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발제

프레드릭 제임슨, 2003, 『보이는 것의 날인』: 목차, 서론 및 1장 요약

ycsj 2022. 6. 29. 07:41

제임슨, 프레드릭, 2003, 보이는 것의 날인, 남인영 옮김, 한나래.

 

<목차>

옮긴이의 말

서론

1

1. 대중 문화에서의 물화와 유토피아

2. 현대 대중 문화에서의 계급과 알레고리: 정치 영화로서 <뜨거운 오후>

3. <디바>와 프랑스 사회주의

4. 파괴적 요소에 빠져라”: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와 문화 혁명

5. <샤이닝>의 역사주의

6. <히치콕>을 알레고리화하기

7. 영화에서의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하여

2

8. 이탈리아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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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론

13: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성질을 지닌다. 시각적인 것은 결국 넋을 잃고 정신없이 매료되게 만든다. 포르노 영화는 이렇게 영화 일반에 잠재되어 있는데, 마치 알몸을 보듯이 세계를 응시하라고 요구한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세계이제 그 세계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만든 생산물의 집합체이다를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이미지를 수집할 수 있는 육체로서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에 의해 제작된 이 인공적인 세계의 존재론이 여전히 가능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시각적인 것의 존재론일 것이다. , 시각적인 것이 최우선시되면서 다른 (14)감각들이 고갈되는 상태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시선의 지배와 시각적 대상의 풍부함 사이에서 권력과 욕망에 대한 모든 싸움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14: 이 책은 시각적인 것을 사고하는 유일한 방법, 즉 점점 더 많아지고 편향되고 있으며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각적인 것을 다루는 유일한 길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논하고자 한다. 다른 식의 사고는 보는 행위를 다른 행위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하는 시선을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역사뿐이다.

이 모든 것은 영화가 육체적인 경험이고 육체적으로 기억되며 육체의 신경 세포에 저장됨으로써 정신적 사유를 회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억은 무엇보다도 감각의 기억이라는 것, 개인이나 개인의 정체성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들이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15: 이 동작들은 이렇듯 기억되기 위해서 무시되었거나 잊혀져 왔다는 프루스트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영화는 육체 자체에 흔적을 남기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

18: 영화 미학이미지의 존재론과 구분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각(perception)의 역사성(지각이 등록되는 동시에 지각에 의해 등록되는 기구들의 역사성)을 인정한다면, 바로 형식의 매개 그 자체로서 전적으로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다.

20: 이러한 패러다임의 기초를 세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소설 형식이 자본주의 시대의 개인적 집단적 삶이 지닌 가능성들의 확실한 징후를 실현했는가 아니면 이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했는가를 평가한다.

21: 원대한 철학적 쟁점인 역설(irony)’은 낭만주의적 종류의 영화라고 해도 영화에는 적용되지 않으며(영화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에 대한 들뢰즈의 선구적인 저술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것에 대한 고찰은 음악에 대한 19세기의 고찰이 지녔던 상징적 가치조차 획득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20세기 작가들의 삶과 작업의 특징이 되는 다른 방식들이 확실히 있다.

22: 인간의 본성이 18951228일 경부터 바뀌었는가? 아니면 인간의 현실에서 영화적 차원은 선사 시대의 삶부터 있었으나 어느 정도 고도의 기술 문명에서 비로소 현실화되었던 것일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변증법을 가장 확실하게 고찰

23: 모더니즘은 리얼리즘의 반대가 결코 아니며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모더니즘의 말소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두 가지 정반대의 판단

첫째로 이 모든 것이 텔레비전과 거의 (또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논의 전체가 현재의 역사적 형식 또는 매체에 대해 사후적인 성격을 띠고 그 철학이나 역사를 사후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둘째로 영화 자체는 영화가 세계화된 현재에 전례 없는 생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체제 안에서 가장 세련된 기술적인 표현은 여러 지역적 목소리에 의해 나오고 있다.

 

 

1. 대중 문화에서의 물화와 유토피아

 

25: 대중 관객 문화, 상업 문화, ‘민중(popular)’ 문화, 문화 산업 등으로 다양하게 알려져 있는 대중 문화 이론은 항상 그 대상을 이른바 고급 문화에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의 객관적인 지위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었다.

