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후커우 제도

ycsj 2022. 5. 7. 12:23
신중국의 후커우(戶口제도는 1951년 도시에서 먼저 시행되었고, 1955년 농촌에 확대 적용되었다. 1958년 호구등기조례(戶口登記條例)’가 국가주석령으로 공포되면서전국적인 범위에서 엄격하게 실시되기 시작했다(이강원, 2006: 155). 중국의 후커우 제도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와 유사하지만단순한 인구등록제도나 인구통계제도를 넘어선 성격을 지니고 있다국가는 후커우 등기와 후커우 관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인구이동의 양과 방향에 개입한다중국의 후커우 제도는 후커우의 분류상 상주 지역과 양식의 조달 경로라는 이중의 범주를 사용하고후커우의 천이(遷移)와 관련해 정책(政策)’과 지표(指標)’라는 이중의 통제를 사용한다. 그 목적은 국가가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농촌에서 도시로의 자발적인 인구 이동을 제한하려는 것이다(이강원, 184). 최근 스콧 로젤(Rozelle, Scott)과 내털리 헬(Hell, Natalie)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농촌 중국 공화국을 현지조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최근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대국으로 굴기(崛起)’했지만여전히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은 치 시스템 내부의 몇 가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다른 중간소득 국가들보다 인적 자본 위기에 더 취약하다현재 위기의 원천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후커우(戶口시스템이다. “후커우가 중국의 도시와 농촌 주민 사이에 거의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장벽을 만들었다… 도시-농촌 간 거대한 불평등은 세계 많은 나라에 존재하지만중국은 이 불평등을 법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유일한 나라다… 중국의 후커우는 국가가 후원하는 카스트 제도 같다”(로젤, 2022: 259). 애초에 식량 확보를 위해 농민이 쉽게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후커우 제도가 대다수 농민을 카스트 제도에 비견할 만한 불평등의 늪에 빠트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후커우 제도의 기원은 1950년대 국가 계획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도 중국 인구를 두 개의 필수적인 범주, 도시 신분을 가지고 특권을 누리는 소수의 사람(오늘날 인구의 약 36%)과 농촌 신분을 가지고 특권에서 배제된 훨씬 많은 다수의 인구(64%)로 나누고 있다. 이 신분은 출생과 함께 부여되며, 부모의 신분에 따라 결정된다. 도시의 부모를 가진 아이는 도시 후커우를 가지고 농촌 부모를 가진 아이는 농촌 후커우를 가지게 된다. 수십 년 동안 도시와 농촌 사람들은 완전하게 분리된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다.  1980년대 개혁으로 농촌 주민들도 도시로 가서 일할 수 있게 허용되었다. 이 변화로 농촌에서 도시로 대규모 이주가 일어났고, 이것이 기록적인 성장률의 핵심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전국적으로 사회적 서비스는 후커우에 기반을 두고 할당되는데, 이것이 불평등과 인적 자본 축적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로젤, 2022: 260).

