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가(長恨歌)』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왕안이(王安憶)의 원작 소설(1995년)을, 2005년 스탠리 콴(關錦鵬)이 각색해 정슈원(鄭秀文)을 주연으로 영화화했고, 같은 해 딩헤이(丁黑)가 황이(黃奕)와 장커이(張可頤)를 발탁해 35부작 드라마로 제작했습니다. 현대판 ‘오랜 한의 노래’는 1946년 17세의 나이로 미스 상하이로 선발된 왕치야오(王琦瑤)의 40년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스탠리 콴은 정슈원에게 17세의 왕치야오부터 57세의 왕치야오를 맡김으로써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여고생부터 환갑에 가까운 여성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 흔연치는 않습니다. 그리고 원작이 문화 상하이에 초점을 맞춰 묘사한 것에 비해 스탠리 콴의 『장한가』는 왕치야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감이 있습니다. 이른바 ‘왕치야오와 네 명의 남자’ 이야기로 국한시킨 것이지요.
그에 비해 딩헤이는 35부작 드라마에서 소녀 왕치야오와 숙녀 왕치야오를 각각 황이와 장커이에게 맡김으로써 변화를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딩헤이의 드라마는 올드 상하이의 여러 가지 경관을 제공합니다. 특히 룽탕(弄堂)과 스쿠먼(石庫門)으로 대표되는 올드 상하이 공간을 드라마 곳곳에 재현함으로써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왕안이(王安憶)의 『장한가』의 문화적 두터움을 한편의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소설의 1장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마치 카메라의 원경 식 묘사처럼, 마을 전체를 조감하면서 주인공 왕치야오(王琦瑤)가 사는 스쿠먼이 위치한 룽탕에 렌즈를 맞추고 다시 왕치야오의 스쿠먼으로 줌업하면서 그녀의 방으로 이동합니다. 이를 비둘기 시점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세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상하이의 룽탕과 주택 그리고 거리의 변천과정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왕치야오와 청(程) 선생은 상하이 여성과 상하이 남성의 전형적인 삶과 취향 그리고 정체성을 대표합니다. 중국에서 상하이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상하이인은 유독 특이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특히 샤오쯔(小資)라 불리는 중산층은 일정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보유한 채 더 이상 부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추구하면서 질적인 삶을 향유합니다. 주인공 왕치야오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그녀 곁에 맴도는 청 선생은 전형적인 샤오쯔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통해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할 수 있습니다.
먼저 왕안이의 『장한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소설은 3부 12장 44절로 구성됩니다. 제1부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로, 미스 상하이 선발을 중심으로 삼아 해방 전야 올드 상하이 최후의 번화함과 사치를 묘사했고, 제2부는 상하이 해방부터 문혁 종결까지로, 올드 상하이의 유민인 왕치야오 등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망망대해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토굴의 삶을 묘사했으며, 제3부는 1976년 문혁 종결에서 왕치야오의 피살까지로, 상하이 노스탤지어 드림이 현실 생활에서 철저하게 파멸된 것을 묘사했습니다.
세 부분은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인공 왕치야오의 몽환 같은 일생을 망라했고 상하이 노스탤지어 드림의 한 차례 역사순환을 완성했습니다. 『장한가』의 3부는 각각 사회주의 이전, 사회주의 30년,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에 해당하고 각 부는 비슷한 편폭으로 구성됩니다.
