으로 전지구적 무대에 등장한다면, 이런 등장은 자국의 억압받는 계급에 초점을 맞춘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피억압 계급 가운데는 여성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p.103)

151: 스피박: ‘서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서 중국 근현대문학의 역사는 현대의(contemporary) 문화연구를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 역사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인물이 바로 서벌턴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담론의 이론은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 제국주의자의 헤게모니적 담론을 교란시키는 포스트콜로니얼 주체의 생산을 강조한다. (151) 마이너는 스스로 마이너리티의 지위를 떼어버릴 수 없다. 자신의 유일한 정당성은 바로 그 마이너리티의 지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마이너에 대한 지지는 제아무리 진지한 것이라 할지라도 항상 지배세력에 대한 용인/중심에 대한 지지(support for the center)로 귀결된다.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계급의식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무기인 이상, 그것은 사회적 불의라는 현실을 없애기보다는 영구히 재생하는 경우에만 비판적 칼날을 제공한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152)

152: 서양에서 활동하는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사이에서, ‘계급의식의 중시는 종종 특정한 언어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 스피박: 여기(인용문)에서 제시된 언어이론은 무언가를 분절하는 행위가 그것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며 결국에는 그것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153: 하지만 중국에서는 언어와 현실의 관계가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어왔다. * 정명(正名). 언어에 대한 유교의 태도.

154: 정명은 확립된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무기가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가 말하는 로고스중심주의적 지배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준다.

155: ‘프롤레타리아 국가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국민문화의 강화가 한낱 명칭에 불과한 계급의 적을 추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콰이체웅 로는 자크 라캉의 쾌락(jouissanc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현대중국의 정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 계급의 적은 어떤 의미에서 쾌락을 구조화하는 페티시이다. 계급의 적은 도처에, 우리의 사회생활 구석구석에 숨어 있지만, 또한 어디에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며 비밀스러운 존재이다. 분명히 계급의 적은 쾌락, 요컨대 외상(trauma)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또한 작은 대상 α, 즉 상징적 질서를 보존하고 문화대혁명을 움직이는 무구한 공백이기도 하다. 계급의 적이 갖는 모순적 성격은, 그것이 항상 동일한 장소로 되돌아가고 주체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그 자체가 무()이자 부정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계급의 적을 사냥하기 위해 모든 구석을 다 뒤진 다음에, 우리는 그 적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156: ‘계급의 적이라는 명칭에 대한 집착은 그 이름을 바로잡기위한 문화대혁명의 광기로 이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공산당은 국가통제에 관한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른 제자임이 판명된 것이다.

중국 근현대문화가 세계에 줄 수 있는 최대의 유익한 교훈, ‘계급의식이라는 사회변혁이론에 근거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하면서 그 이론이 제공하는 희망계급 자체의 소멸이 현실의 인간사회에서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자체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중국 정부처럼 원래 사회정의라는 이상 위에 세워졌던 정부가 공공연히 불의를 저지르고 인민을 계속 기만할 때, 우리는 마이너리티고통박해를 계속 중시하는 전략을 대신하는 별도의 방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2) 중국연구에서의 남성중심주의자의 입장: 서양에게는 여성으로, 중국 여성에게는 아버지로 (Masculinist Positions in the China Field: Women to the West, Fathers to Chinese Women)

 

156: 여성은 어떻게 개입하는가? 어떻게 하면 여성이 지닌 차이가 여성의 문화적 게토화로 전환되는 반면에 여성의 적은 그대로 남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그 차이를 분절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이 이야기할수 있을까? (156-7)

157: 현대의 문화연구가 안고 있는 문제로는, 언제나 차이의 범주를 지지하지만 동시에 그 범주를 고정된 정체성의 형태로 재각인하는 경향이 지적된다. 이러한 차이명칭은 주변화된 것이 중심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책이다. 그러나 이 차이의 범주는 문화적 다양성을 검증하는 기존의 방법에 도전하기보다는 그것을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인종, 계급, 젠더 등) 용어를 개입의 수단으로 삼아 서로를 분석하고 해독하고 비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젠더젠더일 뿐 아니라 계급에 대한 정통적 논의에서 간과되어왔던 것으로, 동시에 계급은 젠더를 중시하는 정치적 논의에서 여성또는 성적 차이와 같은 개념에 비해 무시당했던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떻게 계급 내에서 젠더를 파악하고, 젠더 내에서 계급을 구별하는가? # --보라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158: 딜릭: 문화지상주의자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불평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 내부의 불평등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중국의 정황에서 계급에 의해 사회 내부의 불평등 관계를 다루는 것이 부적절한 까닭은 계급에 대한 내러티브가 당에 의해 악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동안의 중국 정치사가 실패한 혁명이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혁명이 공산주의와 유교 사이의, 그리고 사회현실을 변혁하는 이상적인 첫걸음으로 명명하기를 꼽는 언어이론과 정명 사이의 은밀한 공존이었다는 것이다. 이 공존상태에서는 관료제적 위계의 관행에 흠뻑 젖어 있는 공자가 우위를 점한다.

