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와 ‘그’
중국의 몇 안 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오싱젠(高行健)의 지음(知音)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류짜이푸(劉再復)는 『나 혼자만의 성경(一個人的聖經)』(이하 『성경』)의 화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중국의 잔인한 정치적 현실에 의해 ‘나’는 살해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대(你)’와 그때 그곳의 ‘그(他)’였으며, ‘그대’와 ‘그’는 ‘현실과 기억’, ‘생존과 역사’, ‘의식과 글쓰기’라고. 『영산(靈山)』에서는 ‘나(我)’가 존재했었지만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이라는 정치적 잔인함을 거치면서 ‘나’가 살해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이에 대해 강경구는 “똑같이 정치적 폭력을 겪은 이후의 작품인 『영산』에서는 여전히 ‘나’가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고 하면서, “사라진 ‘나’의 행방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는 가오싱젠이 극작을 겸업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나’라는 존재 역시 작가가 만들어낸 무대 위의 인물들로 보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보면 “나는 일정한 거리의 밖에서 바라보는 자로 물러”납니다. 그러므로 ‘그/그대가 대신하는 이 삶은’ ‘나’에게 성찰(reflection)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화자에 대해 왕멍투(王孟圖)는 바흐친(Bakhtin, Mikhail Mikhailovich)의 대화 이론에 기대어 ‘그’와 ‘그대’를 동일 생명체의 과거와 현재로 설정하면서 양자 사이에 대화가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그대’는 소설의 회고자이자 기록자이고 ‘과거’의 ‘그’는 회고되고 관찰되는 대상이라는 거지요. 소설은 ‘그대’가 서양에서의 망명과 유랑과정에서의 회고와 사고를 계기로 삼아 ‘그’의 문혁 기간의 악몽 같은 조우를 묘사합니다. 일인칭 ‘나’는 철저하게 부재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대’와 ‘그’의 배후에 숨어서 자아의 리모델링(重塑) 또는 자아 초월을 실현했다는 것이지요. 왕멍투가 이렇게 보는 주요한 근거는 작가의 다음과 같은 언급입니다. “‘그’의 의식은 의식 속의 ‘그대’이다.” “‘그대’는 ‘그’의 언어적 유희에 지나지 않고 ‘그대’는 ‘그’의 의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일인칭 화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부재하면서도 현존하고 있고 부재함으로써 자아를 새롭게 조정하고 초월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재하는 현존’으로서의 ‘나’, ‘그’와 ‘그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는 ‘나’는 성찰적 존재(reflective being)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선 상흔 글쓰기와 성찰적 글쓰기의 비교를 통해 후자의 특성을 추출해보고, 문혁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은 폭력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진행한 후 『성경』을 사례로 삼아 기억의 정치학을 고찰합니다. 따라서 이 글은 문학연구 논문에서 행하는 작가작품론을 지향하지 않고, 텍스트를 사례로 활용합니다.
2. 상흔 글쓰기와 성찰적 글쓰기
문혁에 관한 글쓰기(書寫)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흔(傷痕) 글쓰기’와 ‘성찰적 글쓰기’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문혁 종결 직후 온양(醞釀) 시간이 충분치 않은 시점에 문혁의 상처를 다룬 작품으로 「상흔(傷痕)」과 「고련(苦戀)」 등의 중단편을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후자는 1976년에 종결된 문혁에 대해 충분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주로 장편 형식으로 묘사합니다. 왕샤오보(王小波)의 『황금시대(黃金時代)』와 위화(余華)의 『형제(兄弟)』, 그리고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경』이 대표적이지요.
