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한방칭의 [해상화열전]

ycsj 2020. 9. 20. 10:28

 

허우샤오셴과 타이완 뉴웨이브

 

허우샤오셴(侯孝賢)은 에드워드 양(楊德昌)과 함께 타이완 뉴웨이브(新浪潮)를 주도했고, 우리에겐 타이완 현대사를 다룬 <비정한 도시>, <동년왕사>, <연연풍진>, <호남호녀> 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함께 타이완영화 개혁을 주도했으면서도 두 감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가 됩니다.

허우샤오셴이 중국적이라면 에드워드 양은 서유럽적이고, 허우샤오셴이 전통과 농촌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면 에드워드 양은 현대화와 도시를 이성적으로 해부했으며, 카메라 기법에서 롱 테이크(long take) 미학을 추구하는 허우샤오셴의 휴머니즘에 비해 에드워드 양은 자각적 몽타주(montage) 사유를 추구하는 전위적 감독에 속합니다. 국제적으로는 허우샤오셴의 지명도가 높지만 타이완 뉴웨이브를 추동한 선구자는 에드워드 양이었습니다.

 

상하이 조계 문화

 

타이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던 허우샤오셴이 돌연 조계시대 상하이 기생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은 <해상화>를 찍은 건 마니아들에겐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상하이의 면모는 일체 보여주지 않고 카메라는 기루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타이완 현대사를 영화로 표상하는 작업에 몰두해온 허우샤오셴이었음을 아는 팬이라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해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특이한 지점이지요. <해상화>를 심층 독해하려면 원작자 한방칭(韓邦慶), 번역자 장아이링(張愛玲), 시나리오 작가 주톈원(朱天文)를 경유해야 합니다.

<해상화>가 조계시대 상하이의 기생을 다룬 작품이란 점에 초점을 맞춰 우선 상하이 조계의 윤곽을 그려보도록 하지요. 1843년 개항 이후 조계가 중심이 된 상하이는 이주민과 대외무역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면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습니다. 도로 확장과 건설, 조명, 수도, 소방, 우정, 전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항운과 금융 그리고 공업의 발달은 상하이를 완전히 새로운 근현대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조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근현대 도시 시스템과 서양 상품 그리고 서양문화는 이후 상하이 도시문화의 주류가 되고 수많은 이주민들은 그것을 지향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동방의 뉴욕’으로 표기되는 이민과 금융의 도시, 그리고 ‘동방의 파리’라는 기표가 전달하는 유행과 대중문화의 중심은 바로 조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조계로 대표되는 상하이 도시문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바로 서양 자본주의 외래문화를 수용한 상업문화입니다. 상업문화의 기조 아래 인간관계와 이성 감정도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도덕은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바꿔 말하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선도하는 상업문화는 바로 조계 도시 상하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하이 기루 문화

 

기루는 상하이 조계에서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루는 대략 명말청초부터 상하이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하이현성의 서문에 집중되어 있던 기루는 태평천국군이 상하이를 공격해 서문을 점령하자 대부분 조계로 이전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918년 상하이에는 고급기생(長三)이 1천여 명 있었고, 중등기생(么二)이 약 5백 명, 그리고 하등기생(野鷄)이 5천여 명 있었습니다. 조계에서 번성한 기루는 한편으로는 도덕의 타락, 이욕의 팽창, 사치와 낭비 등을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껏 생활을 즐기고 자유로운 애정 생활을 의미했습니다. 후자의 측면에서 보면 기루는 현대 도시 정신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공간이었던 셈이지요.

고급 기루(長三書寓)는 상인들의 유흥 장소인 동시에 상무(商務) 공간이었고 기생들의 생존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문화 집산지였습니다. 당시 기루는 유행의 풍향계 역할, 관리와 상인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명리의 현장, 자아 매력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무대라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조계의 기루는 사회 전환시기인 만청에 출현한 새로운 현상으로, 이는 동서 문화 충돌 및 중국 사회 현대화 역정의 표징이었습니다. 19세기 상하이는 상업문화가 지배하는 욕망의 도시이고 기루는 그곳에서 성장한 ‘악의 꽃’이었습니다.

