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발제

초우, 레이, 2005, 『디아스포라의 지식인―현대 문화연구에서 개입의 전술』, 장수현·김우영 옮김, 서울: 이산.

ycsj 2022. 6. 1. 10:09

Chow, Rey, 1993,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Indiana University Press, Bloomington.

 

 

1. 서론: 선결문제 (Introduction: Leading Questions)

 

1) 오리엔탈리즘과 동아시아: 학문적 전통의 존속/지속 (Orientalism and East Asia: The Persistence of a Scholarly Tradition)

스티븐 오언(Owen Stephen)의 베이다오 비평: ‘안락한 에스니서티’(cozy ethnicity. Owen, P.29)를 추구하여 서양 독자의 입맛에 영합하는 3세계의 시인을 공격. 오언은 비서양 시인이 쓴 시 가운데 다수는 더 이상 진정한 국민적(national) 정체성(# 오언이 생각하는 국민적 정체성은 무엇인가?)을 갖지 못할뿐더러 너무 쉽게 번역될 수 있다(Owen, p.32)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언의 우려: 현대(contemporary) 중국의 작가들이 자국의 국민적 문화유산을 희생시키면서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상품화하는 번역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14. p.1) # 보편적 중국문화를 희생해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토로한다고 우려/비판

현대 중국시의 질병”(Owen, P.30)과도한 서양화. 오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중국문학인가, 아니면 중국어로 서술된 문학인가”(Owen, p.31)하는 것이다.(15)

미셸 예: 오언의 모순을 지적: “그의 냉소주의는 시인의 개인적 사정과 문학사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을 재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의 힘, 사실상 다른 모든 수단이 효험을 잃었을 때 개인의 존엄성과 신념을 긍정해주는 그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15)

오언의 태도는 비교적 최근에 미국의 여러 학자가 1980년대의 자유화된 중국에 대해 표명한 경멸감을 대표하는 것이다.(15-6)

# 참고로 한다.

해리 하딩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나타났던 찬양 일변도의 중국 열풍에 뒤이어 등장한 이런 종류의 혹독한 경멸에 관해 유익한 글을 쓴 바 있다.(16)

하버드 대학의 한 교수가 3세계출신의 남녀를 서양에 스스로를 내다 판다는 이유로 비난할 때, 어떤 종류의 문화정치학이 작동하는 것일까? 그는 베이다오와 같은 시인이 자기 이익(self-interest)때문에 초국가적 문화의 상업화 경향에 굴복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오언의 이런 생각에서 누락된 것은, 자신의 발언을 형성하게 한 제도적 조직과 기구에 대한 의식이다. 이러한 누락은 자기 자신의 위치에 주목하지 않게 함으로써, 그리하여 타인을 비판할 때 대단히 유효했던 자기 이익이라는 가혹한 판단기준을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확실한 권력의 형태를 이룬다. (16) # 내로남불. 對人秋霜

이런 경향은 잘 다듬어지고 증폭되면서 동아시아 연구 분야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영속화하고 있으며 오언의 관행(practice)도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많은 동아시아 연구자토착민과 비토착민을 불문하고가 묵인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므로, 이에 대한 비판을 결집하는 작업이 긴급히 요구된다.(16)

p.3: Because this is an Orientalism at which many East Asia scholars, both native and non-native, connive, it is of some urgency to mobilize criticism of it.

# 오리엔탈리즘의 영속화

사이드와 같은 비평가는 흔히 비서양문화의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연구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의 전제는 이들 전문가의 노력에 의해서 그 민족들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문화전통은 소멸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16-17)사이드와 같은 비평가들은 이러한 비서양문화의 전문가들(specialists of these non-Western cultures)이 수행하는 작업을 경시하고 무시한다. 그 작업은 국민에 관한 지식을 생산해왔는데, 그 작업이 아니었다면 국민의 전통은 소멸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트랜스문화적인 현상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기적인 관심에 내재하는 성질과 범위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일이다.(17)

새로운 세계시에 대한 오언의 경멸감의 근저에 깔린 것은 일종의 상실감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자기 자신의 지적인 위치에 대한 불안이다. 이 불안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우울증 분석을 통해 부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우울증 환자는 귀중한 애정의 대상을 잃어버린 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은 상실감을 자기의 에고(ego) 속에 투사하는 사람이다. 우울증 환자는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증상을 보인다. 환자는 그 상실의 본질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실감은 내부로 향하게 되고, 그래서 환자는 마치 자기가 부당하게 버려지기라도 한 것인 양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그 논문에서 자기와 잃어버린 애정의 대상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프로이트의 구성은 주체와 객체라는 두 당사자를 포함할 뿐, 거기서 더 나아가 우울증 환자가 다른 주체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17-8)