문혁 글쓰기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폭력에 대한 것입니다. 상흔 글쓰기에서 폭력은 직설적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정이(鄭義)의 단편소설 「단풍」에서 주인공 루단펑(盧丹楓)은 『마오쩌둥 선집』을 학습하는 열성분자였고,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린뱌오(林彪)가 쓴 『마오쩌둥 선집』의 「재판 서문」까지도 빠짐없이 암송했으며, 전교 행사인 ‘『마오쩌둥 선집』 독서경험 교류대회’에서 붉은 표지의 마오 어록을 술술 외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지도자들이 『마오쩌둥 선집』 학습 운동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비판 대회도 엽니다. 그런데 홍위병들의 무력투쟁은 1967년이 되면 홍위병과 조반파(造反派)간의 투쟁 및 군부 내부의 투쟁 양상으로 번집니다. 1967년 7월 ‘우한 사건’ 이후에는 홍위병 조직이 와해되면서 홍위병 간의 투쟁, 홍위병과 조반파 간의 투쟁, 군의 개입 등으로 전국이 무정부 상태로 변합니다. 소설 「단풍」은 이러한 사회 배경하에서 일어난 제6중학 동창생들 사이의 처절한 무력투쟁을 그립니다. 제6중학 ‘방송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징강산(井岡山)파에 속해 있던 루단펑은 자신의 남자 친구인 리훙강(李紅鋼)이 속한 조총병단(造總兵團)과 싸웁니다. 애인과 적이 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좌파끼리의 사생을 건 싸움이었지요. 여기에서 징강산파가 승리하지만 리훙강이 보는 앞에서 루단펑은 죽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리라/ 희생을 두려워 말고/ 지칠 줄 모르며 끝까지 싸우리라” 스피커에서 나오는 마오 어록 노래를 들으면서 “리훙강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소매로 얼굴의 눈물을 훔치며 단펑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집합한 사람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루단펑의 죽음으로 동족 간의 유혈극에 환멸을 느낀 리훙강은 자신의 조직을 이탈하고 소요파(逍遙派)가 됩니다. 그러나 그도 결국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합니다. “루단펑을 5층에서 떨어뜨렸다는 죄명으로 … 학습반에서 리훙강이 단펑을 총으로 협박하여 투신하게 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그래서 놈들은 며칠 밤낮을 수소문한 끝에 리훙강을 잡아들였다. 당시 그는 이미 조총병단을 이탈하고 소요파로 자처하면서 그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았지만, 사형을 언도받고 전격적으로 처형당했다.”
청춘남녀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당시 노선의 차이로 인해 무장 투쟁하고 각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은 부재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에는 문혁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상처의 원인에 대한 성찰과 규명은 필요합니다.
상흔 글쓰기에 반해 성찰적 글쓰기에서는 폭력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다른 장치를 설정해 대자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를테면 왕샤오보의 『황금시대』에서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왕얼(王二)은 언어유희와 성 탐닉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항거합니다. 왕얼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마치 병정놀이처럼 대한다. 농촌으로 하방되어 노동 개조에 처한 상황에서도 예쁜 여자를 유혹하고 반성문을 쓰면서도 게이머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위화의 초기 소설은 “냉정한 필치로 죽음, 피비린내와 폭력을 묘사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성의 잔혹함과 존재의 황당함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살아간다는 것(活着)』, 『허삼관/쉬싼관 매혈기』 등에서는 “여전히 냉정한 필치로 하층생활의 피와 눈물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불행에 대한 연민 어린 시각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런데 『형제』에 이르면 죽음과 폭력, 피와 눈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보입니다. 중국 전통의 연의(演義)체를 연상케 하는 서사 방식과 함께 유머러스한 묘사가 주를 이룹니다. 특히 사회주의의 새로운 인간의 모범이었던 송범평/쑹판핑(宋凡平)이 아버지의 출신 성분으로 인해 감금되어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끝내 타살되는 장면을 통해 문혁을 희화화시켰고, “강직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착하고 법규를 준수하고 스스로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사는 송강/쑹강(宋鋼)의 자살과 ‘양아치’ 이광두/리광터우(李光頭)의 성공을 대비시킴으로써 개혁개방의 허실을 풍자합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형제』의 주제를 ‘거대한 간극’이라 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리광터우와 쑹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 이라는 것이지요. 사회주의 30년과 포스트사회주의 30년의 격차, 쑹강은 전자에서 안정을 찾고 리광터우는 후자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회주의 시기는 리광터우에게 맞지 않았고 개혁개방은 쑹강에게 실직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작가는 이들 두 형제의 조우를 통해 문혁과 개혁개방의 양극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대자적이고 성찰적인 사유의 단서를 제시합니다.
