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Zhang, Zhen, ed., 2007, introduction (3)-(pp.15-21)

ycsj 2010. 7. 8. 22:13

0.amateurs on location (15-21)

: 야외촬영 중인 아마추어들

그러나 초기 6세대를 특징짓는 독립 정신은 함께 소멸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새로운 얼굴들을 고용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내 생각에 1990년대 말 자장커와 그의 영화 [Xiao Shan Going Home](1995), [Xiao Wu](1997), [Platform](2000)의 출현은 6세대의 시대를 효과적으로 end(종식시킨, 완성한, 담당했던 ?) 독립적 운동(independent movement)에서 차별적인 국면의 개시를 알렸다. 그들 대부분은 1960년대에 태어났고 강렬한 문화대혁명 후미(tail-end)와 그 후폭풍([How Steel Is Made]로 전형화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1970년생인 자(장커)는 단연코 1980년대 개혁 시기의 산물이자 영화제작의 다른 모드를 대표하고 있다. 자신의 선구자들에 대한 호기심어린 인수(계승)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장커와 그의 그룹(BFA 청년실험영화 워크숍)에 의해 지지받고 실천된 ‘아마추어 영화(業餘電影)’ 또는 ‘비공식 영화(民間電影)’은 특수하게는(in particular) 대부분 엘리트 아카데미의 바깥에 있고, 보편적으로는(in general) 전문적 지류에 있는 신흥 영화제작자들 가운데에서 추종자를 발견했다. BFA에 기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트렌드는 BFA 중심적인 계보학과 그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갓 시작된 DV(digital video) 운동과 협력한다(joins forces). 자장커와 그의 친구들은 영화문학/비평학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촬영 작업을 계속했다. 자신의 영화를 만들려는 그들의 뜨거운 욕망과 굳건히 자리잡은 족벌주의와 BFA에서 영속되고 있는 아카데믹 스타일의 영화제작에 대한 혐오감은 자장커와 그의 그룹(왕훙웨이를 포함)을 자신들의 과외의 그리고 극단적인 저예산의 영화 프로젝트에 거꾸로 박히게(plunged) 만들었다. (15)

내가 여기에서 자장커 그룹의 초기 아마추어 위업의 세부 계정과 자장커의 인정받은 영화들의 사회적․미학적 균형(이는 제이슨 맥그레이스의 독점적 초점이다)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개혁에서 도시 세대의 핵심적 이동에 밑줄을 치고자 한다. 그것은 국가와의 공생적 관계에서 덜 휘말린 독립 영화제작의 새로운 물결의 부상에 의해, 영화의 성격과 ‘소유’라는 쟁점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자장커는 자신을 “중국 사회의 하층에서 온 평범한 감독”이라고 묘사했다. ‘농민공 감독(民工導演)’과 ‘기층’이라는 용어는, ‘시스템’의 안팎에서 예술가이자 지식인의 ‘고위’ 계급으로서의 감독의 엘리트 상황에 관한 관습적 인식과 직접적으로 상반된다. 대부분의 6세대 감독들은 대도시의 특권적인 배경 출신이고 엘리트적인 감독과 또는 촬영과에서 공부했다. 그와 반대로 자장커는 가장 가난한 지방인 산시(山西)성 조그만 마을의 평범한 중하층 가정 출신이다. 청소년 시절 그는 지방 순회극단에서 브레이크 댄서로 일한 적이 있다. 대도시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자장커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성도(省都) 타이위안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광고 게시판을 그리고 상점 간판에서 기량을 보임으로써 소설을 쓰고, 괴상한 직업을 가져보고 이주 ‘예술가’로 살았다. BFA의 전업 학생이 아니던 시절, 그는 TV 드라마 에피소드를 짜 맞추는 ‘대필’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등록금을 내고 부분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했다. 이주 도시 주체로서의 자장커의 첫 번째 경험(민족지적 ‘현장’과 반대되는 것으로서)과 도시화와 사회경제적 개혁의 물결에 사로잡힌 평범한 중국 시민을 위한 소통 도구로서의 영화를 복원(reclaim)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자신 영화의 중앙 무대에 ‘이주 예술가’를 놓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자장커는 존경의 의미로 ‘이주 노동자 감독’이라 불렸다. (15-16)

