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는 즐거움과 쓰는 괴로움
진융(金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진융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고통의 첫 번째 이유는 강호에 와호장룡(臥虎藏龍)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진융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나아가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진융을 화제에 올리면 최소한 1-2시간은 열띤 대화를 하기 마련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진융 사이트인 [곽양객잔]을 보면 그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곳을 서핑하다 보면 상당한 공력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고수들이 운집해있는 강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진융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내가 여러 차례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과 틈틈이 떠올랐던 생각을 밝히고 그것들이 과연 가능한 ‘초식’인지에 대해 강호의 고수들의 의견을 듣고자 함이다.
고통스러움의 또 한 가지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석하고 편집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진융 연구에 발을 들여놓기 전 내 침대머리에는 항상 『金庸作品集』 가운데 한 권이 놓여있었다. 자기 전 1시간 정도 진융의 작품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가 없었다. 때로 보던 책을 누군가가 치워버리기도 하지만 태연하게 다음 권을 집어들 수 있었다. 이야기 줄거리를 파악한 상황에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급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장을 읽어도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절묘한 표현과 플롯을 접할 때의 즐거움은 횟수를 더해도 그 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진융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에 쫓겨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대상을 잠자리에까지 가지고 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진융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려다 오히려 즐거움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진융 작품만큼 재미있게 그리고 꼼꼼하게 읽은 텍스트가 많지 않다. 때로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에, 때로는 지고지순한 사랑에, 때로는 문화화된 무협에, 그리고 중국적 표현에 매료되곤 했던 것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은 텍스트의 층위가 두텁다(thick)는 것이다.
‘두터움’은 기어츠(Geertz, Clifford)의 맥락에서 힌트를 받은 개념이다. 기어츠는『문화의 해석』에서 인류학의 민족지(ethnography) 작업의 방법론으로 ‘중층 기술 또는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제시했다. 이것은 기어츠가 길버트 라일에게서 빌어온 개념이다. 라일은 눈의 경련과 윙크에 대한 ‘현상적’ 관찰은 동일한 해석에 이를 수 있지만(현상 기술 thin description), 그 현상의 이면에 위계적으로 연결된 여러 층위의 의미구조가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파악하려 할 때 ‘두터운 기술’을 한다고 했다. 기어츠는 이 개념을 민족지 작업에 적용시켰다. 인류학자가 현지조사에서 당면하게 되는 상황이란 “여러 겹의 복합적인 의미구조이며, 이 개개의 의미구조들은 서로 중복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기어츠 1996, 20) 그러므로 인류학자는 그 상황을 사후에 설명하기 위해 조사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조사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구조를 가진 텍스트를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로 상정하고, 그런 텍스트가 가지는 문화적 함의를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으로 표기했다. 진융의 작품은 문화적 두터움을 가진 텍스트라 할 수 있다.
2.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
우리가 ‘중국 근현대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1950년대 중엽, 그리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홍콩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이 문학혁명은 통속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학자와 교수들을 강박(强迫)하여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융의 무협소설이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을 휩쓴 진융의 무협소설은 1980년대에는 역으로 대륙에 상륙했다. 중국 대륙에 불어 닥친 ‘진융 열풍’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제 진융의 무협소설은 ‘중국인다움(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진융은 1924년 중국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차량융(査良鏞)으로, 진융이라는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鏞)를 둘로 나누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무협소설 작가 진융은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차량융의 분신이다. 차량융은 1989년 맡고 있던 정계의 직책을 사직했고, 1992년에는 자신이 창간해서 홍콩 최대의 언론으로 성장시킨 ?명보(明報)?를 매각했다. 그러나 무협소설만큼은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고 2002년부터 홍콩 명하사(明河社)에서 대자판(大字版)으로 3차 개정본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무협소설 작가인 진융은 언론인 차량융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항일전쟁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진융은 1941년 충칭(重慶) 국립정치대학 외구어문학부에 입학해 많은 외국문학 명작을 섭렵했고 쑤저우(蘇州)의 둥우(東吳)대학(蘇州大學의 전신)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항일전쟁이 끝난 후 『동남일보』의 기자로 사회에 입문했으며 1948년 당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대공보(大公報)』에 1천 5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편집과 영어 국제방송 청취 일을 맡아 일했다. 그리고 같은 해 ‘홍콩판’ 복간을 위해 홍콩으로 파견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홍콩은 다시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되면서 진융은 홍콩에 남게 된다. 이후 영화제작사에서 각색과 감독 등을 거쳐 1959년 마침내 『명보(明報)』를 창간했다. 그리고 『신조협려』를 연재하면서 무협소설 작가로서의 명성을 날리는 한편 『명보』의 지위를 안정시킨다.