로젤과 헬에 따르면, 후커우 제도로 인해 약 36%의 도시민과 64%의 농민으로 나뉘어 완전하게 분리된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두 개의 분리된 국가’, ‘농촌 중국 공화국 도시 중국 공화국이라고 명명하고, 전자를 보이지 않는 중국(Invisible China)’이라 한다. 이들은 불평등한 현상 분석에 그치지 않고, 후커우 시스템이 인적 자본 축적에 심각한 영향을 줌으로써, 이후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1993년 이래 상하이의 호적인구는 자연증가를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의 인구 증가는 외래 유동 인구에 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동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농민공이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호구제도는 근현대도시 상하이 발전의 기본 동력이랄 수 있는 이주민의 전입을 근본적으로 봉쇄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새로운 상하이다움(new Shanghai-ness)’의 수혈을 저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가 금지되었던 약 30년 동안 형성된 상하이다움을 돌아보고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주의 각도에서 볼 때 이 30년의 공백은 그 전과 후를 나눌 수 있는 분기점이 되었고, 이전의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흔히 이 공백기 전의 상하이와 상하이인을 라오상하이(老上海)’라오상하이인(老上海人)’이라 하고, 개혁개방 이후의 상하이에 이주한 사람을 신상하이인(新上海人)’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신상하이신상하이인만의 상하이가 아니라 그들이 라오상하이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상하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양자 사이의 역학 관계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라오상하이인신상하이인이라는 역사적 개념을 전제하되, 양자를 불변하는 고정된 개념으로 설정하지 않고, 양자가 끊임없이 섞이고 호동(互動)함으로써 상하이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생성하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신상하이인과 라오상하이인의 구분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즉 외지인이 상하이에 와서 신이민이 되고, 신이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상하이인이 되며 신상하이인은 다시 라오상하이인으로 되는 과정, ‘외지인-신이민-신상하이인-라오상하이인의 과정이 지속되면서 상하이는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주의 각도에서 볼 때 상하이는 베이징과 대비된다. 이전의 과거(科擧) 응시로 대변되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추구한 사람들이 베이징으로 몰렸다면, 상하이 이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몰려왔다. 베이징의 경우, 수많은 베이징 토박이(老北京)가 존재했기에 새로 온 이민이 기존의 베이징문화에 동화된 측면이 강했다면, 신천지 상하이는 온갖 하천을 받아들이는 바다(海納百川)’와 같이 새로운 근현대적 도시문화를 형성해갔다.

그러나 외지인이 상하이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민도시에는 주도권이란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헬드 등이 권력의 위계구조’(헬드 외, 2003: 449)라고 명명한 이 문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시간에 온 서로 다른 집단의 불평등한 접근성은 이민 집단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조성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뉴욕을 재현/표상한 영화<갱즈 오브 뉴욕>(200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대부> 삼부작(1972, 1974, 1990), <똑바로 살아라>(1989)분석을 통해 뉴욕 이민사의 윤곽을 그린 바 있다. “‘요커아이리쉬유태인프렌치/도이치시실리흑인히스패닉아시안으로 이어지는 이민의 행렬은 그 선후에 의해 먼저 온 이민이 주인 행세를 하고 후에 온 이민은 그에 적응하면서 주도권을 노리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표층적 폭력과 심층적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임춘성, 2017: 287).

상하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만 지구적 이민도시 뉴욕과 달리, ‘국내 이주중심이었던 상하이에서는 이주의 선후에 의해 권력의 위계구조가 형성되었다. 호니그(Honig, 2004)에 의하면 상하이에서 원적(原籍)은 에스닉(ethnic)의 함의를 가지게 된다. 고향에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상하이에 와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한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뉴욕 초기 이민에 요커와 아이리쉬, 백인과 유색인종의 구별이 있었듯이, 상하이에도 크게 볼 때 장난인(江南人)과 쑤베이인(蘇北人)의 차별이 있었다. 뉴욕에서 초기에 요커가 원주민을 자처하면서 아이리쉬를 주변화시킨 것처럼, 상하이에서는 장난인이 쑤베이인을 타자화시키면서 상하이 정체성을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난인이 보기에 쑤베이는 우선적으로 북방에서 온 가난한 난민을 하나로 묶은 용어이고, 그로써 그들 자신과 이 계층 사이의 구별을 두드러지게 하려 했다. 실제로 장난인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수호하기 위해 언어ㆍ개성ㆍ문화 그리고 지리상의 구별을 과장했을 것이다”(Honig, 2004: 112).

