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120) 문학이라는 관행과 담론

ycsj 2011. 4. 7. 09:56

문학이라는 관행과 담론

 

 

포스트주의 postism 또는 포스트학 postology이 출현하면서 그 이전, 즉 ‘근현대’ modern 시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그)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수도 없이 반복 낭독하고 청취하다가 무의식에까지 각인된 ‘민족 nation’도 ‘상상된 imagined’ 것이고, 오래 전에 형성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와 반드시 수호해야 할 것으로 알았던 전통 tradition도 ‘만들어진 invented’ 것이며, 심지어 ‘이성’과 함께 근현대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주체 subject’도 ‘구성된 consisted’ 것(Foucault, Michel)이라고 한다.

근현대 분과학문 체계도 포스트주의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가운데 미셸 푸코는 문학이라는 사회적 ‘관행’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존재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푸코 연구자인 사라 밀스 Mills, Sara는 문학이 대학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되고, 평론가들은 어떤 문제에 관하여 글을 쓰고, 중산계층이 선호하는 작품은 무엇이고, 또 다른 대중문화와는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 등등에 대해 푸코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푸코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관행으로서의 문학을 비판하기 위해 푸코는 ‘담론 discourse으로서의 문학’에 착안한다. 그가 보기에 문학 텍스트가 다른 비문학적인 텍스트들과 구별되는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기보다는 단지 더 큰 ‘담론 구성체 discourse formation’의 일부일 뿐이다.

푸코의 담론 개념은 ‘배제(exclusion)’를 전제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가설은 이렇다.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재하는 일련의 과정들―담론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담론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담론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배제의 과정들’이라 일컬었다. 그는 배제의 과정을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누고, 전자의 예로 ‘금지 interdit’, ‘분할 partage과 배척 rejet’, ‘진위의 대립 l'opposition du vrai et du faux’을 들었고, 후자의 예로 ‘주석’, ‘저자’, ‘과목들(학문 분과)’, 그리고 ‘주체의 희박화’를 내적 배제에 포함시켰다. 이를테면 ‘분할과 배척’의 대표적인 사례가 ‘광기’를 ‘이성’과 분할하고 그것을 배척하는 것임은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푸코는 “사회에서 담론들 사이에 매우 규칙적인 일종의 차등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발화의 행위 자체와 더불어 소멸되는 담론들”이고 다른 하나는 “계속 말해지는, 말해진 것으로 유지되는, 그리고 앞으로도 말해야 할 담론들”이다. 후자의 과정에 개재하는 것이 ‘주석 또는 평론’으로, ‘종교적 텍스트’, ‘법률적 텍스트’, ‘문학적 텍스트’, ‘과학적 텍스트’가 후자에 속한다. 또한 푸코는 각 과목(학문 분과)이 “어떤 사물에 대해 참되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합계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어떤 주어진 사물에 관해 정합성이나 체계성의 원리에 입각해 승인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집합조차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결국 각 학문 분과는 지식에 대한 규정, 방법론적 원칙, 공인된 명제들, 학문 저널 등을 이용해 분과 내에서 가능한 담론의 범위를 결정하게 된다. 푸코는 이런 것들을 관행이라 일컬었고 각 학문 분과는 이 관행과 체계에 도전하는 지식을 배제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과목이란 담론의 생산에 대한 통제의 원리”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 학문 분과(즉 과목)의 집합체인 대학은 “담론이 수반하는 지식과 권력뿐만이 아니라 담론 자체의 전유를 유지하고 수정하는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처럼 회의주의와 비환원적 태도, 문제의식―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일반화 논리를 수용하지 말고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 “나는 어떤 도그마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과 방법론―수평적 사고 lateral thinking을 특징으로 하는 푸코의 시선을 통해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학 등의 근현대 분과학문과 대학 제도라는 관행의 이면에 무엇인가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푸코는 그것을 ‘권력’―‘훈육 권력’, ‘지식 권력’, ‘담론 권력’ 등등―이라 일컬었고 푸코의 학문적·실천적 삶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