진융은 1955년 첫 작품 『서검은구록』을 발표하면서 무협소설 애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듬해 『사조영웅전』의 발표는 그의 작가적 명성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1955년부터 약 16년간 진융은 ‘12편의 장편과 3편의 중편’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중복(重復)’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작품도 중복시키지 않았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대협(大俠)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명성을 누리던 1974년 그는 돌연 봉필(封筆)을 선언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 후 진융은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10여년의 공력을 기울여 신문 연재시 미비했던 점들을 수정했다. 1994년 그의 작품집 36권이 베이징 삼련(三聯)서점에서 출간되었다. 같은 해 진융은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교수직을 수여받았고 아울러 ‘20세기 중국소설 대가’ 서열에서 루쉰(魯迅), 선충원(沈從文) 등에 이어 4위에 랭크되기도 했으며 이듬해에는 베이징대학 중문학부 대학원에 ‘진융 소설 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기도 했다.
그의 무협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의 역사 사건을 강호(江湖)라는 가상의 세계와 결합시켜 그 속에서 생활하고 성장하는 핍진(逼眞)한 형상들을 그려냈다. 우리에게 ‘영웅문 3부작’으로 알려진 ‘사조삼부곡’의 주인공, 곽정(郭靖)과 황용(黃蓉), 양과(楊過)와 소용녀(小龍女), 장무기(張無忌)와 조민(趙敏) 등은 송(宋)-원(元) 교체기로부터 원(元)-명(明) 과도기라는 역사배경과, 동사(東邪)-서독(西毒)-남제(南帝)-북개(北丐)-중신통(中神通)이라는 무림의 대종사(大宗師)들이라는 강호의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살아 숨쉬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강호-인성’의 삼중구조는 진융 소설의 특징적인 측면이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명(明)-청(淸) 교체기를 배경으로 삼아 활발한 시대 분위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음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강호와 협객(俠客)들이 ‘근현대적인(modern)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대 중국인의 복장을 입고 과거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유방식과 행동양식은 현대인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우환(憂患)의식을 발견할 수 있고 20세기 인류 문명이 지닌 비관주의와 회의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로 설정된 점은 위의 측면은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진융의 소설은 중국의 한자문학이 창조해낸 예술적 상상력이 극치에 이르렀음을 상징하고 있다. 번역본이 이 부분을 얼마나 구현해낼 수 있는지가 일반 독자들이 진융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건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진융의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는 통속문학과 엄숙문학 사이의 경계와 영역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무협소설을 순수예술의 전당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5․4 신문학에 의해 억압되었던 ‘본토문학’의 전통을 부활(復活, revival)시킨 점도 함께 꼽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에 이름있는 학자들이 진융에 관한 글들을 속속 발표했고 전문 연구서가 출판되기도 했다. 국제 규모의 ‘진융(金庸) 학술토론회’도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金學’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진융 현상’은 신시기(新時期) 전기에 있었던 ‘왕숴(王朔) 현상’이나 ‘『폐도(廢都)』 현상’과는 그 맥을 달리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1956년 신문 연재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독자층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단순한 저널리즘적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진융의 작품을 재미있는 무협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보유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 본토문학’의 집대성자이면서,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독자를 보유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진융의 작품은 대륙과 홍콩, 타이완 그리고 여러 지역의 화인(華人)들을 통합(integration)시키는 기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1955년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했고, 작품들이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진융을 매개로 하여 다시 통합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은 ‘국민문학(national literature)으로서의 진융 소설’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3. 『사조영웅전』꼼꼼하게 읽기