여기서 포스트콜로니얼리티(postcoloniality)는 프로이트를 활용하여 우울증 장애에 관한 그의 이론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중국학자(오언)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인 중국사이의 관계에서 말하면, 우울증은 3중국문화의 살아 있는 구성원(베이다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복잡해진다. 3자는 중국학자에게 자신의 상실감을 외재화하여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을 제공한다. 프로이트가 자기 자신을 향한 비난이라고 본 증상은 이제 타자에게서 구체적인 비난의 대상을 발견한다.(18)

# 중국과 오웬, 중국과 베이다오. 오웬-중국-베이다오(미국 학계에서 오웬은 중국을 전유해왔는데, 베이다오의 출현으로 오웬의 지위가 불안해짐)

오언의 좀 더 근본적인 불안 은폐

이 불안은 그가 통찰하고자 노력했던 중국의 과거가 소멸하고 있으며, 또 중국학자(sinologist) 자신의 주체가 버려지고 있다는 불안이다. 이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1세계3세계의 역사적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베이다오와 같은 3세계작가가 이제는 피억압자가 아니라 억압자로 등장하여, ‘1세계중국연구자로부터 애정의 대상을 박탈하는 공세를 취한다. 오언의 진짜 불만은, 자신이야말로 기괴한 세계질서의 희생자이며 그런 질서 앞에서는 자신이 보여준 것과 같은 답답한 무력증만이 진실에 대한 유일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18)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우울증(Characteristic of this Orientalist melancholia. p.4)에는 19세기 영국과 독일의 낭만주의에 해당하는 모든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문학이란 심원해야 하고 내면성을 주제로 삼아야 하며, 감정적 진실의 표현은 최대한 절제되어야 하고, 문화적으로 고상하다 함은 모든 형태의 물상화(物象化, reification->사물화)와 과장을 혐오하는 것이라는 가정이다. (18) 분명히 오언은 억압과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지 않았다. () 그러나 이러한 그의 감각이 요구하는 것은 억압과 고통이란 그것을 겪고 있는 사람에 의해 큰 소리로 선언되거나 심지어 너무 자주 언급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고약한 취미와 불성실한 태도로 간주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좋은 시는 번역될 수 없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번역도 진실을 배반한다는 혐의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의 언어 자체가 언어 이전의 현상과 감정에 대한 최대의 배반자라는 사실이다. (19)

# 베이다오의 시에 대한 스티브 오언의 비평을 레이 초우는 오리엔탈리즘 우울증(Orientalist melancholia. p.4)이라 요약했다.

현대 문화연구의 비교론적 교의에 이론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담론 공간에 한정된 채, 중국학자는 국민국가의 언어를 자기의 투쟁 무기로 고수한다. 이는 역사―…―가 동아시아의 문화정치학에서 그처럼 특권적인 학문적 지위를 누리게 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최근 동아시아 연구 분야에서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때때로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이 국민국가라는 담론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19)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강화하고 보완하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920쪽 인용문)

내셔널리즘과 같은 특수주의는 결코 보편주의에 대한 심각한 비판이 될 수 없다. 그 역()도 성립할 수 없다. 양자는 공범자이기 때문이다.”(20)

오리엔탈리즘과 내셔널리즘 또는 토착주의(nativism) 같은 특수주의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며, 한쪽의 비판은 다른 쪽의 비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새로운 문화주의적 알리바이’: 일부 학자가 계급젠더인종국가지리적 장소 등을 배려하여 자신의 탐구를 가능한 한 정밀하게 특수화시킴으로써 초기 오리엔탈리즘의 결점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낳았다. (20)

특수용어로서 중국을 사용한 것은 문화적 다원주의의 담론적 지상명령언제나 맥락화하라! 결코 본질화하지 마라!”에 대한 새로운 배려와 주목을 나타낸다. 그러나 funu, guojia, jiating은 중국어로 여성, 국가, 가족을 뜻하는 단어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적 차이를 검증한다는 명목 하에서 중국과 같은 민족적인 지표는 손쉬운 문화적 차별화의 방책이 되어, ‘타자와 같이 잠재적으로 과격한 개념을 까다롭게 문서화된 상세한 기록에 다시 각인함으로써, 비평이 본연의 비판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의 역학 내에서 확실하게 작동하는 학문적 토착주의타문화를 완전히 전통적인 학문적 경계선 안에 가두어놓고 존속시킨다. (21)

중국 연구와 서양의 문화제국주의 사이의 관계(초우) vs. 중국의 가부장제에 의한 중국 여성의 내적 식민지화(미 여성 인류학자). 후자는 발랑디에의 주장을 예증.