이 분야의 입장들은 대개 근본적으로는 가치에 의해 연출되는 두 개의 거울 이미지들로 환원되곤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트주의를 사용하여 고급 문화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중 문화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단순한 머릿수에 근거하여 대중 문화의 우선권을 주장한다. * 반지성주의적 비판, 민중주의적 입장, 미국적 민중주의에 깊이 뿌리박힌 신념에 분명히 조응

26: 이러한 입장이 염원하는 가치란 사회적인 것이다.

이 입장은 현대 예술의 가장 중요한 형식 가운데 상당수가 (현대 예술 전체가 혁명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반사회적이며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입장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결국 이 입장은 스스로 가치를 인정한 문화적 대상조차 독해할 방법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26: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일구었던 문화 이론은 이러한 입장을 뒤집어 놓은 셈이다. 테오도르 W.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허버트 마르쿠제 등의 작업은 다분히 이론적이다. 문화 산업의 산물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대략 이 관점의 특징은 상품 물화(commodity reification)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대중 문화에 연장하여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이론에 따르면, () (27) 자본주의하에서 인간 행위의 전통적인 형태들이 도구적으로 재조직되고 테일러화되며,’ 분석적으로 파편화되고 효율성이라는 다양한 합리적인 모델들에 따라 재조직된다. 근본적으로는 수단과 목적의 구별에 따라 재구축되는 방식을 기술하고 있다.

27: 이것은 역설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사고는 수단과 목적의 분리가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목적 자체를 유보하고 보류하는가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즉 수단을 행사하는 데 부과되는 어떤 특정 목적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항하는 수단 자체의 조직화를 효과적으로 전경화하는 용어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도구화(instrumentalization)’가 지닌 전략적인 가치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올바른 평가가 되지 못한다.

28: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 제시된 예술의 정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란 목적 지향적 행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이나 정치 등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인간 실천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아무런 실용적인 용도나 목적을 갖지 않음을 뜻한 이러한 전통적인 정의는 분명히 그렇게 작동되는 모든 예술에 대해 유효하다.

29: 대중 문화이든 고급 문화이든 간에 성공적인 작품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잠시 실제적인 삶과 직접적인 실용적인 생각을 완전히 잊게 되는 것이다.

29: 상품 개념은 활동이나 생산의 측면에서 앞서 기술한 물화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소비의 각도에서 가로지른다.

30: 기 드보르: 현대 소비 사회에서 상품 물화의 궁극적인 형태는 바로 이미지 자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31: 새로운 자동차 모델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갖게 되는 이미지이며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소비한다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상적인 관념을 광고에 의해 모든 충동적인 외피들로 교묘하게 치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품화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분명히 즉각 미학과 연관된다. 소비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미적 차원을 뽐내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산업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이 지닌 힘, 바로 예술 작품 자체의 형식과 내용 속에 상품 구조가 예상하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도입되는 것을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이는 원을 결국 네모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대한 도구화의 승리이며, 수단과 목적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논리가 비실용성의 궁극적인 영역을, 즉 사용에 반대하는 순전한 유희를 점차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것이다.

36: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은 그들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분석 기구가 아니라 그들이 기대고 있는 긍정적인 가치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고급 예술이 진정으로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자율적인미적 생산의 장소라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가치를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아도르노의 후기 평론에는 위대한 모더니즘 형식들의 역사성에 대한 기초적 발견, 특히 그 형식들의 불가피한 노화 과정에 대한 발견이 빠져 있다. 하지만 모더니즘을 그렇게 역사적으로 본다면 쇤베르크이든, 베케트이든, 심지어 브레히트이든 간에, 현대 고급 문화의 위대한 작품이 대중 문화의 타락한지위를 측정하는 고정된 지점이나 항구적인 기준으로 기능할 수 없다.