하나. 역사의 허구화와 허구의 역사화.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진융 무협소설의 커다란 특징이고, 왕조 교체기라는 과도기를 선택한 것은 작가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우리는『사조영웅전』을 통해 송과 금의 남북 대치, 사막에서 성장해가는 몽골 부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융은 역사를 형해화된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와 결합시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몽골 사막의 역사 영웅 칭기스칸의 인간적인 삶의 면모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역사를 허구(fiction)와 결합시킨 것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화산논검 등의 허구적 이야기는 소설 전체를 규정하는 배경이 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사실’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둘. 화산논검의 전통과 건곤오절(乾坤五絶)은 『사조영웅전』의 강호 배경을 구성한다. 화산은 오악(五嶽)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오경(五經)에서는 『춘추(春秋)』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화산논검은 ‘역사 평가’라는 함의를 가지게 된다. 1차 화산논검의 직적접인 동기가『구음진경』으로 야기된 강호의 혼란을 막고자 함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역사 평가’라는 의미는 보다 확고해진다. 화산논검의 주역들은 당대 고수중의 고수인 건곤오절이다. 동사 황약사는 사악하면서도 바름을 가지고 있다. 서독 구양봉은 독랄하지만 자기 나름의 기준과 절제를 가지고 있다. 남제 단황야(훗날 일등대사)는 존귀한 황제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질투에 눈이 먼 필부(匹夫)의 모습을 보여준다. 북개 홍칠공은 개방의 방주로서 호방한 성격과 대의명분을 추구한다. 그리고 중신통 왕중양은 전진교(全眞敎)를 창시한 실제 역사 인물이다. 이들은 주인공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강호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셋. 대협(大俠)의 성장 과정.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신세대 영웅인 곽정과 황용의 성장 이야기다. 역사와 강호는 이들의 성장 과정 및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계되면서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바뀐다. 성실하지만 우둔한 곽정과 영민하고 총명한 황용의 만남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주인공 곽정과 반면 인물 양강의 이름은 ‘정강의 치욕’(靖康之耻)을 잊지 말라는 취지에서 구처기가 지어준 이름이다. “남들이 한 번 하면 나는 열 번 한다”는 ‘자신을 아는 밝음(自知之明)’과 굳건한 의력(毅力), “불가능한 것을 알고도 행한다(知不可爲之而爲之)”는 정의(正義)로움․멸사봉공(滅私奉公) 등은 곽정의 성격을 형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무술 수련 과정에서 초기에는 거의 진전이 없다가 ‘항룡(降龍) 18장’을 익히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모습은 진융의 또다른 특색인 ‘무공의 개성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흡사 항룡 18장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어눌하고 순박하지만 우둔하고 치졸한 아이가 대협으로 성장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사조영웅전』의 ‘평범한 영웅’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자가 대협(爲國爲民 俠之大者)”이라는 말은 곽정에 대한 적절한 평어라 할 수 있다.
넷. 지고지순한 사랑, 다양한 내공의 사랑. 곽정과 황용의 성장 과정에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쩌면 작가가 꿈꾸었을 법한 두 사람의 만남은 그야말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는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들을 현실 생활에서 이탈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쟁 공주와의 혼인 문제는 곽정의 성장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것이었고, 황약사와 강남칠괴의 갈등은 쌍방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 그 필연성을 보장받고 있다. 그로 인해 곽정과 황용이 겪는 위기는 현실에서 괴리되지 않고, 그 위기를 겪는 과정은 우리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의 ‘새로운 경지를 체험(更上一層樓)’시켜 주게 된다.『사조영웅전』의 속편이기도 한『신조협려』에서, 곽정과 황용은 양양성을 지키다 순국하게 된다. 성 함락 직전 황용은 곽정에게 탈출을 제안하지만 곽정은 의연하게 백성과 함께 할 것을 선언한다. 이 때 황용은 곽정에게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고 하면서 함께 순국한다. 대협 곽정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곽정의 지기(知己)이자 반려(伴侶)로서의 황용, 그리고 두 사람이 개인적 차원의 애정을 공동체의 운명으로 승화시킨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진현풍과 매초풍 또한 상대방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는 면에서 어떤 연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황약사의 아내 사랑, 단황야의 유귀비에 대한 사랑, 영고와 주백통의 사랑 등은 사랑에도 장기간에 걸친 내공(內功) 수련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밖에도 목염자의 이루어지지 않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면서, 다양한 사랑의 양태를 보여준다.