G. 발랑디에(1951): “자신들이 속해 있는 식민권력의 사회를 고려해야 한다는 데 대한 일말의 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인해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자기의 연구 분야가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 존재하는 식민상황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21. p.6)

내부적이고 특별히 중국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러한 사례는, 많은 사람이 문화횡단적’(cross-cultural) 연구라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지리적으로 한정되며 그래서 문화적으로 본질주의의 담론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중국’ ‘일본’ ‘동아시아차이의 기호가 되어 정체성을 보증해주는 자기 증명의 기원이다.(22)

동아시아의 여성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그 대부분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내셔널리즘 또는 문화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근대사에 대한 많은 연구는 동아시아가 여타 오리엔트화된 문화와 공유하는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역사를 지닌 확연히 구별되는영역으로서의 동아시아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망각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이런 관념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펼쳐진 미국의 외교정책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유럽 오리엔탈리즘은 새로운 제국주의 강대국인 미국의 출현에 의해 대체되었다.(22)

오리엔탈리즘과 토착주의에 대해 비판할 때 우리는 이것들을 토착민과 비토착민 모두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언어로 이해한다는 사실이다.(22)

가장 중요한 쟁점은 오리엔탈리즘의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이데올로기적 역할이다. 동아시아 연구에서 사이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영토적으로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드의 이론이 동아시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비판을 정당화한다. 이런 유의 실증주의적 사고는, 식민상황을 경시하는 지속적인 인류학적 경향의 일례일 뿐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중요한 측면일상적 문화와 가치라는 오리엔탈리즘의 유산을 방치하는 것이기도 하다.(23)

많은 경우 영토상으로 독립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어쩌면 그 사실로 인해 동아시아는 제국주의의 작동방식즉 이데올로기적 지배양식으로서의 제국주의가 물리적 강제를 동원하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사람과 영토를 속박하지도 않으면서 성공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실례를 제공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23)

중국의 대()서양 관계사(23)

중국이 영토적 통일과 언어적 통일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3세계국가의 하나로서 중국이 제국주의 서양과 맺은 관계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하게 반서양적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공산당원들이 공식적으로 반제국주의를 선포하기 전까지는을 뜻한다. 오히려 주안점은 항상 중국이 서양만큼 강해지고 서양과 대등해지는 것이었다. (24) # 부국강병

중국공산당은 한때 다른 3세계문화와 진보적인 서양의 지식인에게 반제국주의 투쟁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기반 위에서 서양에 맞서 성공적이고 일관성 있게 대항한다는 그 꿈은, 중국 정부 자체가 마치 자본주의 적군의 일원이 된 것처럼 잔악하게 행동했던 1989년의 천안문 학살과 같은 최근의 사태에 의해 치명타를 맞았다. 제대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세계 각지의 계급 및 국민의 대표자로서, 공산주의 중국은 그 자체가 실패작임을 보여주었다. 그 실패한 실험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이상에서 확연히 벗어나 생활하기를 선택한 지금, 정부의 공허한 수사에 의해 명맥을 잇고 있을 따름이다. (24. p.89)

식민성의 개념(거기서 나오는 문화비평과 함께)이 인종영토언어의 이질성이라는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될 경우, 그 개념은 정치적 착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만큼이나 그것에 대한 판단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근대 서양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중국은 외국의 식민세력에 의해 완전히 지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24) 그러나 표면적으로 ’()중국 인민에게 가장 중요한 식민지배자는 여전히 그들 자신의 정부이다. 중국은 특정 외국 세력에 의해 인종적영토적언어적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실제로 제국주의적인 가치변혁과 가치생산의 효과를 다른 3세계문화에 비해 훨씬 뚜렷하게 드러내준다. (25)

* 인도의 경우 외국의 식민지배자가 있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 정신이 정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중국): 문화적 생산은 구조상 단순히 적대적이기보다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중국’ ‘중국의 유산’ ‘중국의 전통’ ‘중국 정부그리고 이것들의 변종을 향한 적대적 감정이다.(25)

따라서 중국 및 동아시아 연구에 필요한 비판적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문화제국주의의 유산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나르시시즘적 가치생산의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나르시시즘적 가치생산과 문화제국주의 중에 하나만 밝혀서는 진정한 개입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진정성의 신화를 상호 강화적인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역사 안에 자리매김하고 우리는 따져야 한다. (25) 왜 이전에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으며, 왜 지금까지도 그 질문은 회피되고 있는가? (2526)

 

2) 서벌턴의 신성화: 백인의 죄의 생산성 (Sanctifying the “Subaltern”: The Productivity of White Guilt)

오리엔탈리즘의 특별한 형제: 마오이즘

아리프 딜릭: 서양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해석을 3세계주의적 환상마오쩌둥은 서양에서 배신당한 마르크스주의의 약속을 이행한 중국판 마르크스의 화신이라는 환상이라는 용어로 요약한다.(26)

마오주의는 1960년대에 서양문명에 대한 환멸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중국공산당의 혁명에서 희망을 발견한 불사조와 같은 존재였다. # 마오주의는 불사조였다.