디아스포라 상태의 중국 지식인은 특수한 집단으로, 그 연구의 대상인 중국인과 지식인 자신의 차이는 점점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159: ‘마이너리티 담론이 서양의 문화연구에서 뜨거운 주제가 되면서, 이제 해외에 거주하는 일부 중국 지식인마이너리티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들은 서양에 사는 특권을 향유하면서도, 자신의 담론에서는, 무시된 타자의 지위를 고수한다. 마이너리티의 지위에 대한 집착은 액면 그대로 진술되지는 않지만, ‘진정한중국인의 차이 또는 타자성의 이름으로 서양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담론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들 지식인은 서양 이론에 회의적 태도를 취하는 유행을 따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3세계텍스트는 필히 국민적 알레고리로 독해되어야 한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자민족중심주의적 개념을 존중하고 그의 말대로 중국문화를 독해한다. (이는) 서양에서 발원한 생산의 논리에 따라 제3세계의 문화를 획일적으로 타자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 왕더웨이가 이에 속하지 않을까?

160: 1세계의 생산: 유형적 상품 생산 + 무형적 가치 생산

무형적 가치는 이데올로기적 착취에 의해 수출되어 비서양인의 생활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가치를 논의하지 않고, 모든 제3세계인이 필연적으로 국민적 투쟁을 하고 있으며 모든 제3세계 텍스트가 국민적 알레고리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연구 분야의 내부자에 대해 이들 지식인이 구사하는 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여성 문제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연구와 관심에 직면하면, 그들은 또다시 가부장적이고 주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여성에 관한 문제는 서양에 대해 자신이 지닌 마이너리티의 문제와는 달리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 미국대학의 우파가 보여주는 태도

그들은 전통과 중국중심주의를 옹호하고 유산을 강조하면서, 페미니즘적 연구를 비학문적이라고 비난한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마이너리티와 여성이 되고, 내부자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실태이다.

161: 중국연구 분야에서 여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질문

전통적 담론과 근대적 담론을 막론하고 중국의 담론에서 여성은 마이너와 마찬가지로 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주도적으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기가 곤란한 것이다.

중국문학사는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남성의 역사였다.(??) 과거에는 남성 작가가 여성의 목소리를 취하여 여성적인 스타일의 글을 썼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남성 작가가 새로운 사회적 내용이자 신기한 문학적 소재인 여성에 매료되었다. 담론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중국 여성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이며, 중국 남성인 여성[중국 남성이 창작한 여성?]에 대해 타자이다. (161) Chinese women are, in terms of the structure of discourse, a kind of minor of the minor, the other to the woman that is Chinese man. (p.111)

20세기를 통해 여성의 종속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계속 지연된 것은, 여성을 대신하는 공식적 마이너의 지위가 끊임없이 창출되어온 탓이다. (161)

지배적인 상징질서에서 가장 결여된 빈농이 진보적인 중국 지식인의 환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162: 중국연구 분야에서 여성을 연구하는 지식인에게 최대의 비평적 임무는 그런 식으로 마이너리티 담론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세력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 대신 중국 여성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가부장적인 사회현상을 해체하고 가부장제의 원인인 정명이라는 헤게모니적 실천을 비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a hegemonic practice of zhengming itself (p.112)

 

3) 탕녀와 성녀 (The Dissolute Woman and the Female Saint)

163: 타이완 페미니스트 쉬샤오단: “나는 탕녀의 이미지로 국회에 들어갈 것이며, 성녀의 영혼으로 인민을 사랑할 것이다.” * 중국 여성에게 순결과 자기희생과 미덕을 요구하는 전통적 도덕관에 도전. 그녀가 제공하는 것은 불순한 성격의 모델, 바로 그 불순함을 무기로 마이너가 중심에 의존하는 현상을 영속화하는 인식론적 폭력에 저항하는 모델 (164) 성녀와 탕녀 간의 차이에 의거하여 엄격하게 통제되던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계층화함으로써 결합되었던 교육과 도덕이 서로를 강화하는 체제로부터의 자유