다섯. 중국 문화에 대한 교양 입문서. 2천년이 넘는 시간과 광대한 대륙의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신고(辛苦)를 통해 이루어진 중국의 문화. 13경으로 대표되는 철학, 25사의 역사, 당시(唐詩)와 명청 소설 등의 문학, 그리고 서화(書畵), 바둑, 음악, 의술, 다도(茶道)와 주도(酒道) 그리고 음식 등의 문화는 우리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화 전체가 진융의 작품에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지만, 중국 문화 입문에 유용한 경로가 진융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베이징(北京)대학 진평원(陳平原) 교수는 중국 20세기 무협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인 맛’으로 ‘불교’를 꼽고는 그것 없이 무협소설은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문학작품의 도움을 받아 불교를 초보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진융의 무협소설을 추천한다고까지 했다. 『사조영웅전』에서도 모두(冒頭)의 설서(說書: 공연을 하듯이 청중에게 이야기를 하는 전통 장르) 장면, 전진교에 대한 이야기, 황용을 통해 소개되는 문사철(文史哲) 지식들, 칭기스칸과 악비(岳飛) 등에 관한 역사 사실 등 그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무공의 문화화’, 즉 무공에 문화를 결합시킨 부분이다. 이를테면 항룡 18장과『주역(周易)』의 관계, 공명권과 도가의 관계, 화교들이 2세 또는 3세를 교육시킬 때 진융의 소설을 교본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상의 독법은 두드러진 예에 불과하다. 그밖에도 독자의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읽을 수 있다. 구처기와 강남칠괴의 18년에 걸친 내기 약속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나이의 신의, 황약사의 기문팔괘와 일등대사의 일양지 치료 등을 통한 최고의 경지 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사시 전통이 부재한 중국 문학사의 공백을 메울만한 영웅 사시로 보는 것도 그 한 가지 사례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융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중국 문화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중국인의 어떤 특성(Chineseness)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융의 작품은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손에 거머쥔, ‘아속공상(雅俗共償)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는 ‘문화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4. 『의천도룡기』두텁게 읽기
『의천도룡기』8권이 출간됨으로써 ‘사조삼부곡’ 24권이 완간되었다. 이전의 ‘영웅문’ 시리즈 18권이 원문의 약 70% 정도로 번역된 반면, 이번 ‘사조삼부곡’은 완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주인공 장무기는『사조영웅전』의 유가적 협객인 곽정과『신조협려』의 도가적 협객인 양과와는 다른 불가적인 협객이라 할 수 있다. 곽정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대협’을 지향하는 인물이고 양과가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형상이라면, 장무기는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기억하며 심지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융은 다른 소설에서 협객의 의미에서 벗어난 비협(非俠)의 경지(『연성결』의 적운)를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무술도 할 줄 모르고 협의와는 거리가 먼 반협(反俠)의 인물형상(『녹정기』의 위소보)도 창조했다. 그는 ‘삼류’라고 폄하되는 무협 장르에서 유사한 인물을 중복하여 창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진융 소설이 그러하듯이『의천도룡기』도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는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다. ‘두텁게 읽기’는 진융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우선 진융의 소설을 ‘역사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사조삼부곡’을 통해 송(宋)과 금(金), 원(元)의 역사를 익힐 수 있다.