 

상하이의 꽃, 기생

 

<해상화>는 영화를 “세상을 대하는 예의”라고 생각하는 허우샤오셴 영화미학의 결정판입니다. 38개의 시퀀스로 구성된 영화에서 카메라는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고 또한 화가가 붓질하듯이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손님들이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차이취안(猜拳: 상대방이 내민 손가락 숫자를 알아맞히는 벌주놀이)을 하며 야연(夜宴)을 벌입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롱테이크(long-take)로 10분 정도 지속됩니다. 연장자인 훙산징이 놀이를 주도하면서 여러 조합의 차이취안 게임이 진행되고 때론 당사자가 벌주를 마시기도 하고 때론 뒤에 서있던 기생이 대신 그 벌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언뜻 보기에 기생들은 손님들의 옆이나 뒤에 있어 보조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기루의 주인은 기생입니다. 손님들은 돈을 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생이 정해놓은 기루의 규칙을 따릅니다. 영화는 다섯 차례의 술자리 외의 대부분 장면을 기생과 손님의 관계에 할애합니다. 술자리가 오늘날 룸살롱 장면을 연상시킨다면, 두 사람 장면은 마치 동거 애인 또는 부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술자리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놀이하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반면 두 사람 장면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기생에게는 기생어미가 있고 하녀가 있습니다. 그들은 기생과 손님을 수발하는 것으로 생계를 도모합니다. 물론 그 비용은 손님에게서 나오지요. 바꿔 말하면 손님을 가장으로 하는 일종의 유사/의사(擬似) 가정인 셈입니다.

 

과도기의 유사 가정

 

앞서 살펴본 <색, 계>의 원작자이며 중국 최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장아이링은 영화의 원작 한방칭의 『해상화열전』(1894)을 10여 년에 걸쳐 두 차례나 번역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다시 현대 중국어로 말이지요. 그만큼 이 작품을 애지중지했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당시 기루가 ‘유사 가정’ 역할을 하게 된 상황을 섬세하게 분석합니다. 영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장아이링의 얘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한방칭의 『해상화열전』

 

장아이링이 두 번이나 번역한 『해상화열전』은 21세기 들어 문학사가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원로학자 판보췬(范伯群) 교수는 『중국현대통속문학사』에서 『해상화열전』을 2천년이 넘는 고대문학 열차에서 현대문학 열차로 갈아타는 ‘환승역’으로 명명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판 교수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 현대 대도시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현대통속소설이라는 점. 둘째, 상하이 상인을 주인공 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로 삼은 점. 셋째 시골 사람이 도시에 진입하는 선구적 시점을 택해 상하이라는 신흥 이민도시의 거대한 흡인력과 상하이에 거주하는 다양한 이민자들의 초기 생활을 반영한 점. 넷째 오어(吳語) 문학의 최초 걸작이라는 점. 다섯째 ‘교차은현(交叉隱現)’ 플롯을 사용하는 등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 여섯째, 작가 한방칭은 문학 간행물을 발간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

판 교수 이전에도 『해상화열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인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문학 진영의 맹장인 루쉰(魯迅), 류반눙(劉半農), 후스(胡適)와 1930년대 장아이링(張愛玲)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장아이링은 [해상화열전]의 주제를 ‘에덴동산에 열린 금단의 열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해설을 들어보면, “맹목적으로 결혼한 부부도 결혼 후에 애정이 생겨나기는 하지만, 먼저 성(性)을 먼저 경험하고 나중에 사랑이 생기기 때문에 그들 간에는 긴장과 염려, 동경과 신비감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연애가 아니었다.”(역자 후기)

이는 중국 전통 혼인·연애 제도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것입니다. 남녀가 엄격히 구분된 사회에서 미성년자들은 성애와 연애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지다. 그러다 “일단 성년이 되면 기루라는 더럽고 복잡한 구석진 곳에서 기회를 갖게 되곤 한다.” 일찍 결혼한 남자는 성에 대해 이미 신비감을 상실하고, 기루에서 ‘기생’이 주는 ‘연애’의 감정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주로 남성의 측면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러면 이들 남성의 파트너인 당시 기생은 어떠했을까요? 장아이링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매춘부는 정이 없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말로, 그녀들의 표면적 호의는 직업 활동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해상화]를 보면, 적어도 당시 고급 기루에서 기녀의 첫 경험이 그리 빠르지 않았고 받는 손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여인의 성심리가 정상이라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반응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상대방이 참을성이 있다면 왕래가 잦아져 자연히 연애 감정이 생겨날 것이다.