164: 계급이라는 개념이, 특권을 비판하면서도 그것과 결코 동화되지 않는 부정적 능력(the negative capacity)을 제공하는 곳에서는, 젠더의 개념이 특권에서 나오는 동시에 특권에 대립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화(identification)와 대항이라는 양자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p.113) * 시사점: 여성이 같은 젠더에 속하는 다른 여성을 대신해서 말할 때조차, 그녀는 자신이 특권적 위치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적인 계급의식의 관점은 발언권을 가진 지식인의 특권적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기성찰적 인식을 억제한다.(자기 자신의 특권적 목소리에 대한 반성은 자신의 순수하게 보편적인 정의를 위해서 말하고 있다는 환상을 깨트릴 것이므로) 반면에 젠더의 경우,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계급에 관련되지만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편성되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말하는 주체와 이야기되는 객체와의 차이에 대한 성찰을 용이하게(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준다. 이것은 특권을 향유하는 층과 특권을 향유하지 못하는 층의 차이가 계급의식의 경우와는 달리 결정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긴 하지만, 계급의식사회적 불의를 그 표적이자 내용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자체의 특권화되고 부당한 발언에 대해 반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기 반성은 정체를 초래할 뿐인데, 이런 예는 54운동 이래의 문학에서 자주 목격된다. # 진보의 타락

165: 이에 반해 젠더는 공격의 목표와 내용이 남녀간의 불평등이며, 이것은 계급적 차이에 대한 협의의 정의(특권은 악, 비특권은 선)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담론의 구축에 내재하는 불평등, 즉 말하는 사람과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는 사람을 갈라놓는 차이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그 내용이 반드시 (위에서 기술한 협의의) 경제적인 것은 아니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 젠더에 관한 담론은 자신의 경제적 특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특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계급의식의 실천과는 달리 젠더의 담론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중국연구 분야에서 젠더와 여성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주요한 비평적 주제로 주목받을 것 같다.

중국 여성의 전통적 마이너한 지위

중국의 여성 지식인이 중국 여성에 대해 말할 때 자기 자신의 사회적 특권을 잊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식인은 여성의 억압을 망각하지 않는 한편, 담론에 내재하는 불평등을 억압하지 말고 지식인과 그 대상 사이의 차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탕녀인 동시에 성녀로 표상 (165) 지적 활동에서의 상대적 자유가 서양에서 생활하는 중국인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그런 중국 지식인은 이 특권을 최대한 성실하게, 전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단순히 이국적 마이너로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양 제국주의와 중국 가부장제 양자에 의해 초래된 장해와 맞서기 위해서. (166)

 

4) 후기: 디아스포라의 유혹 (Postscript: The Lures of Diaspora)

166: 초우가 받은 질문: 내가 하는 작업이 일종의 본질주의적 정체성의 정치가 아닌가, 그래서 특정 집단의 진정성이 또다시 특권화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포스트콜로니얼 공간을 헤겔의 용어로 표현하면, 대상(여성, 마이너리티, 다른 국민peoples)이 대문자의 개념(Notion, 대상을 검사하기 위한 기준)과 만나는 공간, 또는 즉자적 존재’(Ansichselbstsein being-in-itself)대타적 존재’(Füreinanderssein being-for-an-other)가 조우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헤겔에 의하면, 이전에 대상 그 자체로 고찰되었던 의식은 실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의식으로 인해 만들어진 대상 자체이다.(166) # 대상 의식과 의식 대상?? # 대상이 반영된 의식이 아니라 의식적 대상??

167: 경험의 변증법이 가장 설득력 있게 인격화된 것디아스포라 상태의 3세계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115)

1세계의 연구자는 이제 자신의 대상이 더 이상 자신의 의식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처해야만 한다. <3세계의 지식인도 나름대로 자신의 의식을 획득하고 긍정하지만, 결국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의식이란 자신의 사회가 대상화된 역사의 하중을 짊어진다는 사실이다.>3세계지식인들은 그들 자신의 의식을 획득하고 확인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객관성의 역사로 가득 찬 의식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된다. <‘3세계의 지식인이 1세계에 살게 되면, 이 역사의 무게를 더욱 예리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개인적인 상황에 상관없이 타자로 간주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이 역사는 일단 그들이 1세계에 살고 나면 더욱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데, 그들은 개인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그들이 타자로 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 1세계 연구자, 3세계 지식인, 1세계에 사는 제3세계 지식인