1970년대의 과도한 찬양은 그 이후 그와 똑같이 과도한 중국멸시로 바뀌긴 했지만, 마오주의는 아직도 건재하며 그 중요성은 중국 및 동아시아 연구 분야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형적인 마오주의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싫증 난 문화비평가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지탱해주는 것과는 반대되는 사회질서를 원하는 문화비평가이다. 따라서 마오주의자는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이다. 마오주의자가 원하는 것은 항상 타자 속에 위치해 있으며, 그 결과 자신이 아닌 것 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찬미가 나타난다. 찬미되는 것은 종종 타자의 불행가난을 가지고있거나 아무것도 가지고있지 않은이므로, 마오주의자의 전략은 주로 자신의 수사를 가능케 해주는 물질적 힘을 수사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된다. (26-7)

0.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마오주의자의 가장 중요한 선배 중 하나

도덕적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특별한 표상적 입장, 즉 무력자(無力者)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낸시 암스트롱과 레너드 테넌하우스: 그 소설이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표상함으로써 지배가 폭력적으로 확립되는 전형을 예시한다고 주장. (27. 인용문 참고)

제인 에어에 대한 이러한 독해는 페미니스트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에 의해 종종 확인되는 여성 약자(female underdog)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not simply. p.11), 서양 제국주의가 갖는 냉혹함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 엄정함을 통해 권력을 획득해가는 지식인으로서의 그녀를 부각한다. 영미 자유주의의 핵심에 놓여있는 이 도덕적 엄정함은 확고한 사회적 사명감을 띤 채 수많은 해외영토의 정복과 경제적 침략에 동반된다. # 베버식 프로테스탄트 윤리(?)

제인 에어가 19세기에 식민지에 갔을 때, 그녀는 그리스도교 선교사였다. 이러한 이해, 즉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영국 여성에 대한 브론테의 묘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영국의 제국건설 야망과 대립하기보다는 그것과 완전한 공범 관계에 있는 인식에서 가야트리 스피박은 제인 에어를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텍스트로 독해한다. 브론테가 자메이카의 백인계 크리올인 미친 여자버사 메이슨이란 인물을 취급한 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피박은 제인 에어를 바로 그 휴머니즘 때문에 비난한다. 이 소설에서는 토착 인물이 짐승이 아니라 분류를 지상명령으로 삼는 테러리즘으로 명명되어야 한 것의 대상으로 창조된다. 이런 종류의 창조는 제국주의가 이교도를 인간으로 개조하여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삼는 존재가 되게 하라는 칸트적 형이상학의 요구를 활용하고 희화화한 것이다.(28)

20세기에 접어들어 과거 유럽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제인 에어는 마오주의자로 변한다. 미셸 드 세르토는 제언 에어, 마오주의자의 주요한 두 화신인 종교와 정치 둘 사이의 친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2829 인용문

과거에 교회 또는 교회들이 지배권력과의 관계에서 차지했던 위치는 지난 두 세기 동안 좌익으로 알려진 반체제세력의 기능 속에서 아직도 찾아낼 수 있다. 지배적 질서에 맞서서 다른 세계를 옹호했던 교회와 19세기 이래 다른 미래를 제창해온 좌익정당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비슷한 기능적 특질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주의자: 무력함을 진실로 전화하려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 정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자에 대한 이상주의적 배척(을 보유)/ 위대한 오리엔탈리스트는 살아 있는 3세계토착민이 자신의 애정의 대상인 고대의 비서양 문명을 잃어버린 데 대해 비난하는 반면, 마오주의자는 동일한(3세계) 토착민이 자신의 이상을 체현하고 이행해준 데 대해 찬양한다. 1970년대 마오주의자에게 본토의 중국인은 그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인간형에 대한 청교도적 대안이자 꿈의 실현이었다. (29)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마오주의자는 자신이 신성화한 그 중국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마오주의자는 애초에 그의 정적(政敵)처럼 보이던 오리엔탈리스트와 흡사한 방식으로 살아 있는 3세계토착민을 향해 손가락질함으로써, 그가 사랑하는 대상사회주의 중국의 상실을 애도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비전 위에다 자신의 경력을 쌓아올린 많은 사람에게 그 비통함이란 엄청났다. (29) # 사회주의 우울증에 걸린 마오주의자

1990년대 미국학계의 문화연구에서 마오주의자는 단숨에 재생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억압’ ‘희생’ ‘서벌터니티’(subalternity: 하층타자성) 같은 용어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방식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비서양 토착문화에 대한 오리엔탈리스트의 경멸과는 반대로, 마오주의자는 바로 그 경멸받는타자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전화하며, 몇몇 경우에는 자신과 동일시한다. 감탄과 도덕주의의 혼재 속에서 마오주의자는 때때로 비서양문화의 모든 구성원을 일반화된 서벌턴으로 변모시키며, 이번에는 이것을 사용하여 같은 방식으로 일반화된 서양을 질타한다.(29-30)

타자에 대한 그런 식의 표상은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이들 타자의 문화 내부에도 계급적지적 위계가 존재하며, 그것은 서양의 위계에 못지않게 복잡하다는 것.

둘째, 마오주의자의 탐구 및 찬미 방식에서는 그것을 구조화하는 담론상의 권력관계가 있다는 것.

