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 (7)--허우샤오셴의 <해상화> (1)

ycsj 2015. 1. 14. 21:46

허우샤오셴의 <해상화> (1)

 

허우샤오셴과 타이완 뉴웨이브

 

허우샤오셴(侯孝賢)은 에드워드 양(楊德昌)과 함께 타이완 뉴웨이브(新浪潮)를 주도했고, 우리에겐 타이완 현대사를 다룬 <비정한 도시>, <동년왕사>, <연연풍진>, <호남호녀> 등으로 잘 알려졌다. 함께 타이완영화 개혁을 주도했으면서도 두 감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허우샤오셴이 중국적이라면 에드워드 양은 서유럽적이고, 허우샤오셴이 전통과 농촌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면 에드워드 양은 현대화와 도시를 이성적으로 해부했으며, 카메라 기법에서 롱 테이크(long take) 미학을 추구하는 허우샤오셴의 휴머니즘에 비해 에드워드 양은 자각적 몽타주(montage) 사유를 추구하는 전위적 감독에 속한다. 국제적으로는 허우샤오셴의 지명도가 높지만 타이완 뉴웨이브를 추동한 선구자는 에드워드 양이었다.

 

상하이 조계 문화

 

타이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던 허우샤오셴이 돌연 조계시대 상하이 기생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은 <해상화>를 찍은 건 마니아들에겐 의외였다. 그것도 상하이의 면모는 일체 보여주지 않고 카메라는 기루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타이완 현대사를 영화로 표상하는 작업에 몰두해온 허우샤오셴이었음을 아는 팬이라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만큼 <해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특이한 지점이다. <해상화>를 심층 독해하려면 원작자 한방칭(韓邦慶), 번역자 장아이링(張愛玲), 시나리오 작가 주톈원(朱天文)를 경유해야 한다.

<해상화>가 조계시대 상하이의 기생을 다룬 작품이란 점에 초점을 맞춰 우선 상하이 조계의 윤곽을 그려보자. 1843개항 이후 조계가 중심이 된 상하이는 이주민과 대외무역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면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도로 확장과 건설, 조명, 수도, 소방, 우정, 전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항운과 금융 그리고 공업의 발달은 상하이를 완전히 새로운 근현대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조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근현대 도시 시스템과 서양 상품 그리고 서양문화는 이후 상하이 도시문화의 주류가 되고 수많은 이주민들은 그것을 지향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동방의 뉴욕으로 표기되는 이민과 금융의 도시, 그리고 동방의 파리라는 기표가 전달하는 유행과 대중문화의 중심은 바로 조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조계로 대표되는 상하이 도시문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바로 서양 자본주의 외래문화를 수용한 상업문화라 할 수 있다. 상업문화의 기조 아래 인간관계와 이성 감정도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도덕은 약화되기 마련이었다. 바꿔 말하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선도하는 상업문화는 바로 조계 도시 상하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하이 기루 문화

 

기루는 상하이 조계에서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루는 대략 명말청초부터 상하이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현성의 서문에 집중되어 있던 기루는 태평천국군이 상하이를 공격해 서문을 점령하자 대부분 조계로 이전했다. 통계에 따르면, 1918년 상하이에는 고급기생(長三)1천여 명 있었고, 중등기생(么二)이 약 5백 명, 그리고 하등기생(野鷄)5천여 명 있었다고 한다. 조계에서 번성한 기루는 한편으로는 도덕의 타락, 이욕의 팽창, 사치와 낭비 등을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껏 생활을 즐기고 자유로운 애정 생활을 의미했다. 후자의 측면에서 보면 기루는 현대 도시 정신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고급 기루(長三書寓)는 상인들의 유흥 장소인 동시에 상무(商務) 공간이었고 기생들의 생존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문화 집산지였다. 당시 기루는 유행의 풍향계 역할, 관리와 상인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명리의 현장, 자아 매력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무대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조계의 기루는 사회 전환시기인 만청에 출현한 새로운 현상으로, 이는 동서 문화 충돌 및 중국 사회 현대화 역정의 표징이 되었다. 19세기 상하이는 상업문화가 지배하는 욕망의 도시이고 기루는 그곳에서 성장한 악의 꽃이었던 것이다.

 

상하이의 꽃, 기생

 

<해상화>는 영화를 세상을 대하는 예의라고 생각하는 허우샤오셴 영화미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38개의 시퀀스로 구성된 영화에서 카메라는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고 또한 화가가 붓질하듯이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손님들이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차이취안(猜拳: 상대방이 내민 손가락 숫자를 알아맞히는 벌주놀이)을 하며 야연(夜宴)을 벌이고 있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롱테이크(long-take)10분 정도 지속된다. 연장자인 훙산징이 놀이를 주도하면서 여러 조합의 차이취안 게임이 진행되고 때론 당사자가 벌주를 마시기도 하고 때론 뒤에 서있던 기생이 대신 그 벌주를 마시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 기생들은 손님들의 옆이나 뒤에 있어 보조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기루의 주인은 기생이다. 손님들은 돈을 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생이 정해놓은 기루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영화는 다섯 차례의 술자리 외의 대부분 장면을 기생과 손님의 관계에 할애하고 있다. 술자리가 오늘날 룸살롱 장면을 연상시킨다면, 두 사람 장면은 마치 동거 애인 또는 부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술자리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놀이하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반면 두 사람 장면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생에게는 기생어미가 있고 하녀가 있다. 그들은 기생과 손님을 수발하는 것으로 생계를 도모한다. 물론 그 비용은 손님에게서 나온다. 바꿔 말하면 손님을 가장으로 하는 일종의 의사(擬似) 가정인 셈이다.

 

과도기의 의사 가정

 

앞서 살펴본 <, >의 원작자이며 중국 최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장아이링은 영화의 원작 한방칭의 해상화열전(1894)10여 년에 걸쳐 두 차례나 번역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다시 현대 중국어로 번역했다. 그만큼 이 작품을 애지중지했다. 그녀는 당시 기루가 의사 가정역할을 하게 된 상황을 섬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영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다음호에서 장아이링의 얘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