『사조영웅전』은 칭기즈 칸의 흥기 과정과 금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고,『신조협려』는 양양(襄陽)성 전투를 통해 원이 송을 멸망시키는 과정을 배경으로 삼았으며,『의천도룡기』는 원 쇠퇴기에서 시작해서 명 건국까지의 과정을 파란만장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의천도룡기』에서도 주인공 장무기는 역사인물들과 조우한다. 훗날 명 태조가 되는 주원장과 항원 투쟁의 선봉장인 서달`상우춘 등이 그들이다. 진융이 역사를 가져오는 방식은 단순하게 시간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 속 인물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허구의 주인공들을 실제 역사 사건에 편입시키고 역사 인물들을 허구와 연계시킨다. 진융은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소설의 품위와 무협소설의 재미를 겸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소설에서는 원나라를 극복 대상으로 그렸지만, 13세기 ‘세계체계(world system)’는 ‘팍스 몽골리카’였다. 항원 투쟁은 오늘날 ‘팍스 시니카’의 입장에서 보면 소탐대실이었던 셈이다. 중국 내 한족의 패권을 확립하기 위해 세계체계 내 대중화(大中華)의 패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사조삼부곡’ 시기의 진융은 훗날『천룡팔부』나『녹정기』에서 보여주는 ‘오족공화(五族共和)’, 즉 ‘중화민족 대가정’의 인식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몽고족과 거란족을 이민족으로 간주해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다음으로 이 소설은 ‘욕망과 집념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수많은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내 모든 사단의 주모자인 성곤과 장무기의 의부인 사손은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곤은 사랑하던 여인을 빼앗긴 복수를 위해, 사손은 가족을 잃은 복수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 또한 명교에 대한 멸절사태의 복수심, 장무기에 대한 조민의 적극적인 일편단심, 주지약에 대한 송청서의 집착과 기효부에 대한 은리정의 연연불망(戀戀不忘) 등은 인간의 속성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특히 어려서 장무기에게 물린 기억을 평생 잊지 않고 그를 찾아다니는 아리는 장무기 본인을 확인한 후에도 기억 속의 장무기를 찾아 떠난다.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필요한 인물이다. 아울러 명나라를 세워 황제 자리에 오른 주원장의 정치적 욕망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는 민간에서 명교에 들어가 세력을 쌓고 자신의 상관들을 권모술수로 처리해서 최고 지위에 오른다. 우리는 그를 통해 저급하고 추악한 정치 드라마의 속성을 볼 수 있다. 주원장의 형상은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될 수 없다(無毒不丈夫)’는 속담의 진수를 보여준다.
셋째, 『의천도룡기』역시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착하지만 병약했던 아이가 험난한 시련을 거쳐 명교의 교주이자 무림지존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장무기의 개성을 파악하는 키워드는 ‘부드러움(柔)’이다. 그는 순리를 따르며 자비를 베풀며 살지만, 그의 부드러움은 유약(柔弱)하지 않고 외유내강(外柔內剛)하다. 그러기에 기효부의 딸 양불회를 아버지 양소에게 데려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 편이다. 그는 마지막에 조민과 결합하면서도 주지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소와 아리를 잊지 못한다. 장무기의 성장 과정에서도 기연은 등장한다. 다른 무협소설과 달리, 진융은 인물의 성격에서 오는 필연적 요소와 세밀한 디테일 묘사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우연성을 극복하고 있다. 영화 촬영 기법을 활용한 디테일 묘사는 독자들에게 생동한 명장면들을 선사한다. 21장의 광명정 전투, 24장의 무당산 삼청전의 전투, 그리고 36장의 소림사 세 고승과의 대결은 그 대표적인 예다.