장아이링의 해석에 따르면, 상하이 조계의 기루는 봉건 중국에서 자본주의 근현대로 전환하는 기간 자유연애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지요. 기루를 찾는 남성들은 봉건 혼인제도로 말미암아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정혼했고 혼인 후 육체적 성에는 눈을 떴지만 연애 감정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한편 여성도 돈을 벌기 위해 부득이 기루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단골손님 중심 시스템은 기녀들에게 일정 정도 선택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므로 손님과 기생 사이에 애인 관계로 발전하거나 심지어 유사가정 생활을 꾸린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근현대 중국에서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5․4신문화운동 이후 입센 열풍이 불기 시작한 1920년대인 만큼, 장아이링이 『해상화열전』을 “백 년 전 인생의 중요한 공백을 메웠다”고 평한 것은 과도기 혼인 형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로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중심인물로 다뤘던 왕롄성과 선샤오훙의 관계는 유사가정의 좋은 예입니다. 왕롄성이 다른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때 선샤오훙의 질투는 마치 정실부인의 그것과 같았고, 반대로 선샤오훙이 경극 배우와 바람이 났을 때 왕롄성의 반응도 격렬했습니다. 또한 저우솽위는 주수런과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지만 주수런이 집안의 압력으로 다른 여성과 약혼하자, 저우솽위는 아편을 삼키고 동반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생들에게는 금전적 고려가 전혀 없지 않았고 상대 남성들도 순진무구한 것만은 아니었으며, 오로지 계산속으로 고객을 대한 기생도 많았음을 지적해두어야 합니다.

개항 이후 상하이 조계지, 특히 쓰마루(四馬路)에 집중되어 있던 상하이 기생은 한편으로는 봉건 잔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가치를 구현한 직업여성입니다. 기생의 삶은 두 영역과 두 공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남성 중심의 공공영역과 전통적인 여성의 사적영역, 개방적이고 근대적인 공간과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공간이 그것이지요. 양자 사이에서 그녀들은 서양의 생활방식과 전통적인 가치의 충돌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최신 유행사조와 근대적 문화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고급 기생들은 ‘모던’을 앞서 이해하고 선도하는 새로운 문명의 중개자로 각광받습니다. 이들은 5․4시기 신여성의 등장과 뒤이은 여배우들의 활약 이전의 짧은 시간이나마 상하이 소비문화의 주역을 담당했습니다. 이를테면 리수팡의 치정(癡情), 선샤오훙의 자기 뜻 존중, 자오얼바오의 순정 등을 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항 이후 상하이의 표상을 ‘이민’과 ‘조계’로 설정하고 그 주요한 특징을 ‘해납백천(海納百川)’과 ‘이신시서(以身試西)’로 파악해온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기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목대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들의 ‘경계 넘기’는 모던 상하이의 혼종적 징후(hybrid symptom)를 구현했던 것입니다.

근현대 혼종적․개방적 징후가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소비입니다. 당시 기녀들은 단순하게 술을 따르고 몸을 팔아 돈을 챙긴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유사가정을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이 자신과 딸린 식구들에게 필요한 경비를 지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생들의 씀씀이는 사치스러웠습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가치를 소비행위에서 구현했습니다. 그녀들은 의류와 장신구에서 유행의 첨단을 달렸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상징인 연극 관람과 서양문화의 대표인 마차 타기와 사진 찍기 등에 열중함으로써, 상업도시 상하이의 소비 주체로 우뚝 섰던 것입니다.

 

19세기 말 상하이 민족지

 

한방칭의 『해상화열전』 제1회는 특이하게 시작합니다. 화자는 첫 문장에서 『해상화열전』 이야기의 작가인 화예롄눙(花也憐儂)을 소개합니다. ‘꽃도 당신을 연민한다’는 의미를 가진 작가가 ‘꽃 바다(花海)’ 즉 기루에 오랫동안 꿈처럼 살던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화예롄눙은 한방칭의 화신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한방칭은 당시 기생들 세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해상화열전』을 화예롄눙이 ‘날마다 꿈속에 살면서도 꿈이라 여기지 않고 쓴 책’이라 소개합니다. 작가에게는 ‘꿈속의 책’이지만 독자에게는 ‘책속의 꿈’이 될 이야기는 바로 기루(妓樓)에 관한 것입니다.