37: (최근의 예술 생산에서)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 간의 상호 침투가 늘고 있음.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대립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립에 대해 전통적으로 취했던 평가는 (대중 문화는 민중적이므로 고급 문화보다 더 진정하다든가, 고급 문화는 자율적이므로 타락한 대중 문화와 비교할 수 없다든가 하는) 이원적 가치 체계를 강조한다. 어떤 식으로 작용하든 간에 이것은 절대적인 미적 판단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영역에서 기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진정으로 역사적이고 변증법적인 접근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를 객관적으로 서로 연관되고 변증법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현상으로서, 자본주의하에서 생산되는 미적 분체들의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쌍둥이 형식들로서 독해해야 한다.

고급 문화의 성격을 다시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38: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중 문화의 변증법적 대립항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는 고급 문화의 유일한 형태는 대중 문화와 동시대적으로 생산된 고급 문화이고 이것이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이라고 지적되는 예술 생산임을 이해한다면, 이 흥미로운 토론의 주제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39: 모더니즘과 현대 대중 문화 사이의 변증법적 대립과 심오한 구조적 상호 관련성은 전적으로 새로운 문화 연구의 장을 열어준다. 이제 사회적 상황과 미학적 상황을 동등하게 강조해야 한다. 그러한 형식과 공중(public)의 딜레마를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가 공유하고 직면하지만 이들은 반()테제적인 관계에 놓인다.

40: 상품 생산이 대중 문화에 미치는 전면적인 구조적 영향

오직 모더니즘에 대해서만 상품 형태는 상품이 되지 않고자 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소명이라고, 즉 상품 만족을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도구화에 저항하는 미적 언어를 고안해 내는 것이 모더니즘의 소명이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모더니즘의 가치를 타당하게 보았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또는 이후 텔켈 그룹의) 입장과 다른 점은, 이 입장이 모더니즘을 반작용(reactive)적인 것으로 지적한다는 데 있다. , 모더니즘은 그 자체로 새로운 해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위기의 징후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 1) 민중주의적 입장: 고급문화/모더니즘에 반대, 2)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점: 모더니즘의 가치를 인정, 3) 제임슨의 관점: 모더니즘은 문화적 위기의 징후이자 결과라고 인식

모더니즘적 해결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며, 모더니즘의 미학적 프로젝트를 사회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 불가능하게 만든다(이러한 판단은 물론 모더니즘 텍스트들의 위대함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님을 덧붙여야 한다).

독점 자본주의와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 그리고 그것들의 구조적 종속성을 검토(41)할 수 있는 풍부한 시각들을 제공한다. 물질화

41: 물질화(materialization): 이 현상은 상당 부분의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의해 지독하게 오해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중 문화와 모더니즘의 상호 관련성이 효과적으로 탐구될 수 있는 문제적인 주제들이나 현상들

42: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에 공통된 사회 상황에 대한 이것들의 반테제적인 형식적 반작용들을 구체화하는 데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바로 반복(repetition)이라는 개념이다. * 쇠렌 키에르케고르, 포스트구조주의: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럼이라는 반복 구조가(다시 말하면 원본이 없는 복사본의 재생산이) 소비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43: 우리 시대에 텍스트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정신 분열적 글쓰기라는 이상은 급진적으로 단절적인 문장들을 생산하기 위해, 단지 이전의 형식 또는 형식적 모델들과 결별하는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의 소우주 안에서도 반복에 도전하는 문장들을 생산함으로써 이러한 모더니즘 미학의 사명을 공공연하게 증명하고 있다.

대중 문화에 대해서도 반복의 영향이 이에 못지 않게 결정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 반복: 낯익게 하기(?)

44: 자본주의 이전의 장르들은 문화 생산자와 어떤 일정한 등질적인 계급이나 집단적 공중이 맺은 미적 계약과 같은 것의 기호였다. 따라서 이러한 장르들은 미적 생산과 소비의 상황이 지닌 사회적, 집단적 지위에서 장르의 생명력을 얻었다.

45: 대중 문화의 장르 형식들과 신호들은 질적으로 매우 다른 반복의 상황이 작동하는 가운데 종래의 구조들을 역사적으로 재전유하고 전치한 것으로 매우 특수하게 이해해야 한다.