넷째, ‘강호라는 가상 세계에 관한 이야기’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이는 무협소설의 요체다. 텍스트에서 강호인들은 도룡도와 의천검을 얻으려고 혈안이다. 나중에 밝혀지는 비밀에 의하면, 곽정이 만들었다는 한 쌍의 도검 속에는 각각 악비(岳飛)의 병서와 구음진경이 들어 있었다. 사손은 도룡도를 손에 넣기 위해 수 십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빙화도로 떠나고, 장무기의 부모는 사손과의 의리와 도룡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강호인치고 도룡도와 의천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보인다. 진융이 그려낸 강호는 소림`무당`아미`화산`곤륜`공동의 육대문파와 명교로 대변되는 정과 사의 대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진융은 이들을 변화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정파에도 악인이 있을 수 있고 사파에도 선인이 있을 수 있으며, ‘정이 사가 될 수 있고 사 또한 정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
이상이 텍스트 전체에 걸친 이야기라면,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보자.
장무기가 익힌 무공은 ‘무공의 개성화와 문화화’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그가 구양진경, 건곤대나이, 태극권`태극검 등 최고의 무공을 연마하는 과정은 가히 ‘전기적(傳奇的: romantic)’이라 할 수 있지만, 진융은 그 과정을 개성화하고 문화화한다. 그는 남들이 평생 걸려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건곤대나이를 구양진경의 내공에 힘입어 몇 시간 만에 마스터하는 과정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는 개성을 드러낸다. 또한 태극검은 장무기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리는 무공인 동시에 ‘마음으로 검을 부리는’ ‘이의어검(以意馭劍)’의 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초식보다 검의(劍意)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공은 문화로 바뀐다.
진융의 소설은 중국 전통문화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문화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연속성이라는 면에서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 13경으로 대표되는 철학, 25사의 역사, 당시(唐詩)와 명청 소설 등의 문학, 그리고 서화(書畵), 바둑, 음악, 의술, 다도(茶道)와 주도(酒道) 그리고 음식 등의 전통문화는 우리의 섣부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화 전체가 진융의 소설에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지만, 그것이 중국 문화 입문에 유용한 경로라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배화교라 일컬어지는 조로아스터교의 중국 전래와 발전 상황에 관한 종교 문화와 의술에 관한 정보가 두드러진다. 진융은 이들 정보를 계몽적으로 훈시하지 않고 ‘즐거움 가운데 가르침을 얹는’(寓敎於樂)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진융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중국 문화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중국인의 어떤 특성’(some Chineseness)을 체득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진융의 소설은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두 날개의 문학사’를 체현하고 있는, ‘아속공상(雅俗共賞)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는 ‘문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최근 진융은 세 번째 개정판을 완간했는데, 이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조건이 되면 끊임없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작가의 본분’(2007년 11월 2일, 진융 인터뷰)이라는 작가 자신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손을 떠나며 시작되는 텍스트의 여행’이라는 수용미학의 입장에서 보면, 3판 개정본의 시도는 화사첨족의 우를 범한 듯 보인다. 그동안 진행된 비평과 연구를 무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이해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5. ‘영웅문’ 현상