그 결과 타자를 표상하는 화자는 결여서벌터니티희생과 같은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들먹이면서 자신의 타()(alterity)과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30)

이와 같은 자기극화(self-dramatization)의 근원에는 모두 자신을 서벌턴화하려는 동기가 숨어 있다. 권력과 권위를 얻는 데 그것이 점점 확실한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지식인의 행태는 억압을 이야기하는 용어로부터 비판적이고 반체제적인 중요성을 앗아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피억압자에게서 항의와 정당한 요구의 말까지도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피억압자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두 번씩이나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경제적 기회를, 그 다음에는 언어를 빼앗긴다. 그 언어는 이제 고양된의식을 갖춘 우리의 언어와 더는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 (31)

암스트롱과 테넌하우스: “표상으로서의 폭력이라는 발상은 대부분 학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할 때마다 그녀에게 우리 자신의 (은연중에 남성적인) 질서 감각을 새겨 넣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쓰고 있다. 현재 이런 각인의 과정이 종종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역사상의 특정한 타자를 그들이 억압받았다든가 지금도 억압받고 있다는 이유에서 표상하고 있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표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에만 표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오주의자는 보통 프로이트식 심리분석을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경멸하지만, 마오주의자의 억압과 희생에 대한 관념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결여개념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결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함으로써, 마오주의자는 암스트롱과 테넌하우스가 표상으로서의 폭력이라 부른 타인을 대신해서 말하기’(speaking for someone else)를 정당화한다.(31. p.14) # 인민이 뭔가를 결여하고 있으므로 인민을 대신해서 마오/공산당이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이 반드시 백인의 속성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오주의자 역시 반드시 인종적으로 백인은 아니다. ‘백인의 죄라는 말은 계속해서 권력과 결여를 서로 대치시키는 담론유형(31)을 가리키는데, 그 담론의 화자는 제인 에어처럼 권력을 가지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무력한 것과 동일시한다. 마오주의자가 보여주는 것은, 타인의 불행으로부터 자원을 끌어내면서도 자신이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산적 순환(a circuit of productivity)이다. 따라서 마오주의자는 항상 자기 담론의 물질적 기반을 은폐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매우 순수하게 탄생한 것처럼 말한다. (32)

서양과 비서양을 막론하고 특권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와 학생들: 나의 논점은 그들이 타인의 무력함 속에서 자신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발견하려 한다는 것이며, 자기 발언의 내용과 형식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자신이 폭력과 공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마오주의자의 후예들은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동양은 하나의 경력이다라는 발언의 폭력성을 재빨리 지적할지도 모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동양을 경력 쌓기의 도구로 삼으면서 생기는 폭력성은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중층적으로 결정된 악순환의 생산에 개입할 것인가?> (How do we intervene in the productivity of this overdetermined circuit?) 우리는 어떻게 이 다중결정 순환의 생산성에 개입할 것인가?)(32)

 

3) 개입의 전술 (Tactics of Intervention)

오리엔탈리즘과 토착주의 사이, 우울한 문화적 호사가와 호전적 마오주의자 사이, 바로 거기에 많은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 서양에서 발견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티의 풍경이 있다.\디아스포라는 국경의 문제를 체현하기 때문에 트랜스내셔널리즘의 상징이다라고 하치그 퇼뢸랸은 적고 있다. “Diasporas are emblems of transnationalism because they embody the question of borders,” writes Khachig Tololyan.(p.15) 국경의 문제현재 영속성자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존재론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윌리엄 새프런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디아스포라적 의식이 고향으로부터의 이산(離散)이라는 “[] 존재론적 조건의 지적 표현이라면, 디아스포라적 의식이란 아마도 역사적 우연이라기보다는 지적인 현실, 지식인이 처한 현실 상황이 아닐까. (33)

국경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타당성(propeiety)과 소유(property)의 문제이다. 생각건대 국경과 관련하여 실천할 수 있는 일 하나는 현존하는 타당성의 개념을 파괴하고 대체하고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타당성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경개념새로운 소유물로 통합되기를 기다리는 주변적 존재로서의 국경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장(field)이라고 하는 공간적 개념의 수반이 필수적이다. 의 개념은 헤게모니의 개념과 유사하다. 장의 형성은 자기 문화를 사회의 모든 수준에 전파할 수 있는 지배적 집단의 출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말처럼 혁명이란 대립하는 계급간의 헤게모니 투쟁이다.(33)

헤게모니 투쟁은 많은 이유에서 여전히 필요하긴 하지만, () 나는 장기간에 걸친 헤게모니 투쟁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특히 그것이(33) 지적인 권력을 통해 형성된 헤게모니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문제는 지식인이 어떻게 헤게모니를 획득하는가가 아니라, 미셸 푸코가 말했듯이 그가 어떻게 “‘지식’ ‘진실’ ‘의식’ ‘담론의 영역에서 [자신을] 권력의 대상이자 도구로 전환하는 권력 형태에 저항할 수 있는가이다. 지식인은 어떻게 헤게모니에 대항할 것인가? (34)