성찰적 글쓰기가 상흔 글쓰기와 변별되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후자가 즉자적이고 폭력과 고통을 직접 묘사했지만, 전자는 대자적이고 다른 장치를 설정해 묘사합니다. 그런데 양자 사이에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에 대한 태도와 성애 묘사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에 대한 논의는 금기 영역이고 성에 공개적으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주의 시기, 특히 문혁 시기에 성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억압됩니다. 상흔 글쓰기의 주체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을 억압된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를테면 장셴량(張賢亮)은 『남자의 반은 여자』에서 주인공 장융린을 거세된 유물론자로 형상화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친 영혼의 황폐화로 인해 자신이 육체적 본능마저 상실했음을 발견하고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빠집니다. 성적 욕망의 상실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장융린은 신념도 있었고 이상도 있었으며 미래에의 희망도 가지고 있었던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우파분자로 분류된 후에는 재능을 펼 각종 조건을 박탈당하고 수난을 받습니다. 그 오랜 시간이 그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 기능 장애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성찰적 글쓰기에서는 자각적으로 성을 추구하고 있고 나아가 개인적 저항의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사실 권력의 통제가 엄격할 때 성은 효율적인 저항의 영역으로 부상합니다. 『황금시대』의 작가 왕샤오보 역시 생산대 경험이 있습니다. 어쩌면 왕샤오보가 생산대에서 느꼈던 좌절과 공포는 장셴량이 노동개조대에서 느꼈던 무기력 및 자발적 거세보다 심각합니다. 그러나 “왕샤오보는 늘 기이한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들로 자신이 반대하는 관점을 황당한 지경으로 끌고 갔다.” 왕얼은 바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을 황당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황금시대』에서는 주로 천칭양(陳淸揚)과의 대담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그것이 들통나 간부들의 조사를 받고 반성문을 쓰면서 나타납니다. 기발한 생각과 언어적 유희를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상황을 희화화시킴으로써 독자가 문혁에 대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면 『성경』의 성찰적 서사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앞당겨 말하면 작가는 이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 과거와 현재, 대륙과 홍콩을 교차시킴으로써 문혁과 같은 폭력이 일어난 원인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여기에서는 먼저 폭력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진행한 후 『성경』의 사례를 통해 ‘기억의 정치학’을 고찰해보겠습니다.
3. 폭력에 대한 이론적 검토
슬라보예 지젝(Zizek, Slavoj)은 폭력에 관한 여섯 가지 우회로를 검토하면서, 폭력을 ‘주관적(subjective) 폭력’과 ‘객관적(objective) 폭력’으로 나누고, 후자를 다시 ‘상징적(symbolic) 폭력’과 ‘구조적(systemic) 폭력’으로 나눈 연후, 직접적이며 가시적인 주관적 폭력보다 그와 반대인 ‘구조적 폭력’에 주목하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후자가 전자의 원인임에도 “우리가 구조적 폭력의 결과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하나의 체계 속에 내재된 폭력”으로, “지배와 착취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보다 더 감지하기 어려운 형태의 강압들”입니다. 구조적 폭력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그에 대해 “놀랄 만큼 무각감”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처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눈에 비치는 폭력이 주관적 폭력이라면 구조적 폭력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이성적으로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관적 폭력의 원인을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고 그 개인을 ‘감시․처벌’하기에 앞서 주관적 폭력의 근본 원인일 수 있는 구조적 폭력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지젝의 폭력 성찰은, 자신도 언급했다시피, 베냐민(Benjamin, Walter)에 기댑니다. 실정법을 통해 개인에게 강제되는 국가권력의 신화적 성격을 성찰하면서 그에 대한 효과적 대항폭력 또는 비폭력적 폭력을 조르주 소렐(Sorel, Georges)의 폭력론에 기대어 ‘총파업’에서 찾고 있는 베냐민은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폭력을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holy terror)’으로 나눕니다. 