중문학자 이치수는 한국의 중국 무협소설 번역·소개의 역사를 ‘김광주 시대’, ‘워룽성(臥龍生) 시대’, ‘진융 및 기타 시대’의 세 시기로 나눈다. 무협소설 번역가이자 작가인 박영창도 ‘한국의 중국 번역 무협’을 ‘김광주 시대’, ‘워룽성 시대’, ‘진융 시대’로 구분했다. 진융은 워룽성에 이어 중국 무협소설 유행의 또 하나의 고조를 대표한다. 1986년에『영웅문』시리즈가 출판되면서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외국 번역소설로 꼽혔고 1986년부터 1989년에 이르는 3년간 ‘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鴦’의 14부와「월녀검」이 모두 번역되었다. 몇 년 되지 않은 기간에 외국작가의 작품이 거의 번역 소개된 것은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로, 우리나라의 번역 문학사상 특기할만한 사건이었다.(이치수 2001, 77-8) 진융에 대한 학술 연구도 적잖이 진행되어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점이 특이하다 할 수 있다(정동보 2001; 임춘성 2002, 2004; 전형준 2003; 유경철 2005 등). 최근 다시 출판된『사조영웅전』(2003),『신조협려』(2005),『의천도룡기』(2007)는 판권계약을 통한 번역이라는 측면에서 중국 무협소설 번역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전 판본과 비교할 때 원전에 충실한 완역이라는 점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른바 ‘영웅문 키드’가 더 이상 ‘원전에 충실한 완역’을 환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앞당겨 말하면, ‘영웅문 현상’은 한국의 고유한 현상으로, 진융 작품의 이해와는 무관한 문화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영웅문 현상’에서 특이한 점은 진융의 작품이 모두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유독 ‘영웅문’에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영웅문’의 원작인 ‘사조삼부곡’이 흥미로운 작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문화적 측면에서『소오강호』,『천룡팔부』,『녹정기』로 이어지는 후기 대작들이 훨씬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협객의 성격만 보더라도, 유가적 협객(원승지·곽정), 도가적 협객(양과), 불가적 협객(장무기)을 거쳐, 협객의 일반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비협(非俠)적 인물(적운·석파천)과 심지어 시정잡배에 가까운 반협(反俠)적 인물(위소보)로 변천해가는 계보만으로도 그 전복적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융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역사 사실과 문학작품 그리고 문화적 요소들로 충만하다. 중국 불교에 입문하려면 진융의 작품을 읽으라는 천핑위안(陳平原 1992)의 권고는 과장이 아니다. 송말부터 명 건국까지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사조삼부곡’에서 시작하고 명말 청초의 역사 공부는『녹정기』와 함께 하면 좋을 것이라는 권유는 필자의 심득(心得)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두터움’은 장르문학으로서의 무협소설 애독자들의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영웅문 키드’들은 무협지 ‘영웅문’으로 충분할 뿐, 그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이해할 수 있는 중국의 문사철(文史哲)과 제반 문화, 중국 상상, 전통 만들기, 국족 정체성(national identity) 등의 주제에는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관련 담론을 보면 진융 소설에 대한 오해를 읽을 수 있다. 전형준(2003)은 좌백 이후 한국의 무협소설을 ‘신무협’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워룽성·진융·구룽(古龍)에 대한 전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복의 문화적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후속작업(전형준 2007)에서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문학을 ‘문학’으로 승격시켜 진지하게 ‘평론’하고 있다. 이진원(2008)은 한국에서 창작·번역된 무협소설과 그에 관한 평론 및 연구를 총망라하면서, 한국 무협소설이 중국 무협소설의 단순한 번역 또는 번안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그 기원을 조선 시대 또는 그 이전까지 소급하여 영웅소설이나 군담소설에서 무협소설의 맹아를 발견하려 한다. 그리고 중국 무협소설의 영향과 무관한 일제강점기의 역사무예소설을 그 후예로 삼고 1980년대의 창작 무협소설과 1990년대의 신무협을 그 ‘창조적 계승’으로 설정하며 그 흐름을 ‘한국적 무협소설’로 명명한다. 한국 무협소설은 바로 이 ‘한국적 무협소설’과 중국 무협소설을 모방하여 창작한 ‘중국식 창작 무협소설’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협소설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이진원의 시도는, 그가 이론적 근거의 한 축으로 기대고 있는 전형준이 보기에는 “자신을 서구라는 타자와 동일시하는 서구 지향적 무의식과 자신을 중국이라는 타자와 구별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무의식, 얼핏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무의식의 공모”(전형준 2008)일 뿐이다. 그런데 전형준이 ‘전복’이라 명명한 내용이 명실상부한 ‘전복’인지는 대조가 필요하다. 