일차적으로 국경이라는 용어를, 하나의 장을 완전히 접수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서서히 전술적으로 침식하는 기생적 장소로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미셸 드 세르토: 기생적 개입

전략불안정한 역사를 해독 가능한 공간으로 변형시키는”(de Certeau, p.36)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략에서 도출되는 지식은 스스로에게 자기 자신만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힘에 의해 유지되고 결정된다.”(de Certeau, p.36) 그러므로 전략은 적절한 장소의 조직적 질서”(de Certeau, p.55)에 속하며 장의 구축성장강화에 헌신하는 자들의 몫이 된다. 예를 들어 텍스트는 그 질서 속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에 해당하는 문화적 무기, 사적인 사냥터또는 사회계층화의 수단”(de Certeau, p.171)이 된다.(34)

이와 대조적으로 전술적절한 장소의 부재에 의해 나온 계산된 행동”(de Certeau, p.37)이다. 공간 대신 시간에 투자하는 전술은 실행 논리에 기초하는 것으로, 그 모델은 생존을 위해 자신을 위장하거나 변형시키는 물고기와 곤충의 오래된 책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여간 그 논리는 현재 서양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의 형식에 종속되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de Certeau, p.)

다문화주의’ ‘학제성’ ‘3세계 지식인그리고 그 밖의 부수적 쟁점이 오늘날 미국의 학계와 사회에서 논의됨에 따라, 또 정치적 변화 및 차이에 대한 수사적 주장이 개진됨에 따라, 뿌리 깊은 다수의 정치적 반동 세력이 되돌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본질주의적 개념, 영토적언어적 타당성에 대한 보수적 개념과 그 결과 도출되는 타자의 개념, 죄의식을 환기시키고 결국에는 현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억압과 희생에 대한 무차별적 주장, 성과 인종의 다양성이 엄정성의 이름 아래 성적인종적 차별에 이용되는 상황. 이 모든 반동 세력이 새로운 단결을 만들어냈는데, 그 이데올로기적 전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 새로운 단결은 종종 그것이 전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전략적 태도에 의해 충전된다. 계속해서 강화되는 오래된 이데올로기의 무게란 실로 엄청나다. (35)

지식인들의 싸움이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싸움(battles of words). 반체제적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며, 지배의 중심부 또는 주변부에서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의 짓밟힌 삶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려 하는 것도 분명 아니다. 따라서 학계의 지식인이 직면해야 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 의해 자신이 희생되었다’(또는 피억압자와의 연대 속에서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반체제적담론에 의해 축적되는 권력특권이며, 자신의 말이 공언한 내용과 그런 말로부터 자신이 얻는 신분 상승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5-6)

결여로서의 타자에 대해 줄기차게 말하지만 봉급과 사례금이 계속 올라가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왜 믿어야만 하는가? 반체제적 담론의 의도가 기성 체제에 의해 적정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대체하고 부인하는 것일진대, 그 담론 자체가 적정한 것으로 전화되어버리는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우리는 전술로 시작된 것전파를 비축해둘 기지를 갖추지 못한”(de Certeau, p.37)이 학문적 의미에 못지않게 군사적 의미에서도 견고한 벽에 둘러싸인 장으로 바뀌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36)

 

4) 중국이 주는 교훈 (The Chinese Lesson)

()대중국사(modern Chinese history)가 서양 현재의 이론적정치적 담론 속에 새겨지는 방식 # 중국 근현대사

첫째, 포스트구조주의에 의한 기호의 해체는 서양적 전통 내부로부터 음성을 중시하는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에 대한 비판에서 파생되어 인문학 전 분야에 걸쳐 텍스트담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은 서양의 지식인들, 특히 프랑스의 지식인들자크 데리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필립 솔레르스, 롤랑 바르트, 루이 알튀세 등동양으로 눈을 올려중국에 주목함으로써 철학적정치적 대안을 구하려 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중국의 문자언어18세기 이래 유럽의 철학자와 언어학자에게 매혹의 원천이 되어왔다. (367. p.18) * 역사 없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증거(?)

둘째,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페미니스트 혁명은 빈농, 특히 빈농 여성에게 억압적인 가부장제에 맞서 압박받고 착취 받던 지난날의 생활을 서로 이야기하기’(訴苦)를 권장했던 중국공산당의 실천을 활용한 것이다. (37) * 윌리엄 힌튼의 번신(翻身)

셋째, 최근의 문화비평에서 사회적 피해자에 대한 관심의 많은 부분이 중국공산당 창립시의 이데올로기그 자체는 소련 및 기타 서양철학에 입각했던와 공통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유혹에 맞서서라는 장에서 내가 지적하듯이,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근대중국의 문학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논의되는 형상은 다름 아닌 서벌턴이었다. (37. p.18)