화자의 해설을 보면, 저자는 ‘꽃 바다’에서 헤매다가 상하이 화계와 조계의 경계지점인 루자스차오(陸家石橋)에 떨어져 “뜻밖에 꿈을 꾸었구나!”라고 탄식하며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 주인공의 하나인 자오푸자이(趙朴齋)와 부딪치면서 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서문 또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본 이야기가 시작하는 제1회 앞에 배치해 이야기의 연속성을 드러냅니다. 이후 화예롄눙은 다시 등장하지 않고 화자는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화예롄눙은 관조의 태도로 기생과 고객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관조는 일상적이고 세속적 생존으로부터 나온, 인생에 대한 연민과 융통성 있는 관조다.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는 윤리 도덕 판단의 층위를 뛰어넘어 은폐된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관조는 고요한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니 성찰에 가깝습니다. 기루에서 기생과 고객의 관계를 묘사하는 협사(狹邪)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해서 인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을 진행함으로써 기루의 표층 이야기에 가려져있는 심층의 인간관계를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작가가 상하이 조계지역 기루에서 생활하면서 관찰한 것은 단순히 기생과 손님이 아니라, 상하이 사회 속의 ‘어지럽게 섞여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상심의 역사’입니다. 바꿔 말하면, 기루를 제재로 삼은 『해상화열전』은 협사소설에 그치지 않고, 도시 사회의 삶과 애환을 그렸습니다. ‘인생에 대한 연민과 융통성 있는 관조’의 자세로 ‘즐거움과 상심의 역사’를 관찰하고 성찰한 결과물인 『해상화열전』은 민족지학자가 ‘참여 관찰’의 결과로 기록한 민족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상화열전』은 현대 도시 발전과 조계 기루문화 사이의 상호 추동 관계를 묘사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장삼서우(長三書寓) 기녀들이 조계라는 새로운 사회 문화 콘텍스트에서 어떻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여성 공간의 범위를 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만청 상하이 조계는 파리 못지않은 현대 도시문화와 물적 설비가 갖춰져 있었고, 이는 전통 문화를 바꿔 새로운 시간과 공간 관념을 형성했던 것이지요.

19세기 상하이 조계의 기루는 유흥공간이자 사교공간의 공공성과 유사가정 공간의 사인성이 혼합된 장소입니다. 장삼서우식 기루는 오늘날로 치면 가정식 고급 식당/술집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통 가정 모델을 대체한 유사가정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가정에서 따뜻함―장아이링의 표현대로라면 연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이 바깥에서 그에 대한 대리만족을 구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삼서우는 가정 구조에 대한 형태적 모방으로 기존의 가정 관념을 전복하고 있는 셈이지요. 기루는 본질적으로 개방된 공간이지만 장삼서우식 기루는 유사가정의 성격을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성에게는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현장이자 유흥공간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의 편안함을 맛볼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됩니다.

상업문화가 주류였던 상하이에서 새로운 주체는 단연 상인입니다. 『해상화열전』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비교적 중요한 손님이 27명인데, 그 가운데 상인이 16명으로 압도적입니다. 그 외에 문인 3명, 관리 2명, 한량공자 4명, 건달 2명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보면, 상인이 문인을 대신해 기루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는 상인이 조만간 상하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루를 상무(商務)공간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흥공간이자 자유연애 공간으로 삼아 새로운 도시문화를 추동했습니다. 개항 후 몇 십 년 만에 상무가 발달하고 상업이 흥성한 상업 도시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공간이나 시간 또는 행위 등에서 농업 중심의 전통 도시 거주민들과는 확연히 달랐지요. 상하이는 이제 상업문화의 왕국이자 소비의 천당이 되었고 상인들은 바로 상하이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기루와 관련된 상인들의 가장 큰 변화는 야간 활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기루에서 모임을 열어 서로 초대해 식사합니다. 이때 단골기생도 배석하기 마련이지요. 이들은 마치 서양인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것처럼 저녁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 자리는 우선적으로 유흥공간입니다. 식사하고 술 마시고 시권/차이취안(猜拳) 놀이를 통해 벌주 마시기 내기를 하는 등 유흥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유흥의 주역인 남성들에게는 반드시 파트너로 단골기생이 배석해서 술을 따라주고 음식을 집어주며 심지어는 술을 대신 마셔주기도 합니다. 이들은 임시 파트너가 아니라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왕롄성에게는 선샤오훙이, 뤄쯔푸에게는 황추이펑이, 그리고 주수런에게는 저우솽위가 따라다닙니다.

작가는 제1회에서 “지금은 서시보다 아름답지만 등 뒤에서는 야차보다 악랄하고, 오늘은 조강지처보다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사갈보다 독랄함을 알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 작품의 주제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는 표층적으로는 기생이 고객을 대하는 기제를 지적한 것이지만, 상업도시 상하이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관계를 압축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기루는 당시 상하이의 금전만능 풍조를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작가는 기루를 통해 욕망과 타락이 충만한 십리양장(十里洋場)의 조계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전변을 겪고 있는 상하이라는 근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찰과 개탄을 다성적(polyphonic)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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