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중국의 거상(巨商)에게서 배우는 ‘인문(人文) 경영’의 지혜―상경(商經)(더난출판, 2002)

ycsj 2021. 4. 6. 15:49

상인(商人) : Shang's people or a merchant

상인(商人)이란 한자어는 우리에게 상()나라를 연상시킨다. 중국 고대국가인 상()은 탕() 임금이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 임금을 물리치고 세운 나라로, 훗날 반경(盤庚) 임금 시절 은() 지방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고, 그래서 은() 나라라고도 불린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은허(殷墟)의 갑골문(甲骨文)은 바로 이 은() 나라의 유물이다. 또한 상()나라를 멸하고 세워진 주()나라가 상나라의 귀족인 미자(微子)를 송() 지방의 제후로 봉하였는데 이를 상()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든 송()이든 상인(商人)은 고유명사로, ‘() 지방의 사람을 가리키는 셈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상 지방의 사람(Shang's people)과 장사꾼을 가리키는 말인 상인(商人 : merchant)이 똑같은 글자를 쓰고 있다. 이를 해명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서양에서도 유태인 하면 ?탈무드?와 함께 그들의 상술(商術)을 거론하듯이, 그리고 우리에게도 개성(開城) 상인이니 병영(兵營) 상인이니 하는 호칭이 있듯이, () 지방 사람들이 셈과 장사에 뛰어나 상인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는 있겠다.

유감스럽게도 상 나라의 사람(商人) 가운데 장사에 뛰어났던 사람(商人)의 기록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고대사의 집대성인 ?사기?화식(貨殖)열전에 의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한 인물로부터 농업, 목축업, 어업, 상업 등으로 치부(致富)한 인물 약 30인을 망라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상성(商聖)으로 추대받는 범려(范蠡)와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공(子贛)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은 이들의 치부 과정을 소개하면서 치부과정의 보편적인 법칙 비슷한 것을 추출해낸다. 그는 치부하는 단계를, 자본이 없을 때의 노력(無財作力), 중소자본 단계의 지혜 싸움(少有鬪智), 대자본 단계의 시기 선택(旣饒爭時)의 세 단계로 나누었고, “성실하고 일관됨(誠壹之所致)”을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이처럼 중국은 일찍부터 치부(致富)를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성(商聖) 도주공(陶朱公)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박(稀薄)한 종교의식중국인다움’ (Chineseness)의 한 가지 특성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경(, bible)과 성인(聖人, saint or great man)은 존재한다. 이른바 유가의 육경(六經 : , , , , , 春秋), 도가의 도덕경(道德經, ?老子?), 묵가의 묵경(墨經, ?墨子?) 등과 공자(孔子), 노자(老子) 등이 그것이다. 무인들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을 경으로 삼고 관왕(關王, 關羽)과 악왕(岳王, 岳飛)을 성인으로 추모한다. 의인(醫人)들은 약왕(藥王, 神農氏)을 섬긴다. 그리고 상인들은 바로 도주공(陶朱公)을 성인으로 추대하여 상성(商聖)이라 부른다.

평소 중국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 하더라도 도주공이란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주공의 다른 이름인 범려(范蠡)는 그래도 귀에 익을 것이다. 춘추시대의 패자(覇者) 가운데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勾踐)이 엮어내는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구천을 도와 20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아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을 남방의 패자(覇者)로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범려였다. 중국인들에게 상성(商聖)으로 추앙 받는 도주공(陶朱公)이 전문적인 상인이 되기 전, 국가를 경영하던 재상이었다면 우리는 당연하게 그의 국가 경영 방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월왕 구천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오나라 침공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결사 항전의 뜻을 다질 수밖에 없었던 구천에게 남은 병사는 단 5천명이었다. 이때 범려와 문종(文種)의 간언에 따라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한다. 그리고 범려는 항복의 예물로 자신의 연인인 서시(西施)도 함께 바친다. 그리고 월왕 구천을 도와 부국강병의 총책임을 맡게 된다. 이름하여 “20년 프로젝트!” 오나라에게 복수하려면 군대를 강화[强兵]해야 하고, 그를 위해 범려는 과부와 홀아비의 결혼을 장려하는 인구 증가 정책부터 시작하고, 증가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산업을 장려[富國]한다.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과 명재상 범려의 지휘로 월나라는 회계산의 치욕을 설욕하고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월왕 구천이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명언을 남긴 채 연인 서시와 함께 월나라를 떠난다. 이 장면에서 현대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연상하는 것은 과도한 연상일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정신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는 일국의 재상으로부터 상인으로 변신한 후 장사에서도 수완을 발휘하여 큰 이름을 날렸고 사람들은 그를 상성(商聖)으로 추대하였다. 사마천은 그를 부유하면서도 덕을 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평가하였다. 이익과 인간을 동시에 고려하는 중국 상인의 인문(人文) 경영정신은 바로 도주공과 그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정상인(紅頂商人) 호설암(胡雪巖)의 상경(商經)

그동안 출세와 성공 그리고 경영에 관한 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들의 대부분은 서양의 책을 번역하거나 그들의 경영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드라마 상도(商道)방영 이후 우리 선조의 상술(商術)이 관심을 모으더니 이제 중국 상인의 이야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불을 지핀 책은 다름 아닌 ?상경(商經)?(더난출판, 2002)이다.