그에 따르면, ‘신화적 폭력’이 법정립적이고 경계를 설정하며 죄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속죄를 시키고 위협적이며 피를 흘리게 한다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경계가 없으며 죄를 면해주고 내리치는 폭력이고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옵니다. ‘신화적 폭력’―‘법정립적 폭력’과 그 폭력에 봉사하는 ‘관리된(verwaltet) 폭력’―‘법보존적 폭력’은 배척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입하여 통제하는(schaltend) 폭력’입니다. 그에 반해 ‘신적 폭력’은 ‘성스러운 집행의 옥새와 인장’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신화적 폭력과 달리 ‘베풀어 다스리는(waltend) 폭력’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Maximilien F. M. I. de)가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보낸 것은 그를 처형해야만 공화국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으므로 ‘신적 폭력’이라 할 수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공산혁명이 성공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었고 어느 순간 자신의 성스러운 성격을 상실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신적 폭력의 주체라고 오인합니다. 이때 신적 폭력은 신화적 폭력으로 추락하게 되고 혁명의 이상을 보호하는 장치에서 혁명을 파괴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합니다. 신화적 폭력은 자신이 대의명분을 가지고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오해로 인해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신화적 폭력과 대면한 개인은 무력하고 비굴합니다. 개인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신화적 폭력에 편승할 때뿐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도 개인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1949년 충분한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사회주의에 진입한 중국은 발전한 생산양식과 낙후한 생산력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30년을 보냅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의 타협을 불사했고 30년이 넘은 지금 개혁개방은 생산력 발전이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진화(戴錦華)는 ‘곤경으로부터 탈출했지만 더 큰 그물에 걸린 격’인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를 ‘탈주하다 그물에 걸림’이라 비유합니다. 1980년대의 ‘큰 그물’이, 문혁으로부터 탈출했지만 그 ‘문화심리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권력이었다면, 1990년대의 ‘큰 그물’은 전 지구적 자본에 포섭된 시장입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은 ‘포스트식민 문화(postcolonial culture)’의 현장이기도 한데, ‘안개 속 풍경(霧中風景)’과 ‘거울의 성(鏡城)’은 그에 대한 상징적 레토릭이지요. 이렇게 볼 때 포스트사회주의의 근원에 사회주의 30년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현실은 사회주의적 경험과 떼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는 중국이 끊임없이 넘어서려 하나 넘어설 수 없는, 사로잡혀 있는 유령과 같은 실체/허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주의 30년의 후기에 해당하는 문혁 10년과 그에 대한 기억 및 성찰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젝은 ‘20세기 공산주의의 오류’가 “폭력 그 자체에 의존”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의존하는 것을 불가피하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더 커다란 기능적 양식 속에 있다”고 단언하면서 그 예로 “역사적 필연성을 담지하는 기구로서의 당”을 들었습니다. 부르주아계급의 지배가 강고했던 혁명 직후 사회에서 그들의 지배를 해체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계급 독재가 필요불가결한 조치였지만, 프롤레타리아계급 독재는 사회주의 전 시기에 관철되어 공산당의 유일한 통치방식으로 고정된 것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오류라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도 예외는 아닙니다. 반제(反帝)와 반봉건(反封建)을 기치로 내세운 신민주주의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의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초기 7년의 순조로운 시간을 제외하곤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를 혁명주의와 실용주의의 노선 투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건설기의 과제를 혁명기의 과제와 혼동했다 평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맥락에서 보면 무소불위의 과도한 국가권력과 모든 것을 지도한다는 당 권력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특히 이전 단계의 봉건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면서 지주의 토지와 자본가의 공장을 강제로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인민전정(人民專政)이라는 미명 아래 ‘신적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인간의 차원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신적 폭력’은 그러나 점차 사적 이익과 결부되어 변질되었고 ‘구조화’합니다. 구조화된 폭력은 수많은 직접적 폭력을 양산하면서 대의는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타락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그것이 개인에게 구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기억의 정치학