푸단대학 천쓰허(陳思和) 교수는 『장한가』가 심미적 방식으로 도시민간의 잠재적(virtual)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평합니다. 그녀의 몸에는 민간세계 사람들의 파편적인 역사 기억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재난이 많았던 연대에 도시 시민계층은 왕치야오를 이야기 핵심으로 삼아 은밀한 기억 속에서 자신에게 속하는 역사와 문화형태를 보존했습니다. 왕치야오는 상하이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왕치야오 몸에는 상하이의 40년간 도시 일상생활에 대한 여러 세대 시민의 추억과 말로 다하기 어려운 꿈이 들어 있지요. 이렇게 왕치야오를 상징으로 하는 올드 상하이 이야기는 도시 민간서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주인공 왕치야오는 교우 관계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입니다. 17새 소녀의 순수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노련한 처세술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우페이전(吳佩珍)과의 짧은 사귐도 그러했고 장리리(蔣麗莉)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한가』는 한 편의 영화입니다. 작가도 작품에서 “40년간의 이야기는 영화 스튜디오에 간 그날 시작되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17세의 왕치야오가 처음 스튜디오에 가서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만난 그럴듯한 장소는 반투명의 잠옷을 입은 여인이 침대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촬영하는 세트장이었습니다. 왕치야오는 이곳에서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낍니다. 작가의 복선을 따라가자면 왕치야오가 본 장면은 자신의 최후이고 소설의 이야기는 그 전의 과정을 서사한 것입니다. 왕치야오는 자신이 스튜디오에서 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일생을 분주하게 산 것이지요.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삶과 도시 공간의 분위기는 마치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을 연상시킵니다. 이렇게 볼 때 『장한가』에서 영화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것은 영화도시 상하이를 대표하는 동시에 상하이 소녀 왕치야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영화 속의 왕치야오인 동시에 왕치야오가 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왕치야오는 상하이 무대에서 40년 간 열연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연기한 배역은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처세술입니다. 마치 잘 훈련된 배우처럼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냅니다. 왕치야오는 또한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는 쉰이 넘어서도 장융훙(張永紅) 등과 나이를 넘어선 패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라오커라(老克腊)와 나이를 잊은 사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대에도 40대의 리 주임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했고 청 선생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지요. 그러나 청 선생은 마지막에 그녀가 자고 가라는 말을 거절함으로써 일장춘몽에서 깨어났고 라오커라는 베개머리의 흰 머리칼을 발견하고는 허망함을 깨닫습니다.
상하이대학 왕샤오밍(王曉明) 교수는 1990년대 들어 주택/부동산 시장의 팽창과 동보(同步)적으로 전개되는 상하이 도시공간의 거대한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는 1980년대 이전의 6개 공간―공공정치 공간, 공업생산 공간, 상업 공간, 거주 공간, 교통 및 기타 사회 서비스 공간, 공원 등의 공공 사교 공간―의 구성이 개혁개방 이후 크게 변화한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 변화는 공공정치 공간과 공업생산 공간이 대폭 감소하고, 공공 사교 공간은 대폭 줄어든 반면, 상업 공간과 주택 공간 그리고 정치 공무 공간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왕샤오밍은 상하이의 새로운 공간을 고찰하면서 “주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축 공간, ‘집’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심리구조, 주택과 거주를 핵심으로 하는 일상생활 방식”이라는 ‘삼위일체’에 주목합니다.
왕샤오밍이 도시공간구조의 거시적 변화를 고찰했다면, 왕안이가 묘사하는 공간은 미시적입니다. 그녀의 초점은 룽탕에서 토굴로 그리고 다시 거리로 이동합니다. 작가는 서두에서 ‘비둘기 시점’을 빌어 카메라의 줌인 비슷하게 상하이 전체를 조망하며 룽탕으로 접어들고 룽탕 입구에서 보이는 천창들, 여닫이 창문들, 기와, 베란다, 담장 들을 보여줍니다. 다시 스쿠먼을 비추면서 천정(天井)과 응접실을 거쳐 계단을 올라 규방, 팅쯔젠(亭子間)으로 들어가지요.
비둘기는 우리에게 계속 속삭입니다. 룽탕이 “이 도시의 배경”이라는 둥, “볼륨이 있는 공간”이라는 둥, “복잡한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 둥, “성적 매력이 있다”는 둥. 이 속삭임은 성찰적(reflective)입니다. 비둘기 시점이 룽탕에서 마지막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서서히 쌓인 “가장 일상적인 정경”에서 비롯된 룽탕의 “감동”과 룽탕의 “또 하나의 경관”인 “풍문”입니다. 풍문은 상하이 룽탕의 “정신적인 부분”이자 “사상”이고 “꿈”입니다. 풍문은 “속되기 마련”이고 “천속”하며 “언어의 쓰레기”와도 같지만, “이 도시의 진심은 오히려 풍문 속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진심은 화려하면서도 저속하고 진주알 같으면서도 모래알 같습니다. 그리고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낭만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고충과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둘기 시점은 상하이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조망자의 시점과,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발터 발터 베냐민의 보행자(wanderer) 시점의 이점을 겸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구석구석 살필 수 있는 것이지요. 전자는 우리에게 총체적 윤곽을 제시하고 후자는 섬세한 결을 보여줍니다.
텍스트에서 왕치야오는 룽탕의 부모 집에서 앨리스의 아파트, 핑안리의 주택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왕치야오의 활동 반경은 이 거처를 거의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상하이 거처를 벗어난 것은 리 주임이 죽은 후 외갓집에 간 것과 웨이웨이 및 그녀 약혼자와 함께 항저우에 여행한 것이 전부입니다.
