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학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역연구와 문화연구
‘20세기 중국문학’은 세계문학사의 맥락에서는 제3세계 문학에 속하는 주변부 문학이고, 한국문학계에서는 비주류 문학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문학을 업으로 삼다 보니 본업뿐만 아니라 중심부와 주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중국학(sinology)에 대한 공부 또한 게을리 할 수 없었고 나아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등한시할 수 없다. 이러한 공부는 한편으로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중국문학을 선택한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였지만 세계문학사와 한국문학계의 담론권력 구조에서 중국문학은 주변이고 비주류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중국문학을 선택한 순간 내 공부의 운명도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문학 분야에서 중심은 영미와 프랑스 중심의 서유럽 문학이었고, 한국문학계에서는 서유럽 문학과 교배한 한국문학이었다. 중국문학은 문자 그대로 중국과 문학으로 구성된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중국학의 일부로서의 중국문학이 되거나 중국 이해하기의 경로로서 문학이 자리매김된다. 후자에 중심을 두면 보편적인 문학 일반 가운데 특수한 중국의 문학이 되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사유와 문학 중심의 사유가 중국문학 내부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중문학계의 상황이다.
지역연구와 문화연구는 모두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지만 전자가 중국 중심의 방법이라면 후자는 문학 중심의 사유를 확장시킨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중국문학은 여전히 주변적이다. 지역연구의 경우, 있을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문학의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있었던 일을 재현함으로 인해 문학은 사회과학 논의의 구체적 증거로 기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문화연구에서도 서양의 최신 이론의 가공을 기다리는 원재료(raw material)에 불과하다. 이를 돌파하는 방법으로 ‘지금 여기(now here)’가 거론되지만 그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모든 공부는 학문의 경계에 놓여 있다. 경계는 담론 권력의 바깥에서 주변이 된다. 우리는 주변의 관점에 철저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관점은 우리에게 철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최원식은 세계체제의 중심/주변이 동아시아 안에서도 복제되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동아시아 내부의 불균등에 주목한다. 그 동안 동아시아론이 이 지역의 중심국가들 ‘중심’을 진행되었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북한과 대만․홍콩․마카오와 오키나와(옛 流球)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라는 주변적 시각을 다시 주변화 하는 이중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최원식 2009) 이를 한국의 중국문학에 적용시켜 보면, 그간 세계문학의 주변부였던 한국문학은 국내에서 중심부 서양문학과 손을 잡고 기타 문학을 다시 주변화해왔다. 주변이 그 장점을 온존하면서 중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담론권력 구조에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내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부분이 근현대적 분과학문 체계를 뛰어넘어, ‘예술과 학문과 사회 간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류 앞에 ‘통제사회와 문화사회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는 심광현(2009)의 주장을 음미해야 할 지점이다. 지역연구와 문화연구는 분과학문 체계에 갇힌 중국문학 연구에 학제간 나아가 통섭의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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