텔레비전의 미학적 파산’: 다양한 텔레비전 연속극들이 사회적으로 현실적이거나 단순한 변형을 넘어서는 미학적 형식적 자율성을 갖는 방영분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이유는 ()(46) 제작진의 재능과는 별로 관계가 없으며, 바로 반복으로 향하는 우리의 고정된 경향때문이다.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독자라고 하더라도 경찰 드라마나 탐정물 시리즈를 시청할 때에는 진부한 포맷을 기대한다. 그 프로그램의 내러티브가 높은 문화적요구를 해 오면 성가시게 마련이다. 영화의 경우에도 상황은 상당히 비슷하다.

46: 반복의 철학적 역설

47: 난해한 모더니즘 텍스트는 공략해야 할 에베레스트 산과 같을 뿐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여 되돌아갈 수 있는 안정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으로 남아 있다.

반면 대중 문화에서는 반복이 텍스트’, ‘예술 작품등의 원본 대상을 효과적으로 증발시키기 때문에 대중 문화 연구자는 연구의 일차적인 대상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충격적으로 보여 주는 예는 록, 블루스, 컨트리, 디스코 등 종류와 상관이 없이 모든 유형에서 일어나는 현대 대중 음악의 수용 방식이다. 나는 이들 대중 음악 장르에서 생산된 곡들 가운데 어떤 곡도 처음듣게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대신 우리는 온갖 다른 상황에서 이 곡들에 끊임없이 노출된 채로 살아간다. # 증발은 대중음악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나의 팝송은 반복에 의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의 삶의 실존적 (48) 구조의 부분이 되었고, 따라서 우리가 듣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우리 자신이 이전에 들었던 것이다.

49: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를 하나의 단일한 역사적, 미학적 현상으로 파악함으로써 이 연구 분야를 변증법적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것은 양극 한쪽에 일차적 텍스트의 생존을 위치시킴으로써 다른 한쪽 극에 있는 미적 세계를, 즉 텍스트의 지시 대상이 사라진 메시지 또는 기호학적 폭격에 대해 헤매지 않고 탐구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해 주는 장점이 있다.

# 한쪽에 일차적 텍스트를, 다른 한쪽에 미적 세계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입장에서 유래한 판단: 대중 문화를 단순한 조작으로, 오늘날 대중 문화의 생산과 배급의 모든 특징을 분명히 통제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단순한 상업적 세뇌이자 공허한 오락으로 보는 개념

54: 오늘날 유일하게 진정한 문화 생산은 세계 체제의 사회적 삶의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흑인 문학과 음악, 영국 노동 계급의 록, 여성 문학, 동성애 문학, 퀘벡 문학, 3 세계 문학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것은 집단적 삶이나 집단적 연대에서 비롯된 이러한 형식들이 시장과 상품 체계에 의해 아직 완전히 침투당하지 않은 한에서만 가능하다.

계급 투쟁과 문화 생산의 관계는 즉각적이지 않다. 개별적인 예술 담론을 계급적 정치적 신호들로 연구한다고 해서 정치적 예술과 진정한 문화 생산에 대한 접근을 재발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급 투쟁과 진정한 계급 의식은 느리고 간헐적으로 발전하는데, 그 자체가 새롭고 유기적인 집단이 스스로를 구축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집단은 자본주의적 사회 생활의 물화된 자동화를 () 혁파하는 것이다.

55: 대중 문화와 조작의 문제: # 조작 vs. 억압

조작이라는 개념 또는 유사 개념의 핵심적인 문제는 프로이트의 개념인 억압과 비교하면 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억압의 메커니즘은 외상, 부담스러운 기억, 죄의식 또는 욕망의 위협, 불안 등 억압의 대상이 먼저 야기되고 위험스럽게 주체의 의식에 출현한 이후에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억압은 한정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57: 나는 대중 문화와 모더니즘 모두 느슨한 의미에서 종래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들만큼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이 내용이 이들 세 부분에서 매우 다른 방식의 처리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 그 모든 원료는 기본적인 사회 불안과 우려, 희망과 맹점, 이데올로기적 이율 배반과 피해가 막심한 판타지 등이며 이러한 원료에 대해 다양한 억압 관계들을 구사한다. 단지 모더니즘이 다양한 종류의 보상 구조를 생산함으로써 이 재료들을 다루는 데 반해, 대중 문화는 상상적 해결이라는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사회적 화합에 대한 시각적 환영을 투사함으로써 이 재료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59: <조스>(1975), <대부1>(1972)<대부2>(1974)

