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샤오롄의 ‘상하이 삼부곡’ (3): <상하이 여성들>
여성의 이혼과 주거 문제
펑샤오롄의 카메라는 잊히기 쉬운 일상생활을 놓치지 않고 있는 점에서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의 ‘역사들’의 일부를 재현하고 있다. 이는 서유럽의 국민-국가(nation-state)의 역사만을 중시하던 것으로부터 서유럽 이외 지역의 기타 역사, 즉 하위계급의 역사, 백인이 아닌 소수 에스닉의 역사, 그리고 남성의 역사(his story)만이 아닌 여성의 역사(her story)도 포함하는 ‘역사들(histories)’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꿔 말해, 주류 역사가 아닌 소수자의 역사‘들’인 셈이다.
199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이혼과 주거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하이 여성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지속되는 아빠의 외도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아샤(阿霞)의 엄마는 결국 이혼을 요구하고, 모녀는 집을 나오게 된다. 아샤와 엄마가 갈 곳은 외갓집밖에 없다. 아샤는 비좁은 팅쯔젠(亭子間) 생활에도 즐거워한다. 그러나 모녀는 외삼촌의 결혼 때문에 생각지 못한 불편함을 만난다. 외할머니의 제안으로 엄마는 아들이 딸린 라오리(老李)와 재혼하지만 생활비 등의 문제로 또 짐을 싸서 나온다. 다시 찾아간 외갓집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엄마는 아샤를 위해 아샤의 아빠와 재결합까지 고려하지만 아샤의 반대로 그 생각을 접고, 대신 아샤 아빠와 협상해서 집값을 받아내 모녀의 새로운 안식처를 마련한다.
이 영화를 보노라면, 1949년 이후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에서 ‘하늘의 절반’의 위치를 확보했던 중국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불안함을 알 수 있다. 아빠의 외도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갈라선 엄마의 지위는 또 다른 사람의 인형이 될 수밖에 없는 점에서 1920년대 루쉰이 우려했던 ‘집을 나간 노라’와 다를 바 없다.
여성 삼대
이 영화는 삼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다. 영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Shanghai Women(상하이여성들)’이라는 평범한 영어 제목과 ‘假裝沒感覺’라는 중국어 제목의 조합이 주는 미묘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생의 글짓기 입상 작품에 근거해 각색한 이 영화는 여고생의 정감과 생활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계속 집을 찾는 과정에서 돌아갈 곳이 없고 안전감이 없는 엄마와 딸의 모습에서 현대인이 생활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곤혹과 거북함을 발견하고 있다. 아빠의 외도가 발단이 된 이야기는 아샤의 조숙한 성장을 요구하게 되고 엄마는 아샤에게 안정된 집을 주기 위해 계속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다. ‘마치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여 형식적인 가정을 유지하려 하고, 심지어 아샤의 아빠와 재결합도 고려해본다. 그러나 딸은 마지막에 용기 있게 ‘집’에 대한 세속적인 인식을 전복하고 엄마와 둘만의 ‘집’을 마련해 새로운 생활을 도모한다.
태연한 상하이 여성
감독의 의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딸(아샤)의 눈에 비친 엄마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중국어 제목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전형적인 상하이 여성인 엄마가 아빠와 헤어진 후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외할머니의 의도적인 냉대에 직면하고는 아샤를 위해 안정적인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 라오리와 결혼도 해보고 아샤 아빠와의 재결합도 생각해본다. 또 하나는 주어를 아샤로 보는 것이다.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고 새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모습을 짐짓 ‘태연한 척’ 바라보는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태연한 척’은 소통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일기 사건’으로 불거진 모녀의 갈등은 외할머니에 의해 소통이 되고 아샤는 엄마의 ‘태연한 척’의 ‘쉽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고, 엄마에게 더 이상 ‘태연한 척’ 하지 말 것을 요구하게 된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주어를 외할머니로 가정해보는 것이다. 상하이 신구문화 융합의 산물로 보이는 외할머니는 딸과 외손녀의 두 번의 ‘돌아옴’에 대해 냉정하고 쌀쌀맞은 ‘못된’ 노파의 모습을 ‘오불관언’의 담배연기 속에 뿜어내고 있다. 세밀하게 보면 엄마의 두 차례의 ‘돌아옴’에 대한 외할머니의 대응은 약간 차이가 있다. 첫 번째 돌아옴에 대해서는 책망이 주다. 아무런 사후 대책 없이 무작정 집을 나와 친정으로 돌아온 딸, 고등학생 딸이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철없어 보이는 딸에 대해 느끼는 우려로 외할머니는 담배를 피워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죽으면 이 집은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딸을 몰아친다. 그 결과는 라오리와의 재혼이다. 두 번째 돌아옴에 대한 반응은 조금 미묘하다. 반복되는 딸의 돌아옴에 대한 확실한 대책 마련과 며느리에 대한 대처 방안이 함께 강구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딸에게 아샤 아빠와의 재결합을 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샤에게 엄마의 ‘쉽지 않음’을 이해시킨다. 상하이 여성의 또 다른 특색인 정명(精明)함과 강인함은 엄마보다는 외할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한 개인의 불행을 함께 공감하고 동일시하는 것은 정서적 위로가 되겠지만,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딸의 불행을 ‘태연한 척’ 바라보며 그녀를 대신해 출로를 모색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결국 엄마의 조우를 ‘태연한 척’ 바라보며 그녀를 위해 새로운 출로를 마련해주는 외할머니와, 자신의 현실을 고려해 마지못해 재혼하고 또 아샤의 아빠와 재결합하려는 엄마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아샤로 인해 모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새로운 삶을 도모하게 된다.
다양한 ‘역사들’과 소통
‘상하이 삼부곡’은 상하이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주거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고 있는데, 그녀의 텍스트에서 상하이 노스탤지어나 거대 서사에 의해 억압되거나 숨겨진 역사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40년대 후반의 영화인이 생존했던 현실 기억을 우리 앞에 소환하는가 하면, 관방의 주류서사에 억압된 개인의 트라우마, ‘해방’과 ‘개혁·개방’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 메커니즘에서 여성의 이혼과 주거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조계시대 기녀들의 생존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 허우샤오셴의 <해상화>를 감상해보자.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 (8): 허우샤오셴의 <해상화> (2) (0) | 2015.01.22 |
---|---|
<영상으로 읽는 상하이> (7)--허우샤오셴의 <해상화> (1) (0) | 2015.01.14 |
펑샤오롄의 ‘상하이 삼부곡’ (2) (0) | 2014.12.31 |
펑샤오롄의 ‘상하이 삼부곡’ (1) (0) | 2014.12.31 |
홍콩 무협소설에서 중화 국민문학으로―진융(金庸) 작품 두텁게 읽기― (0) | 2014.12.24 |