왕치야오 심중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앨리스 아파트입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안정을 찾습니다. 비록 상하이 내에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마음속의 집은 앨리스였습니다. 앨리스는 ‘사교계의 꽃들의 아파트’로 ‘양갓집 규수와 창부 사이에 존재하고 또 아내와 첩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여자만 될 뿐 아내도 어머니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용모는 이 도시의 재산이며 우리의 자랑입니다. 앨리스는 1949년 이전 상하이의 특수한 공간이었지만 왕치야오에게는 유일한 자기 집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시기에 숨은 구조(hidden structure)로 잠재하다가 개혁개방과 함께 부활합니다.
제2부에서는 공간 묘사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1949년 이후 핑안리 룽탕은 제2부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습니다. 룽탕을 대체하는 것은 ‘토굴’이라 할 수 있는 왕치야오의 방이지요. 이른바 신중국의 이방인들이 인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모여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그들은 잊힌 존재였고 그래서 안전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의 혼혈아요 공산주의 국제화의 산물’인 싸샤의 평가에 따르면 “온몸에서 오래된 나프탈렌의 고약한 냄새를 풍겨대며, 구차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사회의 쓰레기 부르주아’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싸샤는 그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고 정신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기에 자주 들렀습니다. 이들은 핑안리 39호 3층 왕치야오의 방에서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설을 쇠고 겨울에는 난롯가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놓고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들은 “낮 시간은 대강 때우고 밤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습니다.” “태양이 뜨는 한 노래하고 춤추는 그들만의 무대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문혁 직전인 1965년도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에서 밤 시간에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 시공간은 더 이상 밝은 바깥이 아니라 음침한 토굴입니다.
싸샤의 말대로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상하이 먹거리에 관한 기록입니다. 왕자사(王家沙)의 게살 샤오룽바오(小籠包), 차오자자(喬家柵)의 과자, 라오다창(老大昌)의 베이커리, 롄신탕(蓮心湯), 바전야(八珍鴨), 옌수이샤(鹽水蝦), 훙사오카오푸(紅燒拷麩), 충카오지위(蔥烤鯽魚), 친차이더우푸간(芹菜豆腐干), 청쯔차오단(蟶子炒蛋), 그리고 국제클럽, 훙팡쯔(紅房子) 등의 식당들 ….
제3부에서 왕치야오‘들’은 토굴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이때 커다란 변화는 전차의 소실과 댄스파티 성행입니다. 후자는 마치 올드 상하이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왕치야오는 올드 상하이의 대표격으로 여기저기 초대받곤 했지만 그녀가 보기에 댄스파티는 엉망이었지요. 올드 상하이를 동경했던 26세의 라오커라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 둘은 더 이상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하나는 추억에 젖어 하나는 동경을 꿈꾸며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나이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바로 올드 상하이라는 매개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는 올드 상하이에 대한 추억에 잠겨있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동경의 환몽(幻夢)을 꾸었기에, 현실에서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왕치야오에게는 숙녀의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활 속의 숙녀(『상하이 생활』)였고, 다른 하나는 환상 속의 숙녀(사진관 쇼윈도 속의 왕치야오)였지요. “전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것이었고 후자는 눈을 부시게 하는 것으로 제각기 귀숙처가 있었다.” 숙녀 왕치야오는 소녀 왕치야오에 비해 성공 이후, 인내심, 조용함, 나서지 않음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음이 높으면 악기의 줄이 끊어지기 쉽다는 것을. 그녀는 또 스스로 알고 있었다. 높이 올라갈 실력이 못 되면 늘 억제하고 모자라는 듯 처세하는 게 좋다는 것을. 그 효과는 비록 즉시 나타나지는 않지만 나날이 쌓여서 점점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임을.” 17세의 소녀가 이런 처세술을 몸에 익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왕치야오의 독특함은 17세 때나 57세 때나 변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17세에 터득한 세상살이는 57세에 죽기 전까지 변함없이 그녀의 전가의 보도 노릇을 했습니다. 학창 시절 우페이전과 장리리는 그녀의 처세술에 좌지우지 되었고 10살 위의 청 선생까지도 왕치야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17세에 성장을 멈춘 왕치야오. 상하이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언제 어떻게 습득했는지 알 수 없는 패션과 음식에 대한 감각, 이는 왕치야오‘들’을 지탱해주는 기둥입니다. 왕치야오의 선배격인 옌 사모님은, 먹는 것은 사람 됨됨이의 내면이고, 사람 됨됨이의 외면은 옷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취향과 마음가짐이 옷에 드러난다고 단언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옌 사모님‘들’에게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삶의 전부인 셈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파티와 패션입니다. 그것들이 이들의 출세욕과 공명심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사회주의 30년은 파티와 패션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제3부에서 중점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과 이후 사이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아함에서 저속함으로의 타락입니다.