한나 아렌트(Arendt, Hannah)는, 레닌(Lenin V. I.)이 20세기를 ‘전쟁과 혁명의 세기’로 예견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자의 공통분모를 폭력으로 요약하고는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개괄하고 ‘폭력 도구들의 기술적 발전’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또한 아도르노(Adorno, Theodor Ludwig Wiesengrund)는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에 시가 불가능해졌다고 했는데, 지젝은 이를 수정해 아우슈비츠 이후에 불가능해진 것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오싱젠은 ‘극단적 리얼리즘’을 통해 불가능한 성찰을 수행합니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극단적 리얼리즘’이란 ‘대단히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어떤 편집도 가하지 않은 채 역사를 극히 진실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진실하다 못해 절실하며, 확실하다 못해 정확하며, 준엄하다 못해 잔혹한 경지에 이르렀다.” ‘극단적 리얼리즘’의 또 다른 의미는 “표층에 머무는 것을 거절하고 전심전력을 다해 인성의 심층을 발굴한다. 그리하여 『성경』은 중국 근현대사의 최대 재앙을 극히 진실하게 묘사하고 아울러 인간의 나약함을 절실하게 묘사했다.” 인성의 심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술혁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전위적인 경박스러움 역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만” 시점에, “가오싱젠은 형식적인 혁명으로는 더 이상 출구가 없음을 분명히 파악했고 그리하여 스스로 ‘이데올로기’와 작별함과 동시에 혁명과 예술적 혁명에 대해서도 작별을 선언했다.” 류짜이푸는 읽고 사고하고 다시 읽으면서 “마침내 작품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작가가 주인공과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발견한다.” ‘냉정하게 관찰하는 시선’은 ‘냉정하게 관조하는 태도(冷眼靜觀)’이고 그 핵심은 성찰(reflection)에 있습니다.
가오싱젠의 성찰은 추잡스러운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자유롭게 걸어 나와 우리에게 상쾌한 느낌과 새로운 사상을 선물했으며 그와 동시에 새로운 경지를 창조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그가 각종 가면을 철저하게 벗겨내고, 또한 유토피아와 혁명을 포함한 각종 허위와 우상에 대해 작별하면서도 그 빈자리에 또다시 새로운 환상이나 우상을 만들지 않는 데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 소설은 도망자의 책인 동시에 세기말 조국도 없고 이데올로기도 없고 또한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이 세계를 유랑하는 어느 한 방랑자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통쾌하게 풀어내는 자유의 메시지입니다.
근현대 인류사의 최대 비극이랄 수 있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비견할 수 있는 문혁의 폭력에 대한 사후 보고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지금 여기의 ‘그대’는 그때 거기의 ‘그’의 고통을 기억해 기록하고 있는데 기억하는 행위가 ‘그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대는 출국하면서 모든 과거를 망각의 늪에 던져버렸는데, 홍콩에서 마가리트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과거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대가 기억하는 그의 고통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고통의 기억은 첫 번째 글쓰기과 관련됩니다. 생일날 ‘황금색 파카 만년필’을 선물 받았고 “이때부터 그는 감정이 우러나면 주체를 못하고 몽상과 자기 연민까지 글로 표현하게 되었고 훗날 재앙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당은 모든 일을 관여한다. 그의 사상으로부터 글쓰기와 사생활까지 말이다.” 심지어 사랑에도 관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관여에 순응하되 자신의 참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가면’입니다. 자아를 감춰두고 페르소나(persona)로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도 죽음보다는 낫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모든 것에 관여하는 당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그는 순간순간의 섹스를 통해 해방을 누리곤 합니다.
