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펑샤오롄의 ‘상하이 삼부곡’ (1)

ycsj 2014. 12. 31. 08:41

 百上海 464호 (2014.12.28)

 

상하이영화영화 상하이

 

중국영화는 오랜 제왕의 도시 베이징에서 탄생했지만 조계 도시 상하이를 자신의 성장지로 선택했다. 중국영화사에서 상하이영화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중국영화사는 상하이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자는 원주가 비슷한 동심원이었던 셈이다. 근현대도시, 이민도시, 국제도시, 상공업도시, 소비도시 등은 영화산업 발전의 요건을 설명해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가 상하이로 인해 입지를 확보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면, 상하이는 영화로 인해 근현대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하이 영화산업은 상하이뿐만 아니라 중국 근현대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유통과 소비는 상하이 경제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비조 루쉰(魯迅)도 상하이 거주 시절 택시를 대절해서 할리우드 영화를 감상했다는 일화는 당시 상하이 시민들이 영화를 얼마나 즐겼는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화 도시 상하이는 다시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곤 했다. 상하이영화가 주로 상하이에서 제작된 영화를 가리킨다면 이른바 영화 상하이영화 속의 상하이이고 상하이를 재현한 영화이다. 이 컬럼의 대주제인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의 주요 부분인 것이다. ‘영화 상하이는 영화를 통해 상하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와 도시의 유기적 결합,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이다. 영화 인생 대부분을 상하이에 몰두하고 있는 펑샤오롄(彭小蓮. 1953년생) 감독의 작품은 영화 상하이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다.

 

상하이 삼부곡

 

펑샤오롄은 후난(湖南) 차링(茶陵)인으로, 천카이거장이머우와 함께 1982년 베이징필름아카데미 감독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상하이영화제작소에 입사했다. 주요 작품으로, 고등학생들의 건강하고 활발하며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단결의 모습을 보여준 <나와 동학들(我和我的同學們)>(1986), 미국 시민권을 가진 중국인 기자 궈사오바이(郭紹白)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1948-1949년 배경의 <상하이 기사(上海紀事)>(1998)가 있고,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아 모녀 삼대의 이혼과 주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상하이 여성들(假裝沒感覺)>(2001), 화원양방(花園洋房)을 배경으로 캉()씨 부인과 그 자녀들의 고난과 대단원을 그린 <아름다운 상하이(美麗上海)>(2005), 그리고 1940년대 말 상하이 영화 <까마귀와 참새> 제작 과정과 상하이 영화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상하이 룸바(上海倫巴)>(2006) 등이 있다. 특히 뒤의 세 작품은 상하이의 전형적인 주거공간인 스쿠먼(石庫門), 화원양방 그리고 서민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아 상하이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고, 이를 상하이 삼부곡이라 한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상하이에서 활동하면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면서도 상하이 노스탤지어와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상하이 노스탤지어에서 지우고 있는 역사들과 상하이 또는 상하이인에 대한 기억 또는 망각의 일단을 복원시키고 있다.

펑샤오롄의 영화를 보노라면 같은 세대의 대표주자인 장이머우천카이거와 달리 화려하지 않다. 필모그라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졸업 후 바로 상하이영화제작소로 배치되어 상하이를 집중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의 화려하지 않은 영상은 다중(多衆)의 시선을 잡기에는 어렵겠지만, ‘보통 상하이 도시인의 일상생활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기에는 적합하다 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어둠 속에 묻힌 기억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들이대는 것은 그 기억을 억압했던 메커니즘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다지 밝지 않은 빛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좌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화려하지 않은 영상은 장점이 될 수 있다. 노스탤지어 붐이라는 촛불로 인해 더욱 어두워진 다른 역사들과 기억들을 밝혀주되 노스탤지어를 어둠에 묻어버리지 않을 정도의 빛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스탤지어와 문화적 기억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기사>

 

상하이 삼부곡을 보기 전 상하이 해방 50주년을 기념하며라는 헌사를 달고 있는 <상하이 기사>를 먼저 보도록 하자. 이 영화는 동창으로 보이는 세 남녀의 삶을 통해 해방 직전 상하이와 상하이인이 처한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쑨원(孫文)의 사진을 걸어두고 부정부패를 행하는 국민정부의 고급관리, 이를 전복하려는 공산당과 지하운동원, 그리고 그 양자를 공정하게 보도하려는 자유주의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역사 기억과 결부시켜 주목할 부분은 공산군의 상하이 입성 장면이다. 궈사오바이가 새벽안개 속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공산군의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과 점령군이 분명함에도 고급장교가 음식점에 가서 쌀로 음식 값을 지불하는 장면 등은 해방과 해방군의 대의가 숭고한 것이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상하이 기사>에서 펑샤오롄은 공산군의 상하이 입성 전후 장면들을 재현함으로써 상하이 역사의 숭고했던 순간들을 환기시킨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혁명의 숭고함이 부정되거나 문화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 초심(初心)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쑨원의 지고지순했던 대의명분과 1940년대 말 부패 현실의 극명한 대조, 1949년 해방의 숭고함과 1990년대 사회 상황의 괴리, 두 개의 근현대 국민국가의 초기 구상과 이후 진행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펑샤오롄은 1949년 해방 전후의 숭고했던 역사를 되살리고자 한다.

다음 호에서는 텍스트를 시간적으로 재배열하여 <상하이 룸바>를 대상으로 1940년대의 역사와 기억을, <아름다운 상하이>를 대상으로 문혁 트라우마를, 그리고 <상하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199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이혼과 주거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