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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티르너, 2023, 『유일자와 그의 소유』, 박홍규 옮김, 아카넷. 2023-08-31.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48
원제: Der Eingzige und sein Eigentum
책 소개
당대의 사상적 경향에 전면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문제작이다. 후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슈티르너를 비판하는 데 책의 절반을 할애할 만큼 그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슈티르너는 기독교는 물론 공산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를 인간 정신의 ‘유령(Spuck)’으로 보고 사랑과 행복 같은 정념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정신적 유령과 정념에 관념화된 이상적인 인간이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을 재단한다고 질타했으며 그렇게 간과된 실제와 구체 속에서 개인을 복권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책에서 말하는 ‘유일자’는 타인이나 제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집단의 피동적 구성원 자격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그런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저항하여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 타인을 무시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협력하지만 타인과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살아가는 개인을 일컫는다. 곧 추상적인 ‘인간’이 아닌 구체적인 ‘나’를 논구하여 ‘자유인’을 추상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유일자’를 구체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목차
옮긴이 일러두기
|서문| 나에게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제1부 인간
제1장 인간의 삶
제2장 고대인과 근대인
1. 고대인
2. 근대인
(1) 정신
(2) 사로잡힌 자들
(3) 위계질서
3. 자유인
(1) 정치적 자유주의
(2) 사회적 자유주의
(3) 인도적 자유주의
부기
제2부 나
제1장 고유성
제2장 소유자
1. 나의 힘
2. 나의 교류
3. 나의 자기향유
제3장 유일자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책 속에서
“그리하여 ‘신은 인간이 되었다’라는 명제에, 이제는 ‘인간은 자아가 되었다’라는 명제가 이어진다. 이것은 인간적 자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뒤집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자아를 찾는 한, 자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자아이고, 자아 안에 구체성을 얻고자 열망하는 것이 분명하다.” (제1부 제2장)
“사실 나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다. 내 육체는 타인의 육체가 아니고 내 정신은 타인의 정신이 아니다. 가령 당신들이 ‘육체나 정신’이라고 하는 진부한 말로 총괄하고자 해도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고, 그런 것은 나의 육체, 나의 정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적어도 나의 것에 대해 ‘호명’을 할 수 없다.” (제1부 제2장)
“인간들은 지금까지 나를 억압해온, 지배하는 인격의 몸은 국민이라고 부르고 정신은 국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각각 ‘인류’와 ‘보편적 이성’으로 확장하여 여러 국민과 국가를 신격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노예 상태는 이러한 확대와 함께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며 자선가와 인도주의자는 정치가와 외교관 못지않게 절대적인 군주가 된다.” (제2부 제2장)
“결과적으로 세계와 나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즉 나는 더 이상 ‘신을 위해’ 세계를 향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간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내가 하는 것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제2부 제2장)
“이제 이 장미는 원래 진정한 장미인 것처럼, 이 나이팅게일은 항상 진정 한 나이팅게일인 것처럼, 나도 내가 사명을 완수하고 내 사명에 부응할 때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본래부터 ‘진정한 사람’인 것이다. 내 첫 번째 말은 ‘진정한 사람’의 살아 있음의 징표이며, 나의 마지막 숨은 ‘인간’의 마지막 힘이 발산되는 것이다.” (제2부 제2장)
“참된 인간은 동경의 대상으로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고 실재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있고 어떤 인간이든, 기쁠 때나 괴로워할 때나, 어린아이이거나 노인이거나, 신념이 있건 의심 속에 있건, 자고 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나는 그 자체이며, 내가 진정한 사람이다.” (제2부 제2장)
“사유하는 자가 신앙하는 자와 구별되는 것은,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많이 믿는다는 것이며, 신앙인은 자신의 신앙(신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훨씬 적다는 것에 의해서일 뿐이다. 신앙인이 소수의 신앙 원칙만을 가지는 데 반해, 사유자는 수천 가지 신앙의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유자는 그의 신조들을 관련짓고, 다시금 그 관련을 그러한 원칙 평가의 척도로 삼는다. 그 원칙이 척도에 맞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버린다.” (제2부 제2장)
“나는 내 힘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유일자라는 것을 알 때 나는 그렇게 된다. 유일자일 때 소유자 자신도 자신이 태어난 자신의 창조적 인 무(無)로 되돌아간다. 신이건 인간이건 내 위에 있는 모든 상위의 본질은 나의 유일성을 약화시키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나의 자각이라는 태양 앞에서만 퇴색한다. 나는 유일자인 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둔다. 그때 나의 관심은 자신을 소비하며 일시적 숙명만 누리다가 죽게 되어 있는 창조자에게 놓여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제2부 제3장)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더 깊은 이유는 니체가 말한 엘리트적인 ‘초인’보다, 인간이면 ‘누구나’ 유일자라고 보는 슈티르너의 인간상이 더욱 바람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유사자(類似者)가 아니라 유일자라고 생각하고, 유사자가 아니라 유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상대방도 그런 유일자로 인정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유일자로서 연합하는 자치체를 만들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옮긴이 해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현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고전적인 아나키스트의 선구적 저술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당대의 사상적 경향에 전면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문제작이다. 