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민주주의의 역설

ycsj 2014. 1. 4. 08:41

    

1.

 

지나간 시간은 쏜살같이 느껴진다. 그 속도는 점점 가속되고 있고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의 계절은 그 느낌을 강화시켜준다. 내가 참여했던 다섯 번의 총장직선 가운데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되었던 고석규 총장의 4년 임기가 이제 끝나가고, 굴곡 많았던 제7대 총장 선출을 마무리한 지금, 쏜살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목포대학교 제6대 총장 활동백서 편찬위원회에서 보내준 자료에 따르면, 고 총장의 주요업적은 크게 다섯 분야로 나누어 40항으로 기술되어 있다. 업적이란 것이 본래 약간은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기반이 튼튼한 대학’, ‘교육혼이 살아있는 대학’,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 ‘세계로 나아가는 대학으로 나누어져 있는 고 총장의 4년 성과는 눈부시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충분히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상론하지 않겠다.

편찬위원회의 원고 요청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고 총장 재임 당시의 이슈 또는 관련 에피소드 가운데 내가 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2011년 가을 화둥사범대학, 201310월 상하이대학 방문 및 MOU 체결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총장 직선제 폐지와 관련된 이슈를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표출되지 않은 여러 가지 층위가 내재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총/학장 직선제 쟁취와 교수평의회라는 대의기구, 교육부의 압력, 그리고 총장의 철학과 스타일 등이 어우러져 있다. 여러 가지 쟁점들의 심층에 민주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2.

 

최근 민주주의에 관한 몇몇 논의를 검토해보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히틀러의 파시즘도 선거라는 절차를 밟아 정당성을 획득했고, 스탈린의 공산 독재도 민주 집중이라는 절차를 밟은 것처럼 위장했으며, 박정희의 개발 독재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수식어로 은폐되었던 사실들이 그 증거다. 가까이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수많은 열사들의 생명을 희생하고 획득했다고 생각한 1980년대의 민주화가 우리가 생각했던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를 갸웃거리게 만들었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허상임을 보여주었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불통/독재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화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삶이 어려운 상황은 유감(遺憾)’이 아닐 수 없다.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은 정치적 실천으로서 민주주의의 어려움을 도망치는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는 특정 시점과 상황에서 이것이 민주주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도망치듯 달려 나가는 정황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지고지순의 원리라고 배웠고 그래서 수많은 선지선각자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달성하려 했던 민주주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실체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역사 과정은, 민주주의의 변질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는가?

상탈 무페는 근대 민주주의가 인민민주 원칙을 위해 대의제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제는 인민민주 원칙을 억압하게 되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하면서, 근대 민주주의 내부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상이한 전통이 대립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무페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은 자유를 위해서 인민주권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생각이고, 이는 목포대 사례에도 유효한 참조체계가 된다. 직선을 통해 선출된 총장과 그 총장을 선출한 교수들의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3.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추진한다는 말을 나는 상하이대학 방문학자 시절에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2001년도의 학부제 개혁 상황이 연상되었다. 상명하달식의 개혁으로 인해 교내 모순이 불거졌고 결국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아 당시 새로운 단계로 비약할 수 있었던 교내의 발전적인 역량을 소모시켰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 우려를 당시 몇몇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었는데, 결국은 2012327일 교수회의 찬반투표부터 시작해 20131120 총장선출규정 투표로 마무리되기까지 장장 20개월의 진통을 겪었다. 이는 고 총장의 임기 후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교수평의회와 본부 그리고 대학 구성원들이 이 문제로 고심했다는 의미다.

20122학기 학교에 복귀한 후 몇 차례 고 총장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내 질문의 초점은 당연하게도 왜 다시 교수회의에 물어보지 않고 학칙을 개정했는가?”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 고 총장의 입장은 지금도 일관되어 있다. 당시 주어진 상황에서 교육부의 제재를 받지 않으면서 학교의 이익과 교수들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들 독단이라고 알려진 고 총장의 고뇌어린 결단은, 그의 말을 빌면, ‘독단이 아니었다. 15대 교수평의회/의장과 충분히 논의했다는 것이다. 15대 교수평의회/의장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여기에서는 거론하지 않으련다.

 

4.

 

복기(復棋)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바둑판과 달리 인생판 복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 바둑과 같지 않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국자의 관점에 따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판 복기는 미래를 향한 전진으로 모아지지 않고 감정의 골만 깊이 패곤 한다. 그러므로 복기는 조심스럽다.

사실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사안의 대국자는 교육부와 국립대였다. 그런데 목포대에서는 어느 순간 대국자가 바뀌었다. 총장을 필두로 한 본부와 교수 대의기구인 교수평의회가 대국에 임하게 된 것이다. 두 주체 모두 학교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주장했지만 그 길은 천양지차였고 결국 교수평의회가 학칙개정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제16대 교수평의회가 구성된 후에도 사안을 달리하며 지속되었고 결국 총장임용추천위원회 규정제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 것을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2001년 학부제 개혁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학내에서 대리전을 치르게 된 원인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무페가 언급한 민주주의의 역설은 목포대 사례에도 유효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질문을 던져본다. 학교의 이익을 위해서 교수회의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교수회의에 물었으면 어땠을까? 고 총장의 우려대로, 교수회의가 다시 한 번 직선제를 고수하고, 그 결과 2013년도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을 다시 한 번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을까? 아니면 교수들이 학교가 처한 상황을 총장만큼 절감하고 그에 따랐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몇 차례의 교수회의를 통해 표출된 대다수 교수들의 의지는, 직선제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현 상황에서는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지를 수렴해 제7대 총장선거를 원만하게 치른 것은 제16대 교수평의회의 공로다. 이런 의지를 조기에 적극적으로 수렴했더라면 20개월을 허송세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01년의 학부제 개혁과 2012-13년의 총장 직선제 폐지 파동의 교훈은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교내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주어진 조건에서 목포대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한 개인의 고뇌어린 결단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목포대 민주화 전통과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할 것이다. (201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