근대중국이 현대 문화연구의 기초라고 말하는 것은 중국적 지혜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의 목표는 근대로 전환된 고대 문명의 운명이 어떻게 현재 서양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요약해주고 예측해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서양은 자체의 동력이 (일반적으로 심한 상처를 훨씬 일찍 경험하는) 타자에게 미친 영향을 뒤늦게 의식하게끔 운명지어졌다. (37) (중국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느낌은 부정적 의미에서 서양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역사에는 미래의 서양에서 발생할 재난이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38)

이를테면 미국의 학계에서 희생자를 신성화하는 동시에 이론을 지성주의적엘리트주의적이라 하여 비난하는 것은 기묘하게도 중국이 문화대혁명 기간에 지식인을 취급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테리 이글턴의 미국지식인에 대한 최근의 통렬한 비판그 자신의 여러 저서가 미국의 지식시장에서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은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문화대혁명적 사고의 좋은 예이다. 이글턴의 태도는 미국에 대한 유럽 지식인의 전형적인 경멸, ‘프랑스 사상에 대한 영국 지식인의 경멸과 맥을 같이한다. (38)

이런 식으로 3세계인민은 구분 불가능한 대중의 형태로 묘사되는 반면, ‘1세계의 지식인은 계속해서 명성을 획득하는 구도가 유지된다. (39)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오래된 이민 도시이자 디아스포라와 조국의 결절점인 홍콩에서 자란 나는 중국 공산주의로부터 서양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발언에 여전히 침투해 있는 혁명에 대한 확신을 끌어낼 수 없다. 많은 중국인에게 마오쩌둥이 문제인 것은 그가 그람시가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했을 뿐인 일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39)

내가 이(문화대혁명에 관한) 기억들로부터 간직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희생의 역사가 아니라 홍콩이라고 하는 특정한 디아스포라적 현실의 절박감이다. 홍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식민지와 중국공산당이라는 두 개의 지배적 문화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자신이 필요할 때는 홍콩에 재정적 또는 다른 형태의 원조를 요구했지만, 홍콩인의 행복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주변적 위치는 홍콩인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구성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관찰자적 특권을 만들어내고 억압의 이상화에 회의를 품게 했다. 미국유럽인도아프리카 출신의 동료들이 중국 공산주의를 이상화시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내겐 아직도 문화적 충격이다. 그렇다고 내가 공산주의를 인류 역사의 허물로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40)

나는 잘못된그 무엇에 대한 이해는 푸코가 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주창하고 있는 것을 기꺼이 수행하려 할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푸코가 말한 바대로, 파시즘이란 용어는 잘못된 일에 대해 타자의 책임을 묻기에 편리한 기호로 사용되어왔다.

소련과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긍정적 현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사건임을 인식하는 것(41)

푸코에 따르면, ‘소련의 강제수용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이론적 텍스트를 강제수용소의 현실이라는 입장에서 질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텍스트 중에서 무엇이 강제수용소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지금까지도 그것을 정당화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 용인할 수 없는 진리를 오늘날까지 받아들이게 만드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강제수용소 문제는 오류의 관점(그 문제를 이론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소련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주의에서 얻는 가장 확실한 교훈은 그 시련이 우연한 사건(an accident)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근대 계몽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a process)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벌턴의 경험 위에서 전략을 짜는 과정이었지만(while) 지식인과 노동자 사이의 근본적인 단절을 진정으로 해소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계층분화, 불평등,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에 바탕을 둔 차별도 해결하지 못했다. (문화대혁명의 사례) 정말 서벌턴이 혁명화되었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분명히 그 반대임을 나타내는 중국의 문제, 즉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빈농의 지속적인 문맹, 인민의 복지를 담당해야 할 관료 권력의 횡포 등한마디로 계급 없는 세계로 알려진 사회에서 계급적 부정/불평등(不正. class injustice)이 왜 계속되고 있는가 라는 문제에 관해 그토록 많은 얘기를 듣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42. p.22)

 

5) 디아스포라의 지식인(writing diaspora: 디아스포라 글쓰기)

디아스포라적 의식지식인화에 관련된 질문

홍콩의 역사국경적 실천이나 기생적실천(“border” or “parasite” practice)을 우선적으로 고찰하게 해준다. 국경적 실천 또는 기생적 실천중국문화와의 동일화인 동시에 중국공산당 정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며,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식민정권에 의해 지역사회의 번영이 중단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42-43. p.22) 나의 개인적역사는 많은 형태의 타자성으로 쓰여 있지만, 그러한 타자성은 나의 교육환경을 고려할 때 희생자의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특별한 사회적 권력에서 나온 것이며, 내가 적의 도구를 휘두르면서 말하고 쓸 수 있게 해준다. (43)

마틴 리: “홍콩의 민주주의는 종이 문이며, 중국이 우리를 존중하여 난폭하게 밀고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홍콩 시민은 그 디아스포라적 의식면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모순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43)

두 가지 사례: 첫째, 19895, 50만 명 이상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가 베이징의 학생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44) * ‘옐로버드 활동’ + 삼합회