잊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환기자의 역할을 한 마가리트가 그대 기억의 실마리를 끄집어낸 것도 간호사로 근무했던 여성에 대한 것입니다. 독일계 유대인인 마가리트에게 과거는 끊을 수 없고, 끊을 수 없기에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냐. 당신은 기억을 지울 수 없어. 항상 마음에 남아 있는 걸. 그 기억들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히곤 하겠지. 그러나 때론 힘을 주기도 할 거야.” 그녀에게는 특히 파시즘과 관련된 독특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각심을 갖지 않는 한, 언제든지 되살아난다. … 사람들이 파시즘을 도마에 올려놓고 폭로하고 비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어.” 그녀는 마치 모든 유대인의 고난을 자신이 짊어진 것처럼 갈수록 열을 올립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그대는 정반대로 몸에 붙어 있는 중국이란 딱지를 떼버리려고 합니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중국 민족의 고난을 짊어질 생각은 없습니다. “휴, 그렇게 했다가는 깔려죽지만 않으면 다행이게.”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현재적인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대는 현재의 고통에 굴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과거의 그의 고통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성찰합니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구조적 폭력’이 ‘자기 증식하는 자본의 형이상학적 춤사위’에 있다면,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구조적 폭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가오싱젠은 ‘당’과 마오쩌둥으로 봅니다. 자본과 당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동체 존립에 필요한 위협’을 끊임없이 조작해냅니다. 이 위협은 악 그 자체입니다. 이 악은 권력 핵심 집단의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구성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공동체가 맞서 싸우는 외부적 위협이 바로 공동체에 내재된 본질인 셈입니다.
고통의 기억은 기억의 고통을 야기합니다. 홍콩에서 마가리트와의 만남은 그에게 특별한 계기를 부여합니다. 마가리트의 역할은 망각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환기자의 역할이지요. 그녀에게는 유대계 독일인으로서의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어려서 겪은 성적 폭력의 고통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대에게 과거의 고통을 환기토록 권유합니다. 그대에게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환기하는 과정은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줄곧 회피하고 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가리트와의 만남을 통해 기억을 부활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마각리트로 인해 그대의 욕정과 감각이 살아났고 그로 인해 고백하고 배설하고픈 욕망이 생깁니다. 여기에서 그대는 마가리트를 동일시(identification)합니다. 마가리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그대가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강간을 당해 너무 일찍 여인이 되어버린 한 여자의 고통을.” 그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작가는 독자들이 작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국가 권력에 강간을 당해 야수가 되어버린 한 작가의 고통을.” 그대에게 기억하는 행위는 고통스럽지만 기억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입니다.
고통 속에서 글쓰기는 구원과 같고 섹스는 해방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글쓰기와 섹스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 두 가지 행위에도 제동이 걸립니다. 그는 더 이상 글쓰기도 포기하고, 하방되기 전 자신을 찾아온 샤오샤오(蕭蕭)의 호의도 거절합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그에게 구원과 해방은 사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삶을 거부하고 동물적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미쳐 있는 상태에서 야수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에게 닥치는 권력과 폭력에 항거한 것은 아니지요. 그는 그저 피신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제 글쓰기는 구원이 아니라 도피일 뿐이고 섹스는 거대 폭력에 저항하는 미미한 몸짓일 뿐입니다. 이런 경험을 겪은 그가 역사의식을 거부하고 후속 세대의 운명에 대해 무관심하며 오직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5. 문학의 증인