사실 근현대 중국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아편전쟁을 전후하여 동아시아의 패자로부터 서양의 침략 대상이 된 청() 나라는 급기야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급속하게 반()식민지의 길로 전락하여 한반도와 비슷하면서도 상호 전혀 영향을 주고받지 못한 근현대화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와는 달리 자율적인 해방을 획득하였지만, 1992년 수교 이전까지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나라, 남북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치적인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적인 의미와 가치는 부여하기 어려웠던 나라. 이제는 우리에게 중국을 잡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중국의 WTO 가입과 더불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확정은 우리의 중국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한국의 중국열풍은 중국의 한류(韓流)에 뒤지지 않는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신공항의 거대한 위용은 마치 기나긴 잠에 빠져 있다가 이제 용트림하며 승천(昇天)의 준비를 하는 거대한 잠룡(潛龍)으로 느껴지는 것은 과민한 착시현상일까?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개혁개방을 시행한 후, 상하이 푸동 지구 개발을 대표로 하는 개혁개방의 2단계를 거쳐 이제는 서부 개발이라는 거대한 반세기 프로젝트를 공포하였다. 현재 중국의 변화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와 질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어쩌면 예측불허라는 점에서 우리는 저들에게 동일성을 인식(認同)할 수 있지 않을까? 개혁개방 2기인 1990년대 이후의 중국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포섭된, 그러나 중국적 특색을 지닌, 그런 사회인 것이다.

이런 시점에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유용한 도서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고, ?상경?은 그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청() 말의 대상인 호설암(胡雪巖)과 그의 어록을 중심에 두고, 중국 고대의 유명한 상인과 근현대의 저명한 기업가를 망라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다. 18장으로 나누어 중국 상인의 대명사인 도주공(陶朱公) 이래 최대의 상인이자 경영자인 홍정상인(紅頂商人) 호설암의 지혜와 미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경?을 보노라면 참다운 상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신(砥身)과 어정(御情)부터 견신(堅信)과 독의(篤義)에 이르기까지, 축시(逐時)와 임세(任勢)로부터 홍시(哄市)와 조장(造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예리한 안목(眼銳)에서부터 국가에 대한 보답(效國)까지. 이것들은 범인(凡人)이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항목들이다.

인문(人文) 경영의 지혜

호설암의 경영의 핵심은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그의 경영 방식을 인문(人文) 경영이라 명명해본다. 그는 인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인정을 잊지 않으며 사람과 신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해를 볼 줄 안다. 이는 호설암의 유별난 경영방식이 아니라, 상성(商聖) 도주공(陶朱公)에게서 비롯된 유구한 전통의 계승이다.

흔히 자본주의적 논리에서는 돈과 명예를 양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본다. 그러기에 훌륭한 자본가의 성공 사례는 칭송을 받아도 그의 인격과 덕망은 주목받지 못한다. 이에 반해 중국의 상인은 도주공(陶朱公) 이래 호설암(胡雪巖)에 이르기까지 덕()을 중시해왔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돈과 명예가 양립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이 명예롭지 않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도주공과 호설암을 위대한 성인이라 떠받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익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상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되 의리를 중시하고 천하를 걱정하며, 남다른 배짱과 식견, 원대한 안목 등을 구비하였다. 그들은 금전거래로 대변되는 인간관계에 그치지 않고 그 내면에 존재하는 인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상인이었다. 그러기에 빌린 돈을 갚고도 다시 인정을 갚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들은 금전출납부의 계산에도 밝았지만, 인간관계 출납부의 셈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은 상인이기 이전에 인문인(人文人)이었다.

호설암의 인문 경영의 특징은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에 바탕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명(洞明) 편에서 상대의 뜻을 충족시키면서 자신의 살길을 마련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상인이 이익을 위해 뛰어다니듯이 관리도 손에 잡히는 이익이 있어야만 움직인다는 깨달음과 관계(關係)가 곧 재산이라는 자각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심층적 이해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적을 만들기는 쉽지만 없애기는 어렵다라는 지혜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홍보 전략은 오늘날 광고 전략에서도 유용할 수 있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 책을 통해 근현대 중화권의 경영인들의 성공 사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망외의 소득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유럽과 미국에게로 정향(定向, orient)되어 있었기 때문에, 카네기니 포드니 하는 이름은 익숙하게 들었지만, 이가성(李嘉誠)이나 채만림 등의 이름은 그야말로 금시초문인 셈이다. ?상경?을 통해 타이완, 홍콩 그리고 대륙의 수많은 경영자들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성공 사례는 우리 기업인들에게 그 지역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번역에서 한자어에 얽매이지 않고 순통한 우리말로 바꾼 역자의 유려한 문체 또한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