둘째, 1991년 여름, 중국의 여러 성이 전대미문의 홍수피해를 당했을 때, 홍콩 시민은 그 여름이 끝날 때까지 중국의 재난구제를 위해 총 7억 홍콩 달러(미화 약 9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44)

(하지만) 나는 이산 상황에 처해 있는 일종의 디아스포라적 인간, 북아메리카에 거주하는 홍콩인으로서 글을 쓴다. 해외의 다른 중화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홍콩의 많은 시민도 자신의 중국인적 본질에 대한 의식에 의해 고무된다. 하나의 국가종교도, 강력한 단일정권도, 국민적 통일에 바탕을 둔 정체성도, 중국에서 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 중화(中華)라고 하는 하나의 에스니서티(ethnicity)에 대한 주장은 조국에의 복귀를 보증하기에 충분하다. 중화는 환상에 불과하고 조작된 것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유효한 개념이기도 하다. 모든 기원 신화와 마찬가지로 중화화(中華化)도 보통 이산자들에 의해, 고국에 의해, 그리고 이산자들을 포용한 사회에 의해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용된다.”(44)

데이비드 예호 우 45쪽 인용문: 왕겅우가 언급한 중국인의 역사적 정체성비판.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문제: 중국화라는 방향과 거꾸로 방향

모순적: 홍콩과 중국의 역사적 차이가 본토에 대한 가장 단호한 반대요인으로 두드러져야 할 이 시점에, 중국화의 힘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언제나 환기되지만(), 사람들은 중국과 홍콩을 분리시키고 있는 실질적인 사회적 대립확고하게 제도화되어 있으며 널리 사용되는 법체계, 최근에 도입된 직접선거제도, 상대적인 표현의 자유 등이 홍콩에는 있지만 중국에는 없다는 현실이 종종 혈연적 동일성의 신화, 공허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신화에 의해 묻혀버린다는 느낌을 갖는다. 혈족의 신화에 굴복하는 것은 공동체의 운영에서 주체성의 포기를 의미한다. 피와 인종보다는 일과 생활의 중시가 주체성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45)

중국인다움(Chineseness)’은 폭력의 근원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의 몇 군데에서 보여주려고 생각한다. 이 폭력은 유대라고 하는 아주 깊은 곳에서 자라난 감정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지만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 사회적 소외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으로 저항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피의 결속이라는 감정이다.[수정] 중국인다움 가장 깊이 뿌리 박힌 유대의 감정에 의해 작용하며, 심지어 사회적 소외를 감수하더라도 디아스포라 지식인(diasporic intellectuals)이 집단적으로 저항해야 하는 폭력의 근원에 있다. (46)

따라서 디아스포라 글쓰기가 목표로 삼는 것은 중국인이라는 자신의 민족성을 궁극적인 기의(記意)로 채택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한편, 중국과 홍콩, 그리고 세계 각지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계속 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지는 각자의 민족적 뿌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한다.[수정] 따라서 디아스포라 글쓰기(writing diaspora)’의 부분 목표는 중국과 홍콩 그리고 기타 등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운동을 계속 지지하면서까지 중국인다움과 같은 자신의 에스니시티에 대한 굴복을 궁극적인 기의로 간주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 것이다. (46)

나의 목적은 일련의 문화적 모순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몇몇 새로운 연대에 대한 지금의 지배적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재고하고 나아가 그러한 연대에 개입할 가능성을 지닌 담론을 설정하는 데 있다. 내 글쓰기의 주요 관심사 중에서 유년기와 사춘기 때부터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배적 문화와 사귀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전술이다. (46) 홍콩에서 산다는 것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그 전술은 영토적 정당성도 문화적 중심성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전술이다. 특히나 홍콩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교섭하기 위해 스스로가 수행해야 할 기회주의적 역할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에게 기회는 위험 속에서 형성되며, 위험은 기회의 한 형태이다. 그의 디아스포라는 암호 같은 중국어인 웨이지’(危機)의 살아 있는 상징이다. 이 말은 위험기회라는 단어에서 나왔으며, ‘위기’(危機)를 뜻하기 때문이다. (47)

식민지 홍콩에서 온 이 서양화된 중국 여성(레이 초우를 가리킴-발제자), 이 문화적 사생아가 어떻게 중국과 중국 지식인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가? (토론자의 언급) 만약 내가 중국을 대표한다거나 진정한 중국인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면 수치심에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47)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 에피소드가 아직도 쓸모가 있는 것은 끈질기고 치명적인 중심주의에 관한 교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47-8): (문화대혁명의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 위의 비판자)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숨어 있는 문화적 폭력을 누구보다 빨리 인식했어야만 했다. 정치적민족적언어적으로 중심주의적인 거대한 억압을 경험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그와 같은 사람이 그런 중심주의의 영속화에 그토록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현대중국과 오늘날 그 밖의 모든 지식인이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전략화된 현실(strategized realities)의 으뜸가는 예이다. (47-8.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