초기 6세대 감독 영화에 나오는, 불만을 품었더라도 오만한 도시 보헤미안(예를 들어, 베이징 녀석들, Days, Frozen)과 작은 마을의 ‘예술가들’(좀도둑 또는 이주 아마추어 공연자들)의 차이점은 1990년대 후기 도시 세대 내에서의 패러다임(인식 체계)의 전환에 대한 가시적 표지일 것이다. [베이징 녀석들]부터 [플랫폼]까지, 헝클어진 머리의 화났지만 패셔너블한 예술가로부터 도시 모더니티의 후미진 곳에서 따분한 안경을 쓰고 있는 평범하거나 심지어 촌스러운 외모의 예술가까지, 1990년대는 도시 세대의 출현뿐만 아니라 그 다양화, 일상화 그리고 개혁도 목격했다. 안경쓴 샤오우는 로베르토 브레송의 [소매치기](1959)에서의 가난한 책벌레 도둑의 화신이다. 무표정한 태도에서 그는 자신을 범죄자라기보다는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특히 암시장에서 수입 담배를 다룸으로써 스스로 ‘모범적 기업가’로 재발명한 이전 집단(동료-샤오융)과는 대조적으로. 소매치기 ‘예술가’는 타운이 시장 지배 경제와 사회적 질서를 향한 경쟁에서 해체되고 재건축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술이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발견한다. 샤오우의 모습이 쓸쓸한 아웃사이더로서 허약하고 수동적인 항의자로 남아 있는 반면, [플랫폼]에서 ‘농민 문화 극단’으로부터 ‘브레이크댄스 전자 밴드’로 자신의 집단적 정체성을 개혁한 아마추어 연기자 그룹은, 21세기 초 보다 두드러진 형태를 취한 풀뿌리 운동으로서의 ‘아마추어 영화’의 출현을 기대한다(기대하게 만든다). (16-17)

도시 세대의 중요한 파문으로서의 ‘아마추어 영화’의 출현은 신(新) 다큐멘터리 운동의 10년 투쟁과 뗄 수가 없다. 그것은 실험적 서사 영화를 따라 평행적이고 때로는 교차된 코스를 달려왔다. 기술과 방법 면에서 대형 촬영 카메라 대신, 촬영 실천의 민주적 형식으로서 ‘아마추어 영화’의 구상과 파종에 대한 비평적 촉매로서 복무해온 것은 비디오카메라이고 보다 최근에는 디지털 비디오와 편집 소프트웨어이다. 앞에서 언급한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특히 장위안이 다큐멘터리와 다큐드라마 작업을 해왔다. 대안적으로 열정적이거나 임상적인(냉담한) 도시 세대의 많은 영화에서 발견되는 다큐멘터리의 충격은, 1980년대 초 몇몇 4세대 감독에 의해 프로그램적으로 개념화되고 실천된 ‘다큐멘터리 미학’(예를 들어, 장놘신과 린둥톈의 작품)보다는, 우원광과 장웨와 같은 인물(figures)에 의해 예고된 최근 다큐멘터리 운동과 함께 더욱 울려 퍼졌다. 예를 들어 장위안의 [베이징 녀석들]과 왕샤오솨이의 [Days](1993)의 독해는, 베이징에서 예술가를 꿈꾸는 4인의 이주자의 삶을 기록한 우원광의 [베이징 유랑](1990)과의 상호텍스트적 연계(intertextual links)에 대한 고려 없이는 완전하지 않다. 비슷하게 BFA를 떠난 후 훈련생/아마추어 배우들의 환멸적인 삶에 접근하는 장웨의 [The Other Bank](Bi’an, 1994)와, 자장커 영화가 세팅된 같은 지역에서 유랑 아마추어 극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우원광의 최근작 [강호-Life on the Road]는 전체 세대의 삶의 경험의 서사시로서 [플랫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비전문가들(극단의 단장을 연기한 시인 시촨을 포함)에 의해 연기되고 자장커의 마스터-숏 타블로로 프레임 짜진 앙상블 인물들은 일상생활(의상과 헤어스타일에서의 변화하는 패션을 포함)과 대중문화(영화 포함) 역사의 직조(interweaving)를 통해 순간적인 변화의 역사적 과정을 연기한다. 이들 아마추어 배우들이 가로지르는 시간과 공간은 집단으로서의 도시세대가 가로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의 단절과 개혁을 목격하는 것을 자신의 우선적 과제로 삼았다. 보다 긴급하게 이 영화는 그들을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친구, 가족 구성원, 이웃, 동료 그리고 이방인-과의 집단적 관계를 기록하거나 해석하려 시도한다. 그들은 크거나 작은, 거대한 중심이거나 지방 수도, 특별행정구역이거나 내륙의 저택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도시의 사회적․물질적 공간에 거주하거나 거주하러 온다. 그 공간은 한때 황홀하면서도 억압적이었고 해방적이면서도 폭력적이었다. (17-18)

