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인식론(epistemology)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님, 즉 시각장애인이라는 주체가 코끼리라는 대상을 만지기라는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나 논자들은 인식 주체를 동일한 수준의 주체로 상정하지만, 코끼리 만지기의 결과는 인식 주체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울러 코끼리를 만지는 시각장애인이 기둥, 구렁이, 부채, 벽, 밧줄 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학습의 결과라면, 각자 인식한 내용을 종합해 코끼리 인식도 학습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둥 같은 다리, 구렁이 같은 코, 부채 같은 귀, 담벼락 같은 몸통, 밧줄 같은 꼬리로 구성된 동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 주체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개인은 전체를 인식하기 어렵지만 ‘함께’ 인식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해야 할 또 하나는 ‘만지기’라는 인식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시각장애인은 코끼리를 시각으로 인식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중인모상(衆人摸象)’이라는 성어는 코끼리 만지기의 인식 오류가 시각장애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 부분을 만지고/보고 그것을 전체라고 착각하는 인식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인의 중국 인식은 ‘중인모상’의 함정에 빠져있다. 이런 시점에 중국을 열심히 공부한 논자들이 각자가 만진 코끼리를, 자신의 인식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함께’ 공유하고 상호 보완해서 전체를 인식하려 노력한다면 제대로 된 코끼리를 그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중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전자는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양산했고, 후자는 대외적으로 반제를 외치면서 대내적으로 수많은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ialism)’를 양산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과제로 제기한 것이지만, 한국인의 공정한 중국 인식을 위해서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특히 ‘유럽중심주의의 프리즘으로 왜곡된 중국관’은 끊임없이 ‘중국위협론’과 ‘중국위험론’을 부추겨 반중과 혐중 정서를 조장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을 공정하게 이해하는 지중(知中) 공부를 토대로 오랜 지정학적 근린국가인 중국과 더불어 살 지혜를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중 공부와 여중은 당연하게도 중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전제로 하지만, 그 전에 한국이 ‘참된 이웃’의 입장에서, ‘내가 손해보고 내어주기도 하고, 또 상대가 내어주게 만들기도 하는’ 호수(互酬: reciprocation)의 마음가짐을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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