천쓰허는 왕치야오가 현실 생활계 밖에 서있는 허구 인물이라 평했는데, 이는 모순처럼 들립니다. 이를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잠재적이면서 실재적’입니다. 참고로, 관념적인 것(the ideal)은 실재적인 것(the real)에 대립하고, 잠재적인 것(the virtual)은 현실적인 것(the actual)에 대립합니다. 그러므로 왕치야오‘들’은 관념적인 인물이 아니라 잠재적인 동시에 실재하는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그녀들은 194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고 1980년대 이후에도 존재했습니다. 장아이링과 옌 사모님(또는 치야오의 외할머니)이 그 전신이라면 상하이 베이비』의 작가 웨이후이(衛慧)와 장융훙 등은 그 후예입니다. 『상하이 베이비』의 주인공 코코 등은 그녀들의 적녀(嫡女)인 셈이지요. 그녀들은 예나 지금이나 상하이의 주인으로서 상하이를 장식하고 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장한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주변인입니다. 왕치야오와 옌 사모님 등 여성뿐만 아니라 청 선생, 캉밍쉰, 싸샤 등의 남성들도 그러합니다. 정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리 주임은 소설 속에서는 역으로 주변인입니다. 물론 왕치야오와 관련해 상당 분량의 묘사가 있지만 이는 이른바 대서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해방 이전의 장리리의 부친이나 해방 이후 옌 사모님의 남편 등도 모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여기서 작중인물의 ‘여성-되기’를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단순한 여성 중심의 서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한 ‘소수자-되기’와 연계시킬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소수적(mineure)’이란 말은 ‘다수적(majeur)’이란 말과 반대인데, 단순히 수적인 비교를 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다수자 내지 다수성이란 척도의 기준을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수적인’이란 ‘지배적인’ 내지 ‘주류적인’이고, 언제나 권력이 함축되어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수자-되기란 다수적인 것의 지배 권력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장한가』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다수이기보다는 미시 생활 속의 소수자에 가깝습니다.
제3부에 출현하는 젊은 남성들―샤오린, 라오커라 등―도 정치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취향을 추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왕치야오는 좋은 스승 노릇을 합니다. 1945년, 1949년, 1957년, 1966년 등은 중국 혁명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해이지만 왕치야오들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생활을 꾸려갈 뿐입니다. 다만 청 선생은 예외였습니다.
청 선생은 탈이념적 미학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30년대 상하이 모던의 선구자이자 대표입니다. 여러 가지 서유럽 문물을 수용하고 향유하다가 사진 찍기로 귀결되었지만, 그것은 왕치야오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왕치야오를 처음 만나 사진을 찍은 날부터 왕치야오의 아름다움에 반해 끝까지 왕치야오를 포기하지 못하다가 자살하기 얼마 전 자고 가라는 왕치야오의 제안을 받고 나서야 그 고뇌에서 자신을 해방시켰습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어울리지 않았지요. 결국 중국식 사회주의의 극단이었던 문혁의 폭력에 죽음으로 항거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올드 상하이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청 선생의 불행을 언급하면서 한 가지 의문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문혁의 폭력을 비켜가지 못했는데, 청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왕치야오‘들’은 어떻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서술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는 못했다는 것을 지적해두어야 합니다. 특히 조금만 멋을 부려도 부르주아 반혁명분자로 매도되었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핑안리 주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옌 사모님과 왕치야오처럼 한껏 멋을 부린 여성들이 비판받지 않고 상하이에서 문혁을 무사히 넘긴 것이 가능했을까 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문입니다. 근현대사의 중심 상하이, 혁명사의 중심 상하이에 대한 지독한 반어인 셈이지요.