최근 가오싱젠은 ‘진실 추구의 증인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의미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문학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 생존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작가는 관찰자의 신분으로 돌아가 냉정한 눈으로 인생의 백태(百態)를 보고 마찬가지로 각성해서 자신을 내성해야만 다소간 자재(自在)할 수 있습니다. 이 성찰 가운데 즐거움을 얻고 망령되이 이 세계를 개조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도 개조할 수 없는데 하물며 타인을 개조할까요? 문학의 증인은 역사에 비해 대개 훨씬 깊이 있습니다. 역사는 늘 권력의 낙인을 대동해 권력의 교체에 따라 재삼 다시 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일단 발표되면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증인문학은 정치를 맹종하지 않지만 정치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작별하고 인간의 진실로 돌아가자. 즉 개인의 절절한 느낌으로 돌아가자. 지금으로 돌아오자. 내일에 관한 거짓말을 만들지 말자.” “관찰은 판단보다 크고 판단보다 높다. 판단 전에 먼저 기준을 가지고 생활을 재단하기 때문에 변형되기 마련이다.” 이는 관찰자의 성찰(reflection)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으로 문혁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시기는 관찰자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냉정한 눈’, ‘내성’, ‘자재’ 등이 불가능합니다. ‘그 시간’을 견디고 생존한 후에도 ‘그 시간’을 증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인간은 이른바 ‘트라우마(trauma)’라고 불리는,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에 앞서 감정적 동물이라는 ‘상식’”이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적으로 증명되고, “유기체와 환경을, 자아와 타자를 동시에 연결하는 적극적인 ‘감정이입’의 산물이며, 따라서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으로 연결되어 확장 가능한 감정이자, 이성적 판단의 토대가 되는 합리적인 감정”이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 기억에 각인된 폭력을 환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시간’을 기억하는 순간 신체화된 폭력의 기억이 따라오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고통을 기억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과정―‘고통의 기억’과 ‘기억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진실, 개인의 절절한 느낌과 관찰을 기록하는 일은, 망각하고 싶은 폭력의 고통을 되살려내되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맞서 그것을 변형하지 않으며 진실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범인(凡人)이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문혁에 대한 ‘고통의 기억’과 ‘기억의 고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류짜이푸는 최근 가오싱젠의 정신 가치를 다음과 같이 개괄합니다. 중국문화에 뿌리박은 동시에 중국문화를 초월했고, 문학창작에 입각해 장편소설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문학창작을 초월해 연극 실험, 회화 실험, 영화 실험, 예술이론 탐색 등 전방위적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영산』은 인칭으로 인물을 대신하고 심리 박자로 이야기 줄거리를 대체한 소설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는 또한 인물, 이야기, 서사 3자 결합 모델을 창안했고 ‘인칭, 심리, 대화’의 삼자결합 방식으로 특이한 소설을 창조했으며, ‘너, 나, 그’의 3개 내재적 주체 좌표를 설정했다. 가오싱젠의 전방위적 예술 실험 배후의 철학 사고와 사상 성취는 근현대감이 있으면서 근현대성의 교조를 타파했다. 문학예술 언어의 표현을 통해 삼대 유행 사조(범 마르크스주의, 서양 휴머니즘,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즘)를 초월했고 다른 유형의 사상가의 선봉이 되었다. 류짜이푸의 평가대로라면 가오싱젠은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욱연(李旭淵)에게 가오싱젠의 행로는 험난합니다. 가오싱젠에게 있어 중국 대륙이라는 국민국가는 모든 가능성이 닫혀 있기 때문이지요. 그에게는 덩샤오핑의 중국이나 마오쩌둥의 중국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럴 때 그의 탈출은 필연적입니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진 망명(self-exile)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렵게 얼굴을 덮고 있던 가면을 벗고” 자신을 되찾았으며, 이제 “한 마리의 자유로운 새”가 되었습니다. 이욱연이 보기에, 가오싱젠은 국가적 정체성으로서 중국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곤혹감과 번민은 여기서 연유합니다. 그러한 곤혹감과 번민은 디아스포라의 천형입니다.
