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양 근현대 철학사를 섭렵하고 있는 루쉰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익숙지 않은 한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막스 슈티르너(Stirner, Max)다. 왕후이는 흔히 알려진 대로 루쉰이 니체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다른 맥락에서 슈티르너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음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왕후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루쉰의 ‘개체성 원칙’은 상당 부분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왕후이의 판단이다. 루쉰은 1922년 「『노동자 셰빌로프』를 번역하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 중에는 가끔 내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내게 대단히 불가사의하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데, 나는 니체를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내가 보다 익숙하고 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이는 슈티르너(Max Stirner)이다.
루쉰의 언설은 때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위 인용문에서 니체에 대한 언급이 그러하다. 루쉰이 받은 니체의 영향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성과가 나와 있으므로 굳이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으로부터 우리는 최소한 루쉰이 슈티르너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니힐리즘, 실존주의, 정신분석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아나키즘, 특히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그는 “서유럽 사상사의 현대적 맥락에서 스스로 형이상학을 제거한 첫 번째 인물”일 뿐 아니라 “마르크스가 철저하게 인간주의를 벗어나 역사유물론의 과학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장이빙 2018, 583)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적 본질의 논리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었다.”(장이빙, 608) 여기에서 그의 전체 사상을 살펴볼 여유는 없고, 루쉰의 개체성 원칙과 관련된 부분을 영문 번역본(Stirner 2017) 및 중문 번역본(施蒂纳 1989)과 장이빙(2018)을 중심으로 고찰해보도록 하자.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는 “나는 무(無, Nichts)를 내 삶의 기초로 삼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포이어바흐와 헤스, 그리고 청년 마르크스가 제기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최고 본질’이라는 인간주의의 슬로건에 대해, 현실 존재로서의 개인인 ‘나는 모든 것보다 숭고하다’라는 명제로 문제를 제기했다. 슈티르너의 키워드는 ‘나’, ‘이기주의’, ‘유일자(the unique)’다. 이 세 가지의 대표인 ‘유일자’의 사명은 ‘무(無)’다. 그의 ‘무’는 정치적인 무정부일 뿐 아니라 존재론(ontology)적 의미에서의 철저한 소멸과 자유이며 전통적 형이상학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 전복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대상이 어떤 총체적 관계로부터 의지하지 않는 현실의 개인이다.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니체의 ‘초인’에 영향을 주었고 새로운 인간주의의 입장에서 고전 인간주의의 본질을 반대하는 개인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무’를 본질로 하는 ‘유일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일컫는 개인과 주체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은 저자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슈티르너 사상의 의미는 역사적인 맥락을 초월해 당대성도 가지고 있다.
『유일자와 그 소유』는 인류(humanity)와 소유(ownness)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에서 슈티르너는 인류 개체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 단계 ‘유년 시기’는 인간이 사물 대상과 관계를 맺는 초보적 리얼리즘 시기이고, 둘째 단계 ‘청년 시기’는 이상주의 관점의 시기이며, 셋째 단계 ‘성인 시기’에서 성인은 이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세계에 대응한다. 이것이 바로 슈티르너가 긍정하는 자기중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제2의 자기 발견’이며 사물에 얽히지 않고 객관적 실재에서 출발하는 현실적 입장이기도 하다. 슈티르너는 고대인의 관념은 유년기의 산물이고, 중세 이후 모든 근대 관념은 성숙하지 못한 청년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정신결정론이라 비판하면서, 자신의 관념만이 진정한 성인의 성숙한 사상을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도 반대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봉건 전제에서 벗어난 것이고, 사회주의의 자유는 자본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슈티르너가 보기에 이들 자유는 허구라는 것이다. 슈티르너가 보기에 중세시대와 비교했을 때 “자유주의는 또 다른 개념을 화제로 제시했을 뿐이다. 즉, 신을 대체한 것은 인간이라는 개념이고 교회를 대체한 것은 국가라는 개념이며 신앙을 대체한 것은 ‘과학이라는’ 개념이다. 요컨대 ‘생경한 교조’와 계율을 대체한 것은 현실적 개념과 영원한 법규다.”(麥克斯․施蒂纳 1989, 103) 자유주의는 중세의 신과 교회와 신앙을 인간과 국가와 과학으로 대체했을 뿐, 그 본질이 억압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기독교의 계율을 부르주아 법규로 대체했을 뿐이다.