왕안이의 『장한가』는 1940년대 후반 ‘미스 상하이’로 뽑힌 왕치야오의 운명과 삶의 부침을 묘사하고 있지만, 작가는 그녀를 통해 ‘한 도시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으며, 왕치야오의 찬란한 젊음과 중년의 쓸쓸함, 다시 찾아온 말년의 행복은 상하이라는 도시가 경험한 20세기 흥망성쇠와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상하이 도시 운명에 대한 은유로 전달됩니다. 아울러 그것은 소비주의 도시 역사를 부인하는 자세로 근현대성의 도시문화 체험을 총체적으로 상상함으로써 소비주의에 동의하는 노스탤지어 풍조와 거리를 두려 시도했습니다. 『장한가』는 왕치야오의 1940년대의 젊음과 사회주의 30년의 중년 그리고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말년을 통해, 상하이의 부침과 운명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난판(南帆)은 작가가 ‘한 도시의 이야기’(도시의 거리와 분위기, 도시의 사상과 정신)를 쓰려 했고 작가의 마음속에서 여성이 이 도시의 대변인이라 평했습니다. 난판이 보기에 왕안이는 도시 이미지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 배후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묘사하려 한 겁니다. 이를 위해 ‘산문식의 서정과 분석’의 글쓰기를 시도했고, 남성 중심의 거시 역사 서사와 무관한 여성 중심의 미시 생활 서사를 선택했다는 것이지요.
‘포스트혁명 시대의 우울(postrevolutionary melancholy)’이라는 키워드로 왕안이의 상하이를 개괄한 장쉬둥(張旭東)은 『장한가』를 ‘도시의 연대기(chronicle)’, ‘상하이 사시(epic)’, ‘도시의 자연사(natural history)’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의 욕망과 사치에 관한 상세한 연대기인 『장한가』에서 왕안이는 초기 소설에서 보여준 끝없는 한담과 중산계급 생활의 복잡한 의식에 대한 프루스트 식의 묘사(Prustian depiction)에서 진일보 발전했다는 것이지요. 보들레르가 모든 현대 시인에게 도전했던 것처럼 왕안이는 상하이 사시(史詩)를 쓰려는 자제력 있는 충동(subdued impulse)을 가지고 ‘순간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왕안이를 ‘해파문학의 계승자’로, 『장한가』의 주제를 허무로 설정하는 데이비드 왕(王德威)은 왕치야오가 상하이를 무대로 애욕의 추구를 통해 허무를 연기했다고 봅니다. 아울러 왕안이가, 왕치야오가 유행에 열중하는 것을 빌어 30년 세월의 갈마듦―정치의 흥망도 패션의 들고남에 불과할 뿐―을 지적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스 상하이 선발대회가 열린 지 40년이 지난 1985년에 왕치야오는 57세가 되었지요. “‘미스 상하이’의 사망은 40년 전 연기했던 숙명, 상하이의 모든 찬란함이 흑백필름의 미끄러짐 속으로 떨어지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죽음 속으로 떨어진다.”
『장한가』를 상하이에 대한 ‘문화적 우언’으로 읽는 쩡쥔(曾軍)은 작품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이 도시 경관에 대한 작가의 문화 입장, 예술 기호, 정감 태도 등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비둘기 시점’은 바로 작가가 상하이를 바라보는 자각적인 시점이며 작품에서 비둘기는 상하이를 바라보는 가장 높은 곳(制高點)이자 도시의 정령인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작품에서의 비둘기 시점이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상하이 연대기, 상하이 사시, 상하이 자연사, 상하이의 문화적 우언 등 수많은 수사가 따라다니는 『장한가』는 작가의 ‘두터운 기술’을 통해 다층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두터운 텍스트’임에 틀림없습니다.
『장한가』의 문화적 두터움은 반어와 성찰의 특징을 가집니다. 문학인류학적 민족지로서의 『장한가』는 상하이에 대한, 도시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풍자와 냉소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근거도 없고 영혼도 없으며 역사도 없습니다. 이들이 지혜롭다 생각한 처세술은 허망합니다. 이들이 고상하다 아름답다 생각한 ‘미’는 세속성과 상품성으로 가득합니다. 이는 타율에 의해 이식된 유럽문화의 뿌리 없음을 반증하고 있고, 그들의 허위적 삶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스튜디오에서 목격한 죽음을 40년 간 열연하는 왕치야오의 일생은 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아이러니로 가득하지요. 그러나 텍스트 곳곳에 관찰자의 성찰이 눈에 띕니다. 때로는 우리를 일상성의 단조로움에서 사색으로 나아가게 하고 때로는 표면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심층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나아가 상하이와 상하이인에 대해, 그리고 도시와 도시인에 대해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장한가』는 반어와 성찰이 풍부한 두터운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장한가』는 유병례 교수의 번역으로 한국(은행나무)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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