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펑샤오롄의 ‘상하이 삼부곡’ (2)

ycsj 2014. 12. 31. 08:43

百上海 (2015.01.04) 

 

<상하이 룸바>: 1940년대 상하이 영화계의 재현

 

<상하이 룸바>는 시간적으로 1940년대 말을 배경으로 삼아 1949년 쿤룬영화사(昆侖影業公司)가 제작한 정쥔리(鄭君里) 감독의 <까마귀와 참새> 등의 영화제작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노동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영화는 국민당 정권의 어지러운 통치 시대였던 1947년 성탄절에 시작된다. <상하이 룸바>는 일견 상하이 노스탤지어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차례 등장하는 댄스 홀의 풍경이 그러하고 신여성의 모던 치파오가 그러하다. 그리고 올드 상하이영화의 포스터와 자오단(趙丹)황쭝잉(黃宗英)과 같은 영화배우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을 수 있다.

<까마귀와 참새>의 주인공 자오단은 펑샤오롄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한다. 그리고 자오단의 영화에 대한 진지함과 몰입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감독은 단순한 노스탤지어에 그치지 않고, 영화제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 난관과 에피소드를 놓치지 않는다. 아촨의 가정생활, 완위의 결혼, 감독과 제작진들의 애환, 국민당의 검열,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고발 등이 무리 없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1940년대 후반 영화인들의 생존 현장에 대한 기억을 우리 앞에 소환하고 있다.

 

신여성과 인형의 집

 

신여성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노동 참여는 해방 이전에는 쉽지 않았다. <상하이 룸바>의 주인공 완위도 처음에는 인형에 불과했다. 그러나 내면의 열정과 과거의 연극 경험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연기에 자극을 받아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그 험난한 길을 가는 과정에는 각종 난관이 놓여 있고 완위는 결국 그 난관을 헤쳐 나간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 난관을 뚫고 나갔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영화 속의 한 아주머니가 하는 말, “다른 사람이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어야 하는배우보다는 부잣집 마나님이 되는 것이 낫다는 평이 보다 광범한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상하이>: 문혁 트라우마(trauma)의 환기

 

펑샤오롄의 역사와 기억 복원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그중에서도 문화대혁명이다. 화원양방을 배경으로 상하이의 몰락한 부르주아 가정의 생활을 묘사한 <아름다운 상하이>는 어머니가 위독하자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옛집에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어머니 봉양과 부동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과거 기억과 중첩되며 첨예한 모순을 형성한다. 현실 문제는 첫째 아들에게는 상하이 호구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둘째 딸에게는 그 동안의 봉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차원이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셋째 아들과 넷째 딸은 걸핏하면 충돌한다. 세 살 터울인 아룽(阿榮)과 샤오메이(小妹)는 초등학교 시절 문혁을 겪는다(우리에게 <천녀유혼>으로 잘 알려진 왕쭈셴(王祖賢)이 샤오메이 역을 열연했다). 그들에게 문혁은 아버지에 대한 평가로 다가왔다. 대부르주아지 출신으로 사회주의 중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을 아버지는 결국 문혁 때 타살되고 만다.

문혁은 아룽과 샤오메이에게 아버지 비판이라는 시험문제를 강요한 것이다. 얼굴에 침 뱉는 것을 견디지 못한 샤오메이는 선생님이 강요한 정답을 쓰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아룽은 굳건하게 욕설과 매질을 견뎌냈다. 어머니는 이런 아룽을 편애한다. 아룽의 마작 탐닉과 샤오메이의 유학은 문혁 원체험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룽의 직업은 변호사이지만 놀기 좋아한다. 이는 마치 왕숴(王朔) 소설―『사회주의적 범죄는 즐겁다, 노는 것처럼 신나는 것도 없다의 주인공들처럼 현실 도피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자아이다움과 나이어림으로 인해 시련을 견뎌내지 못한 샤오메이는 결국 상하이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그런 원체험과 도피는 아룽에 대한 질시로 표현된다. 이런 과거로 인해 둘은 오랜만에 만난 첫 장면부터 충돌하고 사사건건 반대편에 선다. 마치 상대방이 문혁 시기 원체험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심지어 상대방의 말투를 문혁식 어투미국식 어투라 부르며 비판한다.

 

기억의 환기

 

망각하고 싶은 원체험에 대한 샤오메이의 트라우마는 어머니에 의해 소환되고 있다. 문혁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남편을 빼앗아 간 조반파가 문혁이 끝날 무렵 남편의 유품을 보내면서 샤오메이의 비판 편지도 함께 보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 편지를 막내딸의 손인형 및 아버지가 따준 단풍잎과 함께 보관했다가 죽기 직전 막내딸에게 건네주면서 역사는 잊힐 수 없지만 원한은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다. 역사가 후대에 온전하게 계승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편지가 아버지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샤오메이의 트라우마는 전범재판의 피고처럼 냉정하게 다뤄지고 있다.

사실 샤오메이에게 이 기억은 망각하고 싶은 것이다. 영원히 불 밝히지 않고 어둠의 구석에 묻어놓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을 꺼내자 그녀의 기억은 바로 그날의 기억을 환기하게 된다. “1969년 막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고 여덟 살 생일을 갓 쇠었을 때였어요.” 여덟 살 때의 일을 이렇게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기억은 그 내용을 보충한다. “네 편지를 받은 다음날, 조반(造反)파는 아침에 아버지를 끌고 갔고 밤 11시쯤 나를 오라 해서 갔더니 아버지가 비온 땅에 누워 있었다.”

펑샤오롄은 이렇게 아픈 기억을 어렵게 재현하고 있다. 그의 미덕은 아픈 기억을 들춰내면서도 어머니의 아름다운 추억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이베이(貝貝)의 증조부가 외국에서 사온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은 단순한 노스탤지어로 그치지 않아 보인다. 그 가운데 회중시계를 첫째에게 주고 모형 유성기를 증손녀에게 건네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마치 후대에 역사를 전달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역사 기억은 이렇게 계승되는 것이다. 다음호에서는 <상하이 여인들>을 통해 199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이혼과 주거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