그에 의하면, “한국의 신무협은 현실도피와 대리만족이라는 기존 무협소설의 틀을 초월하거나 전복하고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실존적 탐구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수행했다.”(같은 글) 뿐만 아니라 신무협은 문학 수준의 향상, 내용과 형식면에서의 독자성, 근현대성과 포스트근현대성 그리고 문화적 동시대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무협이 전복했다고 하는 대상으로 한국의 무협소설 외에 중국 무협소설 작가들까지 포함한 것은 섣부르다. 특히 한국 신무협이 진융의 작품을 전복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들은 『영웅문』을 중국을 대표하는 무협소설로 간주하고 그것을 독파하면 중국 무협소설을 정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사실 ‘진융의 사조(射雕)삼부곡’을 번역한『영웅문』은 완역이 아니라 양적으로 70% 수준의 번역이었고 그 문체라든가 문화적 측면까지 평가하면 50% 이하의 조악한 번역물이다. 그러므로 ‘소설 영웅문’은 ‘진융의 사조삼부곡’과는 다른 별개의 텍스트이자 한국의 문화현상인 셈이다. 김광주의『정협지』를 번안소설이라 한다면, 『영웅문』 또한 축약 내지 생략했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번안이라 할 수 있다. 『영웅문』의 번안·출판은 한국적 맥락에서 이전 단계의 무협지라는 통념을 깨뜨린 사건이었지만, 원작의 의미와 재미를 상당히 훼손시켰다는 것이 이 글의 판단이다. 그리고 ‘진융’에 관한 담론도 『영웅문』(원문 기준 각 4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고 조금 더 범위를 넓혀『소오강호』(4권),『천룡팔부』(5권),『녹정기』(5권) 등의 대작 장편 정도까지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진융 작품의 ‘문화적 두터움’이 이들 6부의 대작에 구현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서검은구록』(2권),『벽혈검』(2권),『협객행』(2권),『설산비호』(1권),『비호외전』(2권),『연성결』(1권) 등의 장편과「월녀검」(30쪽),「원앙도」(52쪽),「백마소서풍」(104쪽) 등의 중·단편을 빼고 진융의 작품세계를 운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특히『협객행』의 문자해독능력(literacy)에 대한 신랄한 풍자,『연성결』의 인간의 처절한 욕망에 대한 철저한 해부,『비호외전』의 미완의 종결 등의 ‘문화적 두터움’은 한국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수용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90년대부터 진융의 소설은 중화권에서 교학과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이른바 ‘경전화(經典化)’ 작업이 진행되었고 전문 연구서만 해도 백 권을 넘게 헤아리면서 ‘진쉐(金學)’란 신조어까지 출현하고 있다. 1994년 베이징대학에서 진융에게 명예교수직을 수여하고 같은 해 ‘싼롄서점(三聯書店)’에서『진융작품집』36권을 출간한 것은 그 징표라 할 수 있다. 베이징대학과 싼롄서점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의 대학이고 출판사이므로 그 문화적 수준이 증명된 셈이다. 중화권에서 진융의 작품은 무협소설에서부터 애정소설, 역사소설, 문화적 텍스트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문 현상’은 그 스펙트럼에서 무협적 요소를 가져와 조악하게 재구성된 텍스트에 의존한 것임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1990년대 동아시아에서 환영을 받았던 한류가 이제 포스트한류를 고민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동아시아에서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는 문화 횡단의 시대에, 진융의 작품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진융 텍스트가 지닌 중국 전통문화의 두께는 동아시아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자칫 중화주의를 강조하는 ‘국족 서사(national narrative)’와 ‘중국 상상’(유경철 2005) 또는 ‘전통의 부활’(林春城 2005)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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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융 작품 목록(창작연도별) 및 작품집(출간년도별)
1955년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1956년 『벽혈검(碧血劍)』
1957년 『설산비호(雪山飛虎)』,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1959년 『신조협려(神雕俠侶)』, 『비호외전(飛虎外傳)』
1961년 『의천도룡기(依天屠龍記)』,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원앙도(鴛鴦刀)」
1963년 『천룡팔부(天龍八部)』, 『연성결(連城訣)』
1965년 『협객행(俠客行)』
1967년 『소오강호(笑傲江湖)』
1969년 『녹정기(鹿鼎記)』
1970년 『월녀검(越女劍)』
1994년 『金庸作品集』(1~36), 三聯書店, 北京.
2002년부터 ?大字版 金庸作品集?이 홍콩 明河社에서 출간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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