장이머우(張藝謀)<상하이트라이어드>(1995)에도 폭력조직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동향의 동성을 조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조직의 보스와 류수(六叔) 그리고 수이성(水生)은 모두 탕()씨다. 배신으로 얼룩진 암흑가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동향의 친척뿐이라는 사실은 이민도시 상하이에서 동향 조직이 번성할 수밖에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천카이거(陳凱歌)<풍월(風月)>(1996)에도 비슷한 조직이 등장하는데, 보스(大大)가 충량(忠亮)의 누나가 사는 장난(江南) ()씨네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장난 출신으로 상하이에 자리 잡은 동향 조직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주도권은 대개 이민 시기의 선후와 숫자의 다소에 의해 결정되기 쉽다. 19세기 후반 꾸준히 유입된 이주민은 주로 광둥(廣東)과 저장(浙江), 특히 닝보(寧波) 출신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두 지역의 이주민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그 결과 20세기 초에는 상하이에서 이들 두 지역 출신자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떠오르게 된다(전인갑, 2002: 37). 아편전쟁 이전 광둥(廣東) 무역체제에 힘입어 서양 상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광둥 상인들이, ‘광둥 무역체제의 붕괴와 함께 서양 상인들을 따라 상하이에 먼저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상하이와 인접한 닝보는 오랜 도시 경험을 가진 도시로, 근현대로 들어서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땅이 비좁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여기에 자연경제가 해체되는 시기에 유구한 경상(經商)의 전통을 바탕으로 신흥 도시 상하이에 진출했다(李琀, 2000: 3541). 그리하여 상하이의 닝보인에게는 닝보인이 없으면 도시가 형성되지 않는다(無寧不成市)”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시간의 선후 면에서는 외국 상인과 일찍부터 관계를 맺어온 광둥 상인이 앞섰지만, 숫자 면에서는 인접성으로 인해 닝보인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단연 우세했다. 이들은 오랜 도시 경험과 유구한 경상 전통에 기초해 서서히 상하이를 접수했다. 반면 쑤베이인은 자연재해로 인한 생계형 이민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들은 밥을 먹고 살 수만 있기를 희망하며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그러기에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그들은 자연스레 상하이의 하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민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쑤베이인이 상하이에 정착하려는 시도는 이미 자리 잡은 장난의 중국 엘리트 집단과 외국 통제 하의 시정부의 견제를 촉발했다. 쑤베이인은 중국 엘리트 집단이 추구하는 모던하고 고아한 정체성에 위협이 되었고, 상하이 공부국은 그들이 이 통상항구의 모범 거주구라는 지위에 손상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과 외국의 엘리트들에게 쑤베이인은 외인 또는 객민(客民)이었다”(Honig, 2004: 35). 상하이에서 똑같은 이민이면서 쑤베이인은 외지인이고 이미 자리 잡은 사람은 본지인으로 자처했다. 그들은 쑤베이인을 차별화시켰다. 이런 현상은 쑤베이ㆍ쑤베이인ㆍ쑤베이문화의 주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체는 쑤베이인 자신이 아니라 장난인(江南人)이었다. 신흥도시 상하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노력은 자연스레 자신과 다른 집단을 타자화하면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규정하기 위한 각 이민 집단의 쟁탈전이었다. 그 결과 쑤베이인의 문화는 상하이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존재하고 주변에 처하게 되었다”(Honig, 48). 이런 현상은 해납백천(海納百川)이라는 특색을 가진 상하이의 명성을 무색하게 할 만큼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쑤베이문화의 주변적 위치는 언어 방면 특히 상하이 방언 발전에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상하이 방언은 그 유일한 진정한 본지인, 즉 푸둥인(浦東人)의 언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 이민의 각종 방언의 혼합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우위(吳語)에서 내원한 쑤저우 방언과 닝보 방언이 큰 영향을 주었다. “닝보에서 상하이로 이주해온 대다수가 상인이다. 닝보 상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사람들은 즐겨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런 현상은 상하이문화의 지배적인 한 축을 형성했는데, 상하이인의 정체성은 닝보인이 중심이 된 장난인(江南人)이 쑤베이인을 타자화시키면서 형성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Honig, Emily, 2004, 苏北人在上海, 1850-1980(中文), 卢明华译, 上海古籍出版社.

헬드, 데이비드 외. 2003. ?전지구적 변환?, 조효제 옮김. 파주: 창비

이강원, 2006, 중국의 도시 기준과 대도시 진입장벽: 호구제도와 상하이, 이일영 외, 현대도시 상하이의 발전과 상하이인의 삶, 한신대학교 출판부, 오산.

임춘성, 2017,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스콧 로젤, 내털리 헬, 2022, 보이지 않는 중국무엇이 중국의 지속적 성장을 가로막는가, 박민희 옮김, 롤러코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