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정글만리』라는 화두

ycsj 2014. 5. 19. 20:26

 

최근 대량의 중국 소설들이 번역 출간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작가 가오싱젠(高行建)과 모옌(莫言)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 독자에게 가장 환영받는다는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余華), 그리고 영화 <홍등>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쑤퉁(蘇童), 베이징의 왕숴(王朔)와 톄닝(鐵凝) 그리고 류전윈(劉震雲) 등의 대표작이 거의 출간되었고, 상하이의 왕안이(王安憶)와 쑨간루(孫甘露), 산둥(山東)장웨이(張煒) 등도 소개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많은 작품이 출간되었으니 이른바 중국소설 붐이 일어날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13년에 시작된 정글만리 붐은 금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 수상 작품을 포함한 중국 소설이 한국 작가의 기업소설의 위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정녕 한국 작가의 수준이 중국 작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해석하자면, 왜 한국 작가는 노벨상 프로젝트 운운 하면서도 노벨상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근현대 들어 근 백 년의 격절을 거쳐 1992년 수교 이후 2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학과 관련된 한국 독서 대중의 취향은 삼국연의수호전그리고 서유기등에 머물러 있는데, 정글만리가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바로 장회체(章回體) 장치다. 연속극처럼 매 편 마지막에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배치하고 그 다음 편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장치가 장회체다. 그렇다면 조정래는 뛰어난 작가적 후각으로 장회체라는 장치를 터득해 응용하고 있는 셈이다. 권당 각 10, 장당 약 40쪽으로 구성된 텍스트는 마치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한국 독자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

앞당겨 말하면, 정글만리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의적절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그 넓은 공간은 아무리 다녀도 모두 가볼 수 없고, 25사로 표현되는 3천 년의 역사는 그 속에 빠지면 헤쳐 나오기 어려운 망망대해와 같으며, 아무리 먹어도 다 맛볼 수 없다는 음식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두터움 앞에서 규모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모르던 한국 독자들에게 정글만리는 중국 인식의 출발점을 마련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완벽한 텍스트가 아니다. 백년간의 격절을 뛰어넘어 문득 우리에게 닥쳐온 중국을 이해하고 논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우리는 정글만리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중국이라는 두터운 텍스트를 해부하고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라는 두터운 텍스트를 해부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한국 중국학자들의 과제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심화 확대시키는 여러 가지 경로 가운데 최근 중국 소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매우 효과적인 경로일 터이다. 서두에서 거론한 여러 작가들은 개혁개방 이후 급변하는 중국을 이해하는 데 더 할 나위 없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안내를 잘 받기 위해서는 안내자의 스타일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중국 작가들은 한국 작가들과도 다르고 기타 외국 작가들과도 다른 독특한 스타일과 감정 구조(structure of feeling)’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감정 구조는 집단적 무의식과 표면화된 이데올로기의 중간에 형성된 특정한 집단과 계급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한 세대의 문화(the culture of a period)는 그 시기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경험과 가치 및 정서들의 총합체인 특수한 감정 구조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중국 작가들의 스타일과 감정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 최근 중국 소설을 한국 독자와 접맥시켜 주는 또 다른 수준의 문화 중개자(cultural moderator)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글만리는 한국 독자의 취향과 중국 인식 의향을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4월 관련 학회에서 정글만리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한 것은 시의적절 했다.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중문학 연구자, 국문학 평론가, 칭다오의 기업가를 패널리스트로 구성한 좌담회는 사회자의 치밀한 준비와 패널리스트들의 꼼꼼한 준비로 흥미로운 발언들이 오고갔다.

좌담회는 나름 각본과 콘티가 있었고, 특히 한국 독자들의 중국 알기 욕망의 수준과 지향을 정글만리가 대변했다는 지적과 스토리텔링의 전략전술을 학습해야한다는 제언은 귀 기울일 만한 성과였다. 특정 텍스트를 평가하는 것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당일 좌담회에서도 강의 교재로 삼았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1권을 읽다가 던져버렸다는 고백도 있었고, 농민공에 대한 서술이 표층적이고 조선족에 대한 언급이 없는 위험한 텍스트라는 평가도 있었다. 어쨌든 한국 작가의 중국 관련 기업소설이 독서계에 파문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전공학회 학술대회의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조만간 중국어로 번역·출간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정글만리의 공헌과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짚도록 핍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