파리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 가오싱젠은 어떤 상황일까요? 오랜 지기(知己) 류짜이푸의 바람대로 중국문화에 뿌리를 두되 그것을 초월하고 전방위적 예술 실험과 철학적 성찰을 거쳐 새로운 사상가의 선봉에 도달했을까요? 아니면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 중국의 바깥에서 활동하되 중국과의 연계를 떨쳐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가오싱젠이 벗어버린 굴레가 국가였다면 그가 자양분을 받은 중국 문화도 벗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참고문헌
가오싱젠, 『나 혼자만의 성경(1․2)』, 박하정 옮김, 서울: 현대문학북스, 2002.
강경구, 『高行健과 중국당대소설』, 부산: 세종출판사, 2005.
다이진화, 『무중풍경: 중국영화문화 1978-1998』, 이현복·성옥례 옮김, 부산: 산지니, 2007.
박하정, 「옮긴이의 말」, 『나 혼자만의 성경(2)』, 서울: 현대문학북스, 2002.
백승욱, 『세계화의 길목에 선 중국』, 파주: (주)창비, 2008.
白樺 외, 『고련』, 박재연 옮김, 서울: 백산서당, 1986.
벤야민, 발터,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서울: 도서출판 길, 2009(2쇄. 1쇄: 2008).
심광현, 「제3세대 인지과학과 ‘신체화된 마음의 정치학」, 『문화/과학』제64호(서울: 문화과학사, 2010).
아렌트, 한나, 『폭력의 세기』, 김정한 옮김, 서울: 이후, 2008(3쇄. 초판: 1999).
王小波, 『황금시대』, 손인숙 옮김, 서울: (주)한국문원, 2000.
위화, 『형제(1-3)』, 최용만 옮김, 서울: 휴머니스트, 2007.
이욱연, 「중국인 디아스포라와 高行健의 문학」, 『중국어문학지』 14호(서울: 중국어문학회, 2003).
임춘성, 『소설로 보는 현대중국』, 서울: 종로서적, 1995.
임춘성,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상하이 글쓰기와 도시공간 담론」, 『중국현대문학』(서울: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2010).
임춘성․왕샤오밍 엮음,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연구』, 서울: 현실문화, 2009.
지젝, 슬라보예,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현우․김희진․정일권 옮김, 서울: 난장이, 2011.
천쓰허, 『중국당대문학사』, 노정은․박난영 옮김, 서울: 문학동네, 2008.
최성만, 「옮긴이의 말」, 벤야민, 발터,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서울: 도서출판 길, 2009(2쇄. 1쇄: 2008).
高行健, 「文學的見證―對眞實的追求」, 『華文文學』 2010/06(汕頭: 中國世界華文文學學會, 2010年).
高行健, 『一個人的聖經』, 香港: 天地圖書有限公司, 2000年.
王孟圖, 「“显—隐”的经纬―高行健长篇小说文本结构研究」, 『福建师範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 2010/03(福州: 福建師範大學, 2010年).
王小波, 『黃金時代/白銀時代』, 北京: 中國靑年出版社, 2002年2月.
劉再復, 「當代世界精神價値創造中的天才異象」, 『华文文学』 2010/06(汕頭: 中國世界華文文學學會, 2010年).
劉再復, 「跋」, 『一個人的聖經』, 香港: 天地圖書有限公司, 2000年.
劉再復, 「十年辛苦不寻常―高行健获奖十周年感言」, 『华文文学』 2010/06(汕頭: 中國世界華文文學學會, 2010年).
劉再復, 『論高行健狀態』, 香港: 明報出版社, 2001年1月二版(2000年11月初版).
許子東, 『當代小說與集體記憶: 敍述文革』, 臺北: 麥田出判, 2000年.
'텍스트로 여행하는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성해방과 좌절: 위다푸(郁達夫)의 「타락(沈淪)」 감상 (0) | 2021.01.18 |
---|---|
도시에 진입한 농민: 아큐와 샹쯔 (0) | 2021.01.01 |
쑨위(孫瑜)의 <대로(大路. THE HIGHWAY)> (0) | 2020.09.20 |
마오둔(茅盾)의 [한밤중(子夜)] (0) | 2020.09.20 |
왕안이의 [푸핑] (0) | 2020.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