다큐멘터리 형식은, 개혁 시대에 다면체적 사회적 경험의 형태와 의미를 찾으려는 포스트모던의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앙드레 바쟁의 포토그래픽 리얼리즘과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의 유물론적 현상학을 연계시킬 것을 추구하는 미학적 관심에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고무적이다. 새로운 지식을 재현함에 있어 다큐멘터리 방법- -의 확산은 급성장하는 대량문화의 각성(wake)에서, 그리고 더 접근가능한 시각적 기술의 도움을 받아 리얼리티의 반환을 요구하는(to reclaim reality) 대중적 욕망에서 일상생활의 급증(proliferation)과 가시성을 증명한다. 실험적 렌즈와 함께 배치된 다큐멘터리 방법은 재현과 실재(actuality) 사이의 진자운동을 발가벗기고 영화제작자와 그 또는 그녀의 주체 내용(subject matter) 사이의 주체-객체 관계를 전경화 시켰다는 점에서 도구적이다. 그 결과(so as to) 보다 상호주체적이거나 민주적인 영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의사 다큐멘터리와 하이퍼리얼리스트 미학은 영화적 재현이 리얼리티를 거의 투과하지 못하는 창문임을 폭로한다. 그것은 차라리 그 지시 대상물(referent)과 이미지 그리고 그들의 문맥 의존적 관계맺기(indexical rapport)에 관한 ‘진실’의 가치의 심문 형식이다. (18)

비디오 기술의 대중화 및 진보와 동시적으로, 도시 세대는 결정적으로 비디오-영화 양용적인 세대다. 많은 영화는 고의로 비디오카메라의 장면 숏(footage shot)-인터뷰, 거리 장면 등)을 포함시키는데, 그것은 영화 표면(film surface)에 다큐멘터리 외양을 더해주고 실재감과 생생함의 느낌을 준다. 이 실재하는 ‘현장’감은 영화제작자들과 관객에게 영화를 가공되지 않은 삶이자 현재의 역사로서 목격하는 것을 허용한다. 일상과 사건의 직접성을 기록하는 데 몰두한 영화제작자들에게 비디오는 ‘사건의 통일성’을 존중하는 진실영화(cinema verite) 스타일과 롱 테이크의 힘을 강화시킨다. MTV와 텔레비전 광고를 조금 해본 사람에게 유연한(supple) 비디오 편집은 파편적인 도시 공간과 그 정신적(psychic) 암류의 몽타주를 확고하게 할 수 있다. 그 휴대 가능성과 직접성 그리고 경제성으로 인해 비디오는 제작 준비 단계의 조사(preproduction research)와 로케이션 슈팅에서 사용되곤 한다. 우원광에 의한 인터뷰에서 자장커는 that 이하를 언급한다. (자신이 로케이션에 프로젝션이 없었기 때문에, 16미리 rushes shot을 보기 위해 그는 takes를 베이징까지 이송해 19:4-8) 이 절차는 모두 보름이 걸린 shooting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흘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18-9)