168: 이 경험의 변증법이 갖는 폭발성은 토착/원주민(?)의 영토적문화적 (native territorial and cultural propriety: 적절성/타당성)에 묶여 있던 종래의 항의 형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특히 제3세계 지식인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타자성(他性: alterity)상이한 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문화, 다른 국민, 다른 성(sex), 또는 다른 신체에 호소하는 것은 더 이상 개입의 수단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타자성에 대한 이러한 호소는 토착주의라는 자기이미지곧 제국주의의 타자의 유혹에 반복해서 빠진다.

170: 우리는 자신의 관심과 이익을 정직하게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실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선언이 자신과 유리된 일상적인 현실을 감상적으로 다루는 경향디아스포라 상태에 있는 3세계지식인1세계국가에서 비서양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에게서 현저하게 나타나는이 존속되는 것을 방지해줄 것이다.

디아스포라적인 포스트콜로니얼 공간고유의 영토에서 침략적 존재인 외국의 제국주의자에 맞서 저항하는 토착 지식인의 공간도 아니고, 제국주의의 영토적 지배가 종료된 후에 본국(이제 독립국가가 된)에서 문화적 지배체제의 지속적 효과에 대항해 싸우는 포스트콜로니얼 비평가의 공간도 아니다. 중국의 영토는 특정한 외국 권력에 의해 장기간 완전히 식민화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디아스포라 포스트식민 공간

171: 디아스포라 상태의 3세계지식인의 공간은 아직도 토착민의 땅에 연결되어 있는 흘러간 투쟁의 지반으로부터 유리된 공간이다. 자기성찰도 없이 3세계의 문화3세계여성의 문화를 포함한를 지지하는 것은 그 지식인이 본국에 남아 있는 자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가면이 된다.

171: 3세계지식인에게 디아스포라의 유혹은 그 은폐된 헤게모니 속에 존재한다. 내가 중국연구에서 남성중심주의적 입장이라 부르는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마이너리티 담론계급투쟁과 젠더 투쟁에 관한 담론을 비롯한에 의존하는 것은, 본국에서는 에스닉에 대한 자신들의 가부장적 지배를 은폐하고 서양에서는 ‘(소수) 에스닉이자 마이너리티로 행세하는 자신들을 계속 정당화한다. 그들(3세계 )의 수중에서 마이너리티 담론과 계급투쟁은 다른 네이션, 다른 문화, 다른 성, 다른 육체의 이름을 띤 기표로 전환되어, 주로 지식인의 자기 이익에 봉사하는 담론적 교환으로 기능한다. (p.118)3세계지식인들에게 디아스포라의 유혹은 이 가면 쓴 패권에 있다. 내가 중국연구에서 남성주의적 입장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 투쟁과 젠더 투쟁의 담론을 포함한 소수자 담론에 대한 제3세계 지식인의 의존은, 서양에서 자신을 ‘(소수) 에스닉소수자로 계속 정당화하는 반면, 국내에서 ‘(소수) 에스닉에 대한 그들의 부성애를 베일로 가린다. 그들의 손에서, 소수자 담론과 계급투쟁은, 특히 그들이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성, 또는 다른 몸의 이름을 취할 때, 지식인들의 이익을 위한 담론 교환의 주요 기능이 되는 기표(signifiers)로 변한다.

결국에는 서양의 여러 도시에서 디아스포라적 공간에 위치하는 3세계지식인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고 구매되는 이 3세계, 무형(無形) 상품이라는 가치형식으로 본국에재수출되어 토착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그들은 엿보는 자로서, ‘피해자들의 동포로서, 자칭 보호자로서 연구대상의 그늘에 쉽게 숨을 수 있다. (-172)

172: 그래서 디아스포라의 유혹에 대항하는 읽기와 쓰기가 필요하다. 3세계여성또는 억압된 계급을 다루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분절화라는 역사적 상황에 유의하지 않는 모든 시도는, ‘사이의 교환 대부분을 특징지을 뿐 아니라 여전히 특징짓고 있는 착취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 그러한 시도는 온갖 풍성한 보상을 약속하는 헤게모니적 연구기관에 쉽게 흡수되어버릴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일정한 보상이 없으면 작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특권화된 발화를 통해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구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환상을 품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