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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황조(宋家皇朝)]: ‘중화민국’ 주식회사를 경영한 세 자매

ycsj 2022. 4. 24. 14:01

이 작품은 신해혁명 이듬해 ‘중화민국’이 건국된 후부터 타이완으로 철수하기까지의 약 40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방식은 국민당 4대 가족의 하나인 쑹(宋)씨의 세 자매 중 둘째 칭링(慶齡, 張曼玉분)과 셋째 메이링(美齡, 隖君梅분)의 회상과 독백이다. 하나는 베이징의 병상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뉴욕의 휠체어에서.

회상의 첫 장면은 바로 칭링과 메이링이 베이징 천단(天壇)에 있는 메아리벽(回音壁)에서 말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 메아리벽은 한쪽 끝에서 말하면 다른 끝에서 들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이어지지 않는 대화는 양자의 소통 불가능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서 국산품 애용 운동에서 인형을 버리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세 자매의 각기 다른 태도-버리려 하지 않는 메이링, 동생 인형까지 함께 불 속에 던지는 칭링, 그리고 하나를 소매 속에 감추는 아이링(靄齡, 楊紫瓊분)-는 이후 이들의 삶의 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각자의 기질을 나타내고 있다.

세 자매의 아버지 찰리 쑹(宋査里, 姜文분)은 개명한 지식인이다. 일찍부터 서양을 학습하여 서양 문화에 밝고 인쇄소를 경영하고 있으며 친구인 쑨원(孫文, 趙文瑄분)을 도와 전단도 인쇄하고 자금도 마련해 주는 등 혁명에 종사한다.

세 자매는 아버지 찰리 쑹에 의해 신여성으로 양육되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익혔으며 10살 전후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들은 시대적 과제인 반봉건 계몽의 유력한 방법으로 인식된 서양 학습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찰리 송은 혁명 동료인 쑨원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자녀들에게 ‘송가황조’의 꿈을 기탁했고, 그 꿈은 세 딸에 의해 구현되었다.

세 자매가 부호 쿵샹시(孔祥熙, 牛振華분), 혁명가 쑨원, 그리고 북벌군 총사령관 장제스(蔣介石, 吳興國분)와 결혼한 것은, 아버지의 뒷받침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각자의 주체적인 선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어려서부터 물건에 대한 애착이 많았던 아이링은 산시(陝西)의 대부호를 선택했고, 대의명분을 중시했던 칭링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혁명가이자 아버지의 동료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메이링은 결혼 당시 최고의 실력자를 선택했다. 이때 메이링은 이렇게 말한다; “한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그녀 일생의 최대의 도박이자 최대의 권리이다. 큰 언니가 쿵샹시를 선택하고 둘째 언니가 쑨원을 선택한 것도 일종의 도박이 아니겠는가?” 메이링의 이 도박은 칭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링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중화민국’ 주식회사를 완성했고 둘은 대주주가 된다.

우리에게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중화민국은 1912년 중화혁명당(훗날 중국국민당으로 개칭)에 의해 건국되었다. 그 지도자 쑨원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뛰어넘어 모든 중국인에게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쑨원 사후 장제스는 황푸(黃埔) 군관학교 교장의 자리를 이용하여 병권을 장악하고 이어서 당권과 대권을 손에 거머쥔다. 그는 쑨원에 의해 발탁되었지만 집권 후 그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특히 중국 내의 모든 정치세력을 규합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던 쑨원의 의도는 장제스에 의해 전복되고 말았다

황푸 군관학교가 장제스의 군사기반이었다면 그 정치기반은 ‘국민당 4대 가족’이었다. 장(蔣介石), 쑹(宋子文, 찰리 송의 아들), 쿵(孔祥熙), 천(陳果夫, 藍衣社)의 4대 가족은 혼인 등을 통해 재벌그룹을 형성하여 국민당과 중화민국이라는 거대기업을 독점 지배했다. 그 거대기업은 아이링이 쿵샹시와 결혼함으로써 시작되었고 메이링이 장제스와 결혼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영화에서 이 프로젝트는 주로 아이링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칭링은 이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립하고 그것을 타파하려 했다. 칭링이 반대한 이유는 ‘중화민국’ 주식회사가 쑨원의 이상과 꿈에 위배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인 대립에도 불구하고 자매간의 우애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국민당을 비판하는 칭링을 해치려는 음모가 국민당 내에서 진행되지만 이를 막은 것은 동생 메이링이었다. 그리고 메이링이 시안(西安)사변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도운 것은 언니 칭링이었다.

시안(西安)사변의 해결과정에서 세 자매의 위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시안사변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및 중국과 일본의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그것은 ‘공산당을 우선 섬멸한 후에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장제스의 전략에 불만을 가진 장쉐량(張學良)에 의해 일어났다. 독전(督戰)차 시안을 방문한 장제스를 연금해버린 것이다. 내전을 중지하고 공산당과 합작하여 항일전쟁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장쉐량과 연금된 상황에서도 그럴 수 없다고 강경히 버티는 장제스, 두 사람의 대치국면이 경색되어 갈 때 시안으로 날아온 사람이 메이링이었다. 그녀는 장제스에게, 공산 홍군을 폭격한다는 명분 아래 장제스까지 제거하려는 국민당 내의 복잡한 갈등을 전달해주었고, 칭링은 공산당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연락하여 시안으로 달려가 장제스와 장쉐량을 중재하게 했다. 이로 인해 장제스는 간신히 마음을 돌려 제2차 국공합작에 구두로 동의하게 된다. 중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고비였던 시안사변은 이렇게 세 자매에 의해 연출되었던 것이다.

홍콩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감독 장완팅(張婉婷)은 이 영화로 홍콩 스타일에서 탈피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영화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 감독의 의도는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화면에서 잠시만 눈을 떼어도 스토리를 따라잡기 어려운 전개는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직접 다루는 사건만 해도 신해혁명(1911)부터 1차 국공합작(1924), 군벌과의 전쟁(北伐), 4․12 반공 쿠데타(1927), 시안사변(1936), 2차 국공합작(1937), 항일전쟁, 중화인민공화국 건립(1949)까지 다양한 화면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보다 깊은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