66: 이데올로기적이면서 동시에 유토피아적 또는 초월적인 대중 문화의 기능을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낡은 이데올로기 분석이 지닌 불모성: 대중 문화의 유토피아적 구성 요소를 무시함으로써 대중 문화의 조작적인 기능과 타락한 위상에 대해 공허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다른 극단, 즉 대중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소명에 대해 개념이나 언급을 결여한 채 유토피아적 충동만을 찬양하는 방법 또한 신화 비평의 기도문을 학술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단순 재생산하는 것이며 텍스트들을 구체적인 사회적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분리하여 추상화함과 동시에 텍스트가 지닌 의미론적 내용을 텍스트에서 제거한다는 점이다.

71: 마피아 신화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대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대체하고 미국 체계가 낳은 모든 분노를 영화 화면이나 다양한 텔레비전 시리즈가 제공한 대기업의 거울 이미지로 전략적으로 전치시키는 것이다.

마피아 내러티브의 기능은 진정 오늘날 미국에서 영위하는 일상 생활의 질이 저하되는 것이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라고, 이윤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부정직함과 연결된 문제이며, 도처에서 보이는 도덕적 부패가 문제라는 확신을 북돋는다. 그러한 신화의 궁극적인 원천은 마피아의 순수한 사악함 자체에 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윤리적 판단과 고려로 대체하는 것은 진정, 이데올로기적 책략이자 신비화하려는 의도의 신호이다. 마피아 영화들은 이렇게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해결부패되지 않음, 정직함, 범죄와의 전쟁, 궁극적으로 법과 질서 자체투사한다. 이는 미국의 불행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서 사회 혁명과는 분명히 다른 제안이다.

72: 초월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기능; 가족

이들은 이익 사회가 착취하는 동시에 폐기하고 있는 공동 사회(Gemeinschft)’에 대한 이익 사회의 선망과 원망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적인 공동체들의 해체가 가족의 타락, 묵인의 증가, 아버지의 권위 상일이라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설명될 때 인종적 집단은 과거의 가장적이(73)고 권위주의적인 가족을 통해서 사회적 재통합의 이미지들을 투사할 수 있는 듯하다. * 유토피아적 판타지에 대한 현대적인 구심을 제공

73: <대부>와 같은 대중 문화 산물의 표현력은 따라서 시급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절박한 유토피아적 판타지의 운반체를 제공하는 이중적 능력으로 측정될 수 있다.

1편이 기초했던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에서 해방된 2편의 경우 일종의 자유 국가 또는 고삐 풀린 국가에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논리가 추진되고 작동되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부 2>이데올로기에 미학적 재현과 형상화를 부여함으로써 결국 이데올로기 자체가 사실상 가면을 벗고 자기 비판을 하는 것이 된다는 명제를 탁월하게 예시하고 있다.

76: <대부> 1,2편은 이 글의 두 번째 기본 명제를 극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명제란 고급 문화와 모더니즘의 작품이든 대중 문화와 상업 문화의 작품이든 간에 현대의 모든 예술 작품은 비록 왜곡되고 억압된 무의식적 형식 속에서이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고 우리가 살려야 한다고 뼈 속 깊이 느끼는 사회적 삶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판타지들을 잠재적인 충동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유화되고 심리화된 사회 속에서, 상품에 강박되고 대기업의 이데올로기적 선전 문구에 포위당한 사회 속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 즉 모더니즘의 고전들 못지 않게 확실히 가장 타락한 대중 문화 작품들에서도 아무리 미약하고 희미하더라도 집단성을 향한 뿌리 깊은 동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현대 문화에 대한 의미 있는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에 필요 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다.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