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90) 네이션/국족(國族)과 에스닉/민족

ycsj 2010. 8. 27. 22:44

네이션/국족(國族)과 에스닉/민족

 

 

‘동아시아 근현대’라는 시공간에서 ‘民族’만큼 복잡하게 사용된 용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수용과 토착화의 과정을 거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수용단계에서 영어의 ‘네이션(nation)’을 일본이 ‘민조꾸(minzoku)’로 번역했고, 그 한자어(民族)를 중국과 한국이 습용했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한자를 공유하면서도 독음을 달리 하는 동자이음(同字異音)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민쭈(minzu)’로 한국에서는 ‘민족(minjok)’이라는 발음으로 표기되었다. 즉 네이션은 한중일 삼국에서 공히 ‘民族’으로 표기되었지만 각기 달리 발음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토착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발음만큼이나 의미도 변용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특히 중국어의 ‘민쭈’는 러시아어의 나로드(narod. 인민, 국민)에 가깝다. 그것이 강조하는 것은 ‘대중화’(‘popular’, 러시아어 ‘narodni’)와 ‘민쭈싱’(民族性. ‘nationality’, 러시아어 ‘narodnost’)이다. ‘민쭈싱(民族性)’과 ‘쭈이(族裔)’는 중국어 명사 ‘민쭈(民族)’ 속에 깊숙이 뿌리박고 서로 뒤섞였다. 바꿔 말하면, 자국화(domestication)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의(source meaning)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의미--people, ethnic 등--로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네이션이 국가와 긴밀한 관계(nation-state)에 있음을 인식하고는 도착어(target language)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가다가나 음역으로 표기하고 있고, 중국어권에서는 ‘궈쭈’(國族. 林文淇·沈曉茵·李振亞 2000; 戴錦華 2008)라는 표기가 공감대를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국민’(국민문학, 국민국가 등)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소통의 정치학’을 내세워 ‘民族’을 고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글에서는 최소한 ‘차이의 국면으로서의 동아시아(East Asia as a dimension of difference)’(임춘성 2010, 295) 역내의 소통을 염두에 두면서 네이션(nation)에 해당하는 용어로 ‘궈쭈(國族)’에 동의하면서 그 한글 발음인 ‘국족’을 선택했다. 물론 이 선택은 소통을 위한 것일 뿐, 다른 기표를 억압하지 않는다.

국족/네이션과 관련된 용어로 영어의 ‘에스닉/민족’이 있다. ‘에스닉(ethnic)’의 어원은 ‘ethnos’로, 포용적 의미와 변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종족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중국어로는 ‘쭈췬’(族群. Honig 2004) 또는 ‘쭈이’(族裔. 張英進 2008)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에스닉(ethnic)’의 역어로 ‘민족’을 사용한다. 물론 그동안 민족이라는 기표가 미끄러져온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종족’으로 표기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의 핵심어인 ‘소수민족(少數民族)’에서의 ‘민족’이 바로 ‘에스닉(ethnic)’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 ‘민족’을 ‘에스닉’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설정했다.

민족(ethnic group) 또는 민족성(ethnicity)은 인류학의 주요 연구대상이지만, 그것은 인종(race) 및 국족(nation)과 중복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김광억은 “종족(ethnic)은 단순히 부족(tribe)의 대체어가 아니라 인종(race)과 민족(nation)의 중간에 위치하여 인종과 민족(nation)의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김광억 2005, 22)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종족성(ethnic)이란 지배와 저항의 맥락에서, 그리고 국가 건설의 과정에서 시도되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민족만들기(making nation)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같은 책, 26)고 하여 민족성(ethnicity)이 발명되고 구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원초주의(primordialism) 및 도구주의(instrumentalism)와 대비시켜, 구성주의라 한다. 김광억은 많은 편폭을 할애해 ‘민족성(ethnicity)’을 고찰하고 있는데, 그가 보기에 국족성(nationality)이나 민족성(ethnicity)의 특징은 “정치적 결속이나 지배 혹은 경제적 기회와 자원의 확보나 점유를 위하여 만들어 내는 전략적 자원으로서의 문화적 특성이다. 이는 전혀 없거나 무관한 요소들을 발명하고 선택하여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을 통하여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초월하여 선험적으로 주어진 문화적·생물학적 요소들을 재발견하거나 그 강조할 요소를 전략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같은 책, 29-30) 그리고 민족성(ethnicity)이 ‘친족관계(kinship)’, ‘고유의 터전(commensality)’, ‘종교적인 제의(religious cults)’의 세 핵심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것은 각각 혈통(blood)에 대한 신화와 믿음, 생계경제의 유형과 방식(substance), 그들이 상징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신(deity)에 의하여 스스로 표현되고 타인에 의하여 인식된다. 이차적으로는 복장, 음식, 가옥구조와 주거양식, 언어, 역사, 신체적 특성이 있다. 여기에 의례절기, 풍속, 특정의 금기, 특수한 의료시술과 행동들이 타집단과의 차이와 구별을 위하여 참조되는 지표들이다.”(같은 책, 39) 이 요소들은 우리가 중국 소수민족을 연구하거나 한족과 소수민족의 관계를 고찰할 때 유념해야 할 항목들인 셈이다. 김광억의 고찰은 민족성(ethnicity)이나 문화, 전통 등의 개념을 근(현)대성(modernity)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창조되고 발명된 사회적 구성물로 보는 홍석준(2008a, 18)의 견해와 맥락을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