‘현장’의 경험과 구상은 일반적으로 도시 세대의, 특수하게는 ‘아마추어 영화’의 최근 정신(當下性)을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비디오와 셀룰로이드 필름, 그리고 전문적 실천과 아마추어 실천을 분리하던 전통적인 경계들이 도전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경계들을 모호하게 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매체 자체뿐만 아니라 장르의 차이도 비평적 꼼꼼함(critical scrutiny)에 종속시킨다. 스튜디오에 의해 주변화되고 그리하여 값비싼 실내 촬영(shooting)에서 배제되거나 접근이 제한됨으로 인해, 저예산 독립 또는 반-독립 영화제작자들은 카메라와 스탭들(crews)을 거리, 시장, 거주 지역, 즉 시스템 벽 밖의 광활한 ‘로케이션’으로 데리고 나간다. 자장커와 같은 영화제작자에게 다큐멘터리 방법은 [샤오우]를 위한 모든 ‘로케이션’을 제공해 준 자기 고향에서 영화가 세팅되었을 때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millieu에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특별한 종류의 이야기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회적 공간과 경험-의존적이고(contingent ?) 편재하며 즉흥적이고 개방적이다-에 기반을 둔(grounded) 미학이다. 자장카 자신의 말로 그것은 “예상치 않은 상황뿐만 아니라 가능성에 굴복하게 될 슈팅 신에서의 모험”이다. 한 가지 그런 상황과 그 가능성은 [샤오우]의 잊을 수 없는 엔딩을 만들었다. 그 장면의 슈팅 과정에서 해산을 거절하면서 얼빠진 듯 바라보는 군중은, 소매치기가 붙잡혀 짜증스러운 타운 거리의 보도에 있는 전화 폴대에 묶였을 때, 소매치기의 완전한 비굴함과 드러난 주변성의 범죄의 ‘현장’에 대한 디제시스적(diegetic) 목격자를 ‘연기’하기 위해 왔다. 이것은 다만 많은 도시 세대 영화에서 현장 사건의 명백함에 대한 애호(penchant)가, “리얼리티는 픽션보다 우화적이고 미치게 하며(격노하게 하며) 낯설게 교묘하다(strangely manipulative)”라는 트린 T. 민-하의 재빠른 관찰에 공명하는 많은 순간의 하나일 뿐이다. 익숙한 리얼리티-자장커가 ‘글로벌’ 테마 공원에서 세팅한 자신의 최근 영화 [세계](2004)에서 충분히 보여준 것처럼-의 ‘자연스럽지 않음(unnaturalness, 비정상적임?)’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영화제작자와 관객은 “중개되지 않은 채 리얼리티에 접근하도록 증강된 영화 기술 발전의 순진함(naivety, 미숙함)을 인식”할 수 있다. ‘프레임’ 너머의 현실(the real)의 깊이를 헤아림으로써 진정성 또는 신뢰 가능성의 보다 가공되지 않은 느낌을 운반하는 한편, 이 날카로운(edgy) 리얼리즘은 또한 영화적 재현의 한계 또는 적합성에 직면한다. 이에 대해 러우예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했다; “나는 그 구석(edge), 영화의 구석을 터치하고 그것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를 보고 싶다. 또는 내 자신의 구석을 터치하고 그것이 이끄는 곳을 보고 싶다.” (20-21:10)

현장의 시학은 평범한 대중들에게 자신들에 관한 영상 이미지의 생산에 스스로 참가할 권리를 돌려주려 하는 ‘아마추어 영화’에 의해 재현된 새로운 정치학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도시 세대 영화(팩션, 다큐멘터리, 다큐드라마)가 자신을 연기하는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곤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small wonder). 도시 세대 가운데 유일한 유명 여감독인 닝잉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특히 비전문 배우 캐스팅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실 그녀의 작품 [For Fun: 找樂](1993, 1992?)은 퇴직자 그룹이 경극을 연습하기 위해 활동센터를 열어줄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인데, 이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에 관한 자장커 [플랫폼]의 전조가 된다(presages). 베이징 경찰 관할구(precinct)에서의 일상생활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닝잉의 세 번째 장편 [on the boat: 民警故事](1995)에서 자신을 직접 연기한 실재 경찰 그룹이 있었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주의 시기 동안 중국 영화(몇몇 지방희 영화를 제외)에서 통일적으로 적용된 표준 중국어(푸퉁화)와 상반되는 방언 또는 지방 어조의 사용은 새로운 도시영화의 청각적 서명(signature, 특징)이 되었다. 베이징에서 세팅된 영화조차도 주인공은 푸퉁화보다 강한 베이징 토착어(vernacular)를 구사한다. (20)