후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슈티르너를 비판하는 데 책의 절반을 할애할 만큼 그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슈티르너는 기독교는 물론 공산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를 인간 정신의 ‘유령(Spuck)’으로 보고 사랑과 행복 같은 정념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정신적 유령과 정념에 관념화된 이상적인 인간이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을 재단한다고 질타했으며 그렇게 간과된 실제와 구체 속에서 개인을 복권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책에서 말하는 ‘유일자’는 타인이나 제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집단의 피동적 구성원 자격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그런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저항하여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 타인을 무시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협력하지만 타인과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살아가는 개인을 일컫는다. 곧 추상적인 ‘인간’이 아닌 구체적인 ‘나’를 논구하여 ‘자유인’을 추상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유일자’를 구체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인간이면 ‘누구나’ 유일자라고 보는 슈티르너의 인간상은 스스로를 유사자(類似者)가 아니라 유일자라 여기고 유일자가 되기 위해 애쓰며, 상대방도 그런 유일자로 인정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유일자로서 연합하는 선구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타주의 끌어안고 자본주의 거부하는 에고이즘 철학
난해한 저술, 부정적 평가 딛고 179년 만의 한국어 번역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철학사에서 난해한 저술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비판을 제외하고도 철학사가 코풀스턴이 ‘괴짜 철학’이라고 부를 만큼 그동안 슈티르너 사상에 대한 평가는 박하거나 오해가 많았다. 그러한 까닭에 1844년에 출간된 슈티르너의 주저이자 유일한 저술이 한국어로 완역되는 것은 179년 만에 일이다.
슈티르너는 이 책에서 에고(자아) 외의 모든 것을 공허한 개념으로 거부하고 에고가 스스로 갖는 힘에 의해 소유되는 에고이즘 철학을 전개했다. 슈티르너는 “나는 다른 것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배할 때에 난 내 소유가 된다”라고 선언하면서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거나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슈티르너에게 국가는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고 침략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아와 대립하고 자본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노동윤리도 거부된다.
또 슈티르너는 이타주의가 에고이즘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타주의와 협력, 심지어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자아에 어떤 식으로든 봉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그에게서 에고이즘은 이타주의나 집단주의나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인간이 갖는 독자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사상이다. 그런 슈티르너는 에고이스트의 연합을 새로운 사회주의적 이상으로 추구하는데, 이는 순수한 의지로 서로 연합하는 자발적인 사람들인 에고이스트들의 그룹을 말한다.
자발적인 개인의 연합을 꿈꾼 ‘개인주의’ 사상
실존주의, 불교 등과 비교 통한 현재적 철학의 가능성
아나키즘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사회적 아나키즘으로 분류되고 슈티르너는 흔히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시조 또는 창시자로 불린다. 그러나 사회적 아나키즘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개인의 자유를 아나키즘의 기본으로 삼고 이를 계급으로 제한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고전적인 아나키즘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슈티르너는 ‘나(에고)’를 제외한 모든 명제를 파괴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라기보다는 니힐리스트나 실존주의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존의 가치와 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그는 키르케고르처럼 개인을 찬양하고 헤겔 형이상학의 거대한 구조에서 개인을 해방시키려 했다. 그는 기독교 도덕에 대한 공격과 개인의 찬양이라는 점에서 니체와 무신론적인 실존주의를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그가 모든 도덕적,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단순한 허무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더 높거나 더 나은 개인을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하기 때문에 원초적 실존주의자도 아니다.
슈티르너의 에고이즘과 불교는 ‘통찰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변화만이 대인관계의 갈등을 끝내고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내면의 각성을 강조한다는 유사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 둘은 ‘개인의 공감을 높이고 비폭력적인 사회적 행동을 통해 사회변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책은 크게 ‘인간’과 ‘나’의 제2부로 나뉘고 제1부에서는 ‘정신’의 계보를 추적하고 제2부에서는 ‘정신’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제1부에서는 장을 달리해 ‘고대인’과 ‘근대인’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고전 고대에서 사람들은 지식과 물질세계에서 스스로 기쁨을 찾은 대상으로서의 세계를 확인하였고 근대에서는 종교와 자유 등의 정신이 개인에게 다른 예속을 강요한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정신’이 절대화되어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이것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인격의 유연성을 허용하는 공간 안에 머무르기를 제2부에 걸쳐서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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