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검열

ycsj 2014. 5. 10. 08:35

포스트사회주의 중국 사회를 바라보는 키워드는 논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심층을 바라보는 눈 밝은 이라면 검열문제를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개인 경험만 하더라도, 상하이대학 당대문화연구센터 웹사이트에 올린 글의 한 부분에서 , 의 섹슈얼리티를 논했다가 한동안 검색이 금지되었고, 장뤼(張律) 관련 글을 세 번 거절당했으며, 신세기 한국의 중국 현당대문학 연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가오싱젠(高行建) 관련 글과 작가의 세계관 지양(止揚)과 관련된 제외시켜달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최근에는 한국에서 발표한 첸리췬(錢理群) 선생 관련 칼럼을 중국어로 번역해 보냈더니 난색을 표명해 결국 발표를 포기하기도 했다.

우리도 군사독재 시절에 겪었지만 검열의 해악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검열을 유발하고, 후자의 기준은 항상 전자의 기준을 상회하기 마련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분명 검열에 비판적인 중국 지식인들도 외국 친구의 호의적인 지적을 수용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국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국정(國情) 운운하며 불필요한 자존심을 드러내곤 한다.

2011-2012년 방문학자로 머물렀던 상하이대학 중국당대문화연구센터의 웹사이트도 내가 방문하기 전 어떤 일로 폐쇄되었다가 귀국할 무렵 간신히 해제되었다. 폐쇄 조치는 해당 기간 웹사이트를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축적했던 자료를 회복하는 데 대량의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게 만든다. 이는 마치 청조에서 한족 지식인들의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고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케 한 일과 유사하다. 사고전서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었지만, 웹사이트 자료 회복은 단순한 소모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에 들어 더욱 강화된 검열 지침은 20136월 인쇄만 남겨둔 열풍학술7을 다시 표류시켰다.

최근 중국 당국의 검열은 직접 통제 방식에서 간접 관리 방식으로 바뀐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TV드라마의 제편인/즈폔런(制片人. zhipianren) 제도. 개혁개방 이후 대중문화가 유행하더니 21세기 들어 중국산 TV드라마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1980년대가 문학의 황금시대였고 1990년대가 영화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TV드라마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 동향과 시장 규모, 정부의 대응, 사회심리, 업계 체제, 매체의 작동 등 각 방면의 신속한 변동을 유발해 거대한 덩어리의 스크린을 합성해 오늘 중국의 지배적 문화 및 그 생산 기제의 복잡한 작동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뤄강(羅崗)TV드라마의 물질적 기초로, 수상기 보급, TV채널 증가, 제작 인원의 다원화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장시(江西)TV채널의 경우, 중앙방송국 십여 개, 몇 십 개의 각지 위성방송, () 방송극 열 몇 개, 지역 방송국 몇 개에서 열 몇 개, () 방송국 또한 적어도 한두 개, 이것을 모두 합하면 거의 백 개에 가까운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드라마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일일이 검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제편인 제도라 할 수 있다.

제편인은 1980년대 말 등장했는데, 이는 시장경제 작동방식이 TV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도입된 것이다. 제편인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시장과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해 TV드라마 제작부터 배급까지 전체 유통과정을 통제한다. 바꿔 말해 이전에는 당국에서 직접 통제하던 TV드라마를 1980년대 말부터는 제편인 제도를 도입해 그가 대신 관리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추론해보면, 이전에는 모든 것을 사전에 확인하고 검열했는데, 톈안먼(天安門) 사건 이후 일정 정도 자율적인 공간을 열어주되, 선을 넘어서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라는 사후 책임 추궁의 방책을 시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세대 감독 러우예(婁燁)가 당국에 알리지 않고 여름 궁전을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가 5년간 자격정지를 받은 것은 대표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