다양한(multiple) 구체적 지방성으로부터 내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어조의 다양한 목소리와 함께 일상생활의 활기찬 결은 갑자기 전에 없이 영화 공간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현장은 특별히 사회적이고 지식적인 공간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개인과 사회적 경험의 구어성(orality), 공연성, 그리고 감소할 수 없는 특별함이 미적 경험으로 인정되고 기록되고 주어졌다. 이런 이유로(hence) 현장의 가동은 또한 특별한 임시성을 지지한다(stand for). 그것은 우원광(주요한 현역이자 이론가)이 “장면에서의 현재임(being present on the scene, 지금의 현장임)”의 미덕에 의한 “현재 시제”라고 기민하게 번역한 것이다. 여기 지금의 임시성의 긴급함은 도시화의 수그러들지 않는 페이스뿐만 아니라 도시 기억을 급속하게 지우고 집단 기억상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과정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urge)에 의해 부채질되고 있다. (20-21:03)

현장의 다큐멘터리적 구체성은 대개(more often than not) 구체적 지리적 정체성을 bear하곤 하는 로케이션들의 세심한 이용을 통해 절합(articulation)된다. 이것들은 진짜 도시들(베이징, 펀양, 상하이, 우한 등등)처럼 클 수도 있고 거리나 강들(예를 들어 자오다오커우와 시쓰라는 베이징의 중요한 두 개의 교차로나 상하이의 쑤저우허)처럼 미세할 수도 있다. 많은 도시 세대 영화들에서 이 장면들은 인공 세트가 아니라 당대(contemporary) 도시 지리에서 물적 실재들(material entities)이다. 닝잉과 자장커는 자신들의 로케이션들을 조명과 장식으로 치장하기보다는 암울한(bleak, 음산한) 심지어 더러운(dusty) 분위기(tone)로 꾸미기를 특별히 열망한다. 이에 대해 중국 영화 비평가 니전은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경찰서, 헐린 주택들 가운데의 빈 공간, 구도시의 골목들, 버려진 절--시각적 볼거리 효과가 결여된 보기에 당연한 듯이 보이는 이들 환경에서, 닝잉의 카메라는 우리에게 사회적․역사적 흔적들로 낙인찍힌(branded) 지점들을 고집스레 폭로하고 있다.” ‘아마추어들’에 관한 그리고 그들에 의한 이들 영화에서 공간적 문맥의존성과 언어학적 독특함을 고집한 것은 1990년대에 성행했던 다큐멘터리 운동(그리고 어느 정도는 아방가르드 공연예술)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more likely) 서사적 영화제작자들이 자신들의 동시대인들과 비슷한 확신(a similar conviction)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들(동시대인)은 더 직접적이고 접근 가능한 비디오 매체로 작업하는데, 이들은 신구 재현 기술의 인식과 사용에서의의 변화를 가져올 동영상의 힘에서 뿐만 아니라 개혁 사회를 이해할(grasp) 동영상의 힘에서 비슷한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제작 방법, 미학적 지향 그리고 사회적 약속(social engagement)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과 현재(the now)에 정박한 새로운 영화뿐만 아니라,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촉각적인, 추상적이고 폐쇄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이고 개방적인, 미학적 용어로 대안적인 영화 공간을 창조하도록 추동해 왔다. (21)

 

(4): 0.the translocation of an alternative spectatorship (21)

: 대안 관객의 횡단 로케이션

 

(5): 0.(introduction of contents) (33)

3부 12편의 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