슈티르너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불과하다. 그것은 ‘개인’이 재산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고 ‘모두’가 재산을 점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산자가 희망하는 대로 빈부 격차를 소멸시킨 ‘사회’를 건립한다면 그는 ‘유민’이 될 것이다.”(麥克斯․施蒂纳, 126) 이 ‘유민’은 부르주아혁명이 ‘시민’으로 치켜세웠던 것과 비슷하게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유민’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사회’만이 재산을 가지게 되는데, 이 ‘사회’는 ‘추상’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모든 ‘유민’은 평등하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슈티르너의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어떤 사람도 명령을 발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인용자) 어떤 사람도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인용자) 국가만이 명령권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인용자) 사회만이 재산을 가지게 된다.”(麥克斯․施蒂纳, 125) 둘 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르주아 자유주의 및 그 대안으로 제시된 사회주의까지 부정하는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의 핵심은 ‘대체 불가능한 유일자로서의 개인’이다.
그간 슈티르너는 마르크스에게 비판받으면서 많은 이들에게 잊혔지만,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다. 이를테면 에티엔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논하기도 했다.
슈티르너는 어떤 믿음도 어떤 [대문자] 관념도 어떤 ‘거대 서사’도, 그러니까 [대문자] 신, [대문자] 인간, [대문자] 교회, [대문자] 국가의 거대 서사도 원하지 않으며, 또한 동시에 [대문자] 혁명의 거대 서사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현실적으로en effet 인권과 공산주의 사이에 아무런 논리적 차이가 없듯이, 기독교chrétientié, 인류, 인민, 사회, 민족nation 또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차이가 없다. 이 모든 보편적 통념은 실제로는/현실적으로는effectivement 추상물일 뿐이며, 이 추상물은 슈티르너의 관점에서는 허구들일 뿐이라는 점을 의미한다.(발리바르 2018, 114~5. 강조-원문)
즉 슈티르너는 기독교 신학과 계몽 정신 그리고 시민의식으로부터 급진적인 인간주의와 공산주의까지 포함해 모든 ‘유(類)적 존재’와 ‘총체’를 허구(fiction)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슈티르너는 개인에 대한 ‘유(類)적 존재’와 ‘총체’의 압박을 반대하면서 당시 유럽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사상과 논쟁을 벌였다. 슈티르너는 신학에서 헤겔까지, 헤겔에서 다시 포이어바흐까지의 변화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신성한 정신이 ‘절대 관념’으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이 절대 관념이 또 여러 가지로 변해 인류애와 합리성, 시민 도덕 등등 여러 가지 관념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슈티르너는 오직 눈에 보이는 개체의 존재만을 믿었다. 이런 개인을 슈티르너는 ‘유일자’라고 일컬었다. 슈티르너에게 있어 ‘유일자’는 삶의 기초가 되는 창조자이고 그것은 영원불멸하지 않은 무(無)이다. “내가 유일자인 나 자신을 내 삶의 기초로 삼는다면, 내 삶은 자신을 소비하는 일시적이고 사멸하는 창조자에게 의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무를 내 삶의 기초로 삼았다.”(Stirner 2017, 377)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루쉰의 개체성 문화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과 그 비판자들](2021), 228-233쪽.
## 막스 슈티르너의 원저는 1844년 10월(책에는 1845년으로 표시) 라이프치히에서 출간되었다(Stirner, Max, 1845, Der Einzige und sein Eigentum). 1907년 아나키스트였던 스티븐 빙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고(Stirner, Max, 1907, The Ego and His Own, translated by Steven T. Byington, Benj. R. Tucker Publisher, New York), 같은 판본이 1995년에 다시 출간되었다(Stirner, Max, 1995, The Ego and His Own, edited by David Leopold, translated by Steven T. Byingt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그리고 2017년 월피 랜드슈트라이허에 의해 새롭게 번역되었다(Stirner, Max, 2017, The Unique and Its Property, translated by Wolfi Landstreicher, Underground Amusements). 참고로 한글 번역서에서는 1912년 간행된 판본을 참고하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1989년 번역 출간되었다(施蒂纳, 1989, 『唯一者及其所有物』, 金海民译, 商务印书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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