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 중국의 지식인 지형도에 관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조경란은 “21세기 중국 지식 지형에 대한 나름의 인문학적 비판과 평가 그리고 전망”을 담으려는 야심찬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조경란의 시도는 일종의 사조유파론에 해당한다. 우선 주요 사조를 대륙 신유가, 자유주의, 신좌파로 나눈 후, 좀 더 세밀하게 신좌파, 자유주의파(자유주의 좌파 포함), 문화보수주의파, 사회 민주주의파(또는 민주사회주의파), 구좌파(포퓰리즘파), 대중 민족주의파, 신민주주의론파 등의 7개 유파로 나눠, 대표 인물, 출현 시기, 마오쩌둥 시대와 문혁 시대 등 14개 항목으로 나눠 분류하고 있다.
조경란의 지식 지형도는 한국의 ‘비판적 중국학자’들에게 커다란 윤곽을 제시해준 장점이 있지만, 세부에서는 쟁론의 여지가 있다. 국내에서 서평이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반증일 터이고, 서평에서 비판하고 있는 쟁점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신좌파들이 국가주의로 경도되어 보수화했다는 평가는 아직 유보적으로 판단해봐야 할 문제는 아닌가 (…) 기존의 이데올로기 중심의 지식인 분류가 (…) 전형적인 틀로 정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제기로 보인다. 아울러 자유주의파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은 것도 문제다. 이를테면 조경란의 지식 지형도에서 범 ‘자유주의파’로 분류된 친후이(秦暉)를 뤼신위가 ‘신자유주의파’로 규정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 좌파와 우파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레토릭이 가미된 것이지만, 간양은 자유주의 좌파라 자칭하기도 했는데, 일리 있는 자평이다.
사조유파론은 나름 의미가 있는 방법론이지만, 신과 구, 좌와 우, 중국과 외국의 대립 갈등 나아가 혼재된 양상으로 인해 경계를 확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지금 여기’의 시대적 과제와 맞물리게 되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노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논자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를 수 있고 특히 특정 인물을 어느 유파에 배치하느냐의 문제는 의론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나도 1917년부터 1949년까지의 중국문학사의 발전 윤곽을 고찰하면서 세 가지 문화사조―맑스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로 나누고, 각 문화사조가 리얼리즘, 로맨티시즘, 모더니즘의 예술방향과 결합하는 양상에 따라 16개의 유파로 나눈 바 있다. 굳이 양자를 비교해보면, 내가 문화사조를 가로축으로, 예술방향을 세로축으로 설정하고, 문화사조와 예술방향의 결합 여하에 따라 다양한 유파가 형성되었다고 본 반면, 조경란은 3대 유파를 중심으로 하되 4개의 중소 사조를 추가해 그 특징을 항목별로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경란이 주요 유파로 설정한 대륙의 신유가, 자유주의, 신좌파는 필자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맑스주의와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필자는 그것을 문화사조로 본 반면, 조경란은 바로 유파로 분류하고 있는 점이 차이다. 커다란 흐름이 있고(사조) 그 흐름이 ‘여기 지금’의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유파가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경란의 지식지형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조경란의 지식 지형도는 공간과 전공 면에서 편향을 가지고 있다. 주로 베이징 중심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삼되, 그 시야에는 문학/문화연구 베이스의 지식인이 대거 누락되어 있다. 첸리췬과 왕후이는 문학 전공자이면서도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리퉈, 다이진화, 왕샤오밍은 빠져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문화연구 상하이학파(또는 그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왕샤오밍 외에도, 최초로 ‘저층(底層)’이란 개념을 제출하고 중국 사회주의 문학과 문화를 ‘혁명중국’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고찰한 차이샹(蔡翔), 1989년 이후 톈안먼 사건의 폐허 위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新)다큐멘터리 운동을 의제화하고 최근에는 저층으로 들어가 그들과 대등한 지위에서 작업을 하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에 대한 글을 발표하고, 삼농(三農) 문제를 놓고 친후이(秦暉)를 비판한 뤼신위(呂新雨), 사회주의 노동자 신촌시기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었던 생활세계를 복원시키고 인민주체, 인민주권, 인민지상이라는 관점에서 중국 혁명의 길과 현대의 길을 탐토하고 있는 뤄강(羅崗) 등에 대해서는 진지한 재고가 요구된다. 지식인의 자기 성찰과 실천을 검증할 수 있는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기준으로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을 고찰한 조경란의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그 구체적 성과로 제출된 지식 지형도는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좌파’의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있다. 그 기준은 평가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한 중국에서, 그리고 그 혁명을 주도한 중국 공산당의 혁명 대의부터 그 대의의 초지(初志)를 지금도 일관(一貫)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에 따라 중국의 좌파를 규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 글이 감당할 몫이 아니다. 다만 이 글에서 ‘비판적’이라 표현한 좌파의 기준은 누가 뭐래도 소수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는 사실만 언급하기로 하자. 첸리췬의 민간이단 사상, 왕후이와 쑨거(孫歌)의 소수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1990년대까지는 신좌파의 명단에 오르지 못했지만, 문화연구로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소수자의 입장에 접근하고 있는 왕샤오밍과 상하이학파의 비판적/개입적 문화연구는 분명 비판적이고 유기적인 좌파 지식인의 실천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보다 앞서 동서고금을 아우르면서 실용이성이 강고한 중국 전통을 해체하기 위해 현대적 과학기술을 근본으로 삼자고 주장한 리쩌허우(李澤厚)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첸리췬과 천쓰허(陳思和) 등의 ‘20세기 중국문학’, 왕후이의 『중국 현대사상의 흥기』 등은 리쩌허우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진다이(近代)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조에 대한 고찰은 중국의 진보적 전통을 중국 공산당의 범주보다 큰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중국 지식인들에게 거시적인 시야를 제공했다. 왕샤오밍의 『중국현